[리뷰] 4인 코옵으로 더 빡센 '서전 시뮬레이터2'

리뷰 | 강승진 기자 | 댓글: 9개 |
부모님은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하셨다. 원하는 일이라면 뭐든 해도 좋다고 하셨거든. 하지만 그래도 집에 의사나 변호사는 있어야 무슨 일이 생길 때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나 뭐라나. 많은 부모가 그렇겠지만, 내색은 안 하셔도 내심 사자 직업을 가지길 원하셨던 거 같다. 아쉽게도 아들 녀석은 변호사, 회계사 같은 자 직업이 아니라 직업인 게임 기'자'가 되었지만 말이다.

속마음이 그러시다니 어디 가서 '우리 아들, 별일 안 해요. 그저 서울에 있는 작은 병원 의사라니까요. 호호호' 같은 말을 하시도록 한번쯤 엄마 친구 아들이 되어드리는 게 효도 하는 길 아니겠는가. 물론 의대 입학을 위해 하던 일 다 때려치우고 지금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면 메스는커녕 의사 장갑에 집게손가락 꽂아 넣는 것도 예순 전에 불가능하다는 걸 잘 안다.

그래도 간절하게 원하면 언제나 방법은 있다. 무릇 옛 선인들이 모든 길은 게임에 있다 하지 않았던가. 기껏해야 민간요법 정도만 아는 사람이라도 장기를 뒤집고 끊어진 팔다리도 말끔하게 새로 붙이는 의술의 대가가 될 수 있다. 만약 이 병약한 환자가 혹 잘못돼 혼자 모든 책임을 지는 게 두렵다면 걱정하지 마라. 이번에는 넷이다. 잘못되면 탓할 사람이 3명이나 된단 뜻. 의술에 정치까지 익힐 수 있다니!

그러니 맘 편하게 찢고 자르고 붙이고 집어넣자.

그런데 이게 의사가 하는 일 맞나? 아니 일단 이게 제대로 된 표현인가? 잘 모르겠지만... 상관없다. 아니 깊게 고민하면 안 된다. 고민하면 지는 거다. 그냥 2만5천 원 주고 사고 다운받고, 플레이 버튼만 누르면 된다. 아, 의사 되기도 사람 살리기도 쉽고 효도하기도 참 쉽네.




[글과 미디어에 잔혹한 내용이 표현이 정말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3년 처음 등장한 서전 시뮬레이터가 가진 시야의 한계는 명확했다. '어디 의사가 환자분이 아프신데 감히 다른 곳을 보려 하는가'랄까. 눈에 보이는 건 가슴을 과하게 열어 재낀 밥과 그를 치료하기 위한 파괴도구들 뿐. 다른 곳으로 시야를 돌릴 수조차 없게 했다.

보이는 게 매번 똑같으니 수술이라는 행위 자체에 대한 집중력은 있었을지언정 챕터마다 차이를 느끼기는 어렵다. 뼈를 빠개고 심장을 들었다 놨다 하는 충격도 계속되면 적응되고 더 과격한 무언가를 찾게 된다. 이른바 쾌락적응이라는 건데 게임을 오래 할수록 원래 목적과 관계없는 강제적 장기자랑이 주를 이루는 것도 여기서 시작된다.

서전 시뮬레이터2는 전작의 근본적 한계를 게임 구성부터 들어내 완전히 고쳤다.

이제 플레이어는 작은 수술실에서 비즈 끼워 맞추듯 장기를 갈아 끼우는 기계가 아니다. 키보드 WASD 키로는 자유롭게 이동한다. 이게 수술실에만 국한된 건 아니다. 기초 지식 하나 없는 우리를 최고의 외과의로 만들기 위해 지어진 병원, 혹은 훈련소쯤 되는 공간이 이 이야기의 배경이다. 고작 시야각 내에서 손가락 하나 제대로 놀리지 못하던 전작과는 스케일 규모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크나큰 결례가 될 수준이다.



▲ 아프면 바꿔야지

게임의 스케일 변화는 당연하게도 플레이 방식도 뒤집었다. 매번 어딘가 아프다며 속까지 다 보여준 채 수술대위에 오르는 환자 밥(Bob)은 여전하지만, 수술을 위한 행위 자체가 다양해졌다.

단순하게 밥의 상태가 어떤지 직접 모니터링 기계를 통해 확인하고 장기를 꺼내기 위해 뼈를 부술 망치, 폐나 심장을 끝으로 콕 찍어 몸에서 꺼낼 메스(메스 이렇게 쓰는 거 맞죠?)를 찾으러 직접 돌아다녀야 한다. 물론 망치가 없다면 옆에 있는 소화기로 갈비뼈를 두들겨도 되고 메스가 안 보인다면 손으로 심장을 잡아 뽑아도 된다. 물론 모탈컴뱃도 아니고 피니시 힘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 망치가 없으면 병으로

그저 장기만을 다루던 전작에서 밥을 전체에서 둘러보고 확인할 수 있는 만큼 사지와 머리도 수술 영역에 추가됐다. 이제 밥은 내장뿐만 아니라 팔과 다리도 아프고 때로는 머리에 이상이 있기도 하다. 물론 최고의 외과의 앞에서 밥의 고통은 그저 작은 산들바람일 뿐이다. 우직하게 마음먹고 아픈 곳을 뽑고 잘라 바꾸면 된다.

스캐너를 통해 팔과 다리가 아프다면 톱을 가져와 절단할 수 있다. 폐사가 심하다면 손으로 잡고 뒤로 힘있게 달려나가면 사지가 뽑혀 나오기도 한다. 절단면을 본다면 메스든 톱이든 잡아 뽑든 찢겨 나왔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데 접합면이 얼기설기 끊어져 있다. 강인한 밥은 이럴 때도 죽지 않지만. 대신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늘었는데 바로 혈액이다.

장기를 꺼내거나 팔과 다리, 머리를 몸에서 뽑으면 혈액량이 꾸준히 감소한다. 수혈 주사로 혈액을 공급하고 지혈제로 피를 멈추지 않는다면 밥은 곧 죽고 미션은 실패한다. 여기에 새로 구할 장기도 직접 찾으러 가야 한다. 대게 상한 장기를 가져다 놓으면 새 장기를 꺼내주거나 기계를 켜면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장기나 신체가 만들어지는 식이다.



▲ 모니터를 통해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 지혈제로 피를 멈추지 않으면 밥이 죽을지도 모른다

자르고 뽑고 지혈하고 수혈하고 장기를 가져다 놓고 그걸 도로 가져와 제자리에 붙이고. 비교 불가로 커진 맵에서 이걸 혼자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등장한 게 바로 최대 4인까지 지원하는 코옵 플레이다.

바른 마음을 가진 한 명의 외과의만으로도 난장판이 되는 게임에 사공이 무려 넷이라니. 배가 산으로 가다 못해 엄홍길 대장도 울고 갈 등반 실력이 나오기 충분하다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작정하고 수술을 망칠 생각이 아니라면 1명보다는 4명이 훨씬 효율적으로 밥을 살리는 게 가능하다.

외과의 훈련소는 단순히 방과 방의 연결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잠긴 문을 열기 위해 버튼을 누르고 특정 장기를 바쳐야 하기도 했다. 때로는 어떻게 문을 열어야 할지조차 명확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알려주지 않은 것을 해결하고 이를 기반으로 챕터를 클리어해나간다, 이는 곧 퍼즐요소의 강화를 뜻한다.

고장 난 심장을 뜯어 혈액은 뚝뚝 떨어지는데 멀쩡한 새 심장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부터 수색해야 한다. 때로는 환기구로 공을 굴려 넣어 스위치 누르고 문을 열어야 하는데 이 지옥을 헤매는 조작의 게임에서 이게 어디 쉽겠는가. 4명의 외과의가 이를 각각 역할을 나눠 플레이하면 시간을 꽤 줄일 수 있다.

▲ 단순히 수술만 잘해서 되는 게 아니다




개발진도 이런 협동을 강조했는데 예를 들어 저기 옆 방에 장기를 바쳐야 새 장기가 나오는 장치가 있다. 그런데 장기를 들고 걸어가려면 이 방 저 방 정말 크게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장치가 있는 옆방과 수술실 사이에는 손 하나 뻗을 수준의 통로가 있다. 한 명이 옆방에서 대기하고 장기를 건네받으면 귀찮게 돌아갈 수고를 덜 수 있단 말이다.

이처럼 코옵 형태의 플레이가 강조되다 보니 사지절단 쇼를 벌이고 싶은 플레이어나 친구가 없어 혼자 하는 플레이어에게는 약간 귀찮은 형태가 되어버렸다. 거기에 제한 시간이나 혈액 수치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클리어하면 커스터마이징 아이템도 얻을 수 있는데 이게 혼자서 달성하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대신 전작의 단점인 단조로움을 깨부수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는 건 분명하다. 퍼즐과 수술의 조합도 나름 신선하고. 그런데 분명 공부를 하지 않고도 의사가 될 수 있다며 머리 아프게 퍼즐까지 풀어야한다고? 의사가 되기 위해 의대를 다닐 필요가 없다고 했지 머리를 쓸 필요가 없다고 하지는 않았다.



▲ 사람은 못 지나가지만, 여기로 장기를 건네면 빠르게 클리어 가능

스케일이 커지며 기본적인 스토리 라인의 가미도 이루어졌다. 스피커를 통해 당신에게 수술 방법을 가르치는 팸. 통신을 가로채 그녀의 말을 믿지 말고 외과 훈련도 받지 말라는 정체불명의 남성. 그리고 머리가 뽑혀도 죽지 않고 공장을 통해 계속 재생산되는 밥의 정체까지. 게임은 밸브의 포탈이 보여준 것과 비슷하게 거대한 음모를 기반에 깔고 있다. 이는 서전 시뮬레이터2가 전작과 얼마나 다른 부류의 게임을 보여주는 단편이다.

물론 이런 깊이있는 스토리가 궁금한 사람이 서전 시뮬레이터라는 게임을 할까 싶지만, 스토리가 게임을 방해하지 않는 스토리는 없는 것보단 있는 게 게임에 더 깊이 빠져드는 데 도움이 된다.

이동과 퍼즐 요소의 가미로 조작은 일대 혁신이 이루어졌다. 사실 다른 게임과 비교하면 고작 버튼 하나 바뀐 수준일테지만, 그 조작이 게임 전부였으니 혁신을 넘어 혁명이다.

WASD가 이동, 스페이스 바가 점프로 바뀌며 손가락 관절 하나까지 맡아야 했던 쥐기 동작은 마우스 왼쪽 버튼 하나로 대체됐다. 이 정도 변화면 이제 마음 먹은 대로 쉽게 컨트롤 할 수 있겠다 싶을 텐데 여전히 쉽지 않으니 기대해도 좋다. 어디에 굽힐 줄 모르는 듯 쭉 뻗은 고고한 왼손은 SHIFT 키로 어깨를 당기거나 밀어 거리를 조작하고 오른쪽 마우스 버튼으로는 손목의 각도를 다룬다. 이 각도와 거리가 제대로 맞지 않으면 눈앞에 있는 메스 하나 드는 것도 버겁다.

여전하다. 그리고 기대한 만큼 충분히 짜증 난다.

▲ 한번에 집는 건 꿈. 여전히 지옥같은 조작

크리에이티브 요소는 게임의 대미를 장식하는 부분이다. 단순히 주인공 4명을 교체하는 것부터 시작해 복장과 장갑, 마스크 같은 커스터마이징 시스템은 더 빠르고 안전한 수술을 하도록 만든다. 그래야 이런 추가 아이템을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진짜 재미는 레벨 제작에 있다. 맵 구성 디자인부터 밥의 건강 상태를 직접 설정하고 이를 온라인으로 게시하는 레벨 에디터가 정식 버전 출시와 함께 기본 포함되어 있다. 단순히 가구나 아이템을 배치하는 수준을 넘어 게임 에디터에 포함될 법한 로직 기능도 담고 있다. 오브젝트가 어떤 조건을 만족하면 이에 따른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이런 강력한 능력 덕에 이미 해외 능력자들을 통해 더욱 복잡한 수술 진행은 물론 퍼즐, 공포 게임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아마 게임 에디터에 대한 노하우가 쌓이고 수가 점점 늘어난다면 수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또 다른 훌륭한 게임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 논리 구성까지 가능한 레벨 에디터



▲ 만들어지고 있는 다양한 레벨

코미디 게임의 한계는 대개 명확하다. 일단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만들어지도록 조악한 조작과 물리 엔진 등을 깔아둔다. 흔히 약기운 풍기는 'X맛' 코드가 게임을 지배하는 격인데 의도치 않은 상황에 따른 재미는 있지만, 그게 게임의 목적과 쉬이 연결되지 않는다. 그리고 서전 시뮬레이터는 이런 인디 약게임의 선두격 게임이었고 보싸 스튜디오는 빵이나 비둘기, 물고기로 연이어 비슷한 감정을 선보였다. 웃음은 있는데 재미는 없다.

서전 시뮬레이터2는 여전히 B급 감성에 기대고 있지만, 그저 상황만으로 웃기는 게임을 넘어섰다. 여전히 AAA급 게임과 비교하기 민망하고 어설픈 이야기도 헛웃음이 나오지만, 그래도 머리 싸매고 게임답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이 됐다. 25,000원이라는 가격도 한층 커진 볼륨을 생각하면 그리 부담스러운 수준도 아니다. 그리고 이 게임이 아니라면 어디 가서 환자 좀 살려봤다는 말, 일반인이 쉽게 해볼 수 있는 게 아니기도 하고 말이다.

아, 그렇다고 부모님께 어떤 의사가 됐는지는 직접 보여드리진 말지어다. 여기저기 찢고 내장을 흔드는 모습을 본다면 자랑이 아니라 등짝 스매시를 자진모리장단에 맞춰 4박자로 한 악장을 두들겨 맞아도 모자르니까. 한층 만화적으로 과장되어 표현됐지만, 이 게임은 어디까지나 청소년이용불가 게임이고 충분히 잔인하다.



댓글

새로고침
새로고침

기사 목록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