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평] 크루세이더 킹즈3, 이 게임은 어떻게 즐겨야 하는가?

리뷰 | 양영석 기자 | 댓글: 21개 |

  • 게임명 : 크루세이더 킹즈3
  • 개발사 : 패러독스 인터렉티브
  • 유통사 : 에이치투 인터렉티브
  • 장르 : 중세 대전략 롤플레잉 게임
  • 플랫폼 : PC
  • 출시일: 2020년 9월 1일

  • 스팀 소개: Crusader Kings III는 역사적인 대전략 경험이 남긴 기나긴 유산의 후예로, 여러분의 고귀한 가문에 성공을 안겨드릴 새롭고 다양한 방법을 준비했습니다.

    정말 이런 게임은 처음인 것 같다. 튜토리얼만 해도 머리가 아파지는 게임. 알아야 할 것도 많고, 해야 할 것도 많다. 튜토리얼을 한다고 해서 게임을 100% 이해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튜토리얼을 마치고 나는 꿈에 젖었다. 야무지게 아일랜드를 통일한 위대한 군주가 되겠다고 말이다. 그것이 '승리'일 터.

    아마 나 같은 수많은 뉴비들이 이러한 꿈과 이상을 품고 '크루세이더 킹즈3'를 플레이할 것이리라. 바로 옆 동네 군소 귀족을 박살 내고 수하로 들이고 영토를 넓혀나가면서 점점 깨닫는다. "이건 뭔가 잘못됐다"라고 말이다. 국고는 쌓이지 않고, 권세 봉신들은 서로 다투면서 슬금슬금 의무에서 빠져나간다. 이 와중에 옆 동네 귀족이 자꾸 내 땅을 자기 땅이라 우기고 시달린다.



    좀 잘나간다 싶으면, 거의 암살 시도는 일상이다.

    아아, 군주란 무엇인가. 모두가 생각하는 이상향의 군주를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이 게임을 할 때 정말 많은 집중력이 필요하다. 정말 많이 피곤해진다. 거기다 내가 아무리 뛰어나고 대단한 군주가 된다고 할지라도, 내 아들이 그렇게 되리란 법이 없으며 내 아내가 반드시 정결한 여자일 것 같지도 않다. 남편이 부인을 죽이고, 부인이 남편을 죽이고, 패륜이 일상적인 일이다.

    그렇다. 이것이 '크루세이더 킹즈'의 정체성이다. 액션 계의 다크소울처럼, 크루세이더 킹즈는 이러한 '전략형' 게임에서의 고난이도를 추구한다. 당신이 정복 군주이자 이상 군주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며, 그마저도 '운'이 따라야 한다. 잘나가는 와중에도 아들의 교육이 잘 진행되어야 하고 살아남아야 한다. 그리고 당신도 전사하지 말고, 병사하지 말고 잘 살아야 한다.

    권세 봉신들은 견제하면서도 친분을 유지하고, 궁정에 모집된 인재들을 살피면서 타국의 동맹을 눈여겨보고 공작도 쉴 새 없이 진행하면서 봉토를 관리하다 보면 어느 날 늙은 나 자신을 보게 되고, "죽음이 임박했다"라는 메시지를 본다. 후계자로 계속 플레이할 수는 있지만 후계자가 만능은 아니니까...



    죽었지만, 게임오버는 되지 않는다. 가문이 살아있다.

    "잘 하려고 하면" 게임이 스트레스가 점점 커진다. 스토리 트레일러에 답이 다 있다. 힘을 행사하는 법을 배우고, 내정과 무예는 소홀함없이 갈고 닦아라. 적을 가까이두고 언제나 의심하고 인지할 것이며, 속임수와 간계로 적을 무너뜨려야 한다.

    이를 보면 얼마나 과거 시대에 군주들이 위대한 사람이었는지 새삼 깨닫고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하지만 이 게임은 느긋하게 즐기면 달라진다. 느긋하게, 편안하게 "인생 될 대로 되라"하면 정말 재밌게 즐길 수 있다.




    처음에는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지만 옆에서 들은 "그냥 아침 드라마 본다고 생각하고 해봐라"라는 조언을 듣고, 거대한 야망보다는 소박한 마인드로 한 번 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건 또 막장이 너무 막장이다. 잘 키워서 시집보낸 딸내미는, 남편을 죽이고 가주가 되더니 아비한테 쳐들어와서 동생을 데려갔는데 알고보니 동성애자다. 그리고는 아주 그냥 여기저기 다 싸움 걸고 다니고 협잡질하면서 아일랜드의 평화를 개박살냈다.

    화가 나서 포기하고 시작한 다른 시대에서는 시작과 동시에 부인을 맞이했더니 바로 바람이 나서 사생아가 나왔다. 그런데 사생아가 능력치가 너무 좋아서 대단한 인재라 등용을 안 할 수가 없다. 나중에는 부인이 헌신적으로 변하더니 내정에 엄청 도움을 주더라. 아침 드라마 정도는 참 우습게 넘길 초비현실적인 상황이 수도 없이 일어난다.

    아아, 인생이란 무엇인가. 크루세이더 킹즈에는 인생이 담겨있다. 인생지사 새옹지마, 앞 날을 알 수 없는 하루네 인생을 담아두었다. 고결한 주교께서는 연애질하다 걸려서 망신을 당하셨고, 권세 높은 귀족께서는 인육을 드신다. 어릴 때부터 약혼하며 백년해로할 것 같던 아내는 내 기사와 정분이 났으며 내 아들은 20살 어린 동생과 연인이 되었다.

    아, 이제 모르겠다. 그렇다. 중세 시대는 이렇게 알 수 없는 것이다. 시시각각 정세가 바뀌고 비밀을 캐낼 때마다 아침 드라마 정도는 우습다는 걸 알게 해주는 게임이었다. 이것을 "즐기기 시작하니까" 정말 재미있는 게임이 되었다. 이것이 크루세이더 킹즈의 참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돌아보면 그동안 내가 게임을 즐기는 자세를 크게 잡아준 게임이기도 하다. 언제나 "성취감"을 느끼려고 노력했던 과거가 많고, 실제로 그런 게임들을 위주로 플레이를 했었다. 노력으로 보상을 받는, 그런 게임의 기본적인 구조를 좋아했고 구조적으로 이를 파괴하는 게임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크루세이더 킹즈는 좀 다르다. 뭐랄까, 다른 의미로 흥미진진한 게임이랄까. 그동안 내가 게임을 플레이해온 자세를 지적하고, 이렇게 한 번 즐겨봐라라고 대화를 거는 게임 같았다. 그래서 더욱 신선했고, 심취한 것 같다. 튜토리얼을 보며 머리 아픈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 지금은 한 번 키면 언제 게임을 끌지 모르는, 식음을 전폐하고 플레이를 할 정도로 심취해있다. 왜 이 게임이 좋은 평가를 받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5%로 성공!! 같이 프랑크 타도하자던 공작이 배신했으므로 정당한 처벌이었다.

    아마 내가 ''위대한 군주'로서 크루세이더 킹즈에서 성취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지금에 와서도 그런 엄청난 플레이를 해보고 싶기는 하지만, 처음 게임을 시작할 때만큼은 아니다. 지금은 당장 어느 나라에서 시작하면 또 다른 막장 드라마를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 뿐. 그냥 내 가문과 내 아이들, 그리고 친척들만 잘 지키면 된다. 나라야 망하든 말든 알게 뭐람. 가문만 지키면 계속할 수 있는데? 정말 진정한 RPG, 롤-플레잉-게임이다. '가주의 역할'에 몰입하는 게임으로서 말이다.

    그래서 인생은 설계를 잘해야 한다. 지금 생에는 글렀다고 생각하면 아들에게 모든 걸 물려주고 넘어가면 된다. 나라가 망해도 사람은 계속 살아가고 역사를 이어간다. 그렇게 크루세이더 킹즈를 통해 몇백 년에 걸친 중세 유럽과 중동, 아시아, 인도 등 여러 지역에서 발생하는 흥망성쇠를 맛볼 수 있었다.

    보고 있으면 정신이 나갈 것 같다. 그렇지만 그 정신나감이 너무 즐겁고, 이를 즐길 수 있다. "에라, 인생 될 대로 되라", 이것이 진정으로 '크루세이더 킹즈'를 즐기는 자세이자 가장 재미있게 플레이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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