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게임으로 여행 기분 내기

기획기사 | 박광석 기자 | 댓글: 5개 |



최근 50만 명 이상의 내국인 관광객들이 가까운 휴양지인 제주도에 다녀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같은 시기에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1단계로 완화된다는 소식까지 이어지며, 그동안 미뤄왔던 여행 계획을 다시 세우는 이들도 많이 늘어난 상황이다.

하지만 언제든 가장 큰 위기는 긴장을 놓은 순간에 찾아오는 법이다. 거리두기 조치가 완화되고 아직 1주일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 기본적인 방역수칙들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는 사회적 거리두기에 지쳐 여행에 대한 갈증을 참을 수 없게 되었을지라도, 될 수 있는 한 '나는 괜찮겠지'라는 무책임한 생각을 접어둬야 할 때다. 목적지에 착륙하지 않고 여행지 상공만 빙빙 돌다 회항하는 새로운 형태의 여행 상품인 '관광비행'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것처럼, 공존을 우선하면서도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방책을 계속 연구해야만 한다.

주말 동안 방에 누워 게임 플레이에만 여가 시간을 할애해도 '누구보다도 방역 수칙을 제대로 준수하는 책임감 있는 어른'으로 비춰질 수 있는 요즘, 여행에 대한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는, 오직 게이머들을 위한 특별한 단기 해외 여행 플랜을 마련해봤다.


■ 지독하게 현실적인 여행의 시작, 지하철로 공항까지




매번 공항행 지하철을 탈 때면, 리무진 버스를 놓쳤을 때 어쩔 수 없이 이용하는 차선책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계단을 오르내리며 정확한 플랫폼을 찾아가는 일이 여간 고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번엔 꼭 버스 시간표를 제대로 확인하겠다고 다짐하며, 때마침 플랫폼으로 미끄러져 들어온 공항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여행 기분을 가장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순간은 언제일까? 꼭 한번 방문해보고 싶었던 관광 명소에 도착하여 인증샷을 남기는 순간이 될 수도 있고, 모든 여행 일정을 마치고 저무는 석양을 바라보며 그 끝에 닥쳐올 평범한 일상을 떠올리는 순간이 될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여행을 떠나기 위해 집을 나서는 그 순간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게임으로 여행을 대리 경험한다고 곧바로 여행지를 즐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면 크나큰 오산이다. 소름 돋게 현실적인 여행을 경험하기 위해 옷가지를 바리바리 싸맨 캐리어를 끌고 공항 철에 오르는 순간부터 게임으로 즐겨보자.

Open BVE는 국내의 여러 지하철 노선을 게임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오픈소스 철도 시뮬레이션 게임 프로그램이다. 게임을 내려받을 수 있는 공식 페이지에서는 프로그램의 기반이 되는 영국, 일본 철도와 관련된 소스만 제공하고 있지만, 각종 철도 관련 게임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국내 커뮤니티의 능력자들이 한국 차량과 노선 역시 게임 속에 구현해냈다.

더욱 사실적인 지하철 경험을 완성해내기 위한 커뮤니티의 움직임도 활발한 편이다. 그 무엇보다도 디테일을 중시하는 철도 마니아들답게 커뮤니티에는 매번 차량과 관련된 새로운 소스가 갱신되고 있고, 오직 Open BVE 플레이를 위한 전용 컨트롤러를 직접 제작하겠다는 유저도 있을 정도다.



▲ 사실적으로 구현된 탑승 플랫폼. 빈자리가 많으니 서서갈 걱정은 없다

▲ (영상출처: '경인선 화물열차' 유튜브)


■ "이 비행기는 6시간 후면 목적지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젠장. 창가 쪽 자리다. 어떻게든 이동 경비를 줄여보려고 저가항공의 이코노미석을 예약하다보니, 좌석 선택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 실책이었다. 한두 시간의 짧은 비행이라면 바깥의 경치도 내려다볼 수 있으니 오히려 이득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이번 비행은 적어도 6시간이 넘게 걸린다. 제발, 적어도 옆 좌석에 커다란 덩치의 장정이 앉지 않기를.



평소 비행기를 타볼 일이 거의 없는 이들에게 있어 해외여행의 백미는 단연 여행지를 향해 날아가는 그 순간이 아닐까 싶다. 평소엔 좀처럼 접할 수 없는 생소한 경험에서 오는 긴장감과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닥쳐올지도 모르는 사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그리고 곧 마주하게 될 여행지의 이국적인 풍경과 그곳에서 새롭게 쌓아올릴 추억들에 대한 설렘까지. 여러 생각과 복합적인 감정이 함께 교차하는 특별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스팀을 통해 15일 출시된 신작 '에어플레인 모드(Airplane Mode)'는 이처럼 누군가에겐 여행지를 둘러보는 것보다도 더 특별하게 느껴질 수 있는 비행 경험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쉽게 말해 '비행기 승객 시뮬레이터'라고 할 수 있겠다.

플레이어는 창가 쪽 이코노미석에 앉은 승객이 되어 이륙부터 착륙까지, 6시간의 비행을 고스란히 경험하게 된다. 앞좌석에 붙어있는 모니터에서는 비행경로와 현재 위치를 볼 수 있는 위성 이미지가 표시되고, 철 지난 옛날 영화들을 감상할 수도 있다. 기내 방송이 흘러나올 때면 영상이 멈춰 한동안 시청 흐름이 끊기게 되는 것 역시 사실적으로 구현됐다.

이외에도 리모컨 형태의 작은 컨트롤러로 즐기는 십자말풀이나 스도쿠, 빼먹으면 섭섭한 기내식 서비스는 물론, 난기류나 와이파이 연결 불량, 결코 울음을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아기까지, 자칫 단조롭게 느껴질 수 있는 비행을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각종 무작위 이벤트들도 함께 만나볼 수 있는 것이 이 게임의 특징이다.



▲ 이륙 전에는 꼭 휴대폰을 비행기 탑승 모드로 전환해야 한다



▲ 특별히 맛있지도 않지만, 놓치면 너무나 아쉬운 비행기 기내식



▲ 보고 싶었던 영화가 몇 안 되는 상영 목록에 껴있으면 수지맞은 기분이 든다



■ 고난의 강행군 시작! 여행의 주요 목적은 관광? 음식?

▲ (영상출처: Leonidas 유튜브)

긴 비행 끝에 겨우 목적지에 도착했다. 오랫동안 앉아있느라 뭉친 다리를 양손으로 대충 주물러 풀고, 본격적인 여행에 앞서 현지 간식으로 간단히 식사를 때우기로 한다. 비행기에서 제공되는 기내식을 먹고 곧장 잠들곤 하다 보니, 현지 음식으로 한 끼도 빠짐없이 화려하게 챙겨 먹으려던 계획은 매번 수포로 돌아가곤 한다.



음식은 여행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다. 오직 새로운 음식을 먹기 위한 '식도락 여행'을 계획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로 말이다. 이들은 그 나라에서만 맛볼 수 있는 현지 음식을 접하는 것이 여행지를 둘러보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끔은 사전에 예약한 투어나 열차 시간을 맞추는 것처럼 바쁜 일정을 소화하다 보면 식사가 뒷전이 되어버리는 경우도 빈번하다.

미리 계획한 일정을 소화해내기 위해 간식으로 식사를 때우는 경험은 결코 유쾌한 경험이라 보기 어렵지만, 여행지에서의 알찬 하루를 위해 바쁘게 움직였던 지난 추억을 떠올리기엔 더할 나위 없어 보였다.

MMOFPS 게임 '이스케이프 프롬 타르코프(Escape from Tarkov)'에는 게임 캐릭터가 생선 통조림이나 초콜릿, 건빵처럼 간단한 음식을 먹는 섭취 애니메이션이 적용되어 있다. 통조림 캔의 뚜껑을 따는 소리나 음료를 벌컥벌컥 들이켜는 소리, 과자 봉투를 여는 소리까지 사실적으로 들을 수 있다 보니, 유튜버들의 'ASMR'처럼 섭취 애니메이션만 따로 편집된 유저 영상이 다수 제작되기도 했다.

게임 속에는 나무가 울창한 숲이나 파도 소리가 들려오는 해변, 조용한 오두막 등 '먹방' 콘텐츠의 배경으로 삼을 장소도 다양하게 등장한다. 헤드셋을 끼고, 해안가의 바위에 앉아 부서지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쇠고기 스프 통조림 캔을 뜯는 모습을 떠올려보자. SNS에 올릴 번듯한 먹스타그램 사진은 건지지 못하겠지만, 이런 게 바로 낯선 여행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낭만이 아닐까?



▲ 동네 편의점에서는 볼 수 없는 현지 느낌 가득한 과자도 먹어보고,



▲ 음료는 절대 실패할 리 없는 산뜻한 콜라로 마무리하는 것이 국룰이다


■ 뚜껑 열리는 오픈 카 대신 고물차로 떠나는 드라이빙 투어




역 주변의 허름한 렌트카 가게에서 독일산 구형 경차를 하나 빌렸다. 접수대에 놓인 팸플릿 표지에 그려져 있던 뚜껑이 열리는 녀석을 빌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불필요한 지출로 여유를 부릴만한 형편도 아니었다. 어찌 되었건 이번 여행의 발이 되어줄 고마운 녀석이라고 생각하며 가게를 나서는 순간, 이미 해가 져버린 어두운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오픈카를 빌렸다면 뚜껑을 열어볼 기회도 없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내심 이번 여행엔 천운이 따르는 게 아닐까 하는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여행을 즐기는 방법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스키나 보드, 등산, 낚시, 자전거 타기, 캠핑과 같은 레저 활동을 즐기는 것도 여행을 즐기는 방식이라 할 수 있지만, 앞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유명 식당이나 야시장을 돌며 음식이란 음식을 모조리 섭렵하는 것도 여행이 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선 국내에서는 쉽게 구하기 힘든 '레어 굿즈'를 찾아 발품을 파는 것에 목적을 두는 여행도 있다.

이번에 소개할 'Jalopy'는 허름한 고물차를 타고 유럽 각지를 여행하는 로드트립 게임이다. 독일 동부의 드레스덴에서 출발하여 여러 나라를 그저 방랑할 뿐, 특별한 목적 같은 것도 없다. 밤이 되면 길가의 여관에서 숙박하기도 하고, 고장으로 차가 퍼져버리면 부품을 교체하면서 여행을 이어나가게 된다.

단순해보이는 게임이지만 엔진 블록부터 카뷰레터, 점화코일, 연료탱크, 배터리, 에어필터, 냉각수탱크 등 차량을 구성하는 여러 부품이 다양하게 등장하고, 안정적인 운행을 위해 날씨나 짐의 무게를 함께 고려해야하는 등, 생각보다 세밀한 요소들도 함께 갖추고 있는 것이 이 게임의 특징이다. 해외 인디 게임임에도 한국어 인터페이스와 자막을 제공하는 점 역시 칭찬할 수 있는 부분이다.

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의 해외 국가도 쉽게 방문하지 못하는 지금, 인디 게임 Jalopy에서 낡은 고물차 한 대를 벗 삼아 유럽 전역을 마음껏 돌아다녀 보는 것은 어떨까.




이번 기사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한동안 잊고 지냈던 소소한 여행의 순간들을 게임 속에서 찾아보았다. 누구나 알만한 메이저급 게임들 대신,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는 작품들이 목록에 포함된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사실 게임을 통해 여행을 한다는 개념은 새삼스레 다시 주목할 일도,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발견인 것도 아니다. 이미 여러 개발자들이 현실 세계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정교한 그래픽으로 직접 방문하기 어려운 다양한 장소들을 게임 속에 표현해낸 바 있고, 우리는 매번 게임 속 주인공이 되어 정교하게 구현된 게임 속 명소들을 탐험해왔다.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 속 노트르담 대성당이나 기자 피라미드, '언차티드' 시리즈의 보르네오 섬이나 히말라야 원주민 부락 같은 곳 말이다.

게임에서까지 좁디좁은 이코노미 좌석에 앉아 궁상맞은 경험을 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MS 플라이트 시뮬레이터'에서 미국 대통령 전용기로 쓰이는 보잉 VC-25를 끌고 세계 각국을 마음껏 유랑해보는 것도 좋겠다. 게임 속 명소들엔 별다른 관람료도, 입장을 제지하는 안전 요원도 없다. 코로나19가 완전히 종식되는 그날까지, 게임 속에서 그 어떤 패키지 상품보다도 안락한 여행의 재미를 누려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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