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우리는 죽어야 산다 '고스트러너'

리뷰 | 강승진 기자 | 댓글: 17개 |

인생에서 죽음은 곧 끝을 의미하지만, 게임에서는 다릅니다. 때로는 더 큰 행복을 위한 잠깐의 시련일 수도 있고 죽음 자체가 일종의 성장 과정 쯤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는 한순간에 표출되는 쾌감의 기반이 되거나 영속적인 진화의 단초가 되죠.

간단하게는 파티원의 전멸을 통해 부족한 점을 채워나가며 엔딩으로 나아가는 RPG부터 죽고 죽다 끝내 엔딩의 기쁨을 부여하는 고전 플랫폼 게임들. 그리고 짐짓 자기 파괴적으로까지 보이는 죽음 하나에까지 게임적 경험이라는 역할을 부여한 소울 시리즈까지. 죽음은 플레이어를 성장시키는 일종의 경험치인 셈입니다.

오버워치의 겐지를 떠올리게 하는 이 사이보그 칼잡이의 액션은 그래서 죽음과 한결 더 맞닿아 있습니다. 손을 짚은 벽에서 미끄러지고 적의 공격 한번에 가슴이 뚫려나간 순간. 찰나의 죽음은 플레이어게 그 죽음의 이유를 각인시킵니다. 그리고 아주 약간의 이동과 판단의 차이, 그리고 다시 죽고 이를 반복하며 끝끝내 최고의 결과물로 이 순환을 깨버리는 순간의 쾌감을 전합니다.

'고스트러너'는 그렇게 게임이 가지는 죽음의 속성. 그 기본에 충실합니다.

다만, 그런 경험이 주는 경험치 자체가 너무 적어 10번, 100번의 죽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데 있죠. 더 재밌는 점은 그런 플레이어의 무수한 죽음이 절대적인 어려움을 뜻하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단 한 번의 공격과 죽음, 예외 없는 즉사

게임의 기본 디자인은 간단합니다. 모든 적을 처치해야 열리는 잠긴 문을 열기 위해 끝까지 살아남아 지역 내 모두를 죽이는 것. 혹은 특정 상황을 해결해야 길이 열리는 곳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 이 둘 뿐입니다. 대개는 전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죠.

이 방식도 간단합니다. 너도 한방 나도 한방, 이른바 '죽창 대전'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게 기본 룰이죠. 고스트러너가 그리는 죽음의 첫 형태는 바로 이 즉사입니다. 한 번의 공격에 나자빠지는 게임 특성상 플레이어의 기본 소양은 적의 공격이 닿기 전에 적을 공격할 수 있느냐는 점이죠.



▲ 보스급이 아니면 방패를 우회하든, 칼질로 여러 합을 겨루든 어쨋든 한방



▲ 대신 나도 한방에 간다

기본 설명이야 간단하지만 그걸 방해하는 요소들이 꽤 많습니다. 우선 사이보그 닌자 같은 외형처럼 땅에 두 발을 붙이는 시간이 생각만큼 많지 않습니다. 쿨타임이 따로 돌아가는 평지 대시와 공중 대시, 그리고 갈고리로 휙 잡아채듯 줄을 타고 넘어가는 갭 스킬 등을 활용하며 쉴 새 없이 뛰어다녀야 합니다.

그도 그럴게 적의 공격은 쏟아지는데 맵의 절반, 심한 곳은 70% 이상이 낙사 구간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평지에서 공격을 피하면 그대로 떨어져 사망하고마니 타고 넘는 파쿠르 액션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죠.

파쿠르 액션하면 떠오르는 게 미러스엣지 시리즈일 텐데요. 이게 아무래도 오래전 게임이기도 하고 이미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웬만큼 파악된 게임인 만큼 사이보그의 파쿠르는 이보다 명확하게 이루어집니다.

고스트러너는 내려다보면 자신의 몸까지 전부 보이는, 사실적이지만 답답한 미러스엣지식 시점 대신 일반 FPS처럼 몸 앞쪽으로 시점을 옮겨두었습니다. 그래서 시야의 제한도 적고 더 명확하게 다음 이동 타겟으로 움직일 수 있죠.

물론 이것도 벽 타고 공중에서 대시하는 속도가 워낙 빨라 순간적인 1인칭 시점 조작에 익숙해져야 가능합니다. 평소 오버워치나 콜오브듀티 같은 게임도 콘솔로 패드 플레이를 즐길 정도로 컨트롤러 조작에 익숙하다고 자신했었는데요. 결국, 좀 더 원활한 플레이를 위해 키보드와 마우스로 플레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공격과 함께 게임의 기본을 구성하는 파쿠르 액션, 후반부로 갈수록 신경쓸 게 많아진다


반복되는 죽음, 거스를 수 없는 과정

여러 낙사 구간과 회피, 순간적인 판단력의 중요성 탓에 작은 실수는 곧 죽음으로 연계됩니다. 이렇게 죽고 또 죽고를 반복하는 탓에 일부는 다크소울에 빗대 이야기하기도 하는데요. 조금더 게임 디자인 측면으로 비교하고자 한다면 고스트러너의 핵심은 데네톤 게임즈의 '핫라인 마이애미'와 유사합니다.

탑다운 슈터와 1인칭 액션이라는 장르적 차이가 존재하지만, 너무나도 쉽게 죽는 주인공을 조작해 모든 적을 죽지 않고 제압한다는 큰 틀은 같습니다. 그리고 클리어를 위한 방식을 찾아 나가는 데에서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맞게 되고요.

실수나 컨트롤 미숙으로 인한 죽음을 겪으면 별다른 페널티 없이 곧장 체크포인트에서 재시작할 수 있습니다. 고스트러너는 사망 신조차 삭제하고 곧장 재시작 화면을 띄웁니다. 로딩도 없어 죽으면 같은 구간을 조금씩, 다르게 플레이해가며 클리어에 다가가는 거죠. 그래서 이런 실수는 없으면 좋지만, 무조건 피해야할 두려운 존재도 아닙니다. 고스트러너에서 죽음은 그저 당연히 겪는 일종의 과정일 뿐입니다.

▲ 죽었다고? 그럼 그냥 다시 해보고 뚫어내면 된다



▲ 다시 해보면 된다고 했지 한 번 만에 된다고는 안 했다 수십 번은 죽어야지

다만 공격 형태의 차이는 분명합니다. 그래서 풀어나가는 방식도 다르죠.

핫라인 마이애미는 어디까지나 현실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슈터 게임입니다. 적이 떨어트린 무기를 집어 공격할 수 있죠. 무기도 근거리 무기부터 다양한 총기를 통한 원거리 공격이 가능합니다.

고스트러너는 표창이나 공격을 무시하는 돌진 스킬 등이 존재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교체할 수 없는 한 자루의 카타나가 기본 무기이자 궁극 무기로 쓰입니다. 반면 적들은 대게 원거리 공격이 가능하고 근접 전이 가능한 적도 순식간에 플레이어 위치까지 점프가 가능해 주인공을 일격에 끝내버립니다. 적과 거리를 두고 회피하거나 숨는 플레이로는 게임을 끝낼 수 없는 거죠. 그래서 적을 '제압'하는 행위만큼이나 적에게 '근접'하는 행동이 중요합니다.

몸을 사려야 하는 구간보다는 공세 수위를 높여 더 빠르게 달리고 더 정확하게 벽을 타 먼저 공격하는 플레이를 유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은 핫라인 마이애미를 따른 또 다른 인디 게임인 '카타나 제로'와 더 유사하기도 하고요.



▲ 여러 번 죽어가며 게임 루트를 찾아내는 건 '핫라인 마이애미'를



▲ 그 방식 안에서 근접과 카타나 액션을 선보인 건 '카타나 제로'를 닮았다


일격필살, 죽음으로써 진화하는 유령

빠른 속도와 순간적인 판단, 컨트롤의 중요성, 그리고 수없는 죽음까지. 고스트러너는 흔히 어렵다고 불리는 게임이 가지는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이 어려움은 생각보다 공평하고 때로는 합리적이기까지 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서서히 오르는 난이도. 그리고 불가능할 것 같지만 조금씩 그 해법을 파악해나가면 길이 열리는 방식은 컨트롤에 능하든, 곰 같은 둔한 손이든 모두 겪어야 하기 때문이죠.

▲ 지금 보면 여기서 대체 왜 죽지? 싶을 정도. 멘털을 제대로 유지하는 게 필수다

게임에 익숙해지기 전에는 컨트롤조차 손에 익지 않아 한 스테이지에서 수십 번은 눈 깜짝하면 죽습니다. 물론 게임 후반에도 이렇게 죽는 건 큰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횟수는 비슷해도 어떻게 죽느냐는 다르죠.

게임이 진행될수록 그 스테이지의 기믹이 달라지고 적의 형태도 달라집니다. 처음에는 단발 공격만 했다면 여러 발을 연발로 쏘고 나중에는 방패를 들고 전면 공격을 막아내기도 하죠. 맵 형태도 바닥이 없어 점프와 갈고리만으로 풀어나가야 할 때도 있고 장애물이 잔뜩 등장해 피하는 데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새롭게 접한 플레이어라면 이렇게 패턴을 익히는 과정에서 당연하게 죽음을 겪습니다. 그리고 등장하는 맵의 형태와 적의 형태로 구성되는 난이도도 일차함수 형태로 서서히 오르죠.



▲ 처음에는 일격에 죽는 적들이 핵을 통해 보호막을 가지기도 하고



▲ 방패를 들고 정면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내기도 한다

클리어를 위한 루트를 탐색하는 과정은 손만큼 머리도 중요합니다. 도저히 클리어가 불가능할 것 같은 지역도 사실 몇 번 죽으며 지역 곳곳을 돌아다니면 문득 해법을 깨닫기도 합니다. 때로는 복잡한 루트로 수십 번을 죽은 후 포기하는 마음으로 도전한 다른 방식의 플레이가 허무할 정도로 쉽게 지역 클리어를 끌어내기도 하죠.

이건 단순히 운이라기보다는 제작진이 다분히 의도한 부분인데요. 대게 눈에 보이는 루트, 당연히 가야 할 것 같은 루트는 스킬이나 더 테크니컬한 플레이를 필요로 합니다. 주변을 둘러보고 다른 길을 찾는 노력을 한다면 조금 더 쉽게 진행할 수 있도록 만들어 둔 거죠.

물론, 이런 플레이를 예상이라도 한 듯, 너무나 쉽고 당연하게 가야 할 길처럼 보이는 곳이 정말 쉬운 루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단순히 '꼼수'가 아니라 경험과 반복으로 최적의 루트를 찾아야 하는 셈이죠. 이른바 죽을수록 쉬워지는 셈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죽어 나가며 학습하고 때론 운이 약간(혹은 대부분) 겹쳐 클리어하는 순간에는 매끄러지듯 칼질이 이루어지고 적이 쓰러져나가며 어지간한 액션 영화 이상의 연출이 이루어집니다. 이 게임은 바로 그 순간을 위해 플레이하는 거고요. 즉, 플레이어의 죽음은 플레이어가 하나의 고스트러너로 성장하는 과정입니다.



▲ 계속 죽다 보면 키보드 간수 제대로 하기 어려워지지만

▲ 이게 또 아름답게 연계되며 적을 썰어내려 갈 때는 전율에 발톱까지 떨린다

너도나도 어려운 합리적인 난이도 외에도 절대적인 난이도를 조절하는 기능들도 다수 존재합니다. 대시 버튼을 오래 누르고 있으면 지각 능력 부스트라는 기능이 활성화됩니다. 이때는 시간이 잠시 느려지고 시점은 물론 좌우로 빠른 이동이 가능해집니다. 공중에서 날아오는 적들의 총알을 지각 능력 부스트를 통해 피하거나 재빠르게 적 뒤를 잡을 수도 있죠.

지역도 스테이지 형태로 구성하고 리스폰 구간을 적절히 구성해 실패 시 너무 긴 구간을 되돌아가도록 만들어두지 않았습니다. 이외에도 탄환을 모두 무시하고 적 방향으로 순식간에 점멸해 공격하는 블랭크, 적의 공격 타이밍에 맞춰 공격하면 탄환을 튕겨내는 패링 같은 기술도 자칫 지나치게 높아질 수 있는 난이도를 적정 수준으로 잡아끌어 내리는 역할을 합니다.

▲ 시간을 늦추고 이동까지, 이것만 잘 써도 절반은 풀린다

해당 지역이 가지고 있는 기믹과 적들의 위치, 공격 패턴에 대한 다운로드가 온전히 이루어졌다면 이제부터 게임 클리어의 핵심 주체는 뇌에서 손으로 옮겨갑니다. 컨트롤이 부족하다면 특수 기술을 통해 클리어 여건을 만들고 반대로 조작에 자신이 있다면 멋진 컨트롤을 뽐내며 더 화려하고 빠른 클리어가 가능하죠.

보는 맛도 있으니 흔히 스피드런으로 불리는 타임어택에 더없이 적합한 게임이기도 하고요.


눈에 보이는 세계, 그 모습 그대로 구현된 디스토피아

속도감을 살리는 시각적인 즐거움은 매끈한 그래픽 연출에서도 드러납니다. 블레이드 러너로 대표되는 오락 위주의 사이버펑크 세계관에서 강조되는 칙칙한 분위기와 동북아시아의 언어, 그리고 네온-크롬 디자인은 최근 등장한 게임 중에서 손에 꼽을 수준으로 구현됐습니다.

단순히 이런 요소를 조합하는 능력을 넘어 품질 자체도 훌륭하죠. RTX 3080이 장착된 개인용 PC에서는 4K 해상도로 게임을 구동했을 때는 레이트레이싱 옵션을 지원하며 눈을 사로잡는 독특한 질감과 훌륭한 빛 반사를 선보였습니다. 반대로 회사 업무용 PC인 GTX 970 그래픽 카드로도 높은 품질의 FHD 해상도 플레이가 가능했죠.

물론 눈에 보이는 것들이 빠르고 화려하다 보니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고전적이고 능숙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액셀을 끝까지 밟은 게임의 맥을 끊지 않으려는 의도라지만, 이야기의 내러티브는 여러 인물이 통신으로 주절주절 떠드는 식입니다. 그마저도 내용이 많아지면 대시 기능 등을 사용할 수 없는 구간에 돌입하게 한 후 느리게 풀 수밖에 없는 간단한 퍼즐을 풀며 대사를 확인하도록 만들었죠.

다만, 스토리 완성도 자체가 심각하게 모자라는 건 아니고 분량도 나름 풍부하게 구성됐습니다. 그리고 애초에 플레이 방향이 스토리에 집중하지 않도록 구성되어 있기도 하고요. 그래서 아쉬움 수준으로 다가올 뿐 게임을 즐기는 데 심각한 흠결로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 '주류 문화에 흡수된 사이버펑크따위 진짜 펑크 문화가 아니야'라는 수준만 아니라면



▲ 흔히 떠올리는 디스토피아, 네온사인 등 사이버펑크 느낌을 오롯이 받을 수 있다



▲ 이 친구와 교신하는 내용으로 스토리 대부분이 흘러간다는 점은 아쉽다

대게 꾸준히 회자되는 수준의 게임 디자인을 선보인 작품 뒤로는 무수한 인용과 창작이 반복됩니다. 핫라인 마이애미가 그런 높은 수준의 디자인을 선보인 기둥과도 같은 게임이라면 고스트러너는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아 뻗어나온 가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뒤떨어진다거나 모자란다는 건 아닙니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주제의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게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혁명적인 기능은 없지만 자기 재미만큼은 확실히 챙겼습니다. 더군다나 고스트러너는 풀프라이스 게임의 절반 수준인 가격대를 형성했으니 게임의 속도감이 흔히 말하는 게임 가성비까지 뚫어버렸다고 평할 만합니다.

그리고 3D 멀미라는 신체적인 제약만 없다면, 눈에 보이는 화려함과 다르게 누구든 고스트러너의 속도감을 구현할 수 있을 겁니다. 다만 꾸준히 죽어가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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