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팀장에게 받은 스트레스, 이렇게 풉니다

리뷰 | 정수형 기자 | 댓글: 9개 |


⊙개발사: Tuxedo Labs ⊙장르: 샌드박스 ⊙플랫폼: PC ⊙발매일: 2020년 10월 29일

학창시절에 친구들 사이에서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게임이 있습니다. 일명 '바탕화면 부수기'라고 불렸는데, 망치나 레이저, 페인트 같은 공구로 바탕화면을 때려 부수는 게 콘텐츠 전부였던 단순한 게임이었죠. 지금 생각해도 정말 별거 없는 게임이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따로 있었는데요. 싫은 사람이나 뭐 특정 물건을 바탕화면으로 정해둔 뒤 지지고 볶고 다 파괴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었습니다.

딱히 게임의 목적이 없다보니 조금만 해도 질렸지만 알게 모르게 쌓였던 마음속 찌꺼기가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었습니다. 사람의 원초적인 본능이라 할 수 있는 파괴 본능을 콘텐츠로 승화시키면서 단순하지만 계속 생각나게 만든 게임이었던 것이죠.

최근, 스팀에 '바탕화면 부수기'처럼 닥치는 대로 다 부술 수 있는 게임이 출시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기사 작성일 기준 스팀 평가 5,999개의 압도적으로 긍정적 상태를 받은 게임이죠. 심지어 아직 개발 중인 얼리 엑세스 버전인데도 말입니다. 도대체 어떤 게임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이번에 리뷰해볼 게임은 'Teardown'입니다. 한글로 번역하면 '분해'라는 아주 직관적인 제목을 가지고 있죠. 무엇이 이토록 사람들을 열광시켰던 걸까요? 'Teardown'의 이모저모를 낱낱이 분해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인기 태그 첫항목 '파괴'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Teardown'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모든 것을 박살낼 수 있는 샌드박스 퍼즐 게임입니다. '마인크래프트'처럼 맵에 있는 거의 모든 물건을 부숴버릴 수 있죠. 일반적인 샌드박스 게임이 제작과 파괴를 반복하면서 무언가를 발전시키는 재미를 추구한다면 이 게임은 오직 파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현재 게임은 총 3가지의 모드를 지원하는데요. 메인 스토리를 따라가는 캠페인과 캠페인에서 해금한 맵을 무한으로 씹고 뜯고 분해할 수 있는 샌드박스, 마지막으로 직접 맵을 제작할 수 있는 크리에이트입니다.

캠페인은 회사의 부채 증가로 망해가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시작합니다. 낡아빠진 허름한 공장에서 부채에 허덕이는 주인공의 모습이 어쩐지 애처롭게 다가오죠. 돈이 부족해진 주인공은 결국, 돈을 받으면 어떤 일이든 다 해주는 사업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주인공(플레이어)은 돈만 주면 무슨 일이든 하는 어둠의 해결사입니다.

게임 속에 등장하는 미션들은 이런 스토리를 반영하듯 어딘가 합법적이지 않은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업에 방해되는 경쟁자 세력의 건물을 부숴달라느니, 특정 물건을 훔치거나 혹은 없애 달라는 등이죠. 또한, 불법적인 일이라서 그런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저 결과만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만약 특정 건물을 부셔달라고 했으면 그 건물을 망치로 때려 부수든 혹은 불도저로 밀어버리든 그냥 부수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모든 미션이 다 이런 식이에요. 그냥 클리어 목적만 딱 던져주고 나머지는 플레이어의 재량껏 알아서 하세요로 진행됩니다.



▲ 컴퓨터로 은밀하게 미션을 받는 우리의 주인공



▲ 돈만 주면 무슨 일이든 한다


여기서 이 게임의 첫 번째 재미 요소가 등장합니다. 바로 파괴를 위한 명확한 목표와 자유로운 수단입니다. 목적 없는 마라톤은 사람을 지치게 만들죠. 반복적인 노동이 끝없이 이어진다면 사람은 해야 하는 이유를 상실하고 금방 싫증을 내기 마련입니다.

반대로 명확한 목표와 그에 따른 보상이 주어진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던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일종의 동기부여 방식인 셈이죠. 해결해야 할 목표가 명확할수록 그것을 해결하고 싶은 욕망이 커지고 지치지 않고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부여해줍니다.

명확한 목표에 자유로운 수단과 방식이 더해진다면 이는 반복적인 노동이 아닌, 창의력을 뽐낼 수 있는 시도의 장이 됩니다. 앞서 말했듯 목표를 해결하기만 하면 방법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습니다. 가령 물건을 훔치는 미션도 창문만 깨고 빠르게 침입하는 방법과 불도저를 타고 건물을 죄다 박살을 내면서 훔치는 방법이 존재하는 것이죠.



▲ 메인 미션은 화면에 직관적으로 표시해줘 헷깔리지 않습니다

또한, 게임의 후반부로 갈수록 미션마다 특정 제약이 생기기도 하는데요. 시간제한과 화재 경보 알람 등의 제약을 통해 퍼즐 요소도 가미하고 있습니다. 아까 제가 이 게임이 샌드박스 퍼즐이라고 했죠. 미션마다 걸리는 제약은 미션창에서도 볼 수가 없어서 플레이어는 게임을 하면서 어떤 조건이 걸려있을지는 생각해야 하고 이를 의식하면서 게임을 진행하게 됩니다.

특히, 시간제한이 걸려있는 맵은 무조건 사전에 최적의 동선을 만들어두지 않으면 깰 수 없도록 레벨 디자인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기자 개인적으로 시간제한이 걸려있는 맵이 가장 창의력이 폭발하는 미션이었습니다. 마치 괴도 루팡이 완벽한 계획으로 보물을 훔치듯 사전에 작업했던 루트로 도망을 치고 이에 성공하면 그 어떤 파괴보다도 짜릿한 희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쉽게 말해 이런 겁니다. 가령 A, B, C의 물건을 훔쳐야 한다고 쳤을 때, 어느 하나라도 건들게 되면 시간제한이 걸리게 됩니다. 제한된 시간 안에 모든 물건을 훔친 뒤 도망치지 않으면 경찰에게 붙잡히고 게임 오버가 돼버리죠.

따라서 플레이어는 모든 물건을 가장 최단 루트로 훔칠 수 있는 길을 미리 만들어야 합니다. A와 B의 사이를 건물이 막고 있어 빙 둘러가야 한다고요? 그렇다면 길을 막고 있는 건물을 부숴버리세요. B와 C 사이에 물이 흐르고 있다면 옆에 있는 나무를 부숴 통나무 다리를 만드세요. 혹은 차를 타고 언덕에서 급가속해 뛰어넘어도 됩니다. 최단 루트를 만드는 것에 정해진 답은 없습니다. 복잡한 것이 싫다면 아무 생각 없이 맵을 다 부숴버리고 진행해도 문제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 부분이 두 번째 재미 요소입니다. 게임의 아이덴티티라고 할 수 있는 파괴가 단조로우면 재미가 없잖아요. 'Teardown'은 정말 각양각색의 방법으로 물건을 파괴할 수 있습니다. 게임의 초반에는 가장 기본적인 장비만 주어집니다. 나무 재질을 부술 수 있는 망치와 페인트, 소화기뿐이죠.

이후 각종 미션을 클리어하면서 다양한 장비를 해금하게 되는데요. 나무 벽을 태울 수 있는 화염방사기부터 벽돌도 뚫을 만큼 강력한 산탄총과 리볼버 등의 총기류도 등장합니다. 다양한 장비가 존재하는 이유도 명확합니다. 물건마다 강도라는 게 존재해서 하나의 장비로 모든 것을 파괴할 수가 없습니다. 망치는 나무를 박살 낼 수 있지만 벽돌을 부술 수 없고 총은 벽돌도 파괴할 만큼 강력하지만 강철을 부술 수 없어요.

강력한 성능을 자랑하는 장비일수록 제한이 붙기도 합니다. 리볼버와 산탄총과 같은 총기류는 소지한 총알의 개수만큼 사용할 수 있고 화염 방사기 또한 소지한 용량만큼만 사용할 수 있죠. 나중에는 돈을 소모해서 장비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제한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장비를 생각하면서 게임을 해야 하니까 무분별한 파괴보다는 퍼즐에 더욱더 가까운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 나는 다 때려 부수고 싶은데 그게 안 된다는 찝찝함이 생길 수 있어요.



▲ 산탄총으로 쏴도 살짝 무너질 뿐인 이세계 최강 벽돌

개발자는 이를 탈 것의 다양화로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맵에는 건물 외에도 각종 차량과 중장비가 존재합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배경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탑승해서 조종할 수 있는 탈 것으로 분류됩니다. 그냥 탈 것처럼 생겼다면 일단 근처에 가보세요. 완전 폐차 수준의 차량이 아니라면 대부분은 탑승할 수 있을 것입니다.

탈 것은 장비의 제한을 효율적으로 해결해주는 장치입니다. 망치로 10번 휘둘러서 박살 낼 집을 불도저는 한 방에 깔끔하게 밀어버릴 수 있고 굴착기와 크레인을 활용한다면 1층은 내버려 둔 채 2층만 깔끔하게 날려버리는 것이 가능합니다. 퍼즐이 귀찮다고 생각된다면 오직 파괴에만 초점을 맞추고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셈입니다. 물론 차량도 파괴되기 때문에 무리하게 사용하다 보면 반쯤 박살이 나긴 합니다만, 탈 것이 반파될 정도면 그 대상을 원자 단위로 분해할 수 있으니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중장비의 등장으로 게임은 보다 직관적인 플레이를 띄게 됩니다. 진짜 파괴만을 일삼는 플레이를 하거나 혹은 영리하게 주어진 장비만을 이용해서 플레이할 수 있는 것이죠. 이 또한 플레이어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결국 목표만 완료하면 성공이니 어떤 방식을 취하든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 불도저님 날 가져요 엉엉


마지막 세 번째 재미 요소는 파괴 행위 그 자체에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던 재미 요소도 결국 파괴 행위가 밋밋하다면 재미가 반감되고 말 것입니다. 부시는 재미가 있어야 이것저것 시도하게 되는 것이죠. 싹 다 박살 내고 싶다는 욕망을 아주 확실하게 이끌어줄 그런 타격감, 'Teardown'은 복셀 그래픽으로 이 부분을 해결했습니다.

복셀 그래픽은 2D 도트를 3D로 볼 수 있게 표현한 것으로 요즘보단 과거에 많이 쓰였던 그래픽 효과입니다. 쉽게 말해 도트를 3차원으로 만들고 그걸 쌓아뒀다고 보면 됩니다. 요즘에는 쉽게 볼 수 없는 그래픽 효과이기도 한데요. 폴리곤은 적은 리소스로 그럴듯한 형태를 만들 수 있는데 반해 복셀은 오직 정사각형의 구조로 되어 있어서 하나의 나무를 만들더라도 수백 개의 복셀을 쌓아서 만들어야 합니다. 연산 처리 과정에서도 폴리곤보다 불리한 점이 많았던 것이죠.

▲ 파편이 튀는게 정말 자연스럽게 표현된다

하지만, 복셀만의 장점도 있습니다. 1개마다 개별적인 입자의 형태를 띠기 때문에 폴리곤처럼 특정 상황에서 속을 뚫고 들어가는 현상 자체가 없습니다. 또, 하나의 물리 엔진 안에서 모든 복셀이 영향을 받는 만큼, 폴리곤 기반 게임에선 느끼기 어려운 강렬한 물리적 현실감을 느낄 수 있죠. 쉽게 말해서 잘 만든 물리 엔진이 적용된다면 게임 속에서 꽤 현실적인 파괴 행위를 쉽게 표현할 수 있다는 소리입니다.

'Teardown'은 독자적인 물리 엔진을 적용해 폴리곤 그래픽에선 느낄 수 없는 사실적인 파괴를 재현했습니다. 현실과 100% 똑같다곤 볼 수 없지만, 벽을 망치로 내려쳤을 때 파편이 튄다거나 나무의 밑동을 때려서 없애면 위에 있는 나무가 스스로 쓰러지는 일은 가능하죠. 건물을 박살 낼 때도 물리 엔진을 잘 활용한다면 더욱 효율적으로 철거할 수 있습니다.

뭐든 박살 내면 바로바로 부서지거나 망가지는 피드백이 오는 데다 소리도 구현을 잘해놔서 때리는 맛이 정말 좋습니다. 진짜 미션 생각 안 하고 건물 하나만 아무 생각 없이 부숴도 재미있을 정도죠. 복셀이라 그래픽이 안 좋을 것 같은 느낌이 들 법도 한데, 생각보다 그래픽 품질이 괜찮습니다. 오히려 물이나 불같은 표현은 최신 게임 못지않은 퍼포먼스를 자랑할 만큼 뛰어난 편입니다.



▲ 네모로 보인다고 무시하면 안된다



▲ 물 효과는 어지간한 최신 게임보다 좋다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Teardown'은 사람의 원초적인 본능이라 할 수 있는 파괴를 규칙 속에 자연스럽게 녹인 게임입니다. 주인공의 배경을 통해 어두운 일을 해야 한다는 상황을 만들었고 플레이어에게 이를 자연스럽게 보여줍니다. 나쁜 짓이란 것을 알지만 게임 속에서 하라니까 어쩔 수 없이 한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죠.

또한, 게임 속의 배경에서 플레이어를 제외하면 어떠한 생명체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1인칭 시점이기 때문에 주인공의 모습을 볼 수도 없죠. 심지어 탈것을 타도 주인공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마치 귀신이 망치와 총을 들고 돌아다니는 느낌을 줘요. 파괴를 하는 동안에는 사람의 모습조차 볼 수 없으니 딱히 죄의식을 가질 필요가 전혀 없는 겁니다.

명확한 목표가 있으니 파괴 행위도 목적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서문에서 언급했던 바탕화면 부수기가 단지 파괴 욕구를 충족하는 데 그쳤다면 이 게임은 목적에 맞는 파괴 행위를 펼치면서 동시에 문제를 해결했다는 쾌감도 가질 수 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 게임의 콘텐츠는 별것 없습니다. 퀘스트의 종류가 많은 것도 아니고 맵도 아직 4개 밖에 없습니다. 캠페인에서 주는 장비는 총 10개인데 이중에도 자주 쓰는 장비는 정해져 있죠. 오직 파괴 하나가 이 게임의 전부인데, 그 파괴가 너무 재미있으니까 게임을 계속하게 만듭니다.

파괴에 조금 더 집중하고 싶다면 샌드박스 모드에서 자유롭게 부시면서 놀 수 있습니다. 만약 복셀을 다룰 줄 안다면 무료 복셀 모델링 소프트웨어 'MagicaVoxel'를 사용하여 직접 맵을 제작하는 것도 가능하죠. 개발사가 공식적으로 'MagicaVoxel'의 사용을 권장하고 사용 가이드까지 언급할 정도니 정식 버전에선 스팀 창작마당을 통해 능력자들의 맵을 쉽게 즐기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예전에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게임을 즐겼는데 오히려 게임을 하면서 스트레스가 쌓이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실수 좀 할 수 있는데 대뜸 부모님의 안부를 물어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남의 눈치 안 보고 속 시원하게 억눌렸던 파괴 본능을 일깨울 수 있는 게임. 'Teardown'에서 분노를 해방해보시길 바랍니다.



▲ 이번에는 무엇을 박살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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