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너무나도 당당한 '짝퉁' 포켓몬

칼럼 | 강승진 기자 | 댓글: 66개 |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There's nothing new under the sun

성경 구절에서 나온 이 오랜 속담은 포스트모더니즘을 대표하는 문구처럼 쓰였다. 독창적인 창작물 하나가 신성시되는 개인의 위상에 직결했던 낭만주의. 탈근대를 주창하는 포스트모더니즘에서야 당연히 이런 절대적인 독창성과 특수성을 곱게 보지 않았다. 새로운 창작물은 곧 내가 읽은 글, 관습, 규칙들에 따라 재창조된다고 여겼다.

이렇게 마냥 새로운 것 대신, 기존 것을 갈고 닦아내는 역량은 게임판에서 더없이 중요한 능력이다. 눈에 보이는 화면과 조작법의 체계가 거의 갖춰지며 VR이나 자이로 조작 등의 기술 혁신이 아니고서야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기존의 것을 새로운 시스템과 개념을 확장하는 것. 모방에 의한 짜깁기쯤으로 해석되는 '패스티시'는 오늘날 게임 개발의 중요한 능력 중 하나가 됐다.

현세대 손꼽히는 명작인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은 플레이어에 의한 창의적인 플레이라는 기본을 그간 시리즈에서 이어져 온 내용으로부터 자기 모방했다. 여기에 여러 오픈 월드 게임이 가졌던 특징을 닌텐도 스타일로 해석하며 보기 어려운 높은 평가를 끌어냈다. 게임의 일부 특징은 재해석되어 임모탈 피닉스 라이징이나 원신 등 다른 게임의 개념으로 녹아들고 재탄생됐다.

이런 모방에 의한 재창작은 '도용'과 절대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수 없는, 창작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최근 선보인 '포켓 트레이너 DX'는 도용이 그런 창작의 가치를 얼마나 훼손할 수 있는지, 플레이어와 대형 마켓 플랫포머의 현주소로부터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말 출시된 '포켓 트레이너 DX'는 구글 플레이스토어 인기 게임으로 첫 화면에 오랜 기간 노출됐다. 게임 제목부터 소개 멘트까지 '포켓몬'이라는 단어를 전혀 사용하고 있진 않지만, 이미지와 등장 캐릭터, 상징적인 연출 등은 이 게임이 닌텐도의 포켓몬스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확실하게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라이선스부터 닌텐도나 주식회사 포켓몬과의 어떠한 연관점을 찾을 수 없는 점에서 알 수 있듯 포켓몬을 무단 도용한 불법 게임일 뿐이다. 포켓엘프나 진격의 마스터 등 팬들의 외면을 받고 사라진 게임과 같으며 실제로도 그래야 했다.

'포켓 트레이너 DX'의 기본적인 틀 자체는 양산형이라는 표현 자체가 부끄러울 정도로 유행하는 요소들을 고루 집어넣었다. 그것들의 방향도 더 많은 결제 요소를 담아내는 쪽으로 일관되게 담겼다. 게임의 핵심인 캐릭터는 유료 과금과 뽑기를 통해 얻을 수 있도록 한 수집형 RPG에 스킬 시스템부터 돌파 등 온갖 강화요소들이 VIP 시스템과 함께 난잡하게 조합됐다.

이런 악랄한 상술을 가린 건 포켓몬이라는 포장이다. 비슷한 중국 '짝퉁' 게임이 유명 IP를 교묘하게 베껴내면서도 이름이나 캐릭터 구성 등에 적당한 차이를 둬 논란을 조금을 피하는 움직임을 보여줬지만 '포켓 트레이너 DX'는 더없이 당당하다. 조금은 숨겨둔 플레이스토어의 소개와 달리 실제 게임은 기본적인 외형은 물론 주인공 지우나 로켓단, 포켓몬 이름 등의 고유명사마저 그대로 가져다 썼다.

여기에 깔끔하게 그려진 포켓몬의 일러스트는 진짜 포켓몬 게임만큼 자연스럽다. 특히 3D로 구현된 각 포켓몬의 특수 스킬은 닌텐도 스위치로 나온 포켓몬 시리즈 이상의 연출을 선보인다. 그도 그럴 게 디자인과 연출은 포켓몬스터 애니메이션이나 일러스트를 그대로 베껴 그려냈으니 못 만들어도 문제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 '포켓 트레이너 DX'의 눈에 보이는 수려한 외형이 플레이어에게 불법 게임임에도 해볼 만한 게임이라는 그릇된 시각을 조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애니메이션 속 모습의 구현은 저작권 개념이 옅은 유저들에 제대로 먹혀든 모양새다. 플레이스토어 리뷰는 호평이 대다수이며 저평가한 리뷰 다수도 지나친 로딩 등 게임 플레이에 대한 불만이 주를 이룬다. 게임도 하루걸러 신규 서버를 오픈하며 몰려드는 유저를 받아내기 바빠 보인다. 매출 순위는 30~40위권을 오르내리며 만족스러울 만큼의 성과를 내고 있다.

이른바 '재미있으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물건을 쟁여놓으며 한껏 가격이 올랐던 닌텐도 스위치를 살 필요도. 따로 게임을 살 필요도 없다는 것도 이유되겠다. 정보 유튜버를 자처하는 누군가는 게임 정보를 열심히 정리해 '짝퉁 게임이라도 게임성이 좋으니 무과금으로 플레이하라'고 추천하기도 한다.

하지만 돈을 쓰지 않는 플레이 역시 게임에 힘을 실어주는 행위임에는 분명하다. 과금의 이유 중 하나로 꼽히는 과시욕은 타인보다 더 나은 결과물을 얻기 위해 이루어지는데 그 비교 대상이 되는 게 다른 플레이어다. 이들 무과금 플레이어는 과시와 성장의 과금 순환이 이루어지는 시발점을 제공한다.

다양한 유료 아이템 구조와 성장 한계 구성으로 유저들의 무과금 약속을 깨버리게 하기도 한다. 서비스 초기 남는 게 있을까 싶을 정도로 퍼주는 재화는 일부 단계에 들어서면 부족함을 느끼게 하고 이때 뽑기 메뉴와 결제 안내를 띄우는 건 이제는 거의 고전이 되어버린 과금 유도 시스템이다.

플레이어의 노력과 돈이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점도 문제다. 그간 캐릭터 등을 무단 도용한 게임들처럼 주식회사 포켓몬 등 지식재산권을 가진 기업이 나섰을 때 게임 서비스를 종료해버리면 플레이어가 들인 재화는 언제는 디지털 조 각으로 변해버린다. 제대로 된 절차를 밟지 않은 게임인 만큼 환불 등의 조치를 제대로 취해주리라는 보장도 없다.




눈치보며 캐릭터를 베껴내는 단계를 넘어 노골적인 캐릭터 훔치기가 당당히 마켓에 이름올리고 메인 화면에 노출된 데는 플랫폼 업체인 구글의 잘못이 가장 크다. 사후 관리를 핑계삼아 게임이 보름이 지난 지금까지 버젓이 서비스되는 모습은 지난 12월 정책 발표 당시 게임 생태계 전체에 공헌하겠다고 모습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 이전에 게이머들 스스로 불법적인 게임물 이용을 자제하는 자세가 우선이다. 저작권 침해와 도용은 그저 유사한 게임이나 정신적 계승작 등에 가해지는 윤리적인 문제와는 궤를 달리하는 범죄 행위다. 나아가 개발자들의 창작 의지를 꺾고 IP가 가진 힘마저 빼앗고 도용과 재창작의 경계마저 모호하게 만든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이 문자 그대로 창작이 없어진, 복제 게임만이 남아 서로를 복제하며 좀먹는 표현으로 바뀌지 않길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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