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삶에 웃음이 부족합니까? '브레스엣지'

리뷰 | 정재훈 기자 | 댓글: 4개 |

약간 엇나간 생존게임 - 그저 말장난이라기엔, 너무나 매력적인 장난질


몇 년 전이나 지금이나 '생존'이라는 단어 자체는 변함이 없습니다만, 생존 게임에서는 의미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쫓기고, 급박하고, 눈 돌리는 순간 죽음이 다가오던 초기 생존 게임과 달리 오늘날의 생존 게임은 일단 '생존'임을 표방하고는 있지만 기실 '크래프팅'에 더 집중하는 모양새를 갖추곤 하죠. 그런데 이게 너무 유행을 타버렸습니다. 수없이 쏟아지는 크래프팅 생존 게임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려면 독특한 시스템이나 재미 요소가 필요하기 마련이죠. 이 와중에 '브레스엣지(Breathedge)'가 등장했습니다. 그리곤 이미 차고 흘러넘쳐 제목 떼고 보면 뭔지 구분도 안되는 생존 게임 시장에 자신만의 장점을 내세우며 도전장을 던졌습니다.



게임명 : 브레스엣지(Breathedge)
장르명 : 생존 크래프팅
출시일 : 2021.02.26.
개발사 : 레드 루인스 소프트웨어
서비스 : HypeTrain Digital
플랫폼 : PC(스팀)




도대체 왜 주인공은 우주 미아가 되었나?



▲ 엉엉엉엉 엉엉엉엉

시작부터 비보입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어떤 연유로 그렇게 되었는지는 비밀이지만, 어쨌거나 주인공의 나이가 퍽 지긋한 것을 보니 나름 호상이었으리라 예측됩니다. 어쨌거나, 할아버지는 무지개 다리를 건너셨고 주인공은 우주 역사상 가장 큰 영구차 정기선에 할아버지의 관을 싣고 장지를 향해 여정을 떠났습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비극인데, 이게 끝이 아니죠. 한창 외우주를 항행하던 정기선은 무슨 이유에선지 대폭발을 일으켰고, 주인공은 겨우 산소 공급이 되는 단칸방에 갇혀 버렸습니다. 다행인 점이라면 화장실은 붙어 있다는 거죠. 그렇게, 주인공은 죽은 자를 위한 여정의 중간에서 살아남기 위한 여정을 시작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게임은 '스토리'가 있습니다. 아니 스토리가 없는 게임은 이제 거의 없으니 달리 표현하면, 스토리의 비중이 높습니다.



▲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가장 먼저 다가오는 차이점입니다. 기실, 오늘날 생존 크래프팅 게임에서 배경 이야기의 존재 가치는 둠 시절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있긴 한데 사실 없어도 별 상관 없는 정도죠. 심지어 생존 게임을 좋아하는 이들 중에도 깊이 있는 시나리오를 원하는 게이머는 소수에 불과합니다. 생존 게임의 초창기엔 대부분의 게임이 비교적 탄탄한 시나리오를 동반했지만, 오늘날의 대세는 조금 다르거든요.

최초 매력적이리라 예상한 '피말리는 생존'의 이면엔 스트레스와 긴장이 숨어 있었습니다. 이는 게이머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지만, 동시에 스트레스 요소가 되었죠. 이를 보완하기 위해 개발사는 크래프팅이라는, 긴장은 다소 낮추면서도 플레이 타임을 획기적으로 늘릴 요소를 집어 넣었습니다. 그 과정이 거듭되면서, 오늘날 생존을 표방한 많은 게임들은 생존 자체보단 갖은 재료를 모아 상상력을 펼치는 블록 놀이에 가까운 모습이 되었죠. 다만 긴장선을 유지하기 위해 최소한의 위협은 늘 마련해 두었고 난이도 조절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 생존 게임보단 토목 공학에 가까워보이는 '발헤임(Valheim)'

'브레스엣지'는 조금 다릅니다. 게임의 도입부부터 주인공이 왜 이 모양 이 꼴로 우주 미아가 되어버렸는지를 보여주고, 무작위적 오픈월드가 아닌, 잘 마련된 구체적 세계를 제시합니다. 멋진 크래프팅을 위해 일단은 살아야 하는 식으로 주객이 전도되어 버린 다른 다양한 '생존' 게임과 달리 진짜로 살아남기 위한 크래프팅을 해야 하죠. 그렇게 목적을 이루면 챕터가 넘어가고, 결국 엔딩에 다다르게 됩니다.

이 때문에 무한의 크래프팅을 원하는 게이머들에게는 약간 맞지 않을 수 있지만, 스스로 목적을 설정해야 하는 대세 생존 게임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게이머들에게 브레스엣지는 퍽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게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저 또한 시나리오를 따라가는 플레이를 즐기는지라, 일전에 플레이했던 '발헤임'보다는 브레스엣지의 시나리오 텔링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죠. 또한, 챕터가 넘어가면서 이전과 조금씩 다른 게임성을 드러내는 것도 매력 중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스포를 피하기 위해 구체적인 내용은 비밀로 두도록 하죠.



▲ 일단 읽을 거리가 참 많습니다.



건설을 위한 생존이 아닌, 생존을 위한 건설



▲ 장엄한 리모델링의 시작

물론, 시나리오의 비중 상승이 긍정적으로만 작용하진 않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최근의 대세인 무한 크래프팅을 통한 상상력의 발현과 브레스엣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개념이죠. 브레스엣지에 등장하는 모든 재료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애초에 우주선이 부서진 후 발생한 쓰레기를 해체해 건설 재료로 쓰는 개념이다 보니 무한한 재료가 있을 수 없죠.

비슷한 사례를 꼽자면 이미 널리 알려진 심해 생존 게임 '서브노티카'가 있습니다. 베이스 스테이션 단위의 크래프팅이나 재료 수급을 위해 점점 멀리 나아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외부 활동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는 점 등에서 매우 유사한 구조를 지닌 게임이죠. 그러다 보니 서브노티카와 같은 문제가 생깁니다. 최대한 재료를 치밀하게 아껴 써야 하고, 생명 유지를 위한 조건을 갖추며 점차 영역을 확대하는 형태이다 보니 크래프팅 단계에서도 심리적 긴장과 스트레스가 생긴다는 거죠. 심지어 도구마저 내구도가 존재하기 때문에 재료를 수급하려면 재료를 써서 만드는 도구를 계속 만들어 줘야 합니다.



▲ 배경이 심해인 것만 빼면 거의 유사한 '서브노티카'

하지만, 디자인 측면에서 보면 이는 어쩔 수 없는, 어쩌면 당연한 디자인입니다. 브레스엣지는 챕터를 꽤 진행하기 전까진 '적대적'이라고 할 수 있는 개체가 없습니다. 당연히 재료가 넘쳐난다면 생존 게임에 당연히 존재해야 할 최소한의 긴장선이 무너지고, 우주선에서 나온 재료로 우주선보다 더 큰 우주 기지를 만드는 말도 안 되는 플레이가 가능해지겠죠.

또한, 크래프팅의 폭도 그리 넓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오만 잡다한 것들을 다 만들고, 심지어 회로 구성까지 할 수 있는 마인크래프트엔 당연히 안 되고, 건축공학과 학생들이 신나게 솜씨를 뽐낼 수 있는 대부분의 크래프팅 생존 게임에도 못 미칩니다. 우주라는 극한 환경이 배경이기에 밀폐형 스테이션이 기본 단위가 되고, 이 안에 여러 구성품을 만들어 채워넣는 형태죠.



▲ 한땀한땀 만들다 보면 나름 또 재밌긴 한데

애초에 멀티플레이가 지원이 안 되기 때문에 게임 클리어와 연관이 없는 장식이나 치장 아이템의 존재 가치도 없습니다. 어느정도 플레이하다 보면 느껴지겠지만 눈 떠보면 내 눈앞에 있는 기지는 마치 효율이 낳은 괴물이 만든 듯 최소한의 조건에서 최대한의 효율을 뿜어내기 위해 만들어진 스테이션 덩어리에 어떻게든 우주 쓰레기들을 많이 우겨넣기 위해 꽉꽉 채워둔 보관함일 뿐입니다.

이쯤 되면, 근본적 의문이 생깁니다. 과연 이렇게 쫓기듯 진행하는 생존형 크래프팅이 과연 '재미가 있느냐?'라는 겁니다. 서브노티카의 경우 다양한 생물군의 모습을 구현하고, 이를 통해 게이머에게 '탐험'의 욕구를 유발함으로서 이를 해결했습니다. 때론 잘 만들어진 세계는 그 자체만으로 플레이 동기가 되곤 합니다. 수많은 오픈월드 게임들이 그러했고 서브노티카 또한 마찬가지이죠.

하지만 '브레스엣지'의 세계는 굉장히 제한적이며, 딱히 탐험이랄 것도 없습니다. 어딜 가나 부서진 우주선의 잔해가 있을 뿐이며, 게이머를 제외한 생물의 흔적도 발견하기 어렵죠. 크래프팅이라는 시간 잡아먹는 콘텐츠를 중심에 깔다 보니 시나리오는 비중이 높을 뿐, 플레이 방법을 강요하진 않습니다. 목표만 전달할 뿐이죠. 게임을 진행하려면 크래프팅을 해야 하는데 그리 극적인 크래프팅은 아니고, 그렇다고 크래프팅 말고 탐험을 하자니 크래프팅이 되어야 탐험도 할 수 있는 상황. 재미보단 짜증이 올라올 것 같은 이 상황을 개발진은 아예 다른 방법으로 해결해 버렸습니다.



▲ 처음엔 막연해 보이지만 나중엔 그냥 쓰레기 더미로 보입니다.



아 나 이거 데드풀에서 본 거 같은데



▲ '칭호' 시스템 따위 없습니다. 그냥 말장난입니다.

일반적으로 게임 개발자들은, 게임 내에 여러 재미 요소와 장치들을 마련해두고 게이머가 자연스럽게 그 길에 도달아도록 유도합니다. 음식을 예로 들면, 무지하게 맛있는 술을 주면서 일부러 안주를 살짝 짜게 만드는 개념입니다. 목이 말라 저도 모르게 잔을 쥐고 한 모금 들이키는 순간 요리사의 의도가 빛을 발하는 거죠.

하지만 브레스엣지는 재미 요소를 집어넣으면서 별로 머리를 쓰지 않았습니다. 그냥 누가 봐도 재밌는 걸 게임 전체에 아주 듬뿍 뿌려두었죠. 깊은 맛을 내진 않지만, 그냥 머리 비우고 웃을 수 있는 즐거움. 한 번 더 요리로 비유하면 적당히 그럴싸하게 만들어놓고 MSG를 아주 수북히 뿌려갈겨버린 느낌입니다. 깊은 맛 따윈 나중에 느끼든 말든, 일단 맛있으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말이죠.



▲ 나 이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일단, 이 게임엔 제4의 벽이라는게 아예 존재하질 않습니다. 인트로 크레딧부터 장난질을 시작해 게임 내 곳곳에서 게이머들과 소통하는 개발자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크래프팅 입문 단계에서 만들어야 하는 물건부터가 '개발진들이 강요한 쓰레기'이며, 이걸 만들면 위대한 제작자 칭호와 함께 레벨 99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게임에 레벨 따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현지화 수준도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분명 오역이 존재하는, 완벽한 한글화는 아닌 것 같은데도 플레이버 텍스트는 기가 막히게 번역해두었고, 심지어 게임 내 텍스쳐까지 한국어로 뜯어고쳐두었죠. 당연히 수준급 말장난도 거름 없이 전부 들어가 있습니다. 솔직히 저는 게임 내에 존재하는 다양하는 플레이버 텍스트를 하나하나 다 읽는 성향은 아니지만, 이 게임만은 플레이버 텍스트를 하나씩 다 읽었습니다. 불쾌할 정도로 저급하지도, 그렇다고 재미없을 정도로 억지도 아닌 수준의 언어 유희를 참 용하게 유지하고 있더군요.



▲ 낄낄대면서 보기 참 좋은 부분들

게임이란 참 오묘한 게, 아무리 잘 쳐줘도 게임 내 주요 시스템이나 킬러 콘텐츠로 봐주기 힘든 이 말장난이 놀랍게도 브레스엣지를 끌어가는 힘입니다. 게임 자체만 보면 시나리오에 중점을 둔다는 대세와 다른 관점을 제시했지만, 그래봐야 우주판 언럭키 서브노티카에서 그치는 게임임에도 이 시종일관 이어지는 말장난과 타르처럼 끈덕지게 엮인 블랙 코미디가 게임 플레이를 이어가게 하는 원동력이죠. 간혹 재료 줍기와 창고 채우기가 지겨워지다가도, 이걸 완수하면 또 어떤 개드립이 나올지 궁금해서 게임을 하는 스스로를 볼 수 있습니다.

'브레스엣지'는 그런 게임입니다. 2만원대 중반의 가격대에 판매하고 있고 실제로도 돈 값은 하지만 그 이상은 힘들어 보이는 게임이긴 합니다. 흥미로운 시나리오를 준비했고, 이를 통해 관심을 보인 게이머들을 빠르게 게임으로 끌어당기지만, 게임 그 자체만 놓고 보기엔 이들을 오래 붙잡아 둘 뒷심이 모자라죠. 이를 보완하기 위해 개발진은 게임 전체에 자극적인 맛을 내는 MSG를 아주 그득히 뿌려놓았습니다. 그 결과 돈 값은 하는 게임이 완성된 거죠.

무엇이 먼저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유머러스함을 컨셉으로 잡고 개발하다 보니 게임 자체는 그냥 그렇게 만들어진 건지, 혹은 게임이 그냥 그렇다 보니 이를 어떻게든 살리기 위해 유머를 더한 건지는 개발진만 아는 비화일 겁니다.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우리야 게임이 어떻게 만들어졌든, 재미만 있으면 그만이고 '브레스엣지'는 어떤 방식으로든 간에 26,000원에 해당하는 재미는 충분히 주는 게임인 걸요.

장점

+ '생존 게임' 치고 탄탄한 시나리오
+ 깔끔한 UI와 수준급 한국어화
+ 게임을 지탱하는 화려한 입담

단점

- 제한적인 크래프팅 요소
- 시스템적 재미 요소의 부재
- 좁은 세계와 반복적 플레이




▲ 우주 게이머들의 최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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