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평] 클래시 로얄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리뷰 | 정수형 기자 | 댓글: 1개 |
경제 용어 중에 '선점 효과'라는 말이 있다. 남들보다 먼저 시장에 기준을 제시하고 오랜 시간 유지된다면 후발주자가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기가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아무래도 더 익숙하고 이미 써본 경험이 있는 안정적인 제품에 손이 가는 게 소비자의 맘이니 말이다.

게임 시장도 선점 효과로 빛을 본 사례는 많다. 온라인 MMORPG 장르의 기준을 세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출시된 지 1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으며, 탱딜힐로 파티를 구성해 던전을 공략한다는 시스템은 MMORPG의 공식처럼 여겨지고 있다. 비주류에 머물렀던 FPS 배틀로얄 장르를 양지로 끌어올린 '배틀그라운드'도 선점 효과의 사례로 볼 수 있다.

한번 선점 효과를 본 게임은 이후 출시되는 게임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게 된다. 게이머들도 비슷한 장르의 게임이 등장하면 "어, 이거 XXX 게임이랑 비슷하네", "이 게임이 XXX랑 다른 점이 뭐예요?"와 같은 의문을 먼저 가질 정도다. 특히, 장르의 특징이 뚜렷한 게임일수록 이런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대표적인 예로 RTS와 CCG를 섞은 '클래시 로얄'이 있다.



▲ CCG + RTS 장르의 기준을 세운 클래시 로얄

실시간 1:1 대전에서 상대 팀 진영의 타워를 먼저 부수면 승리하는 '클래시 로얄'은 선점 효과를 톡톡히 누리는 게임이다. 비슷한 느낌의 게임은 이전에도 꽤 있었지만, '클래시 로얄'만큼의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이 게임이 세계적으로 크게 성공하자 이를 모방한 다양한 게임이 후발주자로 등장했지만, 선점 효과의 그늘을 벗어나진 못한 채 소기의 성과만을 거두고 물러났다.

아무래도 게임 방식이 간단하다는 점과 이 때문에 전략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수단이 한정적인 점, '클래시 로얄'이 해당 장르에서 보여줄 수 있는 대부분의 전략 방식과 재미 요소를 끄집어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따라서 최근에는 후발 주자들의 모습이 점점 보이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는데 최근 국내 개발사가 야심 차게 모바일 RTS 시장에 발을 들였다.

'나노 레전드'는 요즘 한창 인기 게임으로 등극한 '영원회귀: 블랙서바이벌'을 개발한 님블뉴런에서 출시한 RTS 장르의 모바일 게임이다. 인간 진영과 동물 진영으로 나뉜 두 소인국은 과거부터 치열한 전쟁을 벌였다는 설정으로 플레이어는 두 진영 중 한 곳을 택해 전투를 도와주는 역할을 맡는다.

블랙서바이벌을 한창 잘 개발하고 있는데 뜬금없이 왜 모바일 RTS를 출시했냐고 묻는다면 이번이 첫번째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님블뉴런은 약 1년 전, '미니막스 타이니버스(이하 미니막스)'라는 이름의 RTS 게임을 출시한 적이 있다. 그것도 모바일이 아니라 스팀으로 말이다.


미니막스는 클래시 로얄과의 차별점을 두기 위해 세로가 아닌 가로형 전장 방식을 택했으며, 플레이어를 신과 같은 느낌으로 설정했다. 그래서 손가락으로 병사를 집어서 전장에 둔다거나 마찬가지로 스킬도 손가락으로 잡아 풍선을 던지고 불을 지르는 등 플레이어가 전장에 직접 개입하는 느낌을 주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블랙 앤 화이트'를 생각하면 된다.

2018년 12월쯤 스팀 앞서 해보기로 출시된 미니막스는 2020년 1월부터 야심 차게 정식 출시를 시작했지만, 아쉽게도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올해 3월 30일 서비스 종료를 맞이하고 말았다.

대신 PC 버전으로 개발했던 게임을 살짝 바꿔 모바일로 출시한 것이 바로 '나노 레전드'다. 스팀 진출 과정에서 많은 부분을 배우고 느꼈는지 '나노 레전드'는 게임 내의 몇 가지 부분이 달라졌다. 가령 첫 인트로 부분에서 플레이어는 비밀 가게를 찾아온 손님으로 등장하며, 게임 내에서는 '기가'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스토리 설정 말고 게임 플레이도 꽤 달라졌다. 좀 가벼워졌달까. PC 버전이 묵직한 전략을 보여주려는 느낌이었다면 모바일은 플랫폼의 성향에 맞춰 가볍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가로형이었던 전장은 세로형으로 바뀌었으며, 그만큼 맵도 작아졌다. 영웅의 스킬 개수도 줄어들었고 한 번에 볼 수 있는 카드 덱의 숫자도 6개에서 4개로 줄었다.

많은 부분이 PC 버전과 달라졌는데, 모바일 플랫폼에 맞춰 쉽고 가볍게 만들다 보니 어딘가 '클래시 로얄'의 느낌이 많이 나버렸다. 플랫폼의 차이로 '클래시 로얄'이 깔아놓은 선점 효과에서 한 발 떨어진 상황이었는데, 모바일로 넘어오면서 표적이 돼버린 것이다. 실제로 유저들의 반응도 "이 게임 괜찮아요?"가 아니라 "이 게임 클래시 로얄과 뭐가 달라요?"다.



▲ 많은 부분에서 변화를 줬었던 미니막스

개발사에서도 '클래시 로얄'이 깔아놓은 선점 효과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많은 부분에 신경을 쓴 흔적이 보였다. 미니막스에서 강조했던 플레이어의 손이 이번 작에서도 등장하며, 손으로 병사를 놓고 스킬을 쓰는 것이 그대로 구현됐다. 또한, 강력한 능력을 갖춘 영웅을 전략의 핵심 요소로 사용한다는 점도 차별화 전략 중 하나다.

전투 내에서 영웅의 활용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영웅 배치 코스트가 생각보다 비싸지 않아 초반부터 전장에 배치할 수 있고 영웅의 스킬을 적재적소에 사용한다면 병사 싸움에서 압도적인 우위에 설 수 있다. 영웅 하나 때문에 컨트롤도 신경 써야 했는데, 적이 내 영웅을 잡기 위해 강력한 스킬을 사용했을 경우, 타이밍에 맞춰서 영웅을 들어 올리면 스킬을 피할 수가 있다. 앞서 말한 대로 영웅이 가지는 전략적 이득이 크기 때문에 이런 심리 싸움도 생기는 것이다.

한편, 전략 게임에서 캐릭터의 육성과 강함이 미치는 영향력은 매우 크다. 특히, 영웅처럼 강력한 캐릭터를 막지 못하면 전략이고 뭐고 시작부터 타워 터지고 게임 터지고 내 속도 터질 수 있다. 한때 '클래시 로얄'이 페이 투 윈에 대한 말이 많았던 것을 생각한다면 RTS 장르로 출시된 이상 이 부분에 대해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나노 레전드'는 페이 투 윈의 격차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함인지 게임 내에 광고 보기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을 굉장히 많이 만들었다. 스토리 스테이지 클리어 시 광고를 보면 보상을 두 배로 준다거나 일정 시간마다 획득할 수 있는 자원 박스의 보상도 광고를 보고 보상을 두 배로 받을 수 있다. 상점에서 광고 시청으로 받을 수 있는 무료 보상도 꽤 많은 편. 또한, 스테이지 클리어 전 광고를 보고 임시로 캐릭터의 레벨을 1단계씩 올리는 것도 가능하다.

광고를 보고 보상을 받는다는 방식 자체가 어찌보면 불편할 수 있겠지만, 광고 보기 자체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방식이며, 시간을 투자한 만큼의 합당한 보상을 제공해주니 게임을 무료로 즐기로 싶은 유저라면 나쁘지 않은 서비스 제공이라 생각된다.



▲ 영웅의 비중이 훨씬 커서 직접 해보면 차이가 느껴지긴 한다

이쯤에서 앞서 말한 내용을 한번 정리해보자. '나노 레전드'는 '클래시 로얄'과 차별을 두기 위해 영웅을 조종한다는 전략을 택했다. 영웅을 잘 굴리면서 병사와 스킬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조금씩 이득을 취하는 방향으로 승패가 결정된다. 인간과 동물 진영에 따라 다양한 영웅이 존재하며, 영웅마다 가지고 있는 스킬도 다양하므로 덱을 짤 땐 영웅과의 시너지를 생각하면서 짜게 된다. 비유하자면 유닛 기반의 '스타크래프트'와 영웅 기반의 '워크래프트'의 전략 차이랄까.

게임 내에 과금 요소가 있지만 광고 보기와 무료 보상을 많이 주기 때문에 오랫동안 게임을 즐기다 보면 웬만한 것들은 다 얻을 수 있다. 앞서 PC판으로 서비스를 이어온 전적이 있으므로 출시 이후의 콘텐츠 업데이트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봐줄 만하다.

다만, 이 게임이 '클래시 로얄'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다. '도타'라는 선점 효과를 뚫고 세계적으로 성공한 '리그 오브 레전드'라던지 쏟아지는 로그라이트 장르에서 빛을 본 '던그리드', '스컬'처럼 이 게임만의 특징과 색을 보다 확실하게 보여주지 않는다면 미니막스의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클래시 로얄'이 5년 동안 쌓아왔던 선점 효과를 뚫고 '나노 레전드'가 자신만의 강점을 살려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질 수 있을지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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