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응애 나 '아기 헌터', 몬스터를 도륙 내주마

기획기사 | 강승진 기자 | 댓글: 23개 |
근래 기자들 사이에서 가장 화제가 된 주제라고 하면 역시 몬스터 놈들이다. 출시 첫날에 베타부터 갈고 닦은 실력으로 일치감치 상위 단계에 도달했는가 하면 누군가는 출시 후 사흘 동안 총 10시간도 자지 않고 꼬박 40시간의 플레이타임을 채운 기자도 있다. 아마 부모님과 같이 사는 학생이었다면 매일 등짝 스매싱을 당했겠지.

몬스터들보다 더 '굇수' 같은 플레이 타임을 기록하지 않더라도 '몬스터 헌터 라이즈'는 출시 이후 많은 이들을 기자에서 헌터로 전직시킨 듯했다. 누군가는 그게 본업이고 지금 회사가 잠시 게임을 즐기는 거라고 했을 정도니 말 다했다.

하지만 한창 몬헌으로 이야기꽃이 피어난 주변에서 쭈뼛쭈뼛 아는척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게 전부인 사람도 있는데 그게 나다.




잘난 게 겜부심 밖에 없는 사람으로서 게임 안 가리고 다양한 작품 해봤다는 건 정말 인생에 유일한 장점일 정도인데도 몬헌은 항상 쉽게 손대기 어려운 게임이었다. 장르도 안 가리니 액션, 소울류, 심지어 몬헌에서 파생된 헌팅류 게임도 더러 했지만, 이 몬헌이라는 녀석은 쉽게 정이 가지 않았다.

특유의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게임 플레이에 쳐다만 봐도 몸서리가 쳐지는 건 아마 크게 덴 게 있어서일 거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그게 무엇인지조차 잊은 걸 보면 PS2, 혹은 PSP시절에 해본 마지막 플레이 때 정말 안 좋게도 만났었나 보다.

하지만 주변에서 이번에는 정말 다르다더라. 초심자들도 정말 하기 좋다고, 입문하려면 지금이 딱이라고. 언제까지고 이게 무슨 몬스터인지 물어볼 수는 없는 일. 기자들 영업에 나도 해본다 몬헌. 까짓거 한다 헌팅! 주말 동안 진짜 초심자가 할 수 있는지 공략 없이, 커뮤니티 검색 한번 없이 달려봤다.


아니, 헌터보다 동물들이 더 세자나요

온라인의 도움은 받지 않기로 했지만, 아무래도 게임의 시작인 커스터마이징은 예쁘고 잘생긴 내 캐릭터를 위해 딱 한 번 검색 찬스를 쓰기로 했다.

이게 생각보다 커마 옵션이 많아 마음만 먹으면 정말 멋진 캐릭터도 만들 수 있겠다 싶더라. 그렇다고 직접 찾아가며 만들기엔 너무 찐빵 같은 얼굴이 됐다. 너무 대충 만들었다간 평생 마음에 들지도 않을 투구를 쓰고 다녀야할 테니 일단은 보고 따라 해봤다. 예전에는 그냥 통자 몸에 원시시대 거적 같은 것만 두르고 있었는데... 장비도 나름 그럴듯하게 주고 이쪽 세상도 헌터 복지가 좋아졌구나 싶다.




그럴듯하게 만든 주인공이 잠에서 깨며 본격적인 시작. 왠지 기억했던 모습과는 다르게 마을은 일본 사무라이 영화에 나올법한 풍경의 세계가 돼버렸다. 뭐 그래도 퀘스트 받고 장비 받고 기본적인 건 그대로였다. 여기에 튜토리얼로 하나하나 설명해주니까 적응하기 쉬웠...긴 뭐가 쉬어.

시작부터 미친 듯이 쏟아지는 튜토리얼은 온 정신을 빼놨다. 접수원 히노에는 마을 이곳저곳을 안내해주는데 어디 설명 한 번 할 때마다 튜토리얼 창이 화면을 덮었다. 단어 같은 것도 제대로 모르는 데 이런저런 새로운 표현을 그저 글로만 안내하는 점은 우리말과 제2 외국어를 섞어놓은 글을 번역하는 것 같았다.

사실 글로만 쭉쭉 나열한 설명보다는 직접 플레이해보고 자연스럽게 익히도록 하는 튜토리얼이 대세다 보니 좀 낡은 느낌도 나더라. 대체 뭘 이렇게 알려주고 싶은 게 많은 건지 참. 그런데 곧 이 튜토리얼도 정말 하찮고 하찮은 일부만 가르쳐준다는 걸 퀘스트에 들어서자마자 알았다.




별 하나 쪼렙 몬스터 사냥 임무를 받고 사원 지역에 떨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조작 몇 번 해보면 광고 영상 속에서 보던 화려한 쌍검 난무(밀라요보비치가 보여준 몬스터 헌터 영화 속 칼질 아님)을 해볼 수 있겠지, 기대기대 후훗했다.

하지만 이놈의 묵직한 칼질은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다. 그 흔한 락온도 없어 이리저리 돌아가는 카메라를 돌리다 보면 공격 타이밍을 놓치고, 에라 모르겠다 공격부터 박으면 지구를 상대로 휘적휘적하다 등 뒤를 내주고.

슬슬 돌아온 기억은 카메라 조작 때문에 때려치운 아픔의 과거를 살려냈다. 그 'X랄 맞은' 몬헌 그립은 참... 그때 생각하면 그래도 십자키로 카메라 조작 안 하는 게 어딘가 싶다. 이동과 시점을 다른 손으로 할 수 있다는 감사함을 안고 다시 조심조심 해보려고 했는데 이번에는 동반자라는 동물들이 몬스터 다 때려잡는 통에 실력 키울 틈이 없다.




동물놈들은 몬스터 목덜미를 물어뜯고 쿠나이 같은 걸 입에 물며 닌자 가이덴 보듯 날아다니는데 옆에서 헌터는 땅에 칼자국이나 내고 앉아있으니 거 참 위신이 서질 않는다. 거기다 멧돼지에 사람 만한 공룡은 공격 몇 번에 쓰러져버리니 나는 약초나 캐고 있다. 그렇게 AI가 운전하는 버스를 타며 다음 단계로 올라섰다.

그런데 이제는 나, 헌터가 활약하지 않으면 안 되더라.


왜 거대 도끼보다 피리가 센 건데

웬만한 액션 게임은 실력으로 엔딩 보는 나름 게임 '짬바'가 있으니 몬헌그립 없는 카메라 조작 따위 익숙해지는 건 금방이다. 문제는 그 칼질. 무기를 꺼낸 상태에서는 이동도 쉽지 않고 무기를 상대에게 어떤 방식으로 휘둘러야 할지는 여전히 감이 잡히지 않은 상태였다. 여기서 별 2개로 등급이 오르고 만난 거대 몬스터는 이제 동반자들로는 어쩔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 녀석들이 '헌터! 내가 시간을 끌 테니 처리해줘!'라고 소리지르듯 열심히 뛰어다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달려가 발도 공격 한번 하고 꼬리에 맞아 뒤로 나뒹구는 것뿐이었다(미안해 멍냥아!).

그때 남들이 몬헌 얘기할 때 어름어름 들었던 '차액'이 떠올랐다. 그때는 무슨 나무에서 나오는 고로쇠 수액 같은 건가 싶었는데 튜토리얼에서 대장간 아저씨가 보여준 장비 목록이 불현듯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차액 -> 차지액스. 와 이걸 알아채다니. 새삼 스스로의 천재성에 감탄하며 무기 사러 당장 대장간에 뛰어갔다.




그런데 기본 무기 정도는 파는 게 아니고 일단 가지고는 있더라. 그렇게 텐트에서 차액, 차지액스로 무기를 갈아 끼고 거대 몬스터 사냥에 나섰다. 이제 몬스터 놈들 다 죽은 거다!는 내가 죽었다.

무기를 바꾸고 처음으로 체력이 다해 텐트로 강제 이송될 정도로 처참하게 얻어터졌다. 차지액스는 긴 딜레이에 공격하면 잠시후 검방 모드로 바뀌는데 도끼를 쓸 때는 느리고, 검을 쓸 때는 약했다. 나중에 '차지 액스 왤케 구려요'라고 인생을 몬헌에 반쯤 바친 기자에게 물어보니 채팅으로 'ㅋ'를 80개쯤 보내왔다. 초보는 쓰는 거 아니라며.

어쨌든 이런저런 무기를 돌려 써보는데 손에 딱 들어 맞는 건 없었다. 이름부터 멋짐이 폭발하는 건랜스는 키보다 그 길이 맞추는 데 들어간 철이 아깝다 싶을 정도로 근접거리에서 뿅뿅거렸다. 공격 범위가 넓거나 사거리가 길면 기동성이 한없이 떨어지고, 좀 재빠르게 움직이겠다 싶으면 대미지가 적어 영 만족스럽지 않았다. 활 같은 원거리 공격은 락온 기능이 없어 맞추기가 쉽지 않아 써먹질 못했다.




이리저리 몬스터의 데스 안마를 맞고 마지막으로 버프용 아이템 분위기가 팍팍 나는, 이름부터 영 못 미더운 수렵피리를 차고 텐트 밖으로 나갔다. 공격력 UP 같이 멀티 플레이에 맞는 듯한 UI가 추가되며 별 기대 하지 않았는데 공격 버튼을 누르고 외형으로 판단하는 게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또한번 배웠다.

발도 버튼과 함께 헌터는 수렵 피리를 온갖 멋짐 댄스와 함께 휘두르며 몬스터를 두들겼다. 말이 피리지 거대한 현악기다 보니 공격 범위가 넓어 맞추기도 쉽고 이동은 또 재빨랐다. 거기다 체력 회복이나 공격력 증가 같은 버프도 붙었으니 겁날 게 없다.

피하고 때리고 피하고 때리고. 이쯤 돼서 이름도 안 동반자 동물 아이루와 가루크도 나의 공격에 믿음이 가는 듯하다. 아쉬운 건 조금 때려야지 싶으면 도망가는 거대 몬스터를 쫓아가는 게 귀찮다는 것 정도?





이게 바로 헌팅의 찰진 손맛!

초보 헌터에게 사기급 편의성을 가진 수렵 피리와 함께 무난하게 등급을 올렸는데 슬슬 다크소울로 익힌 '구르고 패기'에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패턴은 눈에 들어왔지만, 때리지를 못하니 몬스터 한 번 잡는데 몇십 분씩 걸렸다. 종일 피하고 찔끔찔끔 패면 몬스터는 또 도망가 버리니 잘 패는 방법을 익혀야 할 때가 됐다.

A, X, R2 버튼을 이리저리 눌러보며 감각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머릿속에 언제든 상황 맞춰 꺼낼 스킬. 그걸 배우기 위애 그냥 넘겼던 교관의 무기 연습을 할 때가 온 거다. 그런데 이거 어디서 하는지, 너무 많은 튜토리얼을 막 넘긴 그중에 있던 건지 당최 찾을 수가 없었다. 아마 부가 퀘스트가 훈련장 옆에 생기지 않았다면 마을 다리 너머에 있다는 사실은 생각도 못 했겠지.

어쨌든 훈련소에 들어서자 그동안 얼마나 대충 플레이했는지 새삼 와 닿았다. 단순히 버튼 하나를 연타하는게 아니라 적절한 조합에 따라 공격 형태와 방향, 기대 피해량 모두 달랐다. 때로는 R2와 X를 조합하고 A버튼 다음에 A와 X를 동시에 누눌러 스틱 방향으로 공격을 돌리는 등 생각한 방향으로 몸을 옮기고 헌터의 방향을 꺾어 공격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저 몬스터 방향으로 한번 시점을 올리고 적 공격 패턴과 패턴 사이 무작위로 무기를 휘두를 때보다 적은 공격 기회로 더 많은 피해를 줄 수 있는 셈이다. 배운 대로 바로 써먹기엔 적 공격 습관도 생각해야 하니 직접 입으로 A, X 등 버튼을 외쳤지만, 확실히 적 제압 시간은 줄었다.

그리고 슬슬 적이 도망가는 시간을 활용하는 법도 머리에 들어왔다. 그전까지는 쓸데없이 무기를 쓰며 예리도를 깎아 먹었고 이걸 싸움 중에 숨어 숫돌로 갈아주느라 게임 시간은 더더욱 길어졌다. 그러다 한 대 맞고 나자빠지면 회복약을 찾아 마시느라 더 많은 시간을 날렸다.

하지만 공격의 효율성을 높이니 예리도가 낮아질 때쯤이 되면 적이 슬슬 도망갈 준비를 했다. 이때 떨어트린 전리품도 챙기며 숫돌로 예리도를 채우면 되는데 이게 일종의 정비 시간이라는 걸 드디어 알게 된 거다. 거기다 멍멍이 가루크를 타고 빠르게 이동하면서 숫돌로 무기도 갈고, 맵 여기저기 널린 재료도 모을 수 있으니 몬스터를 쫓아가는 것도 그리 길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쯤 돼서 몬헌그립만큼 귀찮았던 갈무리와 채집에 질색하며 손을 저었던 예전이 떠올랐다. 익숙해지면 편해진다지만, 재료의 중요도를 구분할 수 없는 초심자시절 모든 재료를 하나하나 다 모으다 보면 막상 헌팅이라는 재미에는 집중할 수 없게 됐다. 그 사이 적에게 맞기도 하고 화딱지 나는 일만 있었다.

이제 가루크를 통해 이동과 재료 수집을 함께 하며 확실히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는 인상을 심어준다.


그래서 나에게 죽을 다음 몬스터는 누구지?

원래 재료와 돈은 최강 장비를 뽑기 위해 아껴두는 편이지만, 기본 장비로 버티는 데 슬슬 한계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장비 강화에 따른 효율도 꽤 높게 오르는데 문제는 재료다.

장비마다 요상한 이름의 각기 다른 재료들이 들어가는데 몬스터마다 획득 확률이 다르다. 또 단순히 시체 갈무리만이 아니라 덫으로 기절시켜 산 채로 잡는 포획 등 어떤 방식으로 잡는지가 중요해지는데 일단 지금 단계에서 필요한 건 일단 때려잡으면 바로 나오니 그게 편했다.

결국, 이들 재료를 모아야 하는데 게임 내 도감인 헌터 노트에 이런 정보가 %까지 다 나와있다. 이런 건 랜덤 뽑기보다 낫네.




매번 몬헌을 찍먹할 때마다 대체 이 게임의 목표는 무엇일까를 고민하며 때려치웠는데 이제야 그 목표가 조금씩 보이는 듯하다. 어떤 목적을 위해 몬스터를 잡아나간다기보다는 몬스터를 잡는 행위 그 자체에 목적을 두고 이를 위해 장비를 강화하고, 장비를 강화하는데 모을 재료를 얻기 위해 몬스터를 잡고, 얻은 재료로 강한 장비를 만들고 더 강한 몬스터를 잡는 것까지.

그렇게 성장하며 쉽게 쓰러지지 않는 몬스터가 쓰려졌을 때의 쾌감이 이 게임의 재미구나 싶었다. 시작하자 느끼긴 어렵지만, 그 극초반의 어색함을 넘어서야 느낄 수 있는 재미. 여러 번 찍어본 탓에 드디어 느낄 수 있다니. 꽤 감격스럽긴 한데 사실 똑같은 몬헌이었다면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고 결국 그만뒀을 거다.

사실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자의 입장으로 게임을 즐긴다면 '몬스터 헌터 라이즈'는 너무 난잡하고 복잡하다. 시리즈가 거듭되며 더해지고 덧입혀진 수많은 요소가 그대로 퇴적층처럼 쌓였다. 여기에 플레이어들의 피드백이 중력과 압력처럼 가해져 이것들은 퇴적층이 암석이 되듯 했다. 초보자들이 건드리기엔 너무 딱딱한 게임으로 느낄 요소들 말이다.




이쯤 되니 괜히 빛지모토를 찾는 게 아니구나 싶다. 물론 총괄 프로듀서 한 명의 공적이라기보다는 디렉터, 디자이너 등 여러 개발자가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 덕일 텐데 이 복잡하고 어려운 콘텐츠를 도전해봄 직한 것으로 만드는 편의 요소를 곳곳에 넣었다. 초심자에게 콘텐츠의 장벽을 깨부술 수 있는 곡괭이를 한 손에 쥐여준 셈이다.

그렇다고 콘텐츠의 질 자체가 가벼워진 건 아니니 파고들수록 보석처럼 쏟아져나오는 요소들로 반복플레이가 유도된다. 실제로 난입을 통해 몬스터끼리 싸움을 붙인다든가 밧줄벌레를 통한 낙법, 접근 공격의 추가, 용 조종 등 해볼수록 새로운 기믹이 나타나니 이를 알고 싶다는 궁금증이 더해진다.

슬슬 마을퀘스트의 끝이 보이는 구간 같은데 이걸 끝내고 나오는 엔딩 스탭롤은 사실상 튜토리얼의 끝을 알리는 거란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멀티플레이 헌팅이 시작될 텐데 이미 몬헌의 재미에 개안해버린 몸, 이제 남은 건 도륙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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