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게 ‘동물의 숲’이구나

칼럼 | 김수진 기자 | 댓글: 24개 |



작년 이맘때쯤이었어요.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그야말로 모두가 현실에서 로그아웃하고 섬으로 로그인하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너무나 불행하게도 그 섬의 주민이 되지 못했어요. 닌텐도 스위치가 없었거든요! 자연스럽게 한창 동물의 숲 ‘밈’들이 유행할 때 홀로 쓸쓸히 있어야 했죠. 친구들이 서로의 섬에 놀러 오라며 하하 호호 할 때도, 섬에 강도가 들었다고 화를 낼 때도, 서로의 플레이 시간을 보며 놀릴 때도 함께 웃지 못했어요.

그 외로움이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알지 못할 거에요. 오로지 그 ‘닌텐도 스위치’가 없던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을겁니다.

그러던 중, 모바일 버전 동물의 숲인 ‘동물의 숲 포켓 캠프’가 한국에도 출시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고민조차 하지 않았어요. 드디어 나도 동물의 숲을 할 수 있구나 라는 기쁨이 몰려올 뿐이었죠.

설치가 끝나고, 화면이 켜지고, 그저 영상으로만 만나던 여울이의 얼굴이 보이고, 묘한 강세를 지닌 그 독특한 말소리가 들리고, 그리고 매번 유튜브로나 보던 나비보벳따우의 음.. 실물? 여튼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런 경우 있을 거에요. 상대는 나를 전혀 모르지만 나는 미디어를 통해 상대편을 너무 많이 봐와서 혼자만의 내적 친밀감이 최고 수치를 찍은 그런 경우요. 딱 그랬습니다. 스마트폰 화면 너머로 닉네임을 친근하게 부르는 여울이가 참 반갑더군요. 이미 400시간은 함께한 친구 같았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캠핑장 관리인 생활은 나름 즐거웠습니다. 물론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지 엄청 재미있거나 엄청 감동적이거나 엄청 신나진 않았어요. 과금에 기대는 요소가 꽤 많다는 것도 아쉬운 점이었죠. 시작하자마자 뭣도 모르겠는데 일단 월간 결제 뭔가를 하라고 하더군요. 처음 한 달은 무료라길래 냉큼 신청하긴 했습니다.

아마 포켓 캠프만의 특징이겠지만, 캠핑장을 꾸미는 콘텐츠를 제외하면 크게 할 일은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뭔가를 꼼꼼히 꾸미는 걸 잘 못하다 보니 그런 메인 콘텐츠에서 큰 재미를 느끼진 못했고요. 다만 이곳저곳에서 만난 동물들을 초대하기 위해 가구를 만들 때 만은 정말 두근두근했습니다.

그래도 오후가 되면 찬찬히 내려앉는 노을과 보랏빛으로 물드는 바다, 곤충 한 마리 채집할 때마다 열심히 손뼉을 쳐주는 귀여운 파트너, 과자 하나에 뛸 듯이 즐거워하는 동물들을 보면 소소한 행복감이 몰려오더군요.

그렇게 매일 생각날 때마다 잠깐씩 들어가서 과일도 따고, 낚시도 하고, 곤충도 채집하고, 아카데미에서 인테리어도 하고, 지도 탐험도 하곤 했습니다. 정신 차리니 일주일이 훌쩍 지났더라고요. 현실 시간이요!

재밌는 점은, 기간에 비해 정작 플레이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 말은 즉 슨 게임 플레이에 대해 강제성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와도 동일하죠. 물론 매일매일 출석 체크도 있고, 숙제성 퀘스트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게 큰 부담으로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만약 이 게임이 칼같이 시간 맞춰 접속하지 않으면 실컷 쌓아둔 동물들과의 호감도가 하락한다거나, 캠핑장의 가구가 낡아 버린다거나 하는 페널티가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그랬다면 며칠 정도 하다가 삭제해버렸을 겁니다. 그런 강제성을 감수할 정도로 콘텐츠가 엄청나게 독특하거나 재미있는 게임이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포켓 캠프는 그런 부담을 줄였습니다. 그냥 “오 지금 우리 캠핑장에 누가 와있을까” 라든지 “별 보러 한 번 갈까” 처럼 그냥 떠오를 때 편안하게 접속하면 되죠.




사실 그동안의 시리즈를 전혀 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정확히 어디가 얼마나 다른지, 아니면 같은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포켓 캠프의 전체적인 인상은 수많은 광고와 영상 등을 통해 받았던 동물의 숲에 대한 ‘이미지’와 같았어요.

이미지랄까 분위기랄까, 동물의 숲이라는 게임이 주는 동글동글하고 귀여우면서 나도 모르게 어딘가 간질간질해지는 그 느낌, 그리고 ‘느긋함’ 말이죠.

현실 시간에 맞춰 천천히 날이 흐르고, 개성 넘치는 깜찍한 동물들을 찾아다니며 인사하고, 친해진 그들을 캠핑장에 초대하고, 그렇게 캠핑장을 운영하지만 딱히 시간에 쫓기거나 휘둘린다는 조바심은 들지 않습니다. 그저 시끌시끌해진 캠핑장을 보고 있노라면 몽글몽글하면서도 뿌듯한 기분이 들 뿐입니다.

열심히 가구를 만들어 초대한 동물들은 해먹에서 잠깐 낮잠을 자기도 하고, 커피를 마시거나 과일을 익혀 먹기도 합니다. 그러다 말을 걸면 내 이름을 반갑게 부르면서 소소한 이야기를 하죠. 그렇게 포켓 캠프를 통해 이게 바로 ‘동물의 숲’식 힐링이구나 라는 걸 조금은 알 수 있게 됩니다.

분명히 게임이지만 경쟁요소도, 강제하는 요소도 없어요. 그냥 게임에 들어가서 동물과 이야기를 나누고, 모두가 좀 더 행복할 수 있게, 아니 사실은 캠핑장을 좀 더 아기자기하게 꾸미고자 하는 작은 욕심으로 가구를 만들고 배치할 뿐이죠.

이게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포켓 캠프를 플레이하는 유저층 중 다수는 아마 저처럼 스위치 버전 동물의 숲을 해보지 못한 이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모바일로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포켓 캠프는 동물의 숲, 엄밀히 말해서는 모여봐요 동물의 숲에 대한 ‘기대감’과 ‘궁금증’을 채울 수 있는 수단이 되죠.

물론 ‘모동숲’과는 다르겠지만 결국 동물의 숲 시리즈의 ‘힐링’은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게임 속에서 뭔가를 꼭 하지 않더라도 보는 것만으로 행복감을 얻을 수 있는 그런 것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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