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게임 좀 꺼라!" 땡, 틀렸습니다

인터뷰 | 박태학 기자 | 댓글: 23개 |


"게임 좀 그만 해라!"

제가 고등학생 때 부모님께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말입니다. 그땐 성격이 소심하기도 했고... 솔직히 게임을 재밌어서 한 거지, 이쪽으로 진로 잡아볼 생각도 안 했기에 고개 푹 숙이고 컴퓨터 껐던 기억이 납니다. 저만 들은 이야긴 아닐 거예요. 지금 10대분들은 당연히 들으셨을테고, 20대, 30대분들도 다 한 번씩 들어본 기억 있으실 겁니다.

어렸을 때 게임하다 많이 혼났고, 지금도 아내에게 잔소리 듣는 입장이다보니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이장주 박사가 쓴 이 책을 유심히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목이 '게임 세대 내 아이와 소통하는 법'이니까 분명 게이머 자녀를 둔 부모들을 대상으로 쓴 책이겠지요? 하지만 전 알고 있습니다. 이 책은 '부모 전용'이 아니라 게이머와 비 게이머 모두가 대상이라는 걸. 설득의 기본은 나를 알고 상대를 아는 데 있습니다. 게임이 왜 괜찮은 취미인지, 왜 우리 엄마가 날 걱정할 필요 없는지 등등 게이머라면 궁금할 만 한 내용이 많았습니다.

지난주 목요일, 책 다 읽고 난 뒤 이장주 박사를 만났습니다.
약 2시간 정도 나눈 이야기를 5가지 키워드로 정리해보았습니다.




1. 게임에 넋 나간 자녀, 걱정하는 부모. 이 책을 쓴 이유입니다.
게임하는 아이들을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방법은 뭘까요? 게임과 관련된 규칙을 만들고 지키기에 앞서 이런 규칙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가치를 전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모와 아이가 그 가치를 함께 공유하면 엄격하게 규칙을 정할 필요는 오히려 줄어듭니다. - 24p

소통이란 게 뭘까요. 다 알지요. 상대방과 내가 얘기하는 겁니다. 근데 내 얘기만 하는 것도 소통이라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주 잘못된 생각이지요. 그건 명령이지 소통이 아닙니다. 대화가 성립되려면, 상대방이 어떤 상태인지 알고 얘기를 해야 합니다. 지혜라는 게 멀리 가서 찾을 필요 없어요. 상대방을 이해하고 그 상대방 기준에 맞춰서 소통하는 게 지혜죠.

근처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가 있습니다. 119 구급대 차량의 앞부분 보셨나요? 119 글씨가 거꾸로 쓰여 있어요. 이래야 앞차가 백미러로 볼 때 119라고 제대로 나오니까. 앞차 양보 유도 목적으로 쓴 건데, 이게 뭐겠어요. 내가 아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시행된, 가장 지혜로운 실천 사례라고 봐요. 119를 항상 똑바로 쓰는 게 정답이 아니라는 거죠.



▲ "119 구급차 앞면 로고엔 양보해야 할 대상을 향한 배려가 담겨 있습니다"


부모와 게이머 자녀 간의 대화도 마찬가지예요. 아이가 어떤 상태인지,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먼저 고려해야 하지요. 그런데 대부분의 부모는 잘 몰라요. 심리학 쪽에선 지식착각이라고 하는데, 상대방이 나와 똑같을 거라 생각하는 거죠.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대다수 부모가 '내가 내 아이를 모른다'는 걸 모릅니다. 내 아이니까, 내가 낳고 기른 아이니 잘 알 거라 생각하는데, 그런 고정관념을 일단 내려놔야 해요.

자녀를 모르는 것은 일단 미뤄두고, 그렇다면 부모 본인은 자신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을까요? 상대방에게 뭔가 이야길 하려면 일단 자기 마음부터 알아야 하는데, 대부분 사람은 자기 마음을 잘 모릅니다. 책 4편에 그런 얘길 썼어요. 시험 기간에 공부 안 하고 게임만 하는 자녀가 있어요. 부모 입장에서 무슨 마음이 들겠어요? 자녀한테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안타까워할까요. 화를 낼까요.

아마 화부터 내는 분들 많을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화를 내는 감정은 이차적인 감정이예요. 이건 안타까운 상황이지 화가 날 상황이 아니란 거죠. 일차 감정을 생략하고 바로 이차 감정이 드는 이유가 뭘까요. 이전에도 공부하라 이야기 몇 차례 이야기했는데 아이가 말을 안 듣는 것 같으니 바로 화부터 나는 거예요. 부모가 스스로 일차 감정을 건너뛴 거죠.

중요한 건 이 상황 자체는 '안타깝다'는 감정이 우선되어야 하고, 이걸 기반으로 대화를 해야 해결책에 조금이나마 가까워진다는 사실입니다. 부모 입장의 해석이 들어간 화부터 내니까 자녀 입장에선 황당할 수밖에 없죠. 이제 공부하려고 했는데 옆에서 '공부해!'라고 소리치면 짜증 나는 것처럼.

화는 부모가 자기 마음속에서 만든 겁니다. 이건 부모 책임이지 자녀 책임이 아니란 거죠. 차분하게 부모 입장의 마음을 설명하고, 자녀가 지금 어떤 생각인지 물어본다면, 최소한 화부터 내는 상황보다는 훨씬 낫지 않을까요?

제가 책 쓴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지금 게임 하는 자녀가 어떤 생각인지 잘 모르고, 자녀가 하는 게임에 대한 이해력도 낮고, 심지어 지금 자신의 마음이 정확히 어떤지 모르는 부모들이 너무 많은 상황이란 거죠. 이 문제를 조금이나 줄일 수 있다면, 원활한 의사소통뿐만 아니라 자녀와의 관계에서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게이머 부모가 아니라, 현재 게이머인 자녀분들이 봐도 의미가 있을 거예요. 게임 하는 사람들도 '내가 하는 게임이니 다 알아'라고 생각하는데, 게임 밖도 함께 봐야 합니다. 적어도 다른 사람에게 내가 왜 게임을 하는지, 이게 어떤 게임인지 설명할 준비는 되어 있어야죠.





2. 게임은 쓸데없다는 인식은 어디서 온 걸까?
주위를 둘러보면 재밌어 보이는 것들은 묘하게도 거의 쓸모없는 것들입니다. 쓸모없는 것을 넘어 위험한 짓(?)일수록 인기가 높습니다. 마크 트웨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꼭 해야 하는 건 일이고, 할 필요가 없는 걸 하는 게 놀이다" 정확하게 놀이의 본질을 꿰뚫은 명언이라 생각합니다. - 40~41p

행복을 추구하는 삶이 인간의 본성이라면, 돈을 들여 쓸모없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지속적으로 추구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게임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게임 산업이 활성화되는 현상은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 44p

개미와 배짱이 철학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여태까지 우리 조상님들 근면성실하게 살아오셨잖아요. 일찍 일어나라. 개미처럼 한눈팔지 말고 열심히 일 해라. 농업이 주 산업이던 시절부터 단단하게 내려온 '정답'이었습니다. 베짱이처럼 딴짓하고 노는 건 '오답'이었고요.

이게 쭉 전해져오다가 지금 40대, 50대 세대에서 분기점을 맞이해요. 그전까진 먹는 거 자는 거 줄여가며 열심히 일하고, 일한 만큼 재산 늘리고 이게 정답이었는데, 이때부터 세상이 급변했습니다. 빈곤의 시대에서 풍요의 시대로 넘어온 거죠. 먹고 사는 방식, 삶의 가치도 바뀌었어요. 배고플 땐 밥 한 그릇이 최고의 가치잖아요. 이젠 배가 안 고파요. 그럼 최고의 가치가 뭐냐. 심미적 욕구니, 자아실현이니 이런 테크트리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겨요. 너무 짧은 시간에 세상이 변하다 보니 가치관 혼재가 일어납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저녁 늦게까지 일하고 '근면 성실하게 살아야 성공한다'는 과거의 고정관념이 요즘 시대까지 이어져 오면서 세대차를 일으킨 거죠. 요즘 젊은 친구들 게임만 하네? 저렇게 살면 안 되는데? 근데 이걸로 어르신 탓 하면 안 돼요. 근면 성실의 시대를 살아오신 분들이니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합니다.

이제 현실을 보겠습니다. BTS가 서울대 가서 성공했나요? 임요환이나 페이커, 캐니언이나 쇼메이커가 학교 잘 다니고 공부 잘했으면 지금의 100분의 1이나 됐을까요? 시대는 변했고, 학업이 아니더라도 성공할 방법이 증명됐습니다. 그리고 이런 변화를 머리로 아는 사람과 뼛속까지 이해하는 사람은 다르다는 거죠.

밥 한 공기 천 원 하는 시대입니다. 지금 평균적으로 보면 밥보다 커피가 비싸잖아요. 배고픈 시절이었으면 밥이 훨씬 비쌌을 거예요. 이렇게 변한 시대에서 우리가 뭘 해야 성공할 수 있을까요? 과거의 가치관이 지금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 외에도 성공으로 이어지는 길이 엄청나게 늘어났다는 걸 우리 어른들이 깨달아야 해요.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이 직접 하는 일은 줄어들 겁니다. AI가 대신 하겠죠. 그럼 그때 사람들이 찾는 게 뭘까요? 사람다운 일, 여가나 취미 같은 즐길거리겠지요. 그런데 이 즐길거리를 공짜로 하나요? 아니죠. 돈이 들어요. 그나마 저렴한 즐길거리가 게임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하고, 자본도 많이 흘러오고... 사람과 자본이 모이니 정치계나 경제계에서도 관심을 갖는 거예요. 세상이 변한다는 걸 인정하고, 지금 게임하는 자녀들을 믿어주고 지원해줄 거 아니라면, 최소한 방해는 하지 말아주세요. 그게 자녀를 돕는 겁니다.



▲ "게임을 하면서 동시에 미래를 배우고 있는 겁니다"


맥도날드에 해피밀이란 세트가 있습니다. 이게 처음 출시되었을 땐 논란이 많았어요. 장난감에 투자할 돈 있으면, 햄버거 품질에나 투자하라는 비난도 받았죠. 지금 보세요. 햄버거가 아니라 장난감 모으려고 주문하는 사람들 많습니다. 소비자들의 가치관이 변했다는 걸 맥도날드는 알고 있었고, 그걸 자신들의 상품에 적용한 거죠. 지금은 먹을 게 없어 걱정하는 사람보다, 너무 먹어서 살 뺄 걱정하는 사람이 더 많은 시대입니다.

해피밀은 캐릭터 관련 산업,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연계되면서 더 큰 시장을 열었어요. 게임도 마찬가지입니다. 굳이 게임 안 하는 자녀한테 '무조건 게임해'라고 말하라는 게 아니에요. 게임을 한다면 지금 자녀가 무슨 게임을 하는지, 게임할 때 어떤 습관을 갖는지 유심히 보라는 거죠. 그렇게 신경 써주면 다른 아이들보다 나으면 낫지, 나쁠 건 없습니다. 말린다고 말려지는 것도 아니고요.

자녀는 통제해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예민하게 미래를 탐지하는 나침반이라고 생각해야 해요. 자녀의 관심사가 미래의 주력 산업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부모라면, 그 자녀의 미래는 분명 밝을 것이라 믿습니다. 가끔 저도 아이들한테 물어봐요. 요즘 유튜브 뭐 보냐고. 그러면서 요즘 트렌드 읽는 거죠. 아직 제 아이들이 자본이나 시장 흐름 읽을 나이는 아니지만, 그거야 제가 보면 되니까요. 일종의 경제 동맹이랄까요. 아이들이 짚어주는 트렌드로 제가 돈 벌고, 그걸 다시 아이들하고 나눠 쓰면 얼마나 좋아요.


3. 게임만 하는 내 아이가 짠하다고요?
게임을 심리학적으로만 해석해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자신이 통제해야 하는 공간이자,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이끌 수 있는 자신만의 시간이 합쳐진 곳입니다. 시험공부나 과제처럼 해야 할 것이 많을수록 게임의 매력은 더 증가될 수밖에 없다는 걸 지혜로운 부모라면 꼭 기억해야 합니다. - 85p

제가 책에서 가장 많이 언급한 것 중 하나가 통제력입니다. 아이든 어른이든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통제력이 얼마나 되는지 시험하고 싶어 합니다. 네살박이 형이 두살짜리 동생에게 통제력을 발휘하고, 그렇게 통제력을 잃은 동생은 더 작은 강아지, 장난감 등을 상대로 다시 통제력을 채웁니다.

RPG나 어드벤처 게임을 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강한 상대를 만나게 되어 있지요? 그래야 플레이어 스스로 통제력이 커지는 걸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 입장에선 점점 더 재밌는 게임이 되어가는 거죠. 이걸 어른 기준으로 본다면 어떨까요? 왜 어려운 일을 굳이 계속 하는지, 왜 사서 고생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될 겁니다. 그게 바로 게임의 재미 요소란 걸 모르니까요.

몇몇 부모들은 이런 얘길 합니다. 자녀가 게임으로 통제력 올리기보단, 그 시간에 운동이나 다른 취미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그런 이야기 들으면 전 이런 생각이 듭니다. 저 고민 자체가 부모와 자녀 간 통제력을 사이에 두고 대립하는 게임이 아닐까. 지금 여기 계신 부모님은 자녀를 상대로 '통제력 발휘'라는 선공 카드를 꺼낸 게 아닐까.



▲ "부모는 자신도 모르게 자녀의 '통제력'을 가져가려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통제력이 한 쪽으로 쏠리는 건 결과적으로 볼 때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5 : 5가 이상적이겠지만, 그게 어렵다면 최소 4 : 6 정도는 되어야죠. 자녀들이 통제력을 느끼고자 선택하는 게 게임입니다. 말리면 말릴수록 더 게임이 고파지겠죠. 꼭 게임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요즘 말하는 '덕질'도 통제력을 올리기 위한 심리적 피난처가 되겠죠. 부모가 이 피난처를 강제로 철거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근육을 가진 동물은 누군가에게 잡혀 꼼짝 못 하는 상황에 대해 본능적인 공포감을 갖고 있습니다. 근육이 왜 있겠어요. 자기가 스스로 움직이려고 있는 건데. 당연히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상황을 벗어나려고 합니다. 게임 막는다고, 덕질 통제한다고 그게 효과가 있을까요? 당장은 통제가 될지 몰라도, 자녀가 받는 스트레스는 그대로 누적됩니다. 쌓이고 쌓인 불만은 시간이 지나면 터질 거고요. 부모의 생각과 반대의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의미입니다.

전남 순천에 '기적의 놀이터'란 곳이 있습니다. 그 놀이터 디자이너가 이런 말을 했어요. 아이들이 위험 요소와 도전 요소를 만나고 그걸 실험하는 곳이 놀이터라고. 놀이가 재밌는 가장 큰 이유는 '위험'이 놀이 속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이죠. 아이들은 다치면서 성장하고, 한계가 어디인지 스스로 깨달아요. 안전에 대한 맹신이야말로 진짜 위험이고, 오히려 위험을 인지하고 즐기는 놀이터가 훨씬 재밌고 안전한 놀이터라는 게 그 사람 생각이었죠. 공공건축상 비롯해서 상도 많이 받았습니다.

세상에 위험한 게 얼마나 많습니까. 그걸 싹 다 제거하는 게 가능할까요? 설령 위험요소를 최소화한다고 하더라도, 그게 정답일까요? 놀이터 안전하게 만든다고 바닥애 고무판을 깔면, 아이들은 더 높은 곳에서 뛰어내립니다. 게임도 마찬가지죠. 과몰입 걱정된다고 무조건 막는 것은 더 나쁜 결과만 불러올 뿐입니다.



▲ 순천 기적의 놀이터 1호 조감도


4. 지금 게이머들이 부모 세대가 된다면 아무 문제 없을까?
아이들이 엄마와 키가 비슷해질 무렵이면 "엄마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같은 말을 종종 합니다. "엄마가 왜 몰라? 엄마도 옛날에 다 해봤어" 라며 눈을 부라려봤자 언성만 높아지고 언짢은 기분만 남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그래? 그럼 엄마는 모르니까 네가 좀 가르쳐줄래?" 이런 반응을 권합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아니지만, 나쁜 기분을 오래 가져가지 않고 마무리하는 데는 괜찮은 방법입니다. - 202~203p

지금 어린 게이머들이 더 자라서 부모가 된다면 어떨까요? 그땐 부모와 자녀가 모두 게임 이해도가 높으니, 적어도 게임으로 다툴 일이 사라질까요?

전 그 반대에 걸겠습니다. 이것은 상대적인 문제인 만큼, 밝을수록 그림자가 짙을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 세대의 게임 이해도가 높다면, 그로 인해 더 큰 양극화가 나오겠지요. "난 다른 부모보다 게임을 더 잘 알아. 그런 내 기준에서 보기에 지금 이 녀석이 하는 게임은 정말 형편없어! 아니, 이게 게임이야?" 이럴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겁니다. 혹은 이러겠죠. "이 녀석아, 나도 어릴 때 게임 많이 하긴 했지만, 너 정도는 아니었다".

게임은 자녀가 하는 취미 중 하나일 뿐입니다. 자녀를 이해하는 데 있어 게임은 참고 사항이지 전부가 아닙니다. 더군다나 '난 게임을 잘 아는 부모니까'라는 색안경을 쓰고 본다면 상황은 악화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시대 자녀 입장에서 볼 땐 그냥 옛날에 게임 좀 해 봤다는 '꼰대'일 뿐이죠.

부모가 된 게이머라도 자녀가 하는 게임은 잘 모른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본인이 모른다는 걸 인지조차 못 한다면 부모는 자녀에게 질문도 안 해요. 아까도 말했듯, 화부터 내는 게 아니라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자세로 질문부터 해보는 게 중요합니다. 답변이 어떻든, 자녀한테 화냈을 때보단 결과가 좋을 겁니다.



▲ "지금 게이머들이 부모가 되더라도 '요즘 게임은 잘 모른다'라는걸 인정해야 합니다"


5. 질병코드
진화심리학자들은 질병을 피하고자 하는 본능기제가 발전해 '질병 혐오'가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아직 명확한 원인과 과정, 결과가 밝혀지지 않았는데 '게임이용장애'란 명칭을 붙인다면, 게임에 대한 근거 없는 혐오를 불러일으켜 산업과 문화 경쟁력을 저하시킬 수 있습니다. - 30p

질병코드 등재 찬성론자와 반대론자가 대립해온 지 벌써 몇 년이 지났습니다. 찬성론자가 여러 가지 사례와 논문을 들고 와 주장하는 데 반해, 저희 같은 반대론자는 항상 '게임의 중독성이 명확히 검증되지 않았다'라고 방어적인 입장이었죠. '있다'는 사람과 '없다'는 사람이 있다면, '없다'는 사람은 증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기본적으로, '별문제 없다'는 사람과 '위험하다'는 사람이 대립하면 상대가 안 됩니다. 대부분의 귀가 '위험하다'는 사람 쪽에 쏠리기 마련이니 질병코드 등재 반대론자는 시작부터 불리한 위치에 놓인 셈입니다.

이 때문에 2019년까지 게임업계 분위기 별로 안 좋았던 거 다들 아실 거예요. 한데, 지금은 좀 달라요. 질병코드 등재 찬성론자들이 원하는 대로는 안 될 듯합니다. 아시다시피 코로나 유행 이후 집에서 게임 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이건 WHO도 권장했고요. 사실상 전 지구적인 '게임 실험'이 이뤄진 셈인데, 게임 많이 해도 질병코드 찬성론자들이 우려하는 상황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어요. 이런 상황에서 게임을 다시 병으로 만들겠다? 명분이 없지요.

동성애가 질병코드에서 빠졌잖아요. 동성애는 과학적 근거가 있어서 빠졌냐 묻는다면, 그건 아니거든요. 정신병이라는 것은 사회문화적인 합의입니다. 사회가 바뀌고, 문화가 바뀌면 당연히 그 기준도 바뀌어야죠.

질병코드 등재 찬성론자들은 게임 중독을 사회 부적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직업, 생활,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잖아요. 여기서 질병을 어떻게 구별할 것인지, 그 기준이 무엇인지 한번 물어보고 싶어요. 또, 병으로 지정했을 때, 이걸 개선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도 아직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그럼 찬성론자들은 이렇게 말해요. '연구를 하기 위해서 코드가 필요하다'. 이게 무슨 뜻이겠어요. 다른 의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죠.

게임이 질병이라는 인식이 대중화되면 어떻게 될까요? 그럼 이제 게임 많이 한다고 판단되는 게이머는 전문가 소관이 됩니다. 그러면 게이머가 어떤 말을 하는지, 어떤 생각인지는 아무래도 상관 없게 되어버려요.

정말 질병인지에 대한 가능성, 이후 대응도 없이 어떻게든 등재하려는 모습을 보면, 이것이 일종의 트릭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마술사들이 트릭을 위해 관객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것처럼 말이죠. 정말 학생들이 게임 때문에 망가질까요. 더 큰 문제들이 있는데. 제 주장은 게임이 잘못이다 아니다를 떠나서 지금 학생들의 실태를 정확하게 보고 이야기해보자는 거예요.

지금은 스마트폰 게임, PC 게임만 갖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 시대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까요? 오큘러스 같은 VR 기기, 홀로렌즈 같은 증강현실 기기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고, 머지 않아 정말 쓴듯 안 쓴듯 한 HMD도 나올 거예요. 그 기기들은 몰입도가 지금 게임들과는 비교가 안 돼요. 그럼 그거 다 막아야 할까요? 다음 세상의 키워드가 거기 있는데, 그걸 막는 게 정답일까요? 이해하고 논의하고 준비하는 게 정답일까요.

우리나라 게임사들이 왜 게임이 질병코드 등재 되네 마네 하는데도 조용히 있냐 궁금한 분들도 계실 겁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국내 대형 게임사들은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질병코드 등재 반대 쪽에 힘을 실어주긴 했어요. 외국 게임사들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이걸 왜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하냐면, 사실 게임사가 나설 문제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게임사가 직접 나서면, 이건 속된 말로 밥그릇 싸움이 되어버려요. 그래서 게임 분야 이해도가 있는 전문 집단이 나서는 겁니다.





6.

지금 출판 시장 보면 눈에 띄는 게 하나 있어요. 책을 가장 안 보는 연령대가 어디일까요? 20~30대 남성입니다. 심지어 대학 교재도 안 사는 친구들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반대로, 우리나라에서 책을 가장 많이 보는 연령대가 어디일까요. 30~40대 여성입니다. 통계를 보면, 직장인 여성들이나 새내기 엄마들이 책을 가장 많이 본다고 합니다. 현재 출판되는 책들이나 베스트셀러가 이 나이대를 조준하는 게 다 이유가 있는 거예요.

얼마 전, 알고 지내는 개발자 한 분이 본인 SNS에 제 책을 포스팅해주셨어요. '우리 산업 지지해주는 분들의 책은 사줘야 한다'고 쓰셨습니다. 저자 입장에서 참 감사하죠. 개인적인 바람이라면, 젊은 남성분들도 책 좀 많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책 읽을 시간이 없다면 형제나 부모님, 아내에게라도 읽어보라 권하셨으면 좋겠어요.

솔직히 제가 쓴 책이 많이 팔렸으면 좋겠습니다만, 이외에도 게임 산업의 따뜻한 부분, 긍정적인 면을 짚어주는 책들이 더 많이 나오고, 더 많이 팔리는 게 최고 아닐까요. 게임은 중독되니 안 하는 게 좋다는 뉘앙스의 책들이 많이 팔린다는 건, 게임을 산업으로 보는 사람에게도 문화로 보는 사람에게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닙니다.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이장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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