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아이템 거래의 캐시화? 마영전 거래소시스템의 의미

칼럼 | 오의덕 기자 | 댓글: 68개 |
넥슨과 데브캣 스튜디오의 작품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많은 이들이 예상을 했던 부분이지만, 작년 12월 프리미어 오픈을 시작한 마비노기 영웅전(이하 마영전)이 생산해 내는 이슈들 하나 하나가 가벼운 것이 없습니다.


MORPG이긴 하지만 반복플레이의 목적을 꽤 잘 가미한 마영전의 독특한 게임성만큼이나 넥슨이 마영전을 통해 유저들에게 제안하는 운영 방식 및 과금 정책 또한 기존에는 상상하기 조차 힘들었던 부분들이 많고요.


PC방 유저들만 오직 플레이 할 수 있도록 한 '프리미어' 오픈을 먼저하고, '프리미어 팩'이라는 이름의 캐시아이템을 출시, 그 팩을 구입한 유저는 PC방 유저가 아니라도 집에서도 할 수 있도록 한 정책도 그 중에 하나입니다. 물론, 유저들의 반발과 논쟁이 뒤따르기는 했습니다만, 새로운 과금 모델을 제시했다는 측면에서 국내 게임계에서는 많은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 ▲ 넥슨이 서비스하고 있는 마비노기 영웅전 ]




사실, 프리미어 팩 덕분에 간과되고 있지만, 사실 더 주목 받아야 하는 마영전의 시스템은, 다름아닌 거래소 시스템입니다. 거래소, 혹은 경매장 시스템은 여타 게임에서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일반적인 시스템입니다. 보통은 게임 내에서 사용은 무료이며, 단, 판매자가 경매장에 물품을 등록할 때 일정 비율에 따라서 그 수수료를 게임 내 화폐로 시스템 자체가 가져가는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주목할 점은 마영전에서는 판매자가 현금으로 캐시아이템을 구입해서 '거래소 이용권'을 사용해야 거래소에 물품을 등록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대신 구입자가 게임 내 골드로 일정 수수료를 시스템에 내게 됩니다. 즉, 거래의 수수료 중에서 판매자는 넥슨에게 현금 형태로 지불 하게 되고, 추가로 구매자는 시스템에 게임 골드를 지불하게 되는 구조입니다.


지금까지의 사례를 봐도 대부분의 온라인 게임에서는 거래 혹은 경매 수수료로 게임 내 머니 만을 요구했을 뿐입니다. 예외로, 정액제에서 부분유료화로 전환했던 바람의 나라에서는 캐릭터가 접속하고 있지 않아도 노점상을 열수 있는 권한, 즉 대행판매권을 캐시아이템으로 판매한 적은 있습니다만, 거래소 등록 자체에 캐시템이 필요하도록 한 경우는 마영전이 최초입니다.


여기에서 누구에게나 생기는 당연한 질문이 하나 떠오릅니다. 거래를 하기 위해서는 현금을 직접 써야 구입할 수 있는 '거래소 이용권'이 필요한데 '왜 유저들은 반발하지 않을 까'하는 의문.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마영전의 장르적 구분이 MMORPG가 아니라 MORPG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일반적인 MMORPG에서는 하나의 가상 세계를 표방하기 때문에 상식적으로 가능하다고 판단되는 것은 대부분 실제 플레이에서도 가능해야 합니다. WoW나 리니지를 보면 유저끼리 게임 속에서 만나면 당연히 채팅도 가능하고 거래도 가능합니다. 깔끔하게 거래한 후에는 서로 헤어지기 전에 '안녕' 인사도 할 수 있습니다.





[ ▲ 캐시상점에서는 10개에 1000캐시, 개당 100원꼴의 거래소 이용권을 판매합니다. ]




하지만, 마영전에서는 유저들끼리 만나도 거래할 수 있는 시스템 자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같은 던전에 들어간 파티원과의 거래도 불가능합니다. 최근에서는 서버문제 때문인지 마을에서 다른 유저들의 모습도 볼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마영전의 유저간 거래에 대한 제한은 MORPG 특성 상 게임 내 대부분의 시스템들이 유저들에게 반복플레이의 목적성을 부여하기 위한 장치로 사용된다는 점과 부합합니다. 일례로, 마영전과 유사한 게임성을 지니고 있는 몬스터헌터에서는 일정 레어도 이하의 아이템, 즉 잡템만 거래됩니다. "자신의 장비는 자신이 직접 구해서 만들어라"는 컨셉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닙니다. 주요 장비아이템의 필수 재료가 되는 키 아이템이 거래되는 것 자체가 한정된 컨텐츠를 제공할 수 밖에 없는 MORPG에서는 막대한 컨텐츠 손실을 기대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례적으로 마영전에서는 이러한 거래 제한을 '거래소 시스템'을 통해 일부 해제시켰습니다. MORPG인 마영전에 문제가 되지 않겠냐고요? 그래서 마영은 안전장치를 뒀습니다.


마영전은 몬스터헌터와는 다르게 유저가 특정 레벨을 넘어서게 되면 그 전에 획득했던 키 아이템은 아예 쓸모가 없어지는 구조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유저들간에 키 아이템이 거래되는 것을 더욱 원활하게 만들어주는 윤활제로 작용하면서 거래 제한 해제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는 효과를 냅니다.


하지만, 여전히 키 아이템의 무분별한 거래는 곧 컨텐츠 소모의 가속화와 게임 내 경제시스템의 몰락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추가적인 안전장치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넥슨이 제시한 것이 바로 '거래소 이용권'입니다. '원래는 거래가 안되는 아이템을 일부 되게 해주겠다, 하지만 그럴 때는 현금을 조금 내라.'는 논리는 마영전의 장르적 특성이 이와 같이 독특하기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 ▲ 제작 재료 중 키아이템들은 거래소 이용권이 필수 ]




여기서 또 다른 질문이 생기게 됩니다. 판매자가 키 아이템을 판매해서 얻는 게임 내 골드가 키 아이템의 거래소 1회 등록을 위해 소모되는 현금 100원만큼의 가치가 있을까요? 그렇지 않다면, 굳이 현금을 써가며 거래소에 아이템을 올릴 필요가 없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사안입니다.


마영전이 시스템적으로 대부분의 유저가 항상 게임 내에서 골드가 부족하게끔 만든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마영전에서는 대부분의 아이템이 제작을 통해 이뤄지는데 이 제작 비용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우편은 우편대로 수수료가 엄청나고, 던전에 나가면 장비도 엄청 잘 부서져서 수리비를 대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게다가 노후도라는 시스템이 추가로 있어 수리비를 이중으로 내야 하는 상황입니다. 장비를 다 벗고 벌거벗은 상태에서 던전으로 뛰어가는 유저들이 속출하는 상황이니 어느 정도인지 상상이 가실 겁니다.


보유한 골드가 엄청나게 많은 상황이라면 굳이 100원을 투자해가면 키 아이템을 거래소에 등록할 사람은 없겠지만, 돈이 극심하게 부족한 현재의 마영전에서 단돈 100원 정도에 상당한 골드를 획득할 수만 있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집니다.


키 아이템에 대한 거래 제한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MORPG 특유의 장르적인 특성과 게임 내 대부분의 유저들이 항상 골드 부족 현상에 시달리게 만든 경제 구조. 결과적으로 이것이 대한민국 온라인게임 역사상 최초로 등장한 거래소 이용권이 다른 게임에 비해 훨씬 적은 심리적 저항감을 받으면서, 마영전에 안착할 수 있게 한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 ▲ 벌거벗고 뛰어가는 모습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마비노기영웅전 ]




사실, 마영전의 거래소 시스템이 정말로 주목 받아야 하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거래소 이용권이 게임 내외 경제에 미치는 직,간접적인 영향 때문입니다. 원래 게임 상에서 판매가 불가능한 아이템을 현금을 써서 팔 수 있게 만드는 건데, 그 효과가 판매자는 현금을 써서 (거래소 아이템을 구입한 후 키 아이템을 팔아서) 막대한 게임 내 골드를 얻게 되고, 구매자는 게임 내 골드로 귀중한 키 아이템을 얻게 되는 거와 상당히 유사합니다.


다시, 이를 '계산이 미쳐 다 풀리지 않은 등식'이라고 가정하고 남은 가지들을 다 쳐내게 되면 결국, 판매자는 일정 '현금'으로 '게임 내 골드'를 얻게 되는 것과 같은 효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현재 아이템 현금 거래 중개 사이트가 하는 역할의 일부분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한 가지 가정을 더 하게 되면, 마영전의 거래소 시스템은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지금도 서비스 되고 있는 국내 모 온라인 게임에서 캐시로 구입할 수 있는 물약을 팔았습니다. 고레벨들은 전쟁하고 사냥을 하려면 반드시 그 캐시 물약이 필요했고, 저레벨 혹은 게임 머니가 필요한 유저들은 이 캐시 물약을 현금을 주고 구입해서 고레벨 유저들에게 팔고 게임 머니를 받았습니다. 결국, 캐시 물약을 매개체로 실제 현금과 게임 머니가 교환되는 형태였습니다.


이를 마영전에 똑같이 적용시켜 봅시다. 넥슨이 마영전의 소비성 아이템, 물약, 깃털, 보조성아이템, 수리 키트 같은 것들을 캐시아이템으로 판매하게 되고, 그 캐시아이템을 타 유저들과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도록 제한을 두지 않는다고 가정합니다. 지금도 일부 하위 아이템은 그런 식으로 거래가 가능합니다.


이렇게 되면, 게임 머니가 필요한 신규 유저 혹은 부캐 유저들은 그런 소비성 아이템을 잔뜩 구입한 후 고레벨 유저들에게 판매를 하고 게임 머니를 가져갈 수 있게 됩니다. 고레벨이라도 소비성 아이템이 꾸준히 필요한 건 마찬가지니까요.


이것을 하부에 위치한 반쪽의 사이클로 간주한 다음, 위에서 얘기했던 '고레벨 유저들이 약간의 현금을 투자해서 필요 없는 키아이템을 판매해 게임 머니를 벌게 되는' 거래소 시스템을 상부에 위치할 나머지 반쪽 사이클로 올려 놓게 되면, 하나의 원을 그리게 되면서 게임 내 경제 순환시스템의 형태를 띠게 됩니다. 소비성 아이템을 판매해 골드를 벌고, 골드로 다시 키 아이템을 사는 식입니다. 반대의 순서도 물론 가능하고요.





[ ▲ 그림으로 표현해보면 대략 이렇습니다. ]




유저들도 굳이 아이템 현금거래 중개사이트를 이용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골드를 받기 위해서는 마일리지를 입금하고 전화까지 해서 만나야 하는데, 마영전에서는 직접 거래가 막혀 있기 때문에 우편 거래 외에는 답이 없습니다. 1시간 걸리는 우편거래는 20% 수수료를 떼고, 곧바로 전달되는 특급우편의 경우에는 50% 수수료를 떼기 때문에 이익 보다는 손해가 나기 십상입니다.


그리고, 현금 거래는 게임사가 약관 상 금지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유저 입장에서는 위와 같은 막대한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아이템 현금거래 중개사이트를 이용하기 보다는 캐시아이템을 통해 경매장에 올리거나, 소비성 아이템을 구입해 다른 유저에게 되파는 형태의 거래를 더 선호할 게 분명합니다.


결국, 이 가상의 경제 순환시스템'캐시아이템이 투입되는 거래소 시스템'을 통해 아이템 거래 부분을, '소비성 아이템의 캐시화'를 통해 골드 거래 부분을 완전히 장악하여, 기존 아이템 현금거래 중개사이트가 음성적으로 해왔던 일들을 게임사가 가져갈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물론, 아직까지 마영전에서는 거래소 시스템으로 이루어진 반쪽의 사이클만 존재합니다. 나머지 반쪽은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입니다. 하지만, 최근 출시된 적벽, 드래곤볼 온라인을 보면 '타 유저와 거래 가능한' 소비성 아이템을 캐시아이템으로 판매하는 것이 상상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이례적인 일이 아닙니다. 실제로 존재하고 있으며 실제 판매되고 거래되고 있습니다.



용기를 내어 마지막 질문을 마저 해봅니다. 과연 이 가정이 현실화 되어, 아이템 현금거래 중개 사이트의 역할을 게임사가 대체하는 것이 정말 가능해질까요? 만약 그렇다면, 수십 년간 대한민국 온라인 게임 산업에 기생하며 호황을 누려온 아이템 현금거래 중개사이트들은 어떠한 행보를 걸어야 할까요?


저는 현재 그리고 미래의 마영전 거래소 시스템에서 이 마지막 질문에 대한 대답의 실루엣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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