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프레이 포 더 갓, '걸작의 그늘'에 갇히다

리뷰 | 정재훈 기자 | 댓글: 10개 |
스포츠 씬의 전설적인 선수들은 종종 다음 세대의 지표가 되곤 합니다. 마이클 조던 이후로 두각을 드러낸 농구 선수들은 '포스트 조던'이라는 단어로 수식되었고, 축구 선수들 중에도 수많은 '제2의 지단'들이 존재했습니다. 실제로 그들의 실력을 따라갔는지는 아리송하지만, 전설이 남긴 업적은 그렇게 오랜 세월 남아 씬의 기준이 되곤 하죠.

게임 산업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기술의 발전 속도가 빠른 게임 산업인 만큼 아무리 명작이라도 몇 년만 진하면 구릿한 냄새를 풍기게 되곤 하지만, 여전히 몇몇 게임들은 가공할 작품성을 자랑하며 전설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이 게임들 또한, 스포츠 씬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많은 게임들의 지표로서 여겨지며 수많은 카피캣과 오마주를 남깁니다.



▲ 게임의 근간이 된 걸작 '완다와 거상'

세 명의 개발자가 모인 인디 스튜디오 노 매터 게임즈가 개발한 '프레이 포 더 갓(Praey for the gods, 최초 Prey에서 Praey로 철자 변경됨, 상표권 이슈로 추정)'은 전설이 아닌, 이 전설을 따라가는 게임 중 하나입니다. 얼리 억세스로 출시된 시점에서 이 게임은 '완다와 거상'의 많은 부분을 차용했고, 이 점은 그대로 팬덤의 기대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지난 12월 15일, 2년에 걸친 얼리 억세스를 끝내고 정식 출시작으로 이름을 올렸죠.

세 명이라는 소규모 개발진, 올타임 레전드로 여겨질 작품에 대한 과감한 오마주, 그리고 스팀 평가 매우 긍정적까지. 프레이 포 더 갓은 일견 성공적인 인디 게임입니다. 하지만, 평가에 의존해 게임을 플레이하기 시작하면, 게이머들은 금방 느끼게 됩니다. 이 작품에 드리워진 걸작의 그림자가 생각보다 짙고 어둡다는 사실을 말이죠.




게임명: 프레이 포 더 갓
장르명: 액션, 어드벤처
출시일: 2021. 12. 15.
개발사: 노 매터 게임즈
서비스: 노 매터 게임즈
플랫폼: PC, XBOX, PS



낯선 너에게서 느껴지는 익숙한 향기

코어 게이머 계층에게, '프레이 포 더 갓'을 설명하는건 매우 쉽습니다. 이전의 유명 게임 몇몇만 가져와 설명해도 게임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죠. 게임의 기본 시스템부터가 '완다와 거상'만 안다면 일단 설명이 가능합니다.

주인공은 재앙을 막기 위해 게임의 무대가 되는 섬에 도착합니다. 재앙을 풀 열쇠가 섬에 존재한다는 소문이 널리 퍼졌기에 수많은 모험가와 여행자들이 섬으로 향했지만, 모두 종적이 끊긴 상황에서 주인공은 이 신들의 섬에서 재앙을 없애기 위한 모험에 나섭니다. 그리고 그 모험 과정의 핵심은, 몰락의 과정을 겪고 석상화되어버린 신들을 없애는 겁니다.




▲ 완다와 거상을 안다면, 너무나 익숙한 게임 구조

이 부분에서, 게임은 '완다와 거상'과 굉장히 흡사한 면을 보입니다. 몰락한 신들은 모두 거대한 석상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게이머는 이 석상을 어떻게든 붙잡고 올라 약점에 위치한 공명식 스위치를 길게 세 번씩 눌러주면 됩니다. 한 번 공격할 때마다 신들은 요동치고, 주인공은 떨어지지 않기 위해 석상에 매달려 용을 쓰죠.

거대 보스를 붙잡고 기어올라 약점을 공격하는 것, 스태미너로 설명되는 악력 게이지, 보스 중심의 게임 디자인, 그리고 별다른 서사 과정 없이 게이머가 알아서 배경 스토리를 탐구하게끔 만든다는 점 까지, 게임은 거의 모든 부분에서 '완다와 거상'을 닮아 있습니다.




▲ 여러 면에서 비슷한 느낌을 주긴 한다

이 뿐만 아닙니다. '완다와 거상'에 대한 오마주가 게임의 핵심 시스템을 구축하는 기반이 되었다면, 게임의 다른 부분들에선 또 다른 걸작들의 향기가 진하게 납니다. 긴 천을 글라이더처럼 활용해 활공하고, 내구도가 낮아 부서지는 무기와 각종 재료 수집을 통한 보강 등 오픈월드의 근간은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과 비슷한 부분들이 여럿 보이고, 보스가 아닌 일반 몬스터들과의 전투는 굉장히 아픈 일반몹과 회피 위주의 전투라는, '블러드본'에서 본 듯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를 두고 '표절'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개발진인 노 매터 게임즈는 애초에 게임을 개발하면서 본인들이 '완다와 거상'이라는 게임의 팬임을 내세웠고, 완다와 거상의 레벨 디자이너의 격려까지 받아가며 게임을 개발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블러드본을 포함한 다양한 게임들의 영향 또한 받았다고 밝힌 바 있기에 관대한 인디 씬의 특성 상 의존적인 오마주 정도로 여겨도 큰 문제가 없습니다.



▲ 오히려 노골적이기에 어떤 면에선 반가울 지경

문제는 이겁니다. 수많은 걸작들의 영향을 받은 이 게임이, 어떤 면에서도 기존의 그 걸작을 넘어서는 부분이 없다는 거죠.



그럴싸하게 모였지만, 어울리지 않는 게임 요소들

완다와 거상이 걸작으로 불린 이유는 여럿입니다. 도무지 기원을 알 수 없는 집채만한 거상들에서 느낄 수 있는 코스미시즘적 전율은 기본이며, 칼에 빛을 받아 목적지를 밝히는 것과 같은 로어 친화적이면서도 설득력 있는 설정들, 말 없는 주인공에게 전해지는 선문답에 가까운 서사의 조각들과 이를 통해 게임의 전체 스토리를 유추해가는 재미, 그리고 거상들과의 전투를 더 극적인 과정으로 만들어주는 레벨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게임으로서 뭐 하나 빠지는 구석이 없습니다.

하지만, '프레이 포 더 갓'은 솔직히 많이 빠집니다. 사실상 거대한 보스를 기어오르면서 약점을 공략해 쓰러트린다는 점을 제외하면, 모든 면에서 완다와 거상보다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죠. 16개체의 보스가 등장했던 완다와 거상의 절반도 안 되는 7종의 보스, 2005년도 게임에 비해 크게 나아 보이지 않는 애니메이션, 그리고 뭔가 뻔한 보스전 디자인까지 그렇습니다.



▲ 세 번 정도 보스전을 치르고 나면, 슬슬 새로운 무언가를 기대하게 된다.

이 뿐만 아니라 게임의 문제는 여러 곳에서 드러납니다. 크게 재미있는 것도 아닌데 잡아 봐야 쓸모도 없는 잡몹들은 물론, 잠자리와 음식, 추위를 관리해야 하는 뜬금없는 생존 요소, 그리고 몇 번 쓰면 망가져 끊임없이 채집과 제작을 강요하는 스트레스 만점의 장비들이 그렇죠. 다른 시선에서 보면, 이 요소들은 게임의 또 다른 도전적인 부분들을 담당하기도 합니다만, 실제 게임 플레이에서는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게임의 무게추가 거대 보스와의 전투에 너무나 크게 쏠려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둠' 시리즈의 경우 게임의 모든 요소들이 '수많은 무기를 번갈아 쓰며 어떻게든 악마들을 죄다 쳐죽이는 게임'이라는 핵심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난데없이 여주인공을 등장시켜 호감도 작업을 해야 한다거나, 알록달록 귀여운 갑옷 스킨을 얻기 위해 마련된 미니 게임 등이 들어 있었다면, 둠 시리즈는 지금같은 명성을 얻기 어려웠을 겁니다.



▲ 굳이 잡아 봐야 별 이득도, 재미도 없는 잡몹부터



▲ 보스전 중심의 게임인데 보스전에선 무기가 필요가 없고, 무기를 만들려면 벌목을 해야 하고...

예시처럼 막장까진 아니지만, '프레이 포 더 갓'의 경우도 비슷합니다. 게임 내에서 주인공은 벌목도 할 수 있고, 사냥도 할 수 있으며, 이렇게 모은 소재들로 장비를 강화하고 새 무기를 만드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지만, 애초에 이 게임의 알파이자 오메가는 이런 오픈월드 요소들이 아닌 거대 보스와의 전투입니다. 게다가 보스전에서는 장비를 쓸 일도 없고, 한 번 전투가 시작되면 둘 중 하나가 쓰러지기 전엔 끝나지 않기 때문에 배부름이나 체온을 관리할 필요도 없습니다. 게임의 여러 요소들이 정작 핵심과는 전혀 상관 없는 부분이라는 거죠.

이런 디자인의 난점은 곧 지루함으로 이어집니다. '완다와 거상'의 경우 거상과 싸우지 않을 땐 도마뱀을 잡거나, 과일을 먹거나, 말인 '아그로'를 타고 돌아다니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게 없지만, 도마뱀과 과일은 악력과 체력에 영향을 주기에 결국 보스전에서 유용하게 작용합니다. 반면 프레이 포 더 갓의 다른 요소들은 핵심인 보스전과 닿아 있는 부분이 매우 적기에 게임을 플레이하는 입장에선 왜 구현되었는지 알 수도 없고, 딱히 쓸모도 없는 요소들입니다. 지루할 수밖에 없죠.



▲ 얼어죽기 싫으면 체온 관리도 해 줘야 하는데 보스전 중에 한 번도 체온을 신경쓴 적이 없다

결과적으로 프레이 포 더 갓은 게임 디자인의 밸런스를 맞추는데 실패했습니다. 만약 오픈월드 액션 어드벤쳐 게임이면서, 동시에 거대 보스도 등장하는 게임으로서 각 콘텐츠가 유기적으로 연결되게끔 설계되었다면, 아마 완다와 거상에서 한 걸음 더 나간 게임이 될 수 있었겠지만, 완다와 거상이라는 게임의 핵심 재미 요소를 그대로 가져왔으면서 이와 잘 어울리지 않는 요소들을 이리저리 흩어 놓다 보니 집중도 안 되는데 딱히 재미있지도 않은 총체적 난국이 되어버린 셈입니다.



'인디'로서는 합격, 본격 상업 게임으로서는 '물음표'

조금 다른 시선에서 보자면, 여러 외적 요인들을 감안할 때 프레이 포 더 갓은 그래도 용인되는 범위 하에 존재하는 게임입니다. 우울하기 짝이 없는 세계 비주얼이나 다소 둔하고 멍청한 보스의 AI, 딱히 놀랍지 않은 보스전 양상과 게임 내에 산재한 각종 버그까지 말 그대로 단점투성이인 게임이지만, 개발진의 규모와 환경을 감안하면 꽤 준수한 수준이라 할 수 있죠.

평가의 기준을 낮춰 현실적 제한을 고려하고 보면, 분명히 좋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인디 게임들이 각종 현실적 이유 때문에 게임 제작 단계에서 장르 선택이 제한되고, 비주얼이나 마감새에서 아쉬울 수밖에 없다는 걸 생각하면, 세 명이라는 적인 인원으로 이 정도 볼륨의 게임을 풀 3D로 어떻게든 완성시켰다는 점은 분명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스팀의 긍정적 리뷰들이 이와 같은 현실적 배경을 고려해 매겨진 점수라 할 수 있겠죠.



▲ '인디'임을 고려하면 분명 괜찮게 뽑힌 게임이긴 한데

하지만, 본격적인 상업 게임의 단계에선 확실히 기준 미달의 게임입니다. 프레이 포 더 갓의 정가는 31,000원. 이른바 '하프 프라이스'인데, 이 정도 비용 책정이 되려면 풀프라이스를 받는 게임의 절반 정도의 콘텐츠 양이나 퀄리티는 준비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프레이 포 더 갓'의 볼륨이나 전체적 완성도는 완다와 거상의 2018년도 리마스터 작품의 절반이나마 따라갔다고 보기엔 아쉬움이 많습니다.

그리고, 모든 면에서 더 나은 완다와 거상(2018 리마스터)은 PS스토어에서 프레이 포 더 갓의 가격과 별 차이 없는 37,000원에 판매 중이며, 세일 기간인 지금 일반판은 채 만 원도 안 되는 가격에 구매 가능합니다. 프레이 포 더 갓으로서는 사실상 가격 경쟁력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죠.



▲ 이런 아트 스타일은 확실히 괜찮은 요소

게임도 결국 수익 창출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그들의 가격 정책을 비판하는건 아니지만, 스팀 평가와 반대로 오픈크리틱과 메타크리틱에서 받고 있는 처참한 평가는 이러한 가격 경쟁력의 상실에도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차라리 이보다 저렴한 가격을 책정해 평가를 높였다면, 다음 작품부터는 더 넉넉한 시도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아쉬움이 조금은 있지만, 이들의 사정도 분명 있을테니 이에 대해서는 더 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프레이 포 더 갓의 시도 자체는 폄하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들 알면서도 딱히 말을 하지 않을 뿐, 게임 산업의 발전은 결국 수많은 차용과 응용의 과정을 통해 발전해왔습니다. 좋게 말하면 오마주, 나쁘게 말하면 표절인 아이디어 차용과 이를 조금 더 발전시키기 위한 응용 과정을 반복하면서 오늘날의 게임들이 등장했고, 대세 장르들이 형성되었죠.



▲ 간만에 거대 보스와 투닥거릴 수 있었다는 점도 분명 좋았다.

프레이 포 더 갓 또한 같은 선상에 존재하는 게임입니다. 거대하게 드리워진 걸작의 그늘 아래서 두각을 드러내기엔 완성도가 다소 부족했고, 이리저리 산재한 다양한 게임 요소들의 연결 고리가 너무 약하다는 점이 발목을 잡긴 하지만, 완다와 거상을 노골적으로 오마주했음에도 이에 멈추지 않고 보다 다양한 재미를 만들어보려고 시도한 점은 높게 평가하는 부분입니다. 다만, 그들의 희망과 노력에 비해 결과물이 다소 아쉬울 뿐이죠.
  • 완다와 거상과 거의 비슷한 보스전
  • 소규모 개발진 대비 훌륭한 게임성
  • 인디 치고 매우 드문 풀 3D 그래픽
  • 하프 프라이스를 감안해도 다소 부족한 볼륨
  • 다양한 시도에 비해 유기적이지 못한 디자인
  • 상업 게임으로서는 아쉬운 완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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