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데스티니 가디언즈'가 독보적인 루트 슈터 게임인 이유

기획기사 | 정수형 기자 | 댓글: 49개 |

지난 2월 23일, 번지가 개발 및 서비스 중인 '데스티니 가디언즈'의 신규 확장팩 '마녀여왕'이 출시됐다. 세계관 내 최종 흑막을 암시하는 어둠이 본격적으로 게임 내에 등장하게 될 첫 확장팩인 만큼 출시 전부터 많은 기대를 받았으며, 이에 보답하듯 등장한 '마녀여왕'은 역대급 확장팩이란 찬사 속에서 메타크리틱 89점, 오픈크리틱 89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개인적으로도 2018년 9월 국내에 정식 출시됐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즐겨온 나름 '인생 게임'이라 부를 수 있는 게임인 만큼 '마녀여왕' 확장팩에 거는 기대가 대단히 컸었다. 첫 번째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포세이큰' 확장팩 이후 번지의 독립, 그리고 '섀도우킵'과 '빛의 저편'까지. 지난 3년간 '데스티니 가디언즈'의 변천사를 직접 겪어오면서 드디어 빛을 본 기분이랄까.

사실 이제 와서 말하지만, 이전에 등장했던 확장팩은 모두 썩 좋은 평가를 받진 못했다. '포세이큰'은 당시 불편했던 시스템을 대거 수정하고 신규 콘텐츠를 도입하면서 호평을 받았지만, 액티비전에서 독립하고 스팀 자체 서비스로 전환하면서 내놨던 '섀도우 킵'의 경우 '데스티니 1'의 재탕이라는 문제와 함께 번지 최악의 판단 중 하나로 꼽히는 장비 유통기한이 도입됨에 따라 비평을 받아야 했다.

▲ "헤이 갈뒤언즈" 옛날에 이런 영상도 만들며 홍보에 열을 올리던 시절이 있었다

이후 '빛의 저편' 확장팩에서 장비 유통기한을 철회하긴 했지만, '마녀여왕'이 애초 예정했던 출시일보다 한참 밀리면서 하나의 시즌을 무려 반년 가까이 이어가 불만이 극에 달해있던 때가 있었다. '데스티니 가디언즈'를 쭉 해왔던 유저라면 공감하겠지만 앞서 서술한 것들 외에도 잦은 버그 탓에 툭하면 잠기는 장비와 과도하게 커지는 용량을 줄이겠다는 명목하에 시행된 콘텐츠 금고 등 여러 부분에서 부족한 모습을 보여왔다.

평소같았으면 그만두고 말았을 사건이 연달아 있었음에도 지금까지 쭉 '데스티니 가디언즈'를 즐긴 이유, 그리고 날이 갈수록 스팀 통계 기준으로도 유저 수가 증가할 수 있는 '데스티니 가디언즈'의 비결은 이 게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유니크한 재미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준비해봤다. 내가 '데스티니 가디언즈'를 하는 이유와 '마녀여왕' 이토록 고평가를 받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 (기사 작성일 기준) 스팀 통계 상위권에 집계될 정도의 유저수를 보유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데스티니 가디언즈'가 루트 슈터 장르에서 가히 독보적인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파밍한다는 뜻의 루트와 슈팅이 결합하여 탄생한 새로운 장르인 루트 슈터는 일반적인 슈팅 게임과 달리 파밍을 목적으로 두기 때문에 RPG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어 꽤 생소한 게임 플레이 경험을 선사한다. '데스티니 가디언즈' 뿐만 아니라 유비소프트의 '디비전', 디지털 익스트림스의 '워프레임'이 대표적인 루트 슈터 장르에 속한다.

지금까지 다양한 루트 슈터 게임이 출시됐지만, 현재까지 메이저로서 꾸준하게 활동하는 게임은 '데스티니 가디언즈' 하나뿐이라고 볼 수 있다. 장르의 선두자로서 '데스티니 가디언즈'는 파밍 외에는 이렇다 할 콘텐츠가 없었던 루트 슈터에서 레이드 콘텐츠를 도입하고 시즌제를 통해 새로운 활동, 그리고 탄탄한 세계관을 구성해 현재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다. 특히, 레이드의 경우 여타 다른 루트 슈터 게임, 아니 RPG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재미를 선사한다.

'데스티니 가디언즈'는 슈팅을 베이스로 삼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RPG와 달리 플레이어의 에임 실력이 DPS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이는 단순히 PVP 뿐만 아니라 PVE에서도 어느 정도 통용된다. 약점을 쏠 때 피해가 더욱 커지기 때문에 높은 DPS를 뽑아내려면 반드시 약점을 쏴야 하며, 주기적으로 움직이는 적들의 약점을 일일이 맞추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 레이드 몬스터 대부분이 딜페이즈에 돌입하기 전까지 사실상 피해를 줄 수가 없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전멸기를 시전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러한 슈팅 게임 특유의 진입 장벽을 완화하기 위해 번지는 레이드마다 특별한 기믹을 만들어두는 방식을 선택했다. 예를 들자면 대부분의 레이드는 처음에 보스가 무적 상태에 있으며, 이를 풀기 위해선 맵마다 주어지는 어떤 활동을 해야 한다. 정해진 발판을 연속으로 밟거나 혹은 특정 문양을 총으로 쏴서 파괴하는 등 꽤 많은 종류의 기믹이 존재하며, 모든 기믹을 해제할 경우 보스의 무적이 풀리면서 딜페이즈에 돌입한다. 딜페이즈에 들어간 보스는 보통 한 가지의 자세를 취하면서 가만히 있기 때문에 약점을 공격하기 수월해진다.

즉, 전투에서 에임 자체의 비중보단 해당 레이드의 기믹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를 더 우선한다는 특징이 있다. 단순히 에임 실력이 좋고 컨트롤을 잘한다고 해서 무조건 레이드를 깰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설령 에임 실력이 좋지 않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게임 내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이러한 점 덕분에 '데스티니 가디언즈'는 일반적인 슈팅 게임이 아니라 패턴을 파훼하는 RPG를 하던 유저에게도 익숙한 향수를 일으킨다. 게임을 조작하는 방식만 다를 뿐 플레이 느낌 자체는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물론 기믹의 이해도에서 또 다른 진입 장벽이 발생할 수 있지만, 일반적인 RPG의 레이드라면 이런 기믹은 대부분 숙지하고 오는 편이기 때문에 큰 걸림돌처럼 느껴지진 않는다.

루트 슈터 게임에서 유저가 제일 이질감을 느끼는 불렛 스펀지에 대해서 어느 정도 방안이 마련된 점 역시 '데스티니 가디언즈'가 오랫동안 루트 슈터 게임으로서 롱 런할 수 있는 비결이 아닐까 싶다. 불렛 스펀지란, 물을 빨아들이는 스펀지처럼 몬스터가 총알을 빨아먹는다는 것에 빗댄 것으로 디비전에서 처음 등장했다. 인간형 몬스터가 주로 등장하는 디비전에서 머리에 수백 발의 총알이 꽂히는데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전진하는 모습은 어딘가 괴리감이 들기에 충분했고 고난이도로 갈수록 적들의 체력 역시 커지면서 이런 문제점이 점차 두드러지게 됐다.



▲ 이런 괴물과 싸우는데 총 한방에 죽는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을까



▲ 인간 외의 존재라는 점이 주는 정신적인 이점은 상당히 큰 편이다

'데스티니 가디언즈' 역시 적이 헤드샷 한 방에 죽진 않는다. 보스 몬스터의 경우 로켓 미사일 수십 발을 견디기도 하니까 말이다. 다만, SF 세계관을 기반으로 외계 생명체와의 교전이 많고 따라서 인간형 몬스터보단 불렛 스펀지에 의한 괴리감이 크게 다가오진 않는다. 세계관 자체가 평범한 인간들이 싸우는 것이 아니라 범우주적으로 특별한 능력을 지닌 존재들 간의 싸움인지라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다.

또한, 난이도에 따라 적들의 체력에 큰 차이가 생기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규 콘텐츠가 등장할 때마다 기존 적들의 체력을 뛰어넘는 대단한 적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활동에는 전투력에 따른 제한이 존재하며, 고난이도로 갈수록 적들의 체력이 높아지지만 이를 파훼할 수 있는 해법 역시 존재하기 때문에 슈팅 게임보단 RPG에서 던전을 공략하듯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이밖에 궁극기와 캐릭터에 특징을 더해주는 스킬, 스탯, 그리고 특수 탄환과 파워 탄약을 소모하는 강력한 무기의 성능은 불렛 스펀지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게임 플레이를 선사해준다.



▲ 스토리 분기마다 등장하는 컷신의 몰입도도 나쁘지 않은 편

스페이스 오페라에 걸맞은 스토리와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이 부분은 '마녀여왕'에 와서 큰 호평을 받고 있는데 서문에서 언급했듯 드디어 세계관 내 최종 흑막인 어둠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유저가 지키는 여행자(빛)을 위협하는 어둠에 맞서 싸운다고만 했지 구체적으로 어둠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나타난 적이 없었다. 게임 내에서 스토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꽤 컸기 때문에 계속해서 질질 끄는 스토리에 지쳐갈 때쯤 '마녀여왕'을 통해서 크게 한 방 터트린 셈이다.

'마녀여왕'이 스토리적으로 또 한 번 호평을 받게 된 이유는 그동안 핵심 빌런으로 활동했던 사바툰이란 존재가 여행자의 힘을 휘두르는 수호자가 되어 돌아왔다는 점에 있다. 그간 번지는 빛과 어둠에 대해서 모호한 태도를 보여왔다. 일반적으로 게임에서 빛은 무조건 선하고 어둠은 무조건 절대 악으로 치부해오던 것과는 반대되는 행동이다. 심지어 게임 내에서 유저들은 어둠의 힘을 받아들여 시공이라는 제3의 힘을 취하게 될 정도로 두 개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 빛의 존재만 쓸 수 있다고 알려진 힘을 어둠의 존재들이 사용한다면?

그리고 악당으로 등장해왔던 존재가 유저와 똑같이 빛의 힘을 쓰는 상황을 보여주면서 스토리에서 큰 분기를 맞이하게 된다. 스토리의 진행 방식 역시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는데, 과거에는 유저가 직접 스토리를 찾아다니면서 일회성 캠페인을 깨야 했다면 이번에는 또 하나의 반복적인 콘텐츠가 될 수 있도록 캠페인 자체에 난이도를 설정하고 하나의 던전처럼 만들어 몰입도를 높였다는 특징이 있다. 스토리의 연계 역시 중구난방으로 흩어진 이야기를 짜맞추는 것이 아니라 사바툰의 행보에 집중해 이전에 '데스티니 가디언즈'의 세계관을 잘 모르는 유저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 재미있게 빠져들 수 있을 정도로 완성도에서도 신경 쓴 티가 난다.

한편, '데스티니 가디언즈'를 하면서 꽤 재미있다고 생각한 설정은 유저가 언제 게임을 시작했느냐에 따라서 세대가 구분된다는 점이다. 이는 세계관이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다는 것은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예시인데 '데스티니 1' 시절부터 게임을 한 유저는 1세대 수호자로 불리며, 특정 상황에서 NPC들의 대사가 달라진다. 유저를 단순한 수호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게임을 해왔던 경력을 인정해주는 백전노장의 장군처럼 대해준다. '포세이큰' 이후 시작한 유저는 2세대, 그리고 '빛의 저편'에서 시작한 유저를 3세대로 칭하고 또 조금씩 대사가 달라지는 등 세세한 부분의 설정에서 차이를 나타낸다.




이 밖에도 게임 내에 어떤 사건이 벌어질 때 해당 사건 때문에 바뀐 설정이 게임에 그대로 남아있는 일도 있다. 가령, 예전 스토리 중 인공위성이 파괴되면서 지구로 해당 파편이 떨어지는 이벤트가 있었는데 당시 파편으로 인해 파괴된 마을의 구조물이 현재도 여전히 파괴된 채 방치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세계에 영향을 주는 스토리 진행 방식, 그리고 오랫동안 게임을 즐긴 유저를 대하는 NPC들의 변화는 게임을 즐기는 유저에게 소속감을 느낄 수 있게 하여주며, 게임의 몰입도를 올려주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단점이라면 계속해서 세계가 변화하기 때문에 한 번 놓친 스토리, 이벤트는 다시는 겪을 수 없다는 점이랄까. 한동안 게임을 접었다가 다시 복귀하면 드라마 2편에서 곧바로 마지막 화를 본 듯한 이질감을 감내해야 한다.



▲ 코 앞까지 다가온 어둠

물론,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유저들이 등을 돌리게 하는 여러 사건도 많았다. 장비 유통기한은 철회했으니 사실상 과거의 추억으로 잊혔지만, 신규 확장팩의 등장 시 이전 콘텐츠가 금고로 떠나는 상황은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에 여전히 이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부분 유료 게임으로서 정당한 금액을 지불하고 콘텐츠를 구매했는데 시간이 지나면 해당 콘텐츠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소리니 이를 좋게 볼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만약 번지에서 제공하는 콘텐츠의 양이 많다면 이전 콘텐츠가 금고로 들어갔을 때 어느 정도 반발은 있겠지만, 대다수의 사람은 납득할지도 모른다. 당장 게임 용량이 100GB를 훌쩍 뛰어넘어버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시즌마다 등장하는 특별한 활동을 제외한다면 대다수는 이미 과거에 한 번쯤 나왔던 콘텐츠를 약간씩 바꿔서 출시하는 정도에 그쳤기 때문에 논란이 된 상황이다.

다행이라면 이번 '마녀여왕'에서 번지가 선보인 콘텐츠의 질과 양이 생각보다 더 뛰어났고 올해 소니에 의해 인수되면서 재정적으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됐다는 것이다. '마녀여왕' 이전에 유저들 사이에서 큰 호평을 받은 '포세이큰' 확장팩이 액티비전의 지원 덕분에 탄생한 것을 생각한다면 향후 '데스티니 가디언즈'의 행보에 기대되는 부분이다. 아직 확장팩 초반인 만큼 앞으로 보여줄 이야기가 더욱 많은 '마녀여왕', 그리고 '데스티니 가디언즈'다. 현재의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간다면 앞으로도 루트 슈터 장르에서는 독보적인 자리를 확고히 다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 오늘도 지구 평화를 지키기 위해 수호자는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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