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진짜 전쟁 겪은 '워게이밍', 그 후의 이야기

인터뷰 | 정재훈 기자 | 댓글: 8개 |



'기구(崎嶇)하다'

게임 업계에서 쓰기엔 다소 무거운 표현이지만, 딱히 드물지도 않은 표현이다. 한 때는 만들면 무조건 돈이 된다는 소문에 벌떼같이 투자자가 몰렸던 적도 있지만, 이젠 모두가 게임 산업의 이면을 알고 있다. 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게임 중 성공하는 게임은 소수고, 그 소수에 해당하지 못한 게임 개발사들은 대체로 기구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기구함의 대부분은 재정적 측면에서 드러난다. 이유야 다양하지만, 결국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기구한 상황'이란 표현이 따라온다. 일제 강점기의 근대 소설에서 나오던 막장의 연속이나, 말 그대로 암담해지는 어려움과는 다소 결이 다르다.

그런데, 저 멀리 그런 상황을 겪은 게임사가 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동유럽권에서 굉장한 위상을 보이던 게임사. 그리고 1년 반 전 돌발적으로 벌어진 전쟁으로 인해, 그 모든 것이 한 순간에 혼란 속으로 삼켜진 게임사. 국내에서도 유명세를 떨친 '월드오브탱크'의 개발사 '워게이밍'이다.

전쟁 당사국인 우크라이나의 키이우와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모두 사무실을 보유했던 '워게이밍'. 짐작만으로도 어려운 상황이기에 연락조차 쉽지 않았으나, 1년 반이 지난 지금쯤이면 한 번쯤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공교롭게도 지난 8월 창립 25주년을 맞이한 워게이밍이기에 이를 핑계삼아 어렵게나마 대화의 물꼬를 트고, 아직 혼란 속에 놓인 그들의 리더 '빅터 키슬리' 대표와 짧게 인터뷰를 가져볼 수 있었다.



▲ 워게이밍 '빅터 키슬리(Victor Kislyi)' CEO


Q. 여러 게임쇼에서 몇 번인가 만났던 것 같은데, 참 오랜만의 인터뷰다. 그간 어떻게 지냈나?

- 먼저, 이렇게 인터뷰를 하게 되어 감사드린다. 다들 아시다시피 지난 인터뷰 이후 팬데믹과 전쟁이 잇달아 일어나면서 일과 삶 전반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이 모든 역경 속에서, 우리의 최우선 목표는 '직원의 안전'이었다. 모든 게임사들의 변화처럼 우리도 빠르게 원격 근무 시스템을 도입했고, 즉각적으로 상황 변화에 대응했다. 팬데믹 상황에서의 변화에 대해서는 성공적인 업무 전환이었다고 자평하는데, 업무 생산성에 영향을 주지 않고 성공적으로 업무 형태를 바꿀 수 있었다. 전쟁 후 이야기에 대해서는 이어서 더 길게 할 것 같으니 일단은 넘어가도록 하겠다.

그 외에는 지난 8월, 워게이밍이 창립 25주년을 맞이했다. 한창 어려운 상황 속에서 지나간 기념일이다 보니 사실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우린 25년 간 쉴 새 없이 게임을 만들어왔고,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내 지난 날을 돌아보며 책을 쓰면 매우 두꺼운 책이 될 것 같지만 이 이야기는 25년 후 50년을 꽉 채우고 더 두꺼운 책을 위해 남겨두려 한다.


Q. '우,러 전쟁'의 한복판에 있었다. 아마 세계 어느 게임사의 사례를 비추어 보아도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당혹스럽고, 또한 위험한 상황이었으리라 생각되는데, 실제로는 어떠했나?

- 잔혹했고, 또한 끔찍했으며, 의심할 바 없이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상상할 수 없는 고통과 고난을 안겨주었다.

나는 아직도 전쟁이 시작된 그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며 TV에서 뉴스를 보았는데, 내 마음과 영혼, 그리고 몸까지도 고통을 받는 느낌이었다. 그 순간 가장 생각난 건 우크라이나에 있는 직원들이었다. 워게이밍의 키이우 사무실에는 430명의 직원들이 일하고 있었고, 그들의 가족 모두가 그곳에 있었다.



▲ 키이우 오피스에서 직원들을 대피시킬 때


Q. 이후, 상황에 대한 수습은 어떻게 이뤄진건가?

- 나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전 처음 겪는 일이었지만, 우리는 믿을 수 없이 침착함을 유지하면서 위기 관리 절차를 측각적으로 진행했다.

먼저, 우크라이나 내부의 직원들과 그 가족들의 안전을 확보하는게 최우선 과제였다. 충분한 양의 셔틀버스를 확보하고 우크라이나 서부에 임시 사무실과 숙소로 활용하기 위한 공간을 임대했다. 이후, 인도주의적 지원을 위해 우크라이나 적십자에 100만 달러를 기부했다.


Q. 직원들의 안전을 신경쓴 건 대단한 일이었지만, 러시아 시장에서의 전면 철수는 놀라운 일이었다. 워게이밍도 이익집단인 '기업'인 만큼 손익계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데, 이런 의사 결정은 어떻게 이뤄졌는가?

- 개전 직후 나를 포함한 리더십 팀은 함께 회사의 다음 행보를 논의했다. 이 논의는 몇 주간 이어졌고, 여기서 우리는 '역사적으로 올바르다 기록될 편'에 서는 것을 만장일치로 합의했다. 이후 즉각 벨라루스와 러시아에서 철수하면서 현지 사무실을 폐쇄했다.

이 모든 과정은 매우 신속하게 이뤄졌으며, 비슷한 상황에 놓인 그 어떤 다국적 기업과 비교해도 훨씬 빠른 시간에 사업 분리를 이뤄냈다.



▲ 2022년 할로윈, 방공호 속에서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Q. 그 과정에서 입은 손실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 당연한 일이지만, 동시에 어쩔수 없는 일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러시아는 워게이밍의 가장 큰 시장이었고, 워게이밍 개발팀의 3분의 2가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러시아에 있었다.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사무실 폐쇄, 그리고 우크라이나에서의 피난을 진행하면서 우리는 금액적으로 약 2억 5천만 달러(약 3,370억 원)의 손해를 보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손해는 전체 직원의 3분의 1을 잃었다는 점일 거다.


Q. 개전 후 사내 분위기도 뒤숭숭했을 것 같다. 직원들은 어떤 상태이며, 회사의 결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 러시아와 벨라루스에서의 즉각 철수는 직원들도 예상하지 못했던 바인 것 같다. 많은 직원들이 충격을 받았고, 결정 직후에는 이 결정의 중요성을 생각하지 못했거나, 이것이 옳은 결정이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국민과 키이우의 동료들에 대한 지지는 모든 직원들이 공감했으며, 이를 통해 유대감을 유지할 수 있었다.



▲ 전쟁 전, 키이우 오피스의 직원들


Q. 부족해진 직원들로 인해 기존의 계획에도 많은 차질이 발생했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어떤가?

- 확실히, 사무실의 철수는 큰 영향을 주었다. 2022년이 시작되는 시점에 우리의 직원은 5,400여 명에 달했지만, 석 달 후에는 3,500명이 되었다. 이들이 개발 중이던 프로젝트와 그간 들인 노력들을 생각하면 이는 단순히 숫자의 감소로만 볼 수 없었다. 한국을 예로 들면 6.25전쟁 당시 낙동강 인근까지 전선이 밀렸던 그 시점과 비슷한 상황이라 할 수 있을 거다.

결국,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아직 발표하지 않았던 3개의 프로젝트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시드니에 마련했던 스튜디오도 매각했다.


Q. 하긴 새로운 직원들을 모집하려 해도 현 상황에서는 쉽지 않을 것 같다.

- 그렇다. 두 주요 시장에서 철수하면서 우리는 즉각 중요한 인재를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이는 회사의 앞날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가 상상할 수 있듯 살고 있는 생활 터전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국가로 이주해 미지의 환경에 직면한다는 건 매우 두렵고 어려운 일이다. 현재 우리는 전 세계에서 인재를 찾고 있으며, 회사 차원에서 순조롭게 적응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 현재 워게이밍의 본사는 키프로스에 위치해 있다.


Q. 위기가 생기기 전까지 워게이밍은 몇 년에 걸쳐 다양한 IP를 되살리고, 스튜디오들을 합병하며 새로운 게임으로 시장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앞으로도 이런 모습은 계속 볼 수 있는 건가?

- 참 어려운 일들이 많았지만, 현 시점에서 워게이밍은 다시 정상 궤도에 올랐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어찌되었건 게임사이고, 우리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게임을 개발해 게이머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다.지난 몇 년간 우리는 무척 어려운 시기를 겪었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생산성을 유지했고, 주요 게임들을 업데이트했다. 얼마 전 쾰른에서 진행된 게임스컴에서 난 몇몇 게이머들과 인플루언서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들은 워게이밍이 내부적으로 큰 변화를 이뤄냈음을 알지 못했다. 그 정도로 이전과 같은 모습에 가까워졌다는 뜻이다.

그리고, 현재는 2개의 신작을 개발 중이며 추후 자세한 내용을 발표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단은 새로운 프로젝트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을 전달하게 되어 기쁘다.



▲ 외적 혼란 속에서도 꾸준히 업데이트를 이어온 '월드오브탱크'


Q. 국내에도 여전히 워게이밍의 팬들은 남아 있고, 월드오브탱크와 워쉽의 게이머들이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다. 이들 또한 워게이밍이 어려운 시간을 겪었음을 모르지 않는데, 워게이밍을 지지해온 팬들에게 남기고자 하는 말이 있는가?

- 지스타가 생각난다. 월드오브탱크를 처음 선보였던 때. 이후 몇 번이고 한국을 방문했지만 처음의 그 때가 가끔은 그립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도 우리의 게임을 플레이해주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 준 한국의 팬과 플레이어들에게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하며,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지스타를 찾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선보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 때까지, 계속해서 관심을 가져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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