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웹게임의 자동사냥, 사각지대인가? 묵시적 용인인가?

칼럼 | 오의덕 기자 | 댓글: 30개 |
단연코 끌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작년부터 이어져 온 웹게임 러쉬 이후 비슷한 게임성 때문에, 웹게임에서는 신작이 나와도 별다른 관심이 가지 않았던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하지만, RPG라는 타이틀이 붙어있는 놈은... 다시 말해 롤플레잉 웹게임은 그냥 지나치기가 힘들었습니다.


롤플레잉 특유의 '성장, 탐험, 도전' 요소에서 발생하는 재미들이 잘 전달되고 있는 지도 무척이나 궁금했고, 특히 게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전투'는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작년 말 웹게임으로 출시된 드래곤에이지: 저니즈의 턴방식 전투에 꽤 괜찮은 느낌을 받았었기 때문에 그 이후에 출시된 롤플레잉 웹게임들의 발전상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 추억의 턴방식 전투를 웹게임에서 구현해 신선함 느낌을 주었던 드래곤에이지:저니즈




백문이불여일견, 첫 번째로 도전해 본 게임은 동양온라인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웹게임, 아포칼립스였습니다. 디아블로의 느낌이 물씬 나는 게임이라는 자체 수식어가 붙어 있는 아포칼립스는 웹게임으로는 드물게 국내 개발사인 플로우게임즈가 제작을 했습니다.


실제로 플레이를 해보니 마을이나 필드 구성, 다섯 가지로 구성된 직업, 캐릭터와 성장 시스템 등이 잘 어우러져 구색을 맞추고 있었으며, 일반적인 RPG에서의 파티시스템을 대체하는 역할의 용병시스템도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캐릭터를 생성을 끝내고, 몇 가지 세팅을 하면서 게임을 파악한 후, 바로 오늘의 주 목적인 '전투'에 돌입했 보았습니다.



큰 기대를 품고 첫 번째 던전인 '근교창고'에 입장을 했는데.. 그게 끝이었습니다. 네?








네, 그 다음부터는 사실 게이머가 할일이 없습니다. 일단 던전에 입장하면 귀환 버튼을 누르기 전까지는 자동으로 몬스터와 조우해서 자동으로 전투를 펼칩니다. 던전 안의 몬스터를 모두 처치하게 되면 캐릭터는 자동 귀환됩니다. 플레이어가 하는 일은 자동으로 펼쳐지는 전투를 바라보면서 자신 캐릭터의 체력이 다 떨어질 때 쯤이 되면 귀환 버튼을 눌러서 마을로 귀환, 체력을 회복하고 다시 던전에 입장하는 것입니다.





▲ 일단 던전에 입장하면 그 이후부터는 완전 자동으로 진행되는 전투.
모든 전투가 끝나면 전리품을 챙겨 마을로 자동 귀환까지




장르의 구분과 플랫폼의 차이를 일체 고려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동사냥, 즉 '오토'와 전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충격이었습니다. '롤플레잉'을 표방한 웹게임에서는 '자동사냥'과 같은 형태의 전투 방식이 원래 쉽게 용인되어 왔던 것인지 의아했습니다. 훈련소라고 불리우는 곳에서는 아예 시간을 정해놓고 장시간 동안 마우스 클릭 한번 없이도 경험치를 얻을 수 있도록 되어 있더군요.



잠시 마음을 추스른 후에 이온소프트가 서비스하는 무협 롤플레잉 웹게임인 '무림영웅'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중국산 게임인데요, 공식홈페이지에 가보면 'The First Web MMORPG', 즉 '첫 번째 웹 MMORPG'라는 타이틀까지 붙어 있습니다. 아포칼립스의 용병시스템과 유사하면서도 강도가 높은 '노예시스템'으로 한참 이슈 몰이를 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회원가입 후 캐릭터 세팅, 초반 퀘스트 등의 과정을 모두 생략하고 전투부터 말씀 드리자면 아포칼립스는 양반이었습니다. 전투 방식은 유사합니다. 특정 지역을 클릭하면 그 지역으로 이동이 되고, 해당 지역에 대한 설명과 그 지역에 있는 몬스터들이 표시됩니다. 다시 특정 몬스터를 클릭하면 전투가 시작되는데요, 화면에 새로운 창이 생기면서 로그가 기록되고 자동으로 전투가 진행됩니다. 전투에서 승리하게 되면 경험치와 돈, 그 외 전리품을 얻게 됩니다.


아포칼립스는 던전만 선택해주면 알아서 전투를 진행해나가는 반면, 무림영웅은 개별 몬스터를 클릭해야 해당 전투가 진행되고, 다시 진행하기 위해서는 재클릭해야 한다는 점에서 무림영웅이 좀 더 낫다고 평가하려는 찰나, 일반 공격 버튼 바로 옆에 있는 또 다른 버튼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게 뭘까'라며 클릭해보니 새로운 창이 뜹니다.





▲ 스크린샷 그 자체입니다. 설명이 따로 필요 없습니다.




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완벽한 '자동사냥 시스템'입니다. 필요한 건 오직 '시간'과 게임 내 화폐인 '동전', 그리고 피로도 개념의 '활력' 뿐입니다. 아포칼립스보다 크게 한발 더 나간 수준입니다.


이미지 제일 아래에 보면 '알림' 문구가 있는데요, 읽어보면 '갈비찜'이라는 소비아이템을 사용하면 몬스터 사냥 경험치가 30% 증가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레벨업 속도가 30% 증가한다는 말입니다. 갈비찜을 당장 소유하고 있지 않더라도 옆에 있는 '즉시 구매' 링크를 클릭하면 구입해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특이한 점은 갈비찜은 게임 내 머니인 동전으로 구입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네, '황금'이라고 불리는 캐시아이템으로만 구입이 가능합니다.


갈비찜은 일단 두고, 자동공격, '수련'부터 실행해 보겠습니다. 필요한 게임 내 아이템을 소모해서 수련을 시작하면 새로운 창이 뜨면서 수련 완료까지 남은 시간을 표시해 줍니다. 피의 사자를 자동으로 12회 공격하기 위해서는 아래 이미지에서 보이는대로 약 35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 자동사냥(수련)을 실행시키면 이런 화면이 표시됩니다.




그러나, '즉시 완료' 버튼을 클릭하면 시간을 전혀 들이지 않고도 즉시 끝낼 수 있습니다. 방금 전 갈비찜 구입에서도 사용되었던 캐시, '황금'만 있으면 됩니다. 자동사냥에 필요한 준비물만 충족되고, 캐시가 충분히 있다면 일반적인 MMORPG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광속 레벨업을 마음껏 할 수 있습니다.





▲ 캐시아이템, 황금을 사용하면 기다리는 시간없이 자동사냥을 바로 완료할 수 있습니다.




정리해 보겠습니다. 무림영웅에는 '수련'이라는 이름의 자동사냥 시스템이 존재하고, 그것에는 일정 시간과 게임 내 머니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현금으로 캐시를 구입, 사용하게 되면 수련에 필요한 시간을 0으로 만들 수 있고, 자동 사냥으로부터 획득하는 경험치를 대폭 증가시킬 수 있게 됩니다.


평소에 MMORPG를 즐겨오신 분이라면 일일퀘스트에 대해서 익히 아실 겁니다. 매일 매일 갱신되는 일일퀘스트는 경험치, 게임 내 골드 등과 같은 보상을 추가로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유저들에게 인기가 많은데요, 무림영웅에도 이런 일일퀘스트가 존재합니다. 단, 이것도 원버튼으로 '자동'으로 끝낼 수 있습니다. NPC를 찾아다닐 필요도 없고, 해당 몬스터를 찾아다닐 필요도 없습니다. 원래 하루가 지나야 갱신되는 일일퀘스트 목록을 캐시로 바로 갱신시킬 수 있다는 것은 보너스라면 보너스입니다.





▲ 일일퀘스트, 클릭한번에 자동으로 완료가 가능합니다.




오해할 것 같아 말씀드리지만 앞서 예로 든 '아포칼립스'와 '무림영웅'만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외에도 RPG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는 웹게임을 더 해봤습니다. 결론은 소소한 차이가 있을 뿐 대부분 전투에 '자동'이라는 중요한 개념으로 들어가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일정 시간을 투입해서 자동으로 경험치를 습득하고 레벨업을 하는, 다시 말해 몬스터를 지정할 필요도 없고 체력이 떨어졌다고 물약을 마실 필요도 없는 완벽한 자동의 '수련' 시스템도 대부분 다 있었습니다.






▲ 카드를 활용한 전투로 전략성을 강조한 '신마령'
하지만 전투의 베이스는 자동입니다.





▲ 수련, 즉 자동사냥이 없는 롤플레잉 웹게임은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웹게임이라는 플랫폼의 한계와 특성은 어느 정도 이해합니다. 그래서, 롤플레잉 게임이긴 하지만 시뮬레이션 요소를 섞어 게이머는 캐릭터의 성장과 세팅, 파티 구성에 집중하도록 만들고 전투는 자동으로 펼쳐지게 한 것도 일부 수긍이 갑니다.


하지만, 제가 위에서 얘기한 자동사냥과 자동사냥을 더욱 쉽게 할 수 있도록 돕는 캐시아이템들이 어떤 MMORPG에 그대로 도입되어 서비스되고 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비슷한 예로 이야인터랙티브(이하 이야)가 서비스하고 있는 MMORPG 무림외전이 있습니다. 중국 개발사인 완미시공이 제작한 무림외전에는 게임 내에서 자동사냥이 가능하도록 해주는 '청신부'라는 아이템이 존재했고, 그 청신부는 캐시(현금)아이템으로 판매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이야도 청신부를 별다른 수정없이 그대로 도입했었지만, 게임사가 어떻게 자동사냥(오토) 프로그램을 판매할 수 있느냐는 거센 반발에 부딪혔습니다.


많은 유저들이 국내에서 서비스되는 게임들의 등급을 심사하는 기관인 게임물등급위원회(이하 게임위)에 해당 불만을 제기했고, 게임위도 결국 청신부에 관한 내용을 문제 삼아 무림외전에 '등급거부' 판정을 내렸습니다. 등급거부 판정을 받게 되면 국내에서 아예 서비스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이야에서는 부랴부랴 청신부 아이템을 완전히 삭제시켰고, 그제서야 정상적인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이야는 엔젤러브 온라인에서도 또 한번 자동사냥 시스템 때문에 등급거부 판정을 받았었지만, 게임 내 이용자 편의를 위해 만든 기능은 이용자가 판단해야 하며, 그것을 금지하는 것은 다른 게임과의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내용의 소명서를 게임위에 제출해 겨우겨우 전체 이용가 판정을 받았습니다. 무림외전의 청신부와는 다르게 오토가 캐시템과 연관이 없었다는 것도 이야를 도왔습니다. 최근에 오픈베타를 시작한 CJ인터넷의 주선 온라인 또한 서비스 전 유저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오토시스템 도입 때문에 말들이 많았습니다.





▲ 무림외전의 청신부.
게임위로부터 등급거부 판정을 받자 이야는 청신부를 아예 빼버린 채로 서비스를 시작해야 했습니다.




현재, 엔씨소프트, 넥슨과 같은 대형게임사를 비롯해서 중소게임사까지 대부분의 국내 게임사에서는 게임 내 자동사냥(오토) 프로그램을 약관 상 금지행위로 규정하고 있고, 아직도 상당수의 게이머들은 오토를 게임 내 악영향을 끼치는 요인 중에 하나로 보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게임 커뮤니티를 봐왔던 분이라면 그 누구라도, 국내 게임계 전반에 오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얼마나 뿌리 깊게 퍼져있는지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웹게임에서는 이 모든 것이 가능하며, 그것보다 더 한 것도, 심지어는 현금 및 캐시템과 연결이 되어 있어도 아무런 문제 제기도 그에 따른 사회적 이슈도 없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이러한 웹게임들은 대부분 12세 혹은 15세 이용가로 서비스 되고 있어, 그 동안 사행성을 오토 시스템 반대의 가장 큰 이유로 삼아왔던 게임위의 논리와도 잘 맞지가 않습니다.


롤플레잉 웹게임에 대한 호기심에 시작했던 글이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용기를 내어 봅니다.

RPG를 표방하고 있는 웹게임에서 자연스럽게 통용되고 있는, 그리고 캐시아이템과도 연결된 자동사냥(오토) 시스템은 비주류 장르에 대한 게임계의 무관심이 만들어낸 사각지대일까요? 아니면 웹게임이라는 플랫폼 특성에 기인한 게이머들의 묵시적 용인이 있었던 것일까요?

과연, 그 해답은 무엇인지 인벤을 찾아주시는 이 땅의 게이머들께 공개적으로 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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