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워먼 노 크라이~ 레게와 럼의 본 고장, 카리브 해의 북동쪽에는 앵귈라라는 작은 섬이 있습니다. 이름조차 생소한 섬이라 어디에 있는지 선뜻 떠올리기 어려운데, 푸에르토리코에서 동쪽에 있고 조세 회피처로 유명한 버진 아일랜드와도 가까운 섬입니다.
몰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저도 얼마 전까지 몰랐으니까요. 어쨌든 앵귈라는 영국 연방에 소속되어 있는 해외 자치령으로 인구는 약 16,000명이고 면적은 91㎢로, 한국의 울릉도가 72.86㎢ 이니까 울릉도보다 약간 더 큰 섬입니다. 카리브 해역에 있다 보니 날씨도 좋고 관광하기도 좋은 예쁜 섬이라고 하네요.
그런데 이 앵귈라가 몇 년 전부터 전세계의 모든 IT회사들에게 인기 만발입니다. 카리브 해역에 위치해 있다 보니 버진 아일랜드처럼 세금을 줄여주는 조세 회피처로 유명해졌나 싶었는데, 그건 아니고 앵귈라의 국가 도메인때문에 유명해졌습니다.
인터넷에서는 ISO 규격에 따라 지구의 모든 국가 혹은 영토들에게 고유의 알파벳 주소를 부여합니다. 최상위 도메인(Top-Level Domain)이라고 하는데 예를 들어 대한민국은 .KR을 쓰고 미국은 .US, 프랑스는 .FR이고 유럽 연합도 .EU를 씁니다.
앵귈라의 도메인은 바로 .AI입니다. 앵귈라의 도메인을 구매하면 인터넷 주소의 끝이 .ai가 된다는 뜻이죠. 인공지능을 다루거나 IT 정보 기술에 관여하는 업종이라면 정말 매력적인 인터넷 도메인이 아닐까요? 인공지능 산업이 화두가 되면서 전 세계의 회사들이 앞다투어 앵귈라의 도메인을 찾고 있습니다.
유튜브와 스트리밍 서비스가 한참 성장하던 예전에 비슷하게 인기를 끌었던 국가가 또 있습니다. 투발루라는 섬인데 역시 영 연방에 소속된 자치령이고 호주의 북동쪽 폴리네시아 군도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곳은 국가 도메인이 .TV입니다. 게이머 여러분들이라면 익히 잘 알고 있지만 요즘은 좀 서먹해진 스트리밍 서비스, 트위치의 주소가 twitch.tv라서 익숙합니다.
누구나 인정하듯 인공지능이 화제인 시절입니다. 덕분에 카리브 해의 작은 섬, 앵귈라는 몇 년 전부터 도메인 관련 사업으로 쏠쏠한 이익을 얻고 있습니다. 앵귈라의 수상조차 "횡재라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는 신께서 미소지으며 내려보고 계신다고 말하고 싶다."고 표현했을 정도이니 어떤 느낌인지 막연하게 알 것도 같습니다.
앵귈라의 .ai 도메인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몇 년 되었는데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발표 때문입니다. 앵귈라의 GDP는 약 3억 달러, 환율 1350원 기준으로 4천억 원 정도 되는데, 2023년의 도메인 관련 수입만 3천만 달러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하니 GDP의 약 10% 정도나 됩니다. 쉽게 표현하자면 매년 400억원이 꽂히는 복권에 당첨된 셈이네요.
공식적인 .ai 도메인 비용은 최소 140달러(약 19만원,환율 1350원 기준)부터 시작이지만 같은 도메인을 원하는 사람이 있을 경우 경매로 판매하기 때문에 유명한 도메인은 가격이 그야말로 천정부지입니다. 닷컴버블 시절에는 수십~수백억원이 넘는 도메인을 사고 파는 일도 흔했으니까요.
행운은 역시 예상할 수 없는 시기에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앵귈라는 이 예상치 못한 행운을 섣불리 낭비하지 않고 국민들의 건강 보험 지원, 공항과 교육 등 국가 기반 시설 확충에 사용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원래도 관광지로는 유명한 섬이었다고 하는데 인공지능 기술이 계속 발전하고 있으니 앵귈라의 인기도 당분간 사그라들지 않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