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L 16강, 승부조작설의 배경은?

칼럼 | 김경범 기자 | 댓글: 47개 |
글로벌 스타크래프트2 리그 시즌 1(이하 GSL)의 16강이 펼쳐진 9월 24일 금요일.

‘맹덕엄마’라고 불리며 엽기적이고 강력한 테란을 선보이는 oGsTOP 김정훈 선수와 16강에 진출한 단 2명의 저그 중 하나인 과일장수 김원기 선수의 경기가 있었다.

경기 자체는 초반에 상당한 피해를 저그에게 입힌 테란이 기세를 몰아 공격하는 것을 멈추고 확장을 가져가는 사이, 저그가 도박적인 일꾼 복구로 자원 이득을 가져가 결국 최종 유닛인 울트라리스크를 다수 생산해 승리를 거머쥔 스타크래프트 2 희대의 역전극이었다.






▲ 경기 중 저그의 병력에 포위 섬멸당한 200 인구수 채운 테란의 토르 병력



하지만 경기가 끝난 후, 테란을 플레이한 김정훈 선수의 플레이에 대해 여러 시청자들의 의문이 제기되었고, 심지어는 김정훈 선수와 김원기 선수의 경기가 ‘조작된 경기다’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빌드나 운영, 유닛 생산 등 이해하기 어려운 형태로 경기가 진행되었다.

물론 8강 진출을 놓고 싸우는 1:1 스코어 경기였기 때문에 프로 선수가 아닌 김정훈 선수가 최적의 판단을 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이런 어이없는 플레이가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지만, 조작설이 나올 정도로 이번 경기가 구설수에 오르는 것은 스타크래프트와 워크래프트 3, 그리고 C&C 등의 기존 전략 시뮬레이션 리그에서 있었던 여러 사건들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 e스포츠 초기의 논란성 게임과 워크래프트 3 맵 조작 사건


기존 전략 시뮬레이션에서의 버그성 컨트롤이나 조작은 몇 차례 있었고, 일부 사건들은 대대적으로 알려지면서 문제가 되기도 했다.

스타크래프트 초기에는 적의 병력이 아군의 지뢰밭 중심으로 올 때 까지 동맹을 맺었다가 풀어서 몰살시키는 얼라이 마인(Ally Mine)이나 지금처럼 방음이 확실한 경기 설비가 되지 않던 시절 관중들의 함성 등을 통해 상대의 몰래 전략이나 기습을 예상하던 귀맵이 많은 논란을 낳았고, C&C 제네럴에서는 공격당하고 있는 중국 종족의 본진 건물에 매각 명령을 내리는 경우 경기가 다운되는 치명적인 버그가 있음에도 제대로 된 규정 없이 리그(온게임넷 신도리코 블랙풋배)가 진행되어 결승전 경기에서 버그로 재경기가 연발되는 일이 있었다.






▲ 얼라이 마인 논쟁을 불러온 임요환 선수와 베르트랑 선수의 경기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은 리그 체계가 덜 갖추어진 초기에 벌어졌고, 이러한 논란들을 바탕으로 e스포츠의 규정 확립과 방송 시설의 확충 등이 이루어졌으며, 선수들도 의도적으로 승부를 조작하려는 목적이 있던 것이 아니었기에 e스포츠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해프닝 정도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고의로 승부를 조작하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된 것은 그 이후로, 시초가 된 것은 MBC 게임에서 진행되었던 워크래프트 3 대회인 프라임리그였다.






▲ 현재 GSL에서 활약 중인 이현주 캐스터가 캐스터를 맡았던 프라임 리그
(MBC게임 프라임리그 4차시즌 오프닝 중)



당시 프라임리그는 해설위원인 장재영씨가 대회에 사용하는 맵에 스폰서 광고 효과가 있는 오브젝트의 추가나 보다 시각적으로 멋진 방송이 나올 수 있도록 그래픽 효과를 수정하는 일을 맡았는데, 이 과정에서 유닛이나 건물, 업그레이드와 관련한 수치들을 미세하게 조정하여 특정 종족이 유리해지도록 조작이 이루어졌다.

이렇게 이루어진 조작은 게임 자체로는 파악이 힘들고, 제작된 맵에도 프로텍터가 걸려있어서 일반인들은 알 수 없는 것이었지만, 당시 리그에 참여했던 나이트엘프 종족의 장재호 선수가 처음 의문을 제기, 알고 지내던 이중헌 선수가 해당 맵의 프로텍터를 해체해 조작된 수치 정보를 공개함에 따라 상당한 파장을 가져왔다.






▲ 현재 Prime팀에서 스타크래프트 2 선수로 활동 중인 이중헌 선수(오른쪽)



이 사건 이후, MBC 게임에서만 근근이 유지되던 워크래프트 3 리그는 스타크래프트 개인 리그 및 프로리그에 완전히 잠식되어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고, 일부 선수들은 일련의 사건으로 받은 충격으로 타 게임으로 전향하거나 은퇴하는 등 워크래프트 3 리그 판도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결국 워크래프트 3의 국내 시장은 상당히 몰락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저력을 발휘하는 스타크래프트 덕분에 e스포츠 시장을 계속적으로 발전해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스타크래프트 2의 베타 테스트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2010년 초부터 스타크래프트 리그에 서서히 암운이 끼기 시작한다.



◆ 오랜 시간 곪은 종기,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스캔들

스타크래프트가 e스포츠의 핵심 아이콘으로 발전함에 따라, 스포츠 경기의 승패를 가지고 도박을 하는 베팅 사이트들이 암암리에 늘어나게 되었다.

물론 이들 사이트들은 전부 불법적으로 운영이 되었으며, 이들 사이트에 대한 소문은 각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조금씩 퍼지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그 존재에 대해 언급이 된 것은 올 3~4월 경부터였다.

당시까지만 해도 한 선수가 너무 어이없는 컨트롤을 하거나 말도 안 되는 빌드를 사용하여 패배하거나 수준 이하의 경기력을 보여주는 경우 ‘눈이 고생하는 경기’, 통칭 OME 경기(Oh, My Eye)라고 부르면서 패배한 선수에 대해 비난하거나, 우스갯소리로 ‘져주기로 약속이라고 한 거냐’라고 했지만, 이러한 경기가 특정 선수에게 집중이 되면서 조금씩 의혹이 짙어지게 된다.

게다가 불법 베팅 사이트에 대한 정보가 알려지면서, 이런 사이트와 연관된 조작설이 제기되었고 마침내 4월 중순 e스포츠 관련 매체에서 승부조작과 관련한 기사들이 터져 나오면서 커다란 파문을 안겨주었다.



특히 이러한 승부 조작에 참여한 사람들이 워크래프트 맵 조작 사건처럼 선수가 아닌 관계자들만 참여한 것이 아니라 ― 물론 맵 조작 사건으로 수혜를 입은 선수들이 맵 조작을 한 장재영씨와 같은 클랜 소속이었기에 의혹의 여지는 있지만 ― 선수들이 돈을 위해 직접 조작에 참여한 케이스이며, 개인 단위가 아닌 대대적인 조직망에 의해 이루어진 조작이라는 점에서 팬들에게 안겨준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이러한 승부조작 스캔들이 대중에게 공개된 이후, 수준 이하의 경기력이 보이는 경기들은 모두 조작이 아니냐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아야 했으며, 기존에 있었던 방송 경기들 중 이러한 조작 의혹이 있던 경기들 대부분이 실제로 승부조작이 있었던 경기임이 밝혀짐에 따라 스타크래프트 2의 출시를 앞두고 있던 e스포츠 시장에 찬물을 끼얹게 되었다.

현재 승부조작과 관련한 공판이 계속 진행 중이며, 지난 9월 10일 선고 확정 공판이 이루어질 예정이었으나 승부조작 스캔들의 주역으로 알려진 마모씨의 변론재개 요청으로 10월 1일 6차 공판을 추가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 의심암귀에 빠져버린 e스포츠 무대에 남겨진 숙제들


다시 김정훈 선수와 김원기 선수의 경기로 되돌아가보자.

초반에 화염차를 이용한 견제를 성공했음에도 저그에게 지나치게 시간을 주어 회생을 할 여유를 준 김정훈 선수의 소극적인 플레이, 테란이 저그를 상대로 할 때 언덕 지형을 활용하면 상당한 이득을 가져갈 수 있음에도 언덕을 활용하지 않았다는 측면, 저그의 확장 기지를 발견하고 수비를 하던 여왕을 처치했음에도 확장 기지를 공격하지 않고 엉뚱한 곳을 순찰만 하다가 잡힌 밴시, 스캔을 이용한 정찰력으로 상대의 체제를 볼 수 있음에도 토르를 고집한 판단, 가스를 많이 먹는 유닛을 사용하는 체제였음에도 초반에 들어온 김원기 선수의 추출장 러시를 방치해둔 점, 김원기 선수의 울트라리스크에 대해 보다 싼 가격에 효율적인 수비가 가능한 밴시를 전혀 활용하지 않았다는 점 등은 많은 시청자들에게 의아함을 주었다.

또, 김원기 선수 역시 병력을 생산하기 위한 건물을 2개씩 짓는다거나 하는 실수를 1경기와 3경기에서 반복하고, 상대의 공격이 오지 않을 것을 확신한 듯 지나치게 도박적인 경기 운영을 했다는 점도 지적된 부분이다.






▲ 확실히 쿨라스 협곡의 언덕 지형을 이용하지 않은 부분은 여전히 미스테리이다.



이처럼 일반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플레이를 한 두 선수에 대해서 'oGs 시절의 친분 관계 때문에 져 준 것이다', '리그 흥행을 위해 약체 종족인 저그를 밀어주려고 한거다', '테란이 너프되지 않기 위해서 일부러 저그에게 졌다'등등 시청자들은 저마다의 그럴듯한 해석을 내놓으며 조작 의혹을 제기했지만, 이러한 조작설을 뒷받침할만한 물증은 현재까지 하나도 나오지 않고 있는 상태이다.



☞ 김정훈 선수의 클랜 가입과 관련한 내용이 포함된 oGs 인터뷰





▲ 리그가 진행되면서 테란의 득세와 저그의 압살이 눈에 띄는 GSL 1차 시즌



실제로 우승 상금 1억이 걸려있는 큰 경기에서 상금을 포기하고 조작의 대가를 받는 것이 이득일까 라는 점과 승부조작이 밝혀졌을 때의 리스크를 고려하면 16강 경기에서 이러한 조작을 하는 것이 말도 안된다는 것이 조작설에 맞서는 측의 주장이며, 스타크래프트에서의 승부조작으로 인한 파문이 아직 가시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제 막 시작한 스타크래프트 2 리그에서 대담하게 승부 조작을 벌일 만큼 파이가 커진 상태도 아니기 때문에 조작설은 단순히 가설 단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또, 이처럼 조작설이 나돌게 된 다른 이유로 지나칠 정도로 테란의 우세를 점친 해설진을 들기도 했다.

경기 초반 테란이 일꾼 사냥을 성공했다는 사실에만 지나치게 집중한 결과, 공격 중에 손실된 테란 병력이나 가스 러시를 시도해서 테란의 자원 수급에 제약을 가한 저그의 플레이, 도박적으로 일꾼을 충원해 어느새 테란보다 부유한 상태가 된 저그의 상태 등이 제대로 언급되지 않았고, 시간을 벌기 위해 계속적으로 공격적인 모습을 보인 김원기 선수에게 위축된 김정훈 선수의 플레이를 8강 진출 여부가 결정되는 압박감을 받는 선수의 입장이 아니라 양 선수의 상황을 전부 보고 있는 관전자 입장에서 해설하다보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경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해설적 측면이 평소라면 최악의 경기력을 보여준 테란과 배짱으로 도박적인 수를 던진 저그의 경기 정도로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을 조작설이 나올 정도의 경기로 만들었으며, 뒤늦게 채정원 해설의 경기 복기 게시물이 올라왔지만 의심이 생긴 시청자들에게는 변명처럼 보였다는 것이 평소 해설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는 시청자들의 주장이다.



☞ 채정원 해설의 16강 김원기 vs 김정훈 3경기 복기




▲ 양 선수의 자원 상황이나 일꾼 수 같은 정보를 가지고
보다 객관적인 해설을 했다면 이러한 오해도 조금은 적었을 터



어쨌거나 이번 GSL에서 김정훈 선수와 김원기 선수의 경기의 진실은 결국 선수들 본인만이 알 수 있고, 그들이 어떻게 해명을 하건 방송을 본 시청자들은 자신들이 믿고자 하는 것만 믿게 되는 상황으로 커져버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번 경기가 조작 의혹이 나올 정도로 논란이 된 데에는 스타크래프트에서 곪아서 터져 나온 승부조작 스캔들이 상당 부분 작용했고, 이후에도 경기 중 의혹을 품을만한 요소가 조금이라도 발견되면 언제든지 승부조작이라는 의혹이 터져 나올 수 있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씁쓸함을 안겨준다.


승부조작 스캔들이라는 거대한 폭풍이 남기고 간 의심암귀에 빠진 e스포츠 무대.

앞으로 이러한 상처들이 아물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방송과 선수, 그리고 시청자 모두에게 많은 숙제를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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