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엄격하기로 세계 최고? 독일의 게임위, USK! "심의는 규제가 아닌 안내"

기획기사 | 장인성 기자 | 댓글: 10개 |
해외에서 떠도는 재미있는 이미지 중에 각국의 게임 경향에 대한 유명한 만평이 있습니다. 너프나우(Nerfnow.com)에서 제작된 만평으로, 대략적으로 살펴보면 허용되는 폭력의 범위가 넓은 미국, 폭력 규제가 강력한 독일, 스타크래프트만 인기있는 한국, 모든 것을 여성화하는 일본을 표현한 만화입니다.

만평인 만큼 비꼬는 의미도 있을 수 있고 재미를 위해 과장한 부분도 있으며 보는 사람에 따라 해석마저 다를 수 있지만, 어찌되었든 네 나라의 게임 경향을 짤막한 만화로 잘 표현했기 때문에 한동안 세계의 게임 커뮤니티에서 공감을 얻으며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 현지화: 때론 게임의 작은 변화들이 다른 문화의 게임을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든다. ]




한국의 게임 심의는 큰 변화의 고비를 앞두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게임물 등급 위원회가 담당해왔던 게임 심의 업무는 민간으로 넘어가게 되고, 업무가 이양되면 게임물 등급 위원회는 사후 관리 중심의 '게임물 관리 위원회'로 이름을 바꾸게 됩니다.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었던 '게임 문화 재단'이 탈락하면서 일정이 미뤄지고 있지만, 조만간 게임 심의 업무가 민간 기관의 영역으로 넘어오게 됩니다.



자유는 언제나 책임을 동반합니다. 아무런 잡음이나 문제없이 정착한다면 더할나위없이 좋겠지만, 민간 주도의 심의가 게임 업계에 꼭 긍정적으로만 작용하리란 법은 없습니다. 그릇된 규제를 푸는 해방구가 될 것인지, 아니면 다시 게임업계의 목을 죄는 족쇄가 될 것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할 것 같습니다.


가만히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새로운 것을 배울때 가장 쉬운 방법은 모방입니다. 우리보다 먼저 비슷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곳이 있다면 그들의 것을 참고해보는 것도 시행착오를 줄이는 좋은 방법입니다. 한국보다 앞서 게임 심의를 민간에 이양한 국가들은 게임의 심의를 어떻게 진행하고 있을까요?


앞서 언급된 만평의 내용처럼, 세계적으로 가장 폭력에 대한 규제가 엄격하고 게임 심의도 철저하다는 독일에서는 USK라는 단체가 게임물의 심의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USK는 Unterhaltungssoftware Selbstkontrolle의 약자이며, 영어로는 엔터테인먼트 소프트웨어 자율 규제 단체(Entertainment Software Self-Regulation Body)라는 뜻입니다.







[ 게임스컴 현장에서 만난 독일 USK의 펠릭스 팔크(Felix Falk) Managing Director ]



전세계 모든 게이머들과 게임사들의 관심이 모이는 게임스컴 현장에서, 독일의 게임 심의를 담당하는 단체 USK의 펠릭스 팔크(Felix Falk) Managing Director와 만나 게임의 심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보았습니다. USK는 지난 게임스컴 기간에 별도로 부스를 출전하고 행사 기간 내내 다양한 활동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USK는 게임의 내용이 청소년들에게 유해한지 아닌지를 판별하고, 게임 내용에 걸맞는 등급을 결정해서 부여하는 중요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재정적인 부담은 심의 비용 및 독일의 게임 협회에서 지불하고, 나이에 따라 구분되어 있는 USK의 연령 등급은 정부에서 보증하고 있으니 반쯤은 공공적인 성격의 단체로 볼 수 있다."



한국에서 게임 심의의 결과는 유통 및 판매에서 많은 영향을 줍니다. 물론 어떻게든 12세 이하를 받으려고 노력했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셧다운제의 영향을 피하기위해서 18세 이상 게임의 비중이 늘어나는 웃지못할 에피소드도 있었죠. USK에서 게임의 등급은 어떤 과정을 거쳐 결정되는지 궁금합니다.


"협회와 정부의 위원회에서 정한 규정에 의거하여 연령별 등급이 정해져 있고, 필요한 경우 학부모와 청소년 전문가 및 교육 학자, 정부의 관계자 등이 함께 모여서 등급을 결정한다. 실제 심의 과정을 자세히 설명드리기는 힘들지만 항목별로 체크해서 결정하는 단순한 형태는 아니다.

각 연령별로 나뉘어진 등급은 게임의 장르나 기준이 되는 행동과 액션의 수준, 판단과 외부에 대한 작용 등 흔히 JuSchG라는 약자로 표시되는 '독일 유아 및 청소년 보호 법(Art. 14 German Children and Young Persons Protection Act)의 내용에 근거하여 판단한다."








[ 0세부터 18세까지, 5단계로 구분되는 USK의 심볼 마크 ]




한국에서는 초등학생들이 PC방에서 18세 등급의 FPS를 즐기는 등 등급 제도의 실상에 대한 비판이 많습니다. 심의와 규제를 강화할 것이 아니라 지금 있는 규제라도 먼저 잘 지켜나가는 것이 올바른 해결법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런 규제 일변도의 문제 때문입니다.

강렬하고 자극적인 액션은 게이머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콘텐츠가 되기도 합니다. 독일의 청소년들은 자신의 연령보다 높은 등급의 게임들을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없을까요? 그리고 연령 등급을 지키지 않는 경우는 어떻게 처리되고 있을까요?


"간혹 청소년들이 자기 나이보다 높은 연령 등급의 게임을 하고 싶다는 문의가 오는 경우는 있는데, USK에서 상주하는 직원들이 규정에 의해 설명해주고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게임 회사에서 나이나 등급을 속이는 문제는 없고, 간혹 등급이 잘못 부착되는 경우 게임을 수거해서 재배포하는 경우는 있다.


USK의 게임 이용 등급은 사회적인 합의에 의해 성립되는 규정이다. 대형 매장은 철저하게 지켜지고 간혹 규모가 적은 매장에서 등급 표기 부분을 잘 안 지키는 경우가 있긴 한데, 그런 경우가 적발되면 영업 제한 및 벌금 등 해당 시 기관의 행정적인 처분을 받게 된다."




통역가의 부연 설명에 의하면 준법정신이 투철한 독일답게 한번 정해진 게임 이용 등급을 어기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뿐 아니라, 부모님들이 이런 게임 등급에 대해 상당히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원한다고 해서 등급을 어기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합니다.

그래서 반대로, 사회적인 합의만 있고 처벌이 약하면 강제성이 없는 제도라서 게임의 이용 등급을 어기는 사람이 많아질 수도 있을테니, 등급을 어길 경우 처벌을 명시하거나 도입하는 것이 어떠냐는 형태로 질문을 바꿔보았습니다.


"만약 등급을 어기면 처벌하는 규정이 있더라도 게이머가 원한다면 결국 어떻게든 마음만 먹으면 살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부모가 없는 가정의 아이들이 게임을 구매하는 경우나 아니면 부모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몰래 구매할 수도 있다.

공적인 영역의 활동이라면 USK에서 판단한 게임의 이용 등급을 구매자들에게 알려줄 수 있도록 하는 정도로도 충분하다. 일반 매장에서 게임이 판매된 이후 아이들이 게임을 이용할때 가장 많은 책임을 져야하는 것은 결국 가정과 부모의 역할이다."








[ 게임스컴에서는 청소년의 연령을 쉽게 알리기 위한 팔찌를 증정하기도 했다. ]





처음에 언급한 것처럼 독일은 폭력에 대한 심의가 철저한 것때문에 전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USK의 등급을 결정할때 폭력에 유독 '깐깐한' 심의를 내리는 이유가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폭력에 대한 보호가 전반적으로 강한 편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이것은 전쟁을 두번이나 겪었던 역사의 교훈과 경험때문이며, USK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전쟁이나 폭력에 대해 굉장히 예민하다. 결국 법이나 규제 역시 이런 사회적인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그러나 게임은 일반적으로 액션의 재미가 강할수록 폭력을 다루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한국에서는 폭력적인 게임이 아이들을 폭력적으로 만든다는 주장까지 있을 정도인데, 사회 전반적으로 폭력에 대한 보호가 강력한 독일에서는 게임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요?


"나쁘지 않다. 과거 독일에서는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자동차로 질주하는 사고가 발생하거나 간혹 총기 사고까지 벌어지는 비극이 있었는데, 최근 4년의 통계를 확인해보면 가족과 함께 게임을 즐기는 경우 이런 류의 사고가 줄어든다는 조사가 있었다. 전반적으로 게임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늘어나고 있다."


독일의 게임 인구는 약 2500만명. 이미 전체의 30%를 넘는 인구가 게임을 즐기고 있을 정도로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게임 강국입니다. 결국 게임이 일상적인 문화 중의 하나로 여겨지기 때문에 부정적인 평가도 적은 편이라고 합니다.


게임 심의에 대한 신뢰는 어떨까요? 그의 말에 의하면 약 1년 반 전의 최신 조사에서 60% 이상의 학부모들이 USK의 연령 등급에 대해 신뢰를 보내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합니다. 실제 게임스컴에서도 부모님들은 물론 게임을 즐기는 아이들 역시 의외로 USK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정답은 락스타! 문제를 맞추고 좋아하는 청소년과 이를 지켜보는 친구들 ]







[ 고전 게임기의 이름을 맞추는 등 게임 등급과 상관없이 재미있는 질문도 많다. ]



그리고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의 하나는 게임스컴 2012 현장에서 연이어 펼쳐지는 화려한 게임 쇼에도 불구하고, 차분하고 즐겁게 USK의 이용 연령 퀴즈를 풀어나가는 청소년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게임물 이용 등급 퀴즈가 아니라 장학 퀴즈에 출전한 청소년들을 보는 느낌이었죠.


"게임의 등급을 알린다고 해서 딱딱한 단답식 퀴즈로만 구성한다면 당연히 아이들도 웃거나 무시할 것이다. 그러나 독일은 나이에 맞는 정보들을 제공할 뿐아니라, 그런 부분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홍보하고 시스템화하여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 몇살에 해당하는 규정이라고 알리면 대부분 믿고 따른다.

이를 위해 USK의 모든 정보를 웹사이트에서 찾아볼 수 있게 제공할 뿐 아니라 학교나 학부모 모임 등에 브로셔(안내 책자)를 보내 홍보하고, 관련 협회나 단체에서는 직접적으로 USK 및 게임에 대한 정보를 알리는 행사를 주관하면서 항상 아이들과 함께하려고 노력한다."




한국의 게임 심의와 함께 가장 논란이 되었던 제도가 바로 셧다운제입니다. 청소년의 보호라는 목표 자체에는 동의하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의견도 있고 일괄적으로 모든 온라인 게임의 접속을 막는다는 점때문에 과도한 이중 규제라는 업계의 비판도 많습니다.

밤 10시가 되면 청소년들의 온라인 게임 접속을 강제로 막는 한국의 셧다운제에 대해 알고 있는지 묻자 고개를 끄덕인 그는,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무엇보다 먼저 셧다운 제도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보호를 목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방법인데, 독일은 개인의 자유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한국과 같은 규제는 아예 불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목적에 맞는 실효성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TV도 청소년이 볼 수 없도록 전원을 꺼버릴 수 있겠지만, 자기 방에 들어가 인터넷 등의 방법으로 몰래 보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셧다운 제도같은 규제는 처음 잠깐 동안은 공적인 역할이 가능할 수 있어도 사람을 지속적으로 제재할 수는 없다고 본다. 규제로 모든 것을 막을 수는 없으니 결국 본인 스스로가 판단하고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데, 규제에만 매달린다면 오히려 올바른 교육을 저해할 것이다."



그러나 게임 과몰입은 이미 존재하는 부작용 중의 하나. 원인이 어디 있느냐는 잠깐 제쳐두더라도 과몰입 현상에 빠진 아이들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셧다운제가 한국에서 학부모들의 호응을 얻은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독일에서도 게임에 지나치게 빠져드는 아이들이 있을텐데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요.


"독일에서 치료가 필요한 경우는 게이머의 3% 정도 된다고 보는데, 이런 경우에는 학교나 시의 상담소 등에서 상담을 받아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이외에 다양한 USK 행사를 통해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결국 과몰입은 게이머 스스로 이기는 방법을 배워 해결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런 교육을 위해 각 시에 청소년 청이 있으며 그들이 이런 일들을 예방하고 담당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함께 게임스컴의 USK 부스로 함께 이동하면서 한국의 게임 심의에 대해 많은 부분을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게임 심의는 (규제가 아니라) 안내선'이라는 그의 설명을 들으면서, 가장 많이 다르다고 느꼈던 점은 바로 게임에 대한 인식의 차이입니다.

물론 독일도 진통은 있었습니다. 실제로 위의 인터뷰에서 언급되었던 것처럼, 2006년 독일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인 청소년이 평소 폭력적인 게임을 즐겼다는 사실이 부각되면서 폭력 게임의 생산과 유통을 금지하자는 법안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논의되어 통과되었습니다.

(다만 독일에서 언급하는 폭력 게임은 고어물 이상의 잔인함을 자랑하는 맨헌트나 독일에서 금기시되는 나치를 표현한 울펜슈타인과 코만도스 등 납득할만한 게임들이고, 성인들의 경우 청소년들의 손에 들어가거나 눈에 띄지 않게 보관해야 하는 책임만 주의하면 즐겨도 무방합니다.)

그러나 인구의 30% 이상이 게이머일 정도로 게임에 익숙한 독일에서는 게임이 위험하지 않으며 등급을 안내해주는 심의만 지키면 충분히 안전하다는 인식이 있기에 당당한 하나의 문화로 대접받고 있습니다.







[ 독일 게임스컴 현장의 USK 홍보물 ]





KBS에는 개그 콘서트라는 인기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마빡이부터 꺾기도까지, 뭔가 새로운 유행어나 인기 코너가 생기면 며칠 후부터 이를 따라하려는 전국 초등학생들의 재롱을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유행어를 따라하는 것을 보면서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으신가요?

개그 콘서트의 시청 등급은 15세입니다. 그러나 TV의 시청 등급을 조금 어겼다고 해서 당장 큰 일이 날 것이라 생각하는 학부모님들은 많지 않습니다. 아이들뿐아니라 부모님들도 TV 프로그램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게임 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잘못한게 없다'고 억울함만 토로할 일이 아니라 사회적인 공감과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소통의 방법을 함께 갖춰나가야 하며, 지금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게임 산업의 실제 모습을 알리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민간으로 심의가 넘어오게 되면 공과 과가 모두 게임 산업의 책임으로 남게 되니까요.


한국의 게임 심의가 TV 프로그램의 시청 등급처럼 자연스러운 안내선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까지 과연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요? 게임이 당당한 하나의 문화이자 한국의 사회적인 합의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를, 그리고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함께 게임을 이야기하는 학부모님들이 많아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참고] 한국 콘텐츠 진흥원(KOCCA) '유럽 게임시장 동향' 2010.5
[참고] 한국 콘텐츠 진흥원(KOCCA) '독일 게임시장 동향' 2012.5
[참고] 독일 USK 홈페이지 (http://www.usk.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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