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걸 원하십니까? 여가부를 만족시켜라! '건전한게임 만들기 게임 잼'

인터뷰 | 우영재, 최원준 기자 | 댓글: 29개 |
"저희가 만든 게임은 유저가 만족감을 얻지 못하는 게임입니다. 인생은 시궁쳇바퀴라는 제목을 가진 이 게임의 가장 특징은 바로 유저가 만족감을 전혀 얻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돈을 벌고 사회적 직위를 높이려고 노력하지만, 언제나 제자리걸음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돈을 10억까지 모으는 것이 목표이지만, 절대 모을 수 없습니다"


48시간이라는 제한시간 동안 게임을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인 48시간 게임 잼에서 발표된 내용이다. 그런데 왜 저런 게임이 만들어졌느냐? 바로 얼마 전 발표된 여성가족부의 게임 평가지표에 가장 부합하는 게임을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열린 게임 잼 덕분이다.

국내 게임 개발자들의 열정을 막기에 여가부가 던진 평가표는 너무 안이했다. 처음에는 반항적인 마음에서 시작했지만, 48시간 도전은 개발자의 마음에 불을 지폈고 그 불의 중심에 터틀크림 박선용 대표가 자리하며, 활활 타오를 수 있는 휘발유 역할을 담당했다.

얇은 종이 한 면으로 개발자들의 꿈을 앗아가는 평가표에 과감히 도전장을 던진 그들. 인벤은 '건전 게임 만들기 게임 잼' 행사가 진행된 강남구 엑스엘게임즈 회의실을 직접 찾아 주말을 패기로 가득 채운 현장을 직접 찾아갔다.




[ ▲ 48시간 동안 여가부의 기준에 적합한 게임을 만들자! ]



10월 5일 저녁 7시 30분

인벤 강남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한 엑스엘게임즈. 여가부에 당당히 반기를 든 개발자들의 모임이란 생각에 흥이나기 시작했다. 얼마 걷지 않아 도착한 건물 1층 롯데리아에서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주고받는 개발자들의 모습을 포착, 함께 인사를 나누고 48시간의 게임 잼이 시작될 회의실로 자리를 옮겼다.

게임 잼을 위해 자리를 마련해 주신 엑스엘게임즈 송재경 대표님께 마음속 감사의 인사를 남긴 개발자들, 가벼운 농담으로 부드러운 분위기를 조성하고 본격적인 진행을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작업하는 개발자들 사이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종이가 있었다. 지난 11일 발표된 여성부의 게임물 평가안이다. 많은 사람이 평가안을 읽고 게임 개발의 미래를 암울하게 바라봤다. 그리고 여가부를 비판하며, 척도를 작성하는 그들의 마음가짐에 안이함을 지적했다.




[ ▲ 실제 만들어진 게임은 '평가계획 고시안'에 따라 각자 심사를 진행했다. ]



간단한 작업이 끝나고 참가자들이 하나씩 자리를 빛내주기 시작했다. 유난히 어려 보이는 친구도 있었고 어여쁜 여성 분, 그리고 남성미 보다 개발자의 경력이 은은하게 느껴지는 참가자까지... 전우애로 똘똘 뭉친 이들의 첫 만남은 어색함보다 반가움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본격적인 게임 잼 시작을 알리는 프리젠테이션이 진행됐다. 모든 이들의 이목은 집중 됐고 긴장감이 맴도는 분위기에 정적이 흘렀다.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모였고 그러기 위해서 자리를 했지만, 여가부의 평가안에 걸맞은 게임을 48시간 안에 만드는 것이 너무 버거워 보였다. 하지만...

무거웠던 분위기는 한순간 사그라졌다. 터틀크림 박선용 대장의 한마디는 열정의 도화선에 불을 지폈고 개발자들의 눈빛은 점차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여가부를 만족 시키면서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어 봅시다'





[ ▲ 게임 개발이 시작은 작은 아이디어를 모으는 것부터 시작! ]



평가안을 두고 이런저런 농담이 오가며, 과연 어떤 게임이 탄생할 것인지 혹은 실패로 돌아갈 것인지 모두가 의문스러워하던 중 팀원을 구성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각자 자기소개를 하며 개인의 역량을 어필하지만, 팀원 구성은 랜덤으로 진행된다는 함정이 있었다.

모든 팀 구성이 끝이 나고 본격적인 고민이 시작됐다. '과연 어떤 게임을 만들어야 할까?' 재미가 있으면 안되고 목표가 있으면 실패다. 게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말아야 하고 강해지는 느낌이 없어야 한다. 이들의 고민을 지켜보던 기자들도 고민에 휩쓸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48시간 안에 어떤 게임을 만들겠다는 거지?'

그때, 치료를 담당하는 힐러 넥슨 인재개발팀 권도영 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48시간의 피로와 허기짐 등 모든 부분을 지원하겠다'는 한마디와 '비록 개발자는 아니지만 이러한 뜻깊은 자리에 참석해 영광이다'는 말로 참석자들의 기초 체력을 순간 상승시켰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줬다.

이렇게 본격적인 개발은 시작됐고 여가부에 반항하는 개발자들의 눈빛은 점차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게임을 만드는 일 자체에 재미를 갖는 개발자 본래 눈빛이 돌아왔다.

불타는 금요일과 토요일이 섞여 있어서일까? 48시간은 매우 짧았다. 서로의 패턴 차이와 일정 차이로 작업 진행이 힘들기도 했지만, 모든 팀이 결과물을 가져왔다. 첫날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게임을 만들지 고민하던 모습은 사라졌고, 당당히 여가부 앞에 허리를 펴고 내놓을 수 있는 게임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 ▲ 과연 어떤 타이틀이 등장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




-I'm a Monster-


99레벨 몬스터를 직접 조종하며 게임은 시작된다. 플레이어는 자신의 능력치와 능력 등 어떠한 것도 확인할 수 없다. 그저 마우스 클릭으로 이동만 가능하다. 유저들이 몬스터를 사냥하기 위해 끊임없이 몰려 오고 이들을 향해 이동하면 물리칠 수 있다. 하지만 유저들의 숫자는 줄지 않고 HP는 계속 줄어들며 끝내 죽게 된다.

이후, 조종할 수 있는 몬스터의 레벨은 점차 낮아진다. 레벨이 낮아지며 처음 시작했을 당시, 소지하고 있던 금전의 수량도 낮아진다. 또한, 장착하고 있던 아이템도 하나씩 사라진다.

플레이어의 컨트롤 역량차이로 일정 수준을 넘어설 수 있다 하더라도 정해진 시간을 넘어서는 순간 몬스터를 물리치기 위해 몰려드는 유저들의 숫자가 더욱 많아진다. 즉 1초라도 오래 살면 강한 유저가 출현, 결국 한정된 시간 안에 끝나게 되어있다.

이 게임은 여가부의 평가안을 따라 절대 클리어할 수 없는 방식, 자신의 능력 확인 불가, 내 레벨 능력치 등 모든 것이 없고 플레이할수록 약해지는 구조로 되어 있다. 특히, 마지막 라운드는 플레이어가 허수아비로 출현, 초보 유저들의 공격에 이동도 하지 못한 채 무의미하게 쓰러지며 게임은 끝이 난다.











-Cleaning Cat-


'클리닝 캣'은 길 찾기가 가미된 퍼즐게임이다. 청소기 위에 앉아있는 고양이를 먼지로 길을 만들어서 목표지점까지 이동시키면 된다. 터치한 부분의 상, 하, 좌, 우로 먼지가 생성되고 이것을 조합해 길을 만들 수 있다. 뒤집히는 먼지쌓인 길과 그렇지 않은 길은 마치 오델로처럼 반전된다. 이러한 반전 효과를 이용하여 퍼즐적인 재미를 추구했다.

이 게임은 '점수와 보상을 제외한 퍼즐게임을 만들자'는 생각에서 비롯됐다. 여가부의 평가안에 접목했을 경우 모든 것이 타당한 게임을 만드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게임을 제작하며 퍼즐게임 자체의 재미가 느껴지는 게 문제점이었다. 결국, 여성부에 억지로 맞추려 하지 않고 유저들에게 초점을 맞춰 개발을 진행했고 11, 12항목에 맞지 않지만 재미있는 게임을 만든다는 목적은 충족했다.












-인생은 시궁쳇바퀴-


제목에서 게임의 주제와 특성을 엿볼 수 있다. 게임의 주요 재미가 성장이고 이것을 중독 요소 중 하나로 보는 평가표에 반기를 들었다. 성장에서 얻는 유저들의 만족감을 막고 현실과 게임을 바꿔 본 게임이며, '현실의 비굴함을 게임에 담아 평가안에 알맞은 게임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탄생했다.

인생을 쳇바퀴에 비유, 우리가 돈을 벌고 사회적 직위를 높이려 하지만 항시 제자리 놀음을 룰렛과 연관 지어 표현했다. 인생을 살며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확률적인 요소로 무장한 룰렛을 사용했고 사기, 꽃뱀, 주식 대박 등 다양한 항목을 삽입했다.

게임의 주인공은 가훈으로 10억을 벌자는 목표를 가지고 시작하게 된다. 처음 소지금은 4000만 원, 룰렛을 돌려 인생을 살다 보면 돈은 쌓이지 않고 내려간다. 또한, 룰렛을 돌릴 때마다 캐릭터는 늙어가고 시간은 지나간다. 캐릭터가 죽으면 아들이 대를 이어 게임은 계속 진행된다. 즉, 게임은 무한으로 반복, 쳇바퀴 인생을 살게 된다.











-Kill the Game developer-


'Kill the Game developer'는 마이크를 사용하는 잔혹한 게임을 컨셉으로 만들어졌다. 여가부의 평가안에 없는 잔인한 부분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며, 아티스트가 없어 그래픽 부분은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큰 소리를 내면 폭탄, 작은 소리는 철퇴로 소리에 반응해 무기를 날린다. 배경으로 사용된 건물은 여가부 건물이며, 개발팀에 의하면 딱히 여가부를 노리고 만든 것은 아니라고 한다.

아울러 추가로 만든 게임은 글자를 하나라도 클릭하기만 하면 승리하는 게임이다. 하지만 절대 승리할 수 없다는 게 함정이다.











모든 발표가 끝이 났고 직접 플레이해볼 수 있는 시간이 다가왔다. 참가자들은 서로 만든 게임을 직접 해보며,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다. 물론, 기자들도 참가해 게임을 즐겼고 뜻밖에 재미있다는 반응이 난무했다.

'클리닝 캣'은 퍼즐 자체의 재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게임이었다. 아트디렉터가 팀원으로 참가해 잠을 자지 않고 만든 아기자기한 그래픽도 일품이었다. 'I'm a Monster'는 재미가 없었다. 다만, 몬스터의 입장에서 유저와 대결을 하지만 질 수 밖에 없는 운명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였고 초보존에서 볼 수 있는 허수아비의 가슴 아픈 상황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인생은 시궁쳇바퀴'는 절망이 가득했다. 돈을 벌고 성공하고 싶지만 실패를 거듭하며, 대를 이어 달리는 모습에서 가슴 깊이 눈물이 났다.

'Kill the Game developer'는 게임의 재미를 떠나 개발자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건물 위에서 뛰어내리는 개발자들, 그리고 작은 목소리와 큰 소리로 그들을 죽이는 플레이어... 어찌 보면 지금의 상황이 지속될 경우 어두운 미래를 암시하는 게임이란 생각이 들었다.




[ ▲ 서로 개발된 타이틀을 직접 시연하면서 게임속에서 숨겨진 의도를 살펴보았다. ]



[ ▲ 개발은 즐거웠지만, 게임이 재미 있을수록 평가안에 적합하지 못했다는 것이 함정 ]


참가자들이 각자의 소감을 전하며 게임 잼은 막을 내렸다. 참가자 대부분 화나서 참가했지만, 게임을 만드는 일 자체는 너무 즐거웠다는 말을 주고받았다. 아울러 이번 행사를 통해 좋은 경험을 했고 청소년의 게임 중독을 막는 것은 옳은 생각이지만 규제만으로 막으려고 하는 행위 자체가 옳은 일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고, 모든 결과는 시간이 흐른 뒤 알겠지만 '최후의 승자는 개발자가 되지 않을까?'란 물음과 함께 확신을 내비쳤다.

'건전 게임 만들기 게임 잼'을 주최한 터틀크림 박선용 대장은 '처음 이런 자리를 마련하게 된 계기는 아무래도 반항심이 가장 컸다고 볼 수 있지요. 어떤 식으로라도 저희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비록 작은 모임이지만 게임 개발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요. 이번 게임 잼을 계기로 개발자는 개발자의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겼고 뒤풀이를 위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자리에 참석한 개발자들은 정말 재미없는 게임을 만들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게임을 만드는 것 자체가 재미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재미를 만드는 개발자들에게 재미없는 게임을 강요한다면, 이들의 행복은 누가 책임질까.

청소년을 주체로 게임시장을 바라보는 눈빛이 많다. 중독을 막기 위한 출발은 좋았지만, 이를 위한 방안으로 강압적인 행위를 일삼는다면, 개발자들의 삶과 재미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삶을 영위하다 재미가 없어진다면 포기할 것 같아 재미있는 게임을 만든다던 박선용 대장의 한마디가 가슴 깊이 새겨졌던 48시간이었다.




[ ▲ 48시간동안 진행된 '건전한 게임 만들기 게임 잼' 참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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