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게임을 위해 '게임'을 제외한 협회, K-IDEA가 정답이었나?

칼럼 | 김지연 기자 | 댓글: 58개 |




한국게임산업협회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한국게임산업협회는 지난 15일 오전 임시 총회를 열고 협회 명칭을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약칭 K-IDEA)'로 확정했다. 명칭 변경 건은 지난 4월부터 알려진 바였으나, 임시 총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변경이 확정되었음을 공표한 것이다.

이번 임시 총회는 전체 회원사 95개를 대상으로 실시 되었으며, 부득이하게 참석하지 못한 회원사에게는 서면으로 의견 위임장을 전달 받아 진행되었다. 협회 측 관계자에 따르면 "임시 총회에 참여한 회원사 리스트를 구체적으로 밝히기는 어려우나, 주요 회원사는 대부분 참석했다"고 한다.

한국게임협회의 회원사는 부회장사 7곳, 이사사 13곳, 일반회원사 62곳, 특별회원사 1곳, 준회원사 12곳으로 이루어져 있다. 부회장사로는 네오위즈게임즈, 넥슨코리아, 스마일게이트, 엔씨소프트, 위메이드, CJ E&M, NHN한게임이 포함되어 있다.

이 소식에 일부 게임업계 관계자 및 개발자들은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게임'에 대한 좋지 않은 시선이 있기 때문에 '게임'이라는 단어 자체를 삭제하는 것 아니냐"며 명칭 변경에 강하게 반대했다. 이에 지난 4월 23일, 모바일 게임을 개발하고 있는 김종득 기획자는 '게임 개발자 연대'를 설립, 협회 명칭 변경 건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대하는 성명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현 시점에서 '한국게임산업협회'가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로 변경된 사안에 대해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논란의 불씨를 지피고 있는 협회 명칭 변경 사안에 대한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 측의 의견은 다음과 같다.

"현재 게임 시장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으며, 급격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게임 역시 단순한 게임 산업이 아닌 영화 속 요소로 사용되거나 다른 장르와 융합되는 등 다양한 형태로 발전되고 있다. 이러한 성장을 '게임'이라는 한 단어에 담기에는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 전체를 아우르는 명칭으로 변경하게 되었다"

즉, 하나의 단일 사업으로 규정짓기에는 게임이 다양한 문화 장르로 파생되고 있다는 것이다. 시대가 변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의 흐름에 발맞추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는게 협회 측의 입장이다. 변화된 명칭을 통해 한국 게임 산업을 더욱 발전시키고, 본래의 가치를 더 찾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 그들의 취지이다.

그러나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로의 명칭 변경에 대해서는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적절치 못하다.



▣ 게임 업계, 스스로가 '게임'을 부정적인 것으로 인정하는 셈?

첫째, 새로운 정책이나 어떠한 변화 없이 '명칭부터 바꾸고 보자'는 식의 태도는 우리 스스로가 '게임'을 부정적인 것으로 인정하고 이미지를 세탁하려는 인식을 줄 수 있다.

근래 사회적 이슈가 대두될 때마다 꼬리표처럼 붙었던 어구가 '게임 중독'이다. 청소년들의 범죄 소식이 들려올 때면 그 속에는 언제나 '게임중독으로 인한'이라는 말이 수식어처럼 쓰였다. 학교폭력, 왕따 등 범죄의 주된 원인은 정작 다른 곳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에서는 '게임'을 내세워 범죄의 원인으로 내세우곤 했다.

이러한 시점에 한국게임산업협회가 먼저 나서서 '게임'이라는 단어를 협회명에서 제외했다는 것은 업계 스스로가 '게임'을 부정적인 것으로 인정하는 셈이다. 지난 4월, 협회 명칭 변경 발표가 있었을 때 게임 개발자들이 반발했던 것 역시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사실 미국게임산업협회도 ESA(Entertainment Software Association)로 '게임'이라는 단어가 포함되지 않은 명칭을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소프트웨어라는 단어가 협회명에 들어감으로써 어떠한 단체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의 경우, 협회명을 지은 사람이 아니면 무슨 조직인지 추측하기 힘들며,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 다소 난해하게 다가온다.

나아가 하나의 기관이 명칭을 변경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요구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사용해왔던 이름을 포기하고 새로운 명칭으로 바꾸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런데 게임산업협회는 새롭게 제안하는 정책이나 뚜렷한 목표가 없는 상태에서 이름부터 바꾸고 보자라는 식으로 단행했다. 이는 진정으로 게임 산업의 발전을 위한 결단이라기 보다는 '세탁'에 가까운 행위로 간주된다.



▣ 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 어디까지를 말하는 것인가?

두번째, 협회 명칭이 변경되면서 해당 기관이 담당하는 사업 영역이 모호해졌다.

실제로 협회 측은 이번에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로 변경되면서 현 사업 영역은 그대로 유지하되, 다른 영역으로 확장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느 영역까지 담당하게 될지는 현 시점에서 말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들이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게임사들이 게임을 토대로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으며, 게임이 영화의 요소로 사용되기도 하고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는 등 다양한 장르로 발전되고 있기 때문에 협회 입장에서도 게임이 어느 영역까지 뻗어 나갈지 가늠할 수 없으며, 이에 사업 영역을 단정짓지 못한다는 것.

다양한 분야를 커버하겠다는 취지로 어중간한 정책을 펼친다면 그것은 오히려 게임 산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게임 산업이 보다 발전하기 위해서는 '게임'에 집중된 정책과 지원이 있어야 한다. 게임 산업 발전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잡고 게임사와 협회가 함께 노력할 때 비로소 세계 게임 시장 속에서 한국이 선두에 설수 있다.

현재와 같은 상태로 흘러간다면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가 앞으로 인터넷 기반의 만화 산업이나 음원 유통 회사도 담당할 수 있다는 우스갯 소리가 현실이 될 우려도 있다.



▣ 협회명칭 변경, 정말로 게임 업계의 목소리가 반영된 결과인가?

세번째, 처음 협회 명칭 변경을 발표했을 때 업계 관계자들의 많은 반발이 있었음에도 충분한 여론 수렴 없이 강행되었다는 점이다. 김종득 기획자의 주도하에 '게임개발자연대'가 창설된 이유도 이와 동일 선상에 놓여있다. 김종득 기획자는 지난 인벤 인터뷰에서 협회가 업계 종사자들의 의견을 대변하지 못하기 때문에, 개발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연대를 설립했다고 밝힌바 있다.

그들이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게임'이라는 단어를 버리는 것은 '더 이상 게임협회가 아니다'라는 뜻으로 비춰지기도 하며, 게임을 사랑하고 게임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배신이라고 해석된다는 것이다.

[관련기사] "개발자 이익 대변하겠다" 게임개발자연대 출범

해당 연대는 수십 년 동안 게임을 개발하며 문화 산업을 갈고 닦아온 현업 개발자들에게서 협회가 등을 돌린 것이라며 유감을 표했다. 이와 더불어 게임개발자연대는 게임 개발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함께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협회 측은 게임사들로 구성된 회원사들의 동의를 얻어 진행된 사안이기 때문에 결코 업계의 의견을 배제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이미 임시 총회 이전에 회원사들과 충분히 논의가 이루어졌으며, 임시 총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협회 명칭 변경 건이 공표된 것.

하지만, 어느 게임사가 협회가 추진하는 안건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대 의견을 제기할 수 있을까? 자사의 이익에 크게 반하지 않는다면 리스크를 동반하면서까지 목소리를 높일 이유가 사실상 없다. 또한, 각 회원사의 임원진들이 통과시킨 사안이며, 현업 게임 개발자 및 관계자들의 의견은 반영되어 있지는 않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입장이다.

게임으로 연결지을 수 있는 모든 구성원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정책은 물론 없다. 그러나 소통과 합의의 과정을 거쳐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합리적인 정책을 만들어 가는 것이 정도(正道)다. 회원사들의 동의 하에 진행된 건이라고는 하나 현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으며, 이러한 의견에 귀 기울이려는 시도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소통의 부재가 있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 게임 산업 성장과 자율규제 도입, 소통이 부재한다면 무용지물



[▲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 남경필 협회장]

남경필 협회장은 지난 임시 총회에서 "협회 명칭 변경을 계기로 자율, 공헌, 성장의 목표 달성을 위한 노력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세 가지 목표는 앞으로 게임업계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다.

하지만 게임업계를 대변하는 조직에서 협회 명칭 변경이라는 중요한 사안에서조차 '소통'이 부재한다면 협회 이름이 무엇이 되었든간에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게임 산업 발전과 관련된 정책 변경 등 아무런 변화의 시도가 없는 현 상태에서 협회 명칭부터 바꾸고 보자는 식의 태도는 오히려 사람들에게 '게임은 좋지 않은 것'이라는 것을 업계인들 스스로가 인정하고 그러한 부정적인 인식을 사람들에게 심어주는 꼴이다.

협회는 게임이라는 문화가 진화하고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흐름에 협회가 따라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하나의 의문점이 생긴다. 영화나 드라마 등의 경우 원소스멀티유즈가 흔히 적용되는 문화 장르인데, 왜 영화산업진흥회는 명칭을 변경하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문화 산업의 발전을 위한 정답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임시 총회를 거쳐 결정된 사안에 대해 다시 되돌리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단순히 명칭 바꾸기에서 그치면 안된다는 것이다. 지난 4월 K-IDEA는 새로운 이름에 걸맞게 업계 자율실천 과제도 차근차근 추진한다고 밝힌바 있다. 특히, 국회의 규제입법이나 정부의 행정규제에 우선하여 기업 스스로 행하는 자율규제를 준비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자율규제 부문에서는 어떠한 것도 거론되고 있지 않다.

그들이 주장하는 게임 산업의 활성화를 진정으로 추구하고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 게임 산업 발전을 위한 올바른 방향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아야 할 때이다.

댓글

새로고침
새로고침

기사 목록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