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도타2, 하스스톤이 얼마나 끌어올까? 연말 게임시장 관전포인트

칼럼 | 오의덕 기자 | 댓글: 33개 |
리그오브레전드(이하 롤)가 우리나라 온라인 게임시장의 1등을 접수한 지도 벌써 2년이 다 되 간다. ‘아마 안될 거야’라고 올해 초 엔씨소프트 배재현 부사장이 NDC 키노트에서 토로했던 것처럼 롤 PC방 점유율 40%는 국내 게임사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압박이다.

▶ [NDC2013] 엔씨소프트 배재현 부사장의 '우린 아마 안될 거야'라는 말의 의미

국내 온라인 신작들이 하도 기를 펴지 못하다 보니 이제는 대박은커녕 제발 버텨서 살아만 남아달라는 주문이 업계서 당연시됐다. 마치 프로도가 임무에 실패하고 사우론이 절대반지를 되찾은 우울한 암흑기 분위기였달까.



▲ 올해 4월 NDC 때만해도 롤의 점유율은 35%였다.



하지만 영원한 승자란 없다고 했다. 올해 하반기를 지나면서 분위기 반전의 조짐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국산 MMORPG 에오스가 입소문을 타며 온라인 게임 순위 10위권에 진입하더니 돗자리를 펴고 진득하게 자리 잡은 것이다.

물론 더 두고 봐야겠지만 순항에 돌입한 에오스 이후 아스타, 아크로드2, 다크폴이 정식서비스를 연달아 시작하면서 거의 잊혀진 듯했던 국산 MMORPG에 대한 관심을 되돌려놨다. 때맞춰 다음과 위메이드가 검은사막과 이카루스의 CBT를 진행한 것도 이런 흐름에 물줄기를 더 했다.

지스타를 앞둔 연말에 이르자 시장 변화에 대한 갈망은 더욱 거세졌는데 롤의 철옹성을 정면으로 뒤흔들만한 후보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바로 넥슨의 도타2와 블리자드의 하스스톤.

누구는 단언컨대 도타2, 하스스톤이 롤에게 치명타를 날릴 거라 장담하는 반면, 또 다른 누구는 어림도 없는 일이라며 롤의 독주체제는 내년까지도 쭉 이어질 거라고 확신한다.

기자 또한 나약한 인간이기에 앉은 자리에서 점유율 두 자리를 콕 짚어내며 미래를 예측할 전지전능은 없다. 하지만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연말 게임시장에 대한 전망을 물어보는 관계로 능력 밖 예언 대신에 도타2와 하스스톤에 대한 개인적인 소감을 적어보기로 했다.

두 게임이 오랫동안 어떻게 서비스를 준비해왔는지 지켜봐 왔고 운 좋게도 남들보다 먼저 플레이 해볼 기회가 있었기에 게임업계에 구름처럼 흘러다니는 정보를 귀동냥한 것까지 더 하면 토론거리는 충분히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도타2

도타 올스타즈로 유명한 아이스프로그를 영입하여 밸브가 야심 차게 준비한 AOS류 게임으로 밸브 특유의 완성도와 스팀이라는 강력한 플랫폼의 만남이 어우러져 북미 오픈부터 100개 이상의 영웅을 공개하고 현재 전 세계 동시접속자 수 50만 명에 이르는 블라블라블라블라... 솔직히 이런 얘기는 이제 지겹다.

반대로, 도타 올스타즈를 정식으로 계승했기에 롤과 비교해서 상당한 진입 장벽이 있으며 도타2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는 국내 유저와의 취향과는 맞지 않고 스팀이라는 아직은 대부분 유저들에 생소한 플랫폼은 블라블라블라... 이런 얘기도 지겹기는 마찬가지.

도타2는 분명히 잘 만든 게임이다. 여기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태리 장인이 한땀 한땀 수놓은 듯한 밸브의 손길은 게임플레이부터 UI, e스포츠 관전 시스템 등 게임 곳곳에 묻어난다. 다른 회사 같으면 새 게임 하나는 뚝딱 만들 2년이라는 시간을 밸런스 잡는 베타에 쏟아부은 것만 봐도 도타2의 완성도를 짐작할 수 있다.






관건은 이 좋은 재료를 가지고 국내 퍼블리셔인 넥슨이 얼마나 대박을 터트릴 수 있는 가다. 도타2를 국내에 출시하기 위해 넥슨이 짠 전략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e스포츠다. 정식 출시도 안 한 상황에서 넥슨 스타터 리그(NSL)라는 이름을 걸고 상금 2천만 원의 대회를 개최하고 국내 프로팀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약속했다.

넥슨으로서는 AOS 장르에 첫 번째 도전인 셈이지만 큰 대회를 밑단에서부터 기획하고 각 프로팀을 비롯해 방송사와 함께 힘을 모아 하나의 완성된 e스포츠 판을 새롭게 그려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지난 26일 도타2 국내 정식 출시 때는 두 번째 NSL(이번에는 넥슨 스폰서쉽 리그로 이름을 바꿨다)의 4강과 맞물리도록 배치해 시너지를 노렸고 프나틱, 디 얼라이언스, 팀 리퀴드 등 도타2 세계최강 팀을 국내에 초청해 온게임넷 용산 스타디움과 지스타 도타2 부스에서 국내 팀과 꿈의 대결을 펼치는 '넥슨 인비테이셔녈 슈퍼매치'도 팬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다 좋은데 넥슨표 도타2에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e스포츠에 공을 들인 만큼 신규 유저 유치가 크게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6일 정식출시를 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아직은 밋밋하다.

수만 개의 베타키를 배포하면서 베타기간을 길게 가져가서일까. 실시간 검색어를 점령하고 여기저기 커뮤니티에서 해본 유저들의 소감과 토론이 이어지는 다른 대작들에서 볼 수 있었던 ‘오픈베타’ 특수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물론 도타2로 단기에 큰 성과를 내기보다는 피파온라인3처럼 길게 보고 유저 유입량을 늘리겠다는 깊은 고민에서 우러나온 넥슨의 전략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대세 게임을 따라 우르르 몰리는 현상이 유독 강한 국내 게임시장에서 직접적인 경쟁자가 없는 피파온라인3와 롤이라는 확고한 지배자가 이미 존재하는 도타2는 상황이 확연히 다르다.

e스포츠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게임플레이와 e스포츠간의 순환고리를 만들어내는 실 유저층이다. 세 달간의 국내베타는 넥슨에게 득과 실, 모두를 남겼다.

‘이미 지나간 게임'이라는 이미지를 말끔히 벗어내고 하반기 최고 기대작으로서의 위치를 되찾기 위해서는 유저들과 살을 맞대며 피드백을 적극 수렴해 유저 한 명, 한 명을 특급고객으로 소중히 모셔야 한다. e스포츠가 뿌리내려 열매까지 맺기 위해서는 유저라는 탄탄한 토양이 필수다. 넥슨이 진심으로 유저의 마음을 훔칠 수만 있다면 해볼 만한 싸움이다.







하스스톤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하지만 기자는 카드게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 안에 무궁무진한 전략이 숨어 있다고 하나 일단 카드와 숫자를 보면 머리부터 아프다. 그러니까 이런 거다. 애써 카드에 적힌 숫자를 보며 실제 캐릭터가 멋지게 마법을 쏘고 칼질을 하는 장면을 상상할 필요가 있을까, 그냥 게임 자체를 그렇게 만들어주면 되지.

하스스톤 베타키를 북미 때부터 받아 놓고도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학창 시절, 시험만 보면 엄마의 몽둥이를 소환했던 저렴한 산수실력도 한몫했다. 아무튼, 애써 의무감으로 중무장하고 하스스톤 베타를 실행해 봤는데 이거 웬걸, 예상과는 다르게 너무 재밌는 거다.

그냥 와우(WoW)에서 1:1 PvP하는 느낌인데 엄지부터 새끼손가락까지 손을 왕창 벌려가며 쉴새 없이 콘트롤할 필요도 없고 상대방의 수에 차분히 고민해서 반격을 날리는 맛이 일품이다.

카드도 대부분 와우의 각 직업 스킬과 1:1 대응해서 따로 배우지 않아도 튜토리얼 몇 판만 해보면 마치 고수가 된 듯 자신감이 폭발한다. 1시간 동안 몇 번을 연습한 후 블리자드 홈페이지에서 한 달 치 용돈을 털어 배틀코인을 지르는 내 모습을 발견한 건 과연 우연일까.






하스스톤에 대한 좋은 반응은 비록 베타일 뿐인데도 기자, 업계인, 게임 개발자를 넘어 일반 유저들에게도 이어졌다. 와우의 스핀오프 작인 줄로만 알았던 하스스톤이 스타크래프트2, 디아블로3, 히어로즈오브더스톰( 구 블리자드 올스타즈)를 제치고 블리자드 기대작 1순위에 오른 오묘하고 야릇한 상황을 누가 예상이나 했던가.

실제로 하스스톤이 정식출시 되면 롤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될 거라고 점찍은 사람들이 업계에 좀 있다. 기자도 하스스톤을 플레이하며 비슷한 생각을 하지만 한 가지 우려되는 점도 있다. 과연 하스스톤이 초반의 긴장감을 유지하며 얼마나 오랫동안 유저를 붙잡을 수 있느냐다.

우리 유저 특성상 누구나 최고가 되려는 욕구가 강하기에 정식 오픈하자마자 무자비한 과금전사들이 속출할 것으로 전망한다. 게다가 하스스톤은 꼭 돈을 안 써도 오래 플레이하면 언젠가는 자신이 원하는 카드를 가질 수 있는 구조여서 어느 정도 시점이 지나면 누구나 최상의 덱을 가지게 된다.

어떤 순서로 카드가 나오고 상대방으로 어떤 직업을 만나는지.. '우연성', 이른바 '랜덤요소'가 승패를 크게 좌우하기 시작하면 언제나 그렇듯이 게임에 질리는 속도도 빨라진다. 아무리 좋은 카드, 전략, 덱이 있어도 극상성을 만나거나 재수가 없으면 지기 때문이다. 천상계 고수급으로 가면 투기장에서 맨 첫 번째 카드만 뽑고 온전히 전략의 힘으로 7연승, 9연승을 한다지만 일반 유저들에게는 딴 나라 이야기다.

게다가 하스스톤은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해 매직더게더링과 같은 전통적인 TCG의 룰을 상당 부분 걷어냈는데 그게 양면의 칼로 작용하기도 한다. 밖으로 내다 버린 복잡한 룰의 수만큼 전략의 깊이도 베어버릴 수 있다.

지금 당장 플레이할 수 있는 콘텐츠, '유저간 대전, 연습, 투기장’, 이 세 가지로는 부족하다. 카드 업데이트는 물론이고 랭킹이나 대회, 관전 시스템을 빠르게 도입해 유저들을 계속 하스스톤에 붙잡아둘 수 있는 '돌고 도는' 시스템을 내놔야 한다. 나는 하스스톤이 정식서비스 전에 혹은 그 시점에 이 부분을 해결할 수 있는지가 성공의 열쇠라고 본다.

또 한가지 보탠다면 ‘카드게임’이라는 말만 들어도 머릿속 기대작 리스트에서 ‘삭제’ 버튼을 누르는 대다수 보통 유저들을 위한 장벽 걷어내기도 필수다. 와우에 익숙하거나 일단 해보면 푹 빠지지만, 해보기 전에는 아무리 말로 설명해도 '노잼 광선'만 뿜어내는 것이 하스스톤의 비주얼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블리자드 코리아의 어깨가 무겁다.










종합해보면 시즌 챔피언인 롤은 상당히 까다로운 도전자와 링에서 맞붙게 된 셈이다.

첫 번째 도전자인 도타2는 거울에 비친 또 다른 자신이라고 할 수 있는 AOS 대작이다. 밸브가 도타2를 개발하면서 고민을 거듭하며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이 롤과의 경쟁에서 살아날 수 있는 해법임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해서, 밸브와 넥슨의 협공작전은 단순한 물량전을 넘어 롤의 아킬레스건에 치명타를 줄 수 있는 무언가를 노릴 게 분명하다.

두 번째 도전자 하스스톤도 만만치 않다. 수집형 카드게임을 표방하는 하스스톤의 가장 무서운 점은 롤과 장르가 직접 겹치지 않아 게이머의 시간을 자연스럽게 공유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롤 하다가 스트레스받을 때 하스스톤 한판'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롤이 국내 출시 후 국산 게임들을 소리소문없이 잠식해 나간 전략도 알고 보면 바로 이 단순한 수법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롤이 아주 불리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은 아니다. 페이커를 세계적인 영웅으로 끌어올리며 SKT T1이 우승한 롤드컵 이후부터 롤챔스 윈터를 앞둔 지금까지도 롤의 존재감과 영향력은 갈수록 거대해지고 있다. 팔팔 끓는 냄비의 뚜껑처럼 폭발하는 열기를 겨우 막아내던 서버다운도 최근에는 자취를 감췄다.

롤이 과연 어느 수준까지 자신의 인기를 스노우볼링할 수 있을지, 정말 e스포츠를 넘어 국민 스포츠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가 e스포츠계의 최대 관심사다.

이제 한 주만 지나면 블리즈컨과 지스타가 바로 코 앞이다. 블리자드와 넥슨이 라인업을 쏟아내며 반격을 준비하는 동안 검은사막을 해결사로 앞세운 다음과 다른 국내 게임사들도 연말 게임시장에서 펼쳐지는 진검승부에 동참하기 위해 저마다 칼을 갈고 있다.

자, 여기서 마지막으로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도 울고 갈 독자들께 질문 하나. 과연 올해 연말 대한민국 게임시장은 어떻게 변할까? 이제는 당신의 관전포인트가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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