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야생의 땅을 정복하기 위한 사투. 거대 공룡 레이드 체험기

게임뉴스 | 김강욱 기자 | 댓글: 5개 |
듀랑고에 온지 얼마나 지났을까. 처음에는 과연 이곳에서 살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여기 생활에도 어느 정도 적응했다. 이제 더 이상 살아남기 위해 나무를 자르고 풀을 베고 공룡을 사냥하지 않는다. 살아남기 위해 무언가를 하는 시기는 지났다. 상자에는 고기들이 가득하고, 밭에는 각종 작물들이 자라고 있다. 든든한 울타리가 마을을 지켜주고 비바람을 피할 천막도 넘칠 정도로 지어져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계속해서 위험한 곳을 탐험하는 이유는, 더 좋은 옷을 입고 더 좋은 도구를 사용하고 더 좋은 집에서 잠을 청하고 싶기 때문이다.



▲ 사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없다.


얼마 전 불안정섬에 다녀온 동료가 ‘괜찮은 제안’이 있다며 사람들을 모았다. 온대 섬에서 거대한 공룡을 발견했으니 힘을 합쳐 잡아보자는 말이었다. 자신이 대장이 되어 전투기술이 좋은 모험가들을 이끌테니 뒤에서 활로 엄호해줄 인원만 몇 명 더 있다면 충분히 잡을 수 있으리라 말했다. 그는 그렇게 큰 공룡을 잡으면 한동안 식량 걱정은 없을 것이고 껍질을 벗겨 뿔을 잘라내면 좋은 무기와 도구도 얻을 수 있다고. 여유가 생기는 만큼 마을을 키우는데 힘을 쏟을 수 있으니 꼭 잡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마을 안에서 사냥 경험이 가장 많고 실력 역시 뛰어난 사람이었기에 다들 걱정하면서도 조심스럽게 동의하는 눈치였다.

원정대를 꾸리는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호승심 넘치는 모험가들은 그동안 갈고 닦은 전투기술을 보여주겠다며 무기 끈을 다시 조이며 전의를 불태웠다. 정착자들은 고기와 가죽을 양껏 담아오라며 가방을 잔뜩 만들어 모험가들에 들려 보냈다. 마을을 세우고 처음으로 있는 큰 규모의 원정이었기에 다들 흥분해있었다. 처음의 걱정은 온데간데없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승리만이 빛나고 있었다.

최종적으로 원정에 참여한 인원은 나를 포함한 8명의 모험가였다. 원정대가 항구에 내리자 눈앞에 거대한 스테고사우루스와 그 새끼들이 눈에 보였다. 잔뜩 흥분한 모험가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스테고사우루스에게 달려들었다. 혼자서는 엄두도 못 내는 공룡이었지만, 그때의 우리는 혼자가 아니었다.

전투는 생각보다 싱겁게,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준비운동으로 적당한 수준이었다. 동료 중 한 명이 익숙한 손놀림으로 공룡의 시체에서 가죽과 고기를 뜯어내려 했지만 생각보다 가죽이 두꺼워 칼이 들어가지 않았다. 승리는 했지만 전리품을 챙길 수 없자 동료들 사이에 약간의 동요가 일었다. “이보다 더 큰 공룡이라면 당연히 가죽도 더 두꺼울 것이 아닌가.” 한 명이 조심스럽게 이번 원정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할 가능성을 이야기했지만, 다들 인정하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 스테고사우루스와의 전투는 싱겁게 끝났다.


온대 섬은 평화로웠다. 이미 축축하고 더운 열대 섬과 칼바람이 몰아치는 툰드라를 경험해본 우리에게 온대 섬의 날씨는 낙원의 그것과 다름없었다. 내가 맡은 역할은 탐색과 지원. 섬을 돌아다니며 그가 말한 거대한 공룡의 위치를 파악하고 동료들에게 알려준 후 활과 화살로 지원사격을 하는 임무였다. 동료들이 강 주변에 주둔지를 마련하고 작은 공룡을 잡아 비상식량을 마련하는 동안 나는 섬을 수색하며 거대한 공룡을 추적했다.

수색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주둔지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 해안에서 잠자고 있는 거대한 안킬로사우루스를 발견했다. 단단해 보이는 붉은 색 등 위에는 위협적인 돌기가, 두꺼운 꼬리에는 위협적인 추가 달려있었다. 출발할 때까지는 금의환향의 꿈에 부풀어있었지만, 막상 실제로 보니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주변의 나뭇가지와 잎을 모아 간이 천막을 여러 개 쳐놓고 모닥불도 피웠다. 곧이어 연기를 본 동료들이 찾아왔다. 처음 상대하는 거대한 공룡의 모습에 그들 역시 긴장하긴 마찬가지. 원정대장이 간단하게 작전을 말했다. 자신이 정면에서 주의를 끌 테니 양쪽에서 옆구리를 노리라고. 모두들 심호흡을 하고, 무언가를 떨쳐내기 위해 소리를 지르며 달려갔다.



▲ 전투가 시작된다.


아비규환. 그 당시의 상황을 정확히 말하자면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 처음 도끼질을 했을 때 알아차렸어야 했다. 원정대 중 가장 힘이 세다는 동료가 있는 힘껏 도끼를 휘둘렀지만 두꺼운 가죽에 긁힌 상처밖에 내지 못했다. 잠에서 깬 공룡은 일어나자마자 옆으로 굴렀고, 옆구리에 자리 잡았던 동료들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큰 상처를 입었다. 곧이어 안킬로사우루스가 거대한 꼬리를 휘두르자 동료들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피해를 입지 않은 곳은 정면 뿐. 하지만 그곳의 상황도 그다지 나아보이지는 않았다. 너도 한 방, 나도 한 방 평등하다는 죽창은 두꺼운 머리가죽에 막혀 파죽지세로 쪼개졌다. 마을 최고의 사냥꾼이라는 원정대장의 자부심도 함께 쪼개졌다.

거대한 꼬리가 바닥을 칠 때마다 동료들은 쓰러졌다. 공룡이 바닥을 구른 자리에는 핏자국만이 남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그들의 심장이 멈추지 않게 심폐소생술을 하는 것뿐이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동료들은 다친 몸을 이끌고 다시 공격을 개시했지만 화살도, 대검도, 도끼도, 죽창도 안킬로사우루스의 두꺼운 가죽에 흠집조차 내지 못했다. 오로지 하나. 거대한 망치만이 가죽을 뭉개고 피해를 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모든 것이 끝난 후였다. 동료 한 명이 완전히 쓰러진 원정대장을 끌고 전장을 벗어났고, 나머지 인원들도 정신없이 도망쳤다. 그 순간, 우리는 녀석이 사람을 먹지 않는다는 것에 신께 감사했다.



▲ 옆으로 굴러 공격하는 안킬로사우루스




▲ 꼬리 공격은 무엇보다 강력하다.




▲ 총 체력이 8,000. 피해량은 2.




▲ 현장에서 사망하면 공룡들의 먹이가 된다.


내로라하는 모험가들이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가자 마을 사람들은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듀랑고의 무서움이 우리의 머릿속에 되새겨졌다. 너무 안일했다. 애초에 이 땅은 우리가 정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제야 우리가 어디에 와있는지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 후로 한동안 누구도 공룡 사냥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식량은 창고에 있는 고기를 먹었고, 불안정섬을 탐험하는 모험가들도 공룡을 사냥해 가죽과 고기를 얻기보다는 줄기와 나뭇가지, 통나무를 주로 가져왔다. 다행히 옥수수와 감자가 많이 있어 식량은 부족하지 않았지만, 마을을 뒤덮은 우울한 분위기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원정에서 부상을 입은 모험가들이 하나둘 정신을 차렸다. 별다른 채집기술이 없던 그들은 마을에 도움이 되기 위해 다시 사냥을 시작해야만 했다.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작은 공룡들만 사냥했다는 것이다. 고기와 가죽의 수급량은 한창때에 비해 모자랐지만 아무도 그들을 탓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부상을 입었던 원정대장이 정신을 차렸다. 그는 원정대를 모아놓고 다시 한 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계획은 이러했다. 지난번의 실패는 무기를 잘못 선택한 탓이니 이번에는 다들 둔기를 준비하고, 회피가 어려운 양손 둔기 모험가는 주공격 방향인 꼬리와 옆구리 대신 정면에서 머리를 노리고, 비교적 회피가 쉬운 한손 둔기 모험가는 옆에서 공격하자는 것이다. 위험한 계획이었지만 가능성은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예전처럼 자신 있게 출발하자고 말하지 못했다. 결국 두 번째 원정은 “누군가가 안킬로사우루스 급 공룡을 발견할 때”로 결정됐다.

원정이 결정되자 마을은 다시 분주해졌다. 강력한 둔기를 위해 모험가들은 다시 큰 공룡을 잡아 단단한 머리뼈를 마을로 날랐다. 정착자들은 더욱 튼튼한 나무로 손잡이를 만들고 질긴 가죽으로 만든 끈으로 단단히 고정시켰다. 공격으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해 튼튼한 옷도 여러 벌 준비했다. 의지와 맷집을 올려주는 각종 식재료도 준비해 요리를 만들어 보관했다. 좋은 재료를 모으고 멋진 장비를 제작하며 마을은 다시 활기를 찾았다.






사실, 다들 깨닫고 있었다. 지금 우리가 가진 도구로는 도저히 녀석의 가죽을 찢을 수 없다. 만에 하나 승리한다 쳐도, 치열한 전투 끝에 남는 것은 상처뿐. 가죽도 고기도 뿔도 얻을 수 없다. 마을로 옮길 수도 없을 정도로 거대한 시체는 결국 주변 공룡들의 먹이가 될 것이다. 다들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굳이 그 사실을 입 밖에 내지 않은 것은, 그 공룡을 잡는 것에는 전리품을 얻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어느 날, 열대섬에 나갔던 모험가에게서 목표를 찾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다들 일순간 굳은 표정을 지었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원정 준비를 했다. 이번에는 굳이 무거운 가방을 지고 가지 않았다. 어떤 전리품도 얻지 못할 것을 각오한 결과였다. 대신 비상식량과 무기를 잔뜩 지고 출발했다. 공룡이 있는 곳에 도착하자 지난번과는 다른 분위기가 풍겨왔다. 분명 모양은 비슷하지만 외형이 달랐다. 검은색 가죽에 날카로운 뿔. 유오플로케팔루스였다.

지난번처럼 바로 덤벼드는 일은 하지 않았다. 대신 주변의 작은 공룡들을 먼저 빠르게 처리하고 천막을 지어 만약의 상황을 대비했다. 다들 준비한 둔기를 손에 들고 미리 준비된 위치로 이동했다. 준비가 끝나자 원정대장이 조용히 공룡의 머리 앞에 섰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녀석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전투의 양상은 확실히 지난번과 달랐다. 공룡이 바라보는 사람이 이리저리 움직이면 방향이 틀어져 공격을 피하기가 어려워진다. 때문에 공룡이 주시하는 한 명은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에서 머리를 공격했다. 겁먹을 필요는 없었다. 전방으로는 별다른 공격을 하지 않는다. 꼬리의 추를 의식해 뒤쪽에는 절대로 서지 않는다. 옆에서 공격하는 인원은 공룡이 구를 준비를 하면 안전한 곳까지 물러났다. 미리 이야기된 조직적인 움직임 덕분에 전투 초반에는 큰 피해를 보지 않고 착실하게 피해를 줄 수 있었다. 이대로만 간다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었다.



▲ 전투의 시작이 매우 좋다.


문제는 다른 곳에서 발생했다. 몸을 지키기 위해 입은 튼튼한 옷이 더운 날씨의 열대섬에는 맞지 않았던 것이다. 덥고 습한 환경에서 전투가 지속되자 사람들의 피로도는 극에 달했다. 눈앞이 흐려질 정도로 피로가 쌓인 몇 명은 공룡의 공격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쓰러져갔고, 그들을 구하러 간 사람들 역시 피로도가 쌓여 심폐소생술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몇 명은 궁여지책으로 물에 들어가 땀을 씻어냈지만, 일시적인 조치였을 뿐 물에 젖은 옷은 피로도를 더욱 가중시켰다. 사람들의 피로도가 높아질수록 공룡에게 입히는 피해량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쓰러지는 인원이 늘어났고, 결국 몇 명은 다시 그들을 일으켜세우기 위해 전장을 이탈할 수밖에 없었다.

상황을 보다 못한 원정대장은 극단의 조치를 내렸다. 당장 움직일 수 있는 인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천막에서 정신을 차리고 오라는 것. 예기치 못한 상황이었지만 다들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두 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재빠르게 물을 마시고 몸을 씻고 음식을 먹어 기력을 보충했다. 시간은 고작해야 1분 정도였지만, 눈앞에서 동료가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싸우던 당시에는 영원처럼 긴 시간이었다.

약간의 휴식을 취한 동료들이 합류하자 전투는 다시 활기를 찾았다. 처음에는 강렬하게 저항하던 공룡 역시 머리와 다리, 꼬리, 내장에 부상을 입어 제대로 된 저항을 할 수 없었다. 순간을 노린 원정대장이 거대한 뼈망치로 머리를 후려치자 공룡은 잠시 기절했고, 다른 사람들은 그 틈을 타서 최선을 다해 무기를 휘둘렀다. 공격을 버티다 못한 공룡이 숲 속으로 도망치기 시작했고, 우리는 꼬리 쪽에는 절대 서지 않는다는 사실도 잊은 채 뒤에서 추격하며 공격을 이어갔다. 길었던 전투는 그렇게 끝이 났다.



▲ 쓰러진 동료에게는 심폐소생술을




▲ 피로도 관리가 전투의 핵심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




▲ 길었던 전투의 끝이 보인다.




▲ 승리의 순간


예상대로 우리는 그 어떤 전리품도 얻을 수 없었다. 유오플로케팔루스의 갑주와 뿔을 떼어내려 했지만 우리 중 그 누구도 그런 기술이 없었다. 약한 돌칼로는 망치에 짓이겨진 가죽조차 뚫을 수 없어 고기 한 점도 얻을 수 없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우리는 싸웠고, 승리했다. 이번 승리는 단순히 하나의 공룡을 잡았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번 승리는, 우리가 듀랑고를 정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모두에게 안겨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야생의 땅에서 단지 살아남기에만 급급했던 우리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줬다.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전투였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얼마나 큰, 얼마나 무시무시한 공룡이 등장할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우리는 벌써부터 다음 원정을 준비하고 있다. 함정을 만들어 발을 묶고 섬의 기후를 정확하게 파악해 피로도를 최대한 아낄 계획도 세운 상태다. 마을은 기대에 부풀어있다. 모험가들은 더욱 질 좋은 재료를 구해오고 정착자들은 재료를 가공해 더욱 질 좋은 도구를 만든다. 이를 바탕으로 다음 전투에서는 승리 뿐 아니라 그에 걸맞는 전리품도 챙기리라. 야생의 땅을 정복하기 위해.



▲ 전리품을 얻을 수 없다. 그게 무슨 상관인가.




▲ 승리의 순간을 만끽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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