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첫 우승을 파이널에서! 2018 TWT의 마지막 주인공, '랑추' 정현호

인터뷰 | 박태균, 유희은 기자 | 댓글: 1개 |
올해 3월부터 쉼 없이 달려온 2018 철권 월드 투어(이하 TWT)가 종료됐습니다. 지난 2일,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철권 선수 20명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모여 대망의 TWT 파이널을 진행했는데요. 그 누구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었던 치열한 승부 끝에, 대망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주인공은 바로 '랑추' 정현호였습니다.

한편, 이번 '랑추' 정현호의 우승은 매우 특별했습니다. 주력 캐릭터인 팬더로 세계 최강으로 손꼽히는 '무릎' 배재민과 '쿠단스' 손병문의 데빌 진을 꺾은 결과이기 때문이죠. 성적으로 이야기해야 하는 철권 프로씬에서 '랑추' 정현호는 TWT 파이널 우승을 통해 본인만의 확고한 입지를 다졌습니다.

갑작스러운 한파가 찾아온 어느 겨울날, '랑추' 정현호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 자리엔 '랑추' 선수의 전 팀 동료이자 절친한 친구, 라이벌인 '로하이' 윤선웅도 함께 했는데요. 기분 좋게 한 해를 마무리하고 2019년을 준비하는 두 선수의 이야기를 지금 바로 만나보시죠!



▲ 좌측부터 '랑추' 정현호, '로하이' 윤선웅




Q. 반갑습니다. 독자분들께 인사 먼저 부탁드릴게요.

'랑추': 안녕하세요. 철권 게이머 '랑추' 정현호입니다.

'로하이': '로하이' 윤선웅입니다. EVO 2018 우승 이후로 다시 인사드리네요.


Q. 올해 대회 중 가장 치열했던 TWT 파이널에서 전 세계 강자들을 꺾고 우승자가 됐어요. 소감이 궁금합니다.

'랑추': 8강을 목표로 출전했는데, 우승까지 했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제 인생의 첫 우승을 이렇게 큰 무대에서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Q. 말씀하신 것처럼 지금까지 TWT 상위권 입상은 많이 했지만, 우승 기록은 없었어요. 그런데도 이번 파이널에서 우승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랑추': 아무래도 '로하이' 선수의 도움이 아닐까요. 항상 데빌 진을 상대하는 게 까다로웠는데, '로하이' 선수의 데빌 진과 두 달 가까이 특훈을 했어요. 그 외 연습도 평소보다 훨씬 많이 했구요. 그 과정에서 피드백을 많이 받았고 스스로도 많은 걸 깨달았어요.

'로하이': '랑추' 선수는 철권을 정말 안 해요. 스팀에 들어가면 항상 '배틀그라운드 플레이 중'이라는 메시지가 떠 있었죠(웃음). 그래서 TWT 파이널을 앞두고는 배틀그라운드를 못 하게 하고 철권만 시켰어요.


Q. 또 이번 대회서 팬더로 우승을 차지하면서 많은 화제가 됐어요. 특히 '무릎' 배재민, '쿠단스' 손병문 선수의 데빌 진을 상대로 불리한 상성을 극복하고 승리를 거두면서요. 어떤 각오로 두 선수와의 경기에 임했는지 궁금해요.

'랑추': 원래 데빌 진을 잡기 위해선 '로하이' 선수처럼 횡이동을 잘 사용해야 해요. 그런데 팬더는 횡이동이 의미가 없잖아요. 그래서 처음엔 다른 캐릭터로 데빌 진을 상대하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10년 가까이 해왔던 플레이스타일은 쉽게 바뀌지 않더라구요. 그때 다른 캐릭터를 골라서 팬더처럼 하느니 그냥 팬더를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8강 승자전에서 '무릎' 선수의 데빌 진을 상대로 펭과 기스를 골랐다가 패배하고 생각이 굳어졌어요. 그 이후로 줄곧 팬더를 꺼냈어요. 그리고 '섣불리 움직이다가 얻어맞느니 이지선다에 걸려주자', '움직여서 피할 바에 공격으로 막아내자'는 생각으로 두 선수의 데빌 진을 상대했죠. 사실, 이런 부분보다는 운이 정말 좋았던 것 같아요. 데빌 진의 이지선다는 50 대 50의 확률 싸움인데 그 부분에서 많이 이겼으니까요.




Q. 두 선수 외에도 '전띵' 전상현, '샤넬' 강성호 등 내로라하는 강자들과 연이어 대결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랑추': 당연히 '무릎' 선수와의 최종진출전이죠. 올해 열린 대회서 무릎 선수를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는데, 첫 승리를 파이널 무대에서 한 거예요. 특히 마지막 순간에 '무릎' 선수가 실수해서 간신히 이겼잖아요. 만약 거기서 패배했다면 '무릎' 선수의 시나리오가 발동해서 전 아마 3위에 머물렀을 거예요. 이것도 정말 천운이 따랐다고 봐야죠.


Q. 국내 선수들이 TWT 파이널 1~5위를 모조리 차지하면서 한국이 철권 강국임을 또다시 세계에 증명했어요. 이렇듯 철권 프로씬에서 한국이 독보적으로 강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로하이': 아무래도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이 한국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항상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있기에 끊임없이 노력하게 되고, 그 과정을 통해 국내 선수들의 실력이 상향 평준화 되는 것 같아요.

'랑추': 맞아요. 다른 나라엔 '무릎', '쿠단스', 'JDCR', '세인트' 선수처럼 벽이 느껴지는 압도적인 실력자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 선수들의 실력을 따라잡기 위해 열심히 연습하고, 언제든 그들에게 도전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요.


Q. '랑추' 선수는 다른 철권 선수들에 비해 알려진 게 적은 편인데요. 철권 입문 계기가 궁금해요.

'랑추': 본격적으로 철권을 시작한 건 2009년도예요. 당시 방송되던 테켄 크래쉬를 보면서 어린 시절 철권을 재밌게 했던 기억이 떠올랐고, 마침 학교 근처에 오락실이 있어서 야자 시간을 쪼개가며 틈틈이 연습했죠. 실력이 붙다 보니 더 잘하고 싶어져서 공부 대신 기술 프레임표를 외우고, 그린 게임랜드를 찾아가 게임을 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실력을 키우고 2015년부터 대회에 참가하기 시작했습니다.


Q. 또 비주류 캐릭터를 선호하는 거로 유명한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랑추': 팬더로 철권을 시작해서 그런지, 흔히 말하는 'A급' 캐릭터를 플레이하면 이상하게 실력이 안 나와요. 그냥 제가 잘 못 다루는 거지만요(웃음). 팬더 외에도 태그2 시절엔 로저 주니어, 자피나, 오우거, 진파치 등을 플레이했네요.




Q. 최근에 개인 방송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해요.

'랑추': 올해 TWT에 여러 번 참가하면서 방송을 해달라고 요청하는 외국 팬들을 많이 만났어요. 또 방송을 하면 철권에만 집중하게 되잖아요. TWT 파이널을 앞두고 제대로 연습해보자는 맘으로 잠깐 방송을 해본 거예요.


Q. '로하이' 선수는 철권 스트리머로도 자리잡은 상태인데요. '랑추' 선수도 본격적으로 개인 방송을 해볼 생각이 있나요?

'랑추': 아직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개인 방송이 생각보다 많이 피곤하고 스트레스받는 일이더라구요. 만약 방송을 하더라도 '로하이' 선수처럼은 못할 것 같아요.

'로하이': 저 같은 경우엔 항상 하는 철권이 주력 컨텐츠다 보니 딱히 어려운 건 없어요. 다만 가끔 다른 선수분들과 실력을 비교하는 시청자분이 있는데, 그런 이야기만큼은 자제해주셨으면 해요.


Q. '무릎'-'샤넬'처럼, '랑추'-'로하이'도 특별한 친분을 자랑하잖아요. 두 분이 어떻게 만나 친해지게 됐는지 궁금해요.

'로하이': 처음 만난 건 철권 태그2 시절이죠. '랑추' 선수가 저한테 데스 매치(한쪽의 계급이 변화할 때까지 대전하는 것)를 하자고 이야기하면서요.

'랑추': 그 첫 데스 매치에선 제가 11연패를 했어요(웃음).

'로하이': 그 이후로도 대전을 여러 번 하면서 금방 친해졌어요. 나이도 비슷하다 보니 지금까지 잘 지내게 됐네요.




Q. 두 선수 모두 철권 수행을 목적으로 일본에 몇 차례 다녀왔다고 들었는데요. 분명한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하시나요?

'로하이': 물론이죠. 일본에서 게임을 하면 누군지 모르는 상대와 대전을 하게 되잖아요. 플레이스타일도 한국과 완전히 다르구요. 그렇게 낯선 상대를 만났을 때 제 페이스를 유지하는 법을 배우는 거예요. 실제로 TWT 경기를 나가면 지금까지 한 번도 겨뤄보지 않았던 상대를 만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일본에서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죠.


Q. 지난 10월에 그린 게임랜드가 폐업했는데요. 두 분 역시 그린 게임랜드에 각별한 애정이 있는 철권 게이머로서 아쉬움이 클 것 같아요.

'로하이': 아주 슬프죠. 철권에 재미를 붙인 것도, 철권을 지금까지 할 수 있었던 것도 그린 게임랜드가 있었기 때문이니까요. 사장님 내외도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부딪혀서 폐업을 선택한 거라고 생각해요.

'랑추': 옛날엔 아무런 약속이 필요 없었어요. 그린 게임랜드에 가면 항상 아는 사람들이 있었죠. 그 사람들과 같이 게임도 하고, 밥도 먹고 했는데... 그런데 이젠 그런 재미를 느낄 수 없게 됐네요. 저 같은 경우엔 정말 최근까지 아케이드 게임기로 철권을 플레이해서 더 아쉬움이 남아요.


Q. 최근 두 분 모두 펄산 e스포츠와 계약이 종료됐어요. 1년 동안 후원해 준 펄산 e스포츠 CEO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면?

'로하이': 저는 올해 EVO를 포함해 개인전 우승을 세 번이나 했는데요. 펄산 e스포츠의 지원이 없었다면 결코 이루지 못했을 성과예요. 제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줘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랑추': 저는 한 마디면 될 것 같아요. 당신은 내 인생을 바꿨습니다.




Q. 또 TWT를 통해 많은 외국 팬들을 만들었는데요. 팬분들께도 한 마디 부탁드려요.

'로하이': 외국 팬분들이 제 샤힌을 기대하고 있다는 걸 알아요. 이번 TWT 파이널에선 딱 한 번밖에 보여드리지 못했지만, 내년엔 초심으로 돌아가 본격적으로 샤힌을 보여드릴게요. 항상 응원해줘서 감사합니다.

'랑추': 올해 TWT를 다니면서, 전 세계의 사람들을 만나는 게 철권을 하는 것보다 더 재밌다는 걸 깨달았어요. 여러분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앞으로 영어를 열심히 배울 테니, 내년엔 더 많이 소통했으면 좋겠습니다.


Q. 2019년에도 TWT는 계속되는데요. 새로운 시즌을 앞둔 각오를 말씀해 주세요.

'랑추': 이번 TWT 파이널 우승으로 가장 가까운 목표는 이뤘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철권은 계속해야겠죠. 이번에 펄산 e스포츠와 계약이 종료되면서 새로운 스폰서를 찾고 있는데, 믿고 후원해주신다면 책임감을 갖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로하이': 저도 마찬가지예요. 내년에 올해보다 더 열심히 하는 건 당연하고, 목표는 항상 그렇듯 모든 대회 우승입니다(웃음).


Q. 이제 인터뷰를 마칠 시간이네요.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부탁드려요!

'랑추': 사실 아버지께서 제가 게임을 하는 걸 안 좋아하세요. 그래서 한동안은 몰래 TWT를 다녔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눈치를 채셨는지 밤늦게까지 철권을 해도 잔소리를 안 하시더라고요(웃음). 다 알면서도 묵묵히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제 우승을 축하해준 모든 분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리구요. 내년엔 더 좋은 모습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댓글

새로고침
새로고침

기사 목록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