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C] 미드 시즌 컵에서 LPL이 빛났던 순간들

기획기사 | 김병호 기자 | 댓글: 22개 |



이번 2020 미드 시즌 컵은 LCK 팬에게는 너무나도 안타까운 대회였을 듯합니다. 어떤 핑계도 댈 수 없을 만큼 눈에 띄는 실력 차이가 보였기 때문일 텐데요. 교전은 LPL, 운영은 LCK라는 말이 이제는 틀렸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LPL 리그를 대표로 출전한 팀들이 좋은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리그의 선수 구성이나, 메타에 대한 이해, 챔피언 티어 정리에 대한 의견, 게임을 풀어나가는 방법이 리그마다 다르기에, 리그와 리그가 부딪혔을 때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장면들이 등장하고는 합니다. 이번 미드 시즌 컵에도 LCK 선수들이 보여주지 못했던 여러 장면을 LPL 선수들이 보여줬었는데요. 어떤 장면이 있었는지 저희가 모아봤습니다.


게임을 터트리는 데 40초는 아깝지 않아
‘카사’가 보여준 효율적인 비효율




초반 소규모 교전에서 3킬을 기록하며 엄청나게 성장한 카사가 12분 40초에 젠지 진영으로 잠입합니다. 카사는 여기서 젠지e스포츠의 미드라이너, 혹은 정글러를 잡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데요. 한참을 기다리다가 결국은 미드 시즌 컵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여줬던 ‘Bdd’ 곽보성의 아지르를 잡아내는 데 성공합니다.

‘카사’가 이 하나의 킬을 기록하기 위해 부시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린 시간은 무려 38초입니다. 이는 효율적인 움직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LCK에서는 절대 나오지 않을 장면일 듯하네요. 카사의 이 암살 시도가 무위로 돌아갔다면, 왜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움직였느냐는 말이 무조건 나왔을 듯합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카사는 이미 젠지e스포츠의 정글러와 톱날 단검만큼의 아이템 격차를 벌려놓았습니다. 이 시도가 무위로 돌아가더라도 성장에 크게 뒤처지거나 할 위험은 없는 것이죠. 반면에, 이 암살이 성공하면서 젠지는 탑, 봇 라인에 이어 미드 라인에도 전사자가 발생하면서 엄청나게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로우 리스크, 하이 리턴. 충분히 배워볼 만한 인상적인 장면입니다.


용 싸움은 항상 앞마당에서만 하는게 아니야
TES가 선택한 전장은 레드 부시




경기시간 35분, 킬 스코어 9:10, 골드 격차 약 5,000. 네 번째 용이 소환되기 15초 전, TES가 시야를 잡기 위해 드래곤 앞 진영으로 이동합니다. 그런데 위치가 조금 익숙하지 않은데요. 강가 쪽 시야를 잡는 게 아니라 아예 더 깊숙이 들어가서 상대 레드 진영 부근의 시야를 잡고 압박합니다. 그리고는 드래곤에 가까이 가고 싶은 T1의 진영 한복판에 ‘나이트’의 에코가 멋지게 진입하여 경기를 끝내버리네요.

용 주변의 시야가 아니라 상대 진입로인 레드 주변의 시야를 잡게 되면, 그 과정에서 상대편과 마주치면서 사고가 터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애써 잡은 시야도 쓸모없게 되고, 자연스럽게 용도 내줘야만 하게 되죠. 하지만 성공적으로 시야를 잡기만 한다면, 강가 부시 시야를 잡은 것보다 더 효율적으로 상대를 압박할 수 있습니다.

강가 근처에서 용싸움에 익숙한 LCK 선수들에게 레드-칼날부리 둥지 근처에서 벌어진 용 한타는 더욱더 치명적으로 작용했습니다. 강가처럼 익숙한 전장이었다면, 머릿속으로 상대의 공격 방법이나 움직임을 예측하면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TES가 전선을 앞으로 밀어버리면서, 나이트의 기습이 T1의 명치에 그대로 꽂혔습니다.

LCK에는 ‘드래곤 싸움은 강가에서’라는 정답 아닌 공식이 있었지요? 그곳에서 땅따먹기하듯 ‘우리 집에 왜 왔니?’를 부르며 시야를 따라 밀고 당기고를 반복해왔던 게 사실입니다. TES가 전장 선택에 있어서 보여준 생각의 유연함은 우리가 한 번은 곱씹어 볼 만한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선 넘는 기준이 뭐냐고? 네가 밟은게 선이야
안전선의 기준이 달랐던 LPL




경기 시간 21분, 골드 차이가 팽팽한 상황입니다. 젠지e스포츠 미드 2차 타워로미니언이 밀려드는 상황에 ‘클리드’의 킨드레드가 Q스킬 화살 세례를 앞으로 사용합니다. TES 선수들이 이를 보자마자 바로 갱플랭크 궁극기를 꽂아 넣으며, 다섯 명이 일제히 앞으로 달려드네요. 이 전투로 사상자는 특별히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TES가 킨드레드를 잡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전장에 참여한 모든 선수가 점멸과 궁극기를 모두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그렇다고 TES가 진입하는 주변 시야가 잡혀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만약, 아지르가 상대의 이니시를 역으로 노리고 시야 사각지대에서 들어왔다면 TES 입장에서도 더 큰 사고가 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LPL 리그 선수들은 상대가 쓴 스킬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달려들어 제대로 추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댓가로 미드 2차 타워와 드래곤을 가져갔습니다.

LPL 리그 팀들은 공통적으로 상대가 조금이라도 방심한 듯한 플레이를 보이면 이를 놓치지 않고 물어뜯었습니다. 실제, 펀플러스 피닉스와 T1의 대결에서도 루시안이 비슷하게 전사하는 장면이 나왔었죠. LPL 리그가 상대적으로 LCK보다 날이 서 있었고, 반대로 LCK는 조금 무뎠던 게 드러났던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LCK에서는 오브젝트 싸움이 아니라면 되도록 불필요한 교전을 피해왔습니다. LCK의 입장에서 보면, 드래곤 한타를 앞두고 2차 타워 앞에서 드래곤 교전에 사용할 궁극기를 마구 소진하면서 달려드는 것이 비효율적으로 보였을 듯합니다. 하지만, LPL은 결과로 그 움직임이 결코 아무런 의미 없이 소진된 게 아니라는 걸 증명했습니다.




성공보다 실패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운다. 2015년 SKT가 MSI 대회에서 EDG에게 3:2 패배를 당했을 때가 생각납니다. 당시 LPL은 막대한 자본을 앞세워 많은 한국 선수들을 영입하고, 공격적인 투자로 아낌없이 하고 있었죠. 인재들을 잃었던 한국은 다시 국제대회를 제패할 수 있을지 염려가 됐던 상황에 벌어진 패배였기에 더욱더 쓰라리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그해 월드 챔피언십은 LCK가 우승했었습니다. 그리고 3년 동안 LCK는 줄곧 국제무대 우승을 챙겼었죠.

물론,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매우 달라졌습니다. 2018년 인빅터스 게이밍, 2019년 펀플러스 피닉스가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고, 2020년 미드 시즌 컵에서 보여준 격차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벌어져 있습니다. MSC의 결과를 받아본 지금 상황에서 올해 월드 챔피언십에서 LCK의 우승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중국팀과의 스크림 성적이 얼마나 좋았든, 중국 선수들이 한국 솔로랭크에서 연습을 하든, 중국에 있는 한국 선수들이 팀의 핵심 멤버로 얼만큼의 활약을 보이든, 이제는 LPL을 인정하고 배워야 할 때가 아닐까요? LCK에서는 볼 수 없던 장면들을 보면서, LPL이 LCK를 배웠던 것처럼, LCK도 LPL이 보여준 참신한 방식을 보고 배울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면 언젠가 과거의 영광을 다시 맞이할 날이 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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