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무관중 148일... 요즘 롤 파크는 어때요?

기획기사 | 박범, 석준규 기자 | 댓글: 14개 |



경기장을 가득 채웠던 함성은 사라졌다. 라이엇 PC방과 빌지워터 카페를 찾던 발걸음도 끊겼고 레전드 선수들의 벽화를 구경하며 사진을 찍던 행렬도 없다. 현재 LCK가 진행되는 롤 파크에는 팬들이 사라졌다. 코로나19 때문이다.

라이엇게임즈 코리아는 2020 LCK 스프링 스플릿 개막을 앞두고 코로나19로 악화된 사회 전반적 상황을 감안해 무관중 진행을 선언했다. 더 심할 땐 몇 주 간 대회가 중단되기도 했고 온라인으로 경기가 이어진 적도 있었다. 이번 섬머 스플릿에는 다시 무관중 오프라인 경기 진행 방식을 채택했다.

롤 파크에는 올 들어 한 번도 팬들의 발길이 닿지 못했다. 저마다의 응원 문구를 들고 관객석에 앉아 마음 졸이며 경기를 바라보던 팬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작은 화면을 통해 경기를 봐야 한다.

그러는 사이에 롤 파크 현장도 많이 바뀌었다. 팬들의 발길이 끊긴 곳에는 방문자들이 문진표를 작성하고 체온을 재는 곳이 들어섰고 팬들이 사라진 경기장 내부에는 방역 인원들이 자리를 채웠다. 출연진과 선수들이 대기하는 백스테이지도 코로나19의 여파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선수 및 관계자 입장
매일 문진표 작성, 오갈 때마다 체온 체크

롤 파크에 현재 출입할 수 있는 인원들은 정해져있다. 방송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스태프들과 직접 얼굴을 내비치는 출연진들, 경기에 직접 나서는 선수들과 이들을 관리하고 교육하는 코치진, 그리고 현장에서 기사를 작성하고 취재를 하는 기자단. 이렇게가 끝이다. 경기를 관람했던 팬들은 물론, 일반 방문객도 지금은 출입이 불가하다.

이들 모두 현 시국에 '당연하게도' 매일 이마의 온도를 재고, 문진표를 작성한다. 이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현장을 찾았던 기자 역시 롤 파크에 들어서자마자 이마의 온도를 쟀다. 체온계를 들고 있는 스태프가 열이 있는지를 체크하고 37도가 넘지 않으면 통과시킨다. 문진표는 매일 첫 방문 시에만 작성하면 되고 체온 체크는 매번 롤 파크에 다시 들어올 때마다 진행된다. 취재 혹은 사적인 이유로 사람을 만나거나 취재에 지친 심신을 달래고자 커피를 사거나 흡연을 하려고 밖에 나갔다 올 때마다 체온 체크 과정은 빠지지 않는다.

그 다음 단계는 문진표를 작성하는 일이다. 최근 해외를 방문했는지, 확진자와 접촉했는지, 확진자가 나타났던 곳에 방문했는지 등이 적힌 문진표를 작성하고 현장 스태프에게 건내준다. 자신의 이름과 연락처도 적는다. 최근 다중 출입 시설을 찾을 때마다 모두가 작성하는 문진표와 같다.

기자들 뿐만 아니라 롤 파크를 찾는 모든 이가 위의 과정을 거쳐 입장한다. 거의 매일 롤 파크에 방문하는 출연진 및 스태프들도 마찬가지다. '어제도 왔으니 오늘은 문진표 작성 및 체온 체크 과정을 생략해준다'는 가정 자체가 없다.



▲ 입장 전, 체온 체크와 문진표 작성을 위해 기다리는 선수들



▲ 체온을 잰 뒤에



▲ 문진표를 작성하고 마스크를 착용한 뒤, 그제서야 롤 파크 백스테이지로 입장

선수단과 코치진도 같은 과정을 통해 롤 파크에 입장한다. 이 날 설해원 프린스와 젠지의 경기가 진행됐는데 설해원 프린스 선수단이 롤 파크에 입장하는 걸 볼 수 있었다. e스포츠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프로게이머들도 모두와 똑같은 과정을 거쳐 롤 파크에 입성했다.


백스테이지 현황
항시 마스크 착용, 메이크업 받을 땐?

평소 선수단과 방송 출연진, 스태프들만 입장할 수 있는 백스테이지에 취재 허가를 받고 처음 입장해봤다. 별다를 건 없었다. 모두가 마스크를 착용하고 업무를 보고 있다는 점 빼곤 말이다.

백스테이지에 마련된 테이블에는 방송을 준비하며 스스로의 리허설을 하는 중계진이나 간단한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중에서 반가운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는데 취재 당일 경기 중계를 맡았던 전용준 캐스터였다. 그는 검은 마스크를 쓴 채로 간단한 도시락을 먹으며 방송 대본을 체크 중이었다.



▲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마스크를 필착

해외 중계진들도 당연하다는 듯이 마스크를 쓴 채 백스테이지를 돌아다녔다. 각종 언론 보도로 외국인들은 예방 차원에서 마스크를 쓰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는 내용을 봤던 기억이 있는데 적어도 LCK 해외 중계진들은 아니었다. 모두가 자신은 물론, 내 곁을 지나는 타인들까지 배려하기 위해 마스크를 항시 착용했다.



▲ 마스크 너머로 미소 짓는 해외 중계진 '발데스'

이곳 저곳을 둘러보다 보니 선수들이 메이크업을 받을 시간이 됐다. 선수들은 어떤 곳에서 어떻게 메이크업을 받는지 궁금해 찾아가봤다. 마침 젠지 e스포츠 서포터 '라이프' 김정민의 차례였다.

나름 신기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메이크업을 담당해주는 아티스트는 마스크를 착용한 채 선수단 메이크업에 나섰다. 여기까진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메이크업을 받는 '라이프' 역시 마스크를 올려 쓰고 있었다. 그럼 메이크업을 어떻게 받을까.

물어보니, 선수들 중에 피부 메이크업을 받고 싶지 않아하는 이는 메이크업을 받을 때도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했다. 만약, 피부 메이크업을 필요로 하는 선수나 출연진은 잠시 마스크를 벗었다가 다시 쓴단다. 어쩌면 아무도 보지 않아 안일해질 수 있는 공간에서까지 다들 코로나19 예방에 힘쓰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 피부 메이크업을 받고 싶지 않은 '라이프'는 마스크 착용



▲ 피부 메이크업을 원하는 분석데스크 '폰' 허원석은 마스크를 벗었다.

백스테이지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에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 다들 LCK 플리커를 통해 현장 사진을 확인했던 적 있을 거다. 방송 중계 화면으로도 가끔 그 사진들을 볼 수 있는데 이번 취재로 그걸 직접 찍는 장면도 볼 수 있었다.

무관중 이전에 LCK를 봤던 이들은 기억할 지도 모르겠다. 중계진이 각 팀을 소개하면 백스테이지에 도열해있던 선수들이 한 줄로 입장해 팬들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로 들어가던 장면 말이다. LCK 플리커에 올라가는 각 팀의 단체 사진은 대부분 이때 촬영됐다. 양 팀이 한 장소에 한 줄로 서 있으면 공식 사진 작가가 사진을 촬영했다.

현재는 두 팀이 한 줄로 도열해있다가 입장하는 과정이 사라졌다. 무관중 경기가 이어지다보니 자연스럽게 생략됐다. 해서 각 팀의 단체 사진을 찍는 과정도 달라졌다. 최대한 백스테이지에서도 거리를 두기 위해 경기에 나서는 두 팀은 따로 도열해 사진을 촬영했다. 타 팀 선수단과의 접촉을 최대한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 예전엔 두 팀이 한데 모여 촬영했다면



▲ 이젠 따로 촬영에 임했다.


경기장 방역
몸에 닿는 모든 게 방역 대상

이번엔 경기장으로 들어가봤다. 취재할 때마다 수도 없이 입장했던 경기장이었지만 확실히 자리 잡은 팬들이 없으니 허전했다.

선수들이 세팅을 위해 자리를 잡기 전부터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현장 스태프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들은 연신 책상과 의자에 무언가를 뿌려댔다. 경기장 내부를 꼼꼼히 방역하고 있는 인원들이었다. 이들은 의료용 장갑을 낀 채 분무기를 들고 경기장 전역을 뛰어다녔다.

이들이 방역하는 곳은 사실상 경기장 내부 전체였다. 선수들이 앉는 경기장 좌석은 물론, 책상도 이들의 손을 거쳤다. 소독제가 담긴 스프레이를 든 현장 방역 인원들은 좌석과 책상은 물론, 선수들의 손이나 몸이 닿는 모든 곳을 방역했다. 컴퓨터 본체 버튼이나 스피커 볼륨 조절 버튼도 예외는 아니었다. 또한, 소독제가 알코올 성분이라 금방 휘발되긴 하지만, 혹시나 뭉친 곳이 있어 선수들이 불편해할까봐 뿌렸던 모든 곳을 소독 휴지나 솜으로 닦아낸다고.



▲ 방역 인원들은 경기장 내부를 꼼꼼히 방역했다.







이러한 방역 과정은 한 경기가 끝날 때마다 진행된다. 여기까진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한 가지 놀라웠던 사실은 매 세트가 끝났을 때는 물론, 선수 교체 시에도 위 방역 과정이 그대로 이어진다는 거였다. 같은 팀 선수끼리 교체를 해도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한다는 입장이었다. 꼼꼼한 현장 방역 시스템이 돋보였다.

또 하나의 특징은 가능한 모든 장비를 일회용으로 활용한다는 점. 특히, 선수들이 경기 중에 가장 많이 만지게 되는 헤드셋 마이크 커버는 전면 일회용 커버로 교체됐다. 아무래도 경기 중에 선수들은 마이크 커버를 자주 만지며 각도를 조절하기도 하고 목소리를 잘 들리게 하기 위해 얼굴이나 입 쪽에 마이크를 거의 붙이는 경우가 잦아 일회용 장비를 쓰게 됐다는 설명이었다.







'만에 하나 방역'은 스태프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보통 선수들이 각종 세팅을 시작하기 전에 스태프들이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면서 게임 내 오류나 사운드 이슈 여부를 체크하는데 이때도 위 방역 시스템이 그대로 적용된다. 이들이 사운드 및 게임 플레이 테스트를 한 뒤엔 여지없이 마이크 커버가 교체된다.

밴픽까지 끝나고 경기가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을 때, 선수단만 경기장에 남게 되는 건 아니다. 실시간으로 선수들의 플레이를 지켜보고 이슈가 발생했을 때 규정에 따라 신속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심판진도 경기장에 머문다. 그렇기에 심판진 역시 항시 마스크를 착용하며 의료용 장갑도 착용한다.

재미있는 건 선수단 역시 본인이 요청할 경우, 경기 중에 마스크를 착용할 수 있다. 만에 하나를 위한 방역 시스템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선수들 중에 단 한 명도 마스크 착용을 하고 싶다고 말한 이는 없었다고 한다. 어찌 생각하면 당연하다. 경기 중에는 고도의 집중력을 끝까지 유지해야 하는데 마스크는 분명 이를 방해하는 요소 중 하나일 테니까.


모두가 한 마음
코로나19의 빠른 종식을 기원하며...

롤 파크도 여느 다중 이용 시설처럼 코로나19 예방에 한창이었다. 출입하는 모두가 경각심을 갖고 있었으며 방역도 철저히 진행됐다.

라이엇게임즈 코리아 관계자에 따르면, 롤 파크 방역 가이드 라인이 그룹 별로 존재한다. 선수단과 기자단, 근무자, 관리자 등 총 4개의 방역 가이드 라인이 따로 있었다. 또한, 정부와 질병관리본부의 대책 및 계획 발표에 따라 수시로 업데이트됐다. 이는 현장 근무자들에게 항시 전파된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당연한 절차지만, 어찌 생각하면 매번 경기장을 오가는 모두에게 귀찮은 과정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기 전까진 모두들 경계하고 또 예방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

롤 파크에서 경기에 나서는 선수들은 하나 같이 체계화되고 세세한 방역 시스템에 감사하다는 의견을 전했다. 취재 당일 경기에 나섰던 설해원 프린스의 '시크릿' 박기선은 짧막한 인터뷰를 통해 "롤 파크 관계자 분들이 대회가 원활하고 안전하게 진행되도록 노력을 정말 많이 해주신다. 직접 경기를 치르는 선수 입장에서도 매우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취재 중에 만났던 전용준 캐스터와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취재 요청에 쓰고 있던 마스크를 동의 하에 벗고 인터뷰에 나선 전 캐스터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롤 파크의 방역 체계는 최근 강화된 게 아니라 꽤 됐다. 코로나19 문제가 처음 발발했을 때부터 이런 과정이 생겼다. 특히, 우린 그런 과정을 꼭 거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중 누구 한 명이라도 감염되면 롤 파크 뿐만 아니라 다른 e스포츠 종목 쪽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다른 방송 쪽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출연진 및 스태프들이 LoL e스포츠나 e스포츠 분야에서만 일하는 건 아니니까.

그렇기 때문에 출연진과 스태프들 모두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나를 지키고 선수들 지키고 우리 판 지키려면 꼭 해야 할 일이다.

서구권은 경기장이 아닌 온라인 대회를 계속 진행 중이다. 국내에서는 라이엇게임즈 코리아부터 선수단, 출연진, 스태프, 기자단 모두 위생과 방역에 신경을 많이 쓴 결과, 선수들이 경기장에 와서 경기를 치를 수 있다. 참 다행이다. 국가 정책이 크게 변동되지 않는 한, 현 상태에서 크게 후퇴하는 일이 없도록 우리 모두 힘쓰고 있다.

선수들이 늘상 얘기하는 것처럼 현장에서 팬들을 보지 못해 너무 아쉽다. e스포츠 뿐만 아니라 스포츠라는 것이 완성되려면 팬들이 있어야 한다. 팬들의 함성이 있어야 선수들도 더 신이 나서 경기에 나서고 중계진도 힘을 얻어서 더 좋은 멘트를 남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들 불편하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경기가 스케줄대로 정상 진행되고 있고 우리가 사랑하는 선수들이 건강을 유지하면서 경기에 나설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게 먼저인 것 같다. 팬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점이 왔다고 생각된다면 바로 문을 활짝 열고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는 곳이 롤 파크라는 걸 기억해주셨으면 한다."


롤 파크에 관중이 사라진 지 약 148일이 지났다. 그리고 이 숫자가 어디까지 늘어날 지는 아무도 모른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어 롤 파크에 다시 수많은 관중이 운집하는 그 날까지. 롤 파크 내의 철저한 방역 체계와 방문하는 모든 이의 책임감은 사그라들지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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