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드컵] 모자의 피는 형제보다 진할까

기획기사 | 박태균, 남기백 기자 | 댓글: 38개 |



외로움만이 친구였던 바다에서 온 소년과 그를 품기 위해 어머니가 되어야 했던 소년이 있다.

태어난 곳도, 살아온 과정도 전혀 다른 두 사람은 지난 1년간 단 한곳만을 바라보며 진한 유대감을 길러 왔다. 온갖 역경을 딛고 간절히 열망하던 무대에 오른 모자(母子)는 이제 서로의 꿈을 이뤄주기 위한 마지막 시험을 치른다. 2020 LoL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 결승을 앞둔 쑤닝의 봇 듀오, '후안펑' 탕 후안펑과 '소드아트' 후 숴제의 이야기다.


'후안펑' 탕 후안펑
과거를 딛고 자신을 찾아가는 LPL 차세대 봇 라이너

아무 어려움도 겪지 않고 1부 리그의 프로게이머가 된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러나 '후안펑'의 이야기는 개중에서도 각별하다. 중국과 베트남의 국경이 위치한 광서 동흥시에서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낸 그는 누구보다 일찍 어른이 되어야 했다. 화목하지 못한 가정에서 두집 살림을 하던 아버지도 집에 거의 들어오지 않고, 낭비벽이 심했던 어머니는 중학교 1학년 때 '후안펑'의 곁을 완전히 떠났기 때문이다.




청소년기까지 이어진 보호자의 사랑과 보살핌의 부재로, '후안펑'의 자립성은 빠르게 갖춰졌으나 사회성은 어린 시절에 멈춰 있었다. 결국 인간 불신에 걸린 '후안펑'은 숙박업을 하던 집안의 친구가 생필품을 나눠줄 때도, 종종 모르는 문제를 물어보던 학급 친구가 간식을 나눠줄 때도 그는 "왜 나에게 잘 해주지? 분명 뭔가 바라는 게 있을 거야"라는 의심부터 했다고 한다. 가난과 고난 속에서도 그는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며 학업 심화반에 배치되지만, 아버지와의 갈등 끝에 끝내 프로게이머의 길을 택한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후안펑'은 PC방 리그를 비롯한 아마추어 팀을 전전하며 간신히 살아간다. 와중 '레얀' 루 줴의 도움으로 IG의 아카데미 팀 IG 영에 입단해 2019 LDL 섬머 스플릿 정규 시즌 2위와 플레이오프 우승을 이끈다. 이후 LPL 데뷔를 염원하던 '후안펑'은 여러 팀에 입단 테스트를 보지만 모조리 탈락하며 자신감을 잃는다. 그런 마지막으로 그에게 손을 내민 건 쑤닝이었고, 그곳에서 '후안펑'은 잃어버린 가족을 대신할 새 가족을 만난다.


'소드아트' 후 숴제
9년 차 베테랑, 이젠 누군가의 보호자로

2012년 데뷔해 어느덧 9년 차 프로게이머가 된 '소드아트'는 곱슬머리를 한 새로운 파트너를 만나고 적잖히 당황했을 거다. LPL 무대만을 꿈꿔왔다는 01년생 유망주, 그러나 팀 내에서 처음 마주한 '후안펑'은 신인의 패기와는 거리가 매우 멀었다. 아무와도 말을 섞지 않은 채 구석에 조용히 앉아 있던 '후안펑'이 코치진에게 간신히 꺼낸 첫 마디는 '물 좀 마셔도 될까요?'였다고 한다.




'소드아트'는 본래 팀을 지휘하고 보살피는 스타일의 선수가 아니었다. 미드 라이너로 프로게이머 데뷔를 했던 만큼 팀원들을 돌보기보다 인게임에서 피지컬적인 측면을 뽐내는 걸 즐겼다. 하지만 '후안펑'을 맞아들인 '소드아트'는 팀의 맏형이자 보호자로 한걸음 더 성장해야 했다. 가장 먼저 간단한 소통에도 어려움을 겪는 '후안펑'을 감화시키기 위해 '소드아트'는 그에게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 무조건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한 가족의 따뜻함을 알려주자 '후안펑'도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이후 '소드아트'는 인게임 측면에서도 '후안펑'의 역량을 기르는 데 집중했다. 매 경기 종료 후 '퓨리' 이진용 코치와 함께 격렬한 피드백 시간을 가지며 기초적인 부분을 다듬어갔다. 일방적인 소통을 원치 않았던 '소드아트'는 '후안펑'에게 본인이 잘못한 점이 있다면 욕을 해도 좋으니 말해달라고, 본인이 스스로 강하게 오더를 내려도 된다고 이야기해 주며 깊은 호흡을 다졌다. 어느 날 '후안펑'은 솔로 랭크 중 핑으로만 오더를 내린 '소드아트'에게 화를 냈는데, 서로 대화를 나누고 화해하는 과정에서 둘은 더욱 돈독한 사이가 됐다고 한다.

그 다음은 모두가 아는 대로다. '소드아트'와 동행하며 쑤닝의 주전 봇 라이너로 당당히 자리 잡은 '후안펑'은 LPL을 넘어 꿈에만 그리던 롤드컵 무대로 향했고, 이젠 결승까지 올랐다. 같은 꿈에 여섯 번째 도전하고 있는 어머니와 사회 부적응자에서 세계 챔피언이 되기 직전인 아들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분명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모자가 넘어야 할 마지막 산
'고스트-베릴', 다재다능한 LCK 최강의 형제

지금까지 숱한 역경을 헤치고 온 '후안펑-소드아트'라지만 마지막으로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높다. 현 LCK 최고의 봇 듀오임은 지난날 수없이 증명했고, 이제 그 타이틀을 전 세계로 바꾸기 직전인 '고스트' 장용준, '베릴' 조건희가 그들 앞에 섰다.




길게 이야기할 것 없이 담원게이밍(이하 담원)의 봇 듀오는 쑤닝 봇 듀오의 상위 호환이다. 두 팀 모두 때에 따라 라인전을 강하게 수행해 상대를 찍어누를 수도 있고, 약간의 성장을 포기하면서 몸을 극도로 사릴 수도 있다. '고스트-후안펑' 모두 본인이 주인공이 되어야 할 때는 적극적으로 나서 캐리가 가능하고, '소드아트-베릴'은 잦은 로밍과 교전에서의 피지컬로 상대를 흔든다.

이렇듯 플레이 스타일은 거의 같지만, 체급 면에서 담원의 봇 듀오가 한 수 위다. 호흡을 맞춘 기간은 비슷하나 산전수전을 겪으며 한 계단씩 올라온 '고스트'의 노련함은 시간을 아득히 초월한다. '소드아트'가 적극적으로 지시를 내려야 하는 '후안펑'과 달리 '고스트'는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며, 그것도 부족할세라 오더까지 한다. 모자지간인 쑤닝의 봇 듀오에게 찰나의 망설임이 있다면, 형제지간인 담원의 봇 듀오는 눈을 감고도 같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이다.

정상을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마지막 승부다. 담원은 담원대로, 쑤닝은 쑤닝대로 승리해야 하는 수많은 이유가 있겠다. 그중에서도 봇 듀오의 대결은 어머니와 아들, 형과 동생 중 어느 쪽의 피가 더 진한지 증명할 수 있으리라. 비록 결과는 승패로 갈리겠지만, '후안펑-소드아트', '고스트-베릴' 모두 가족이라는 위대한 이름 아래 최고의 승부를 연출할 것이다.


■ 2020 LoL 월드 챔피언십 결승 일정

담원게이밍 vs 쑤닝 - 31일(토) 오후 7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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