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다라' 전정훈의 은퇴에 대한 소회 - 일본 e스포츠의 발전을 위해

칼럼 | 박태균 기자 | 댓글: 20개 |
현재의 e스포츠는 단순한 게임 대회가 아니다. 매년 고도성장을 이어간 e스포츠는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힌 하나의 산업이자 유기체로 진화했다. e스포츠의 중추인 게임과 게임사, 선수, 팬 외에도 게임단과 후원 기업들이 e스포츠 산업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엔 관련 상품이나 미디어, 부동산, 관광 등 타 산업과의 연계도 빼놓을 수 없게 됐다.

어떠한 산업이든 원활한 진행과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선 그 산업을 구성하는 톱니바퀴가 모두 잘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e스포츠 역시 마찬가지다. e스포츠라는 거대한 톱니바퀴의 한 부분에 결함이 생기면 다른 부분도 필연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이번 '다라' 전정훈의 은퇴를 통해 바라본 일본 e스포츠의 톱니바퀴에는 아무래도 문제가 생긴 듯하다.



▲ 출처 : 'J1N1' 노트

지난 3일, 일본 LoL 1세대 프로게이머 '다라' 전정훈이 은퇴를 발표했다. 최고의 실력과 함께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다라' 전정훈의 갑작스러운 은퇴에 일본의 LoL 팬들은 'LJL(League of Legend Japan League)' 최악의 날'이란 표현과 함께 뜨겁게 달아오르며 각자의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나 팬들의 밝힌 대부분의 입장은 LJL에 대한 실망과 부정적인 내용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라' 전정훈의 은퇴 이유는 기량이나 흥미 저하 등 개인적인 문제가 아닌 그가 속해 있던 게임단과의 갈등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다라' 전정훈을 알게 된 것은 작년 9월 램페이지가 롤드컵 진출을 확정 지은 후였다. 비록 화상 인터뷰를 통해 처음 마주했지만, 그의 이야기 속에서는 프로게이머로서의 자부심과 팬들에 대한 감사를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이에 그의 은퇴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는 의문만이 남았다. 팀을 이적했음에도 변함없는 인기를 구가했고, 2부 리그에 있던 소속팀을 1부 리그로 승격시킨 직후였기 때문이었다. 올해 초 재류 카드와 관련된 문제가 있었다 해도, 은퇴의 이유론 부적절해 보였다.

그러나 '다라' 전정훈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며 그의 은퇴 이유를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램페이지에서 선수로 지내며 곪아 왔던 상처가 재류 카드 사건을 통해 터진 것이었다. '다라' 전정훈은 가까이서 지켜본 램페이지 운영진들의 갑질과 횡포에 넌더리가 났다고 이야기했다. 다른 사람을 마구잡이로 대하거나 성희롱하는 것은 물론 계약, 임금과 관련된 문제도 있었다. 팬들을 모욕하거나 인성 논란이 있는 스트리머와 파트너 계약을 하는 등 팬들을 무시하는 행위도 있었다고 한다.

관련 기사 - '다라' 전정훈 인터뷰 전문

여기에 더해 LJL의 주최자인 라이엇 게임즈 재팬에도 불만을 표했다. 그는 본인의 사건과 관련한 주최 측의 사전-사후 대처가 모두 부적절했다고 이야기했다. 게임단 지도나 선수 면담 등의 불미스러운 사건을 예방하기 위한 움직임은 전혀 없었고, 사건에 대한 처벌 수준도 보여주기식에 그쳤다는 것이다.

한편, 이번 사건과 관련해 펜타그램은 지난 2월 이후 아무런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펜타그램은 당시 페널티에 대한 입장표명문을 통해 자신들은 '다라' 전정훈이 재류 카드 갱신을 요청해 잠시 맡아두었던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다라' 전정훈은 펜타그램의 주장은 거짓이며 위협을 통해 강제로 빼앗긴 것이라고 이야기했고, 이에 정확한 사실 확인을 위해 펜타그램에 수차례 문의했으나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

라이엇 게임즈 재팬은 '다라' 전정훈의 은퇴 발표 후 사과문을 게재했다. 이후 일본 미디어와의 인터뷰를 통해 '문제의 본질은 모든 선수와 관계자에게 일어날 수 있는 부도덕이었다. 이에 팀들에 대한 내부 통제를 철저히 하고, 모든 선수를 위한 상담 창구를 개설하겠다'고 이야기한 후, '관계자 및 팬 여러분께 사과드리며, 향후 재발 방지에 최선을 다해 건전한 리그를 운영하겠다'며 재차 입장을 밝혔다.

관련 기사 - 라이엇 게임즈 재팬 인터뷰 전문 (출처 : 네토라보)

국내 e스포츠 역시 지나온 과정에서 게임단과 선수 사이에 마찰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0년 전후로부터 스타크래프트로 대표되는 e스포츠 산업이 성장하자 게임단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전현직 프로게이머들의 증언에 따르면 e스포츠 초창기의 대부분 게임단에는 더없이 강한 군기가 나돌았고, 코칭 스태프들의 인성 문제와 함께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가혹 행위가 다수 있었다고 한다.

다행히 지금의 국내 e스포츠 환경은 열악했던 과거를 떨쳐내고 어느 정도 자리 잡은 상태다. 그 바탕에는 성숙한 e스포츠 문화를 위한 모든 관계자의 노력이 있었다. 게임사와 한국e스포츠협회는 게임단과 선수를 위한 각종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팬들은 그들에게 아낌없는 관심을 보냈다. 이에 게임단 관계자들의 인성이나 갑질로 인한 내부 갈등은 거의 사라졌고, 선수들은 더욱 출중한 기량을 뽐내게 됐다.




만약 지금의 한국에서 '다라' 전정훈의 재류 카드 갈취와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다면 사건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갔을까? 모든 커뮤니티는 게임단의 입장 표명을 요구하는 팬들의 원성으로 가득 찼을 것이고, 게임사와 한국e스포츠협회는 면밀한 조사를 통해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여 게임단에 그에 상응하는 페널티를 부여할 것이다. 게임단은 입장을 발표한 후 게임사가 부여한 페널티 외에 다른 책임을 지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그렇지 못했다. 이번 사건은 한두 명이 아닌 오너부터 감독, 코치, 매니저 등 모든 게임단 관계자들의 부적절한 행위가 더해진 것이었다. 선수 개인이 아닌 게임단 전체의 문제는 그 무엇보다 무겁게 다뤄져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엇 게임즈 재팬의 사건 조사와 경위 설명, 페널티 발표에는 아무런 설득력이 없었다. 또한 2015년에 간신히 출범한 일본e스포츠협회는 게임단과 외국인 선수 사이의 문제에 전혀 개입하지 않으며 그 존재가 유명무실했다.

이와 더불어 수많은 일본 팬이 '다라' 전정훈의 슬픔에 공감하고 아쉬움을 표했지만, 펜타그램은 여전히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다라' 전정훈이 한국과 일본에서 인터뷰를 통해 많은 것을 밝힌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 어떤 해명도 사과도 없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SNS를 업데이트하고 있다. 이는 '다라' 전정훈의 은퇴를 지켜본 일본 팬들은 물론 그를 응원하는 국내 팬들을 기만하는 행위다.

일본은 두말할 것 없는 선진국이다. 그러나 e스포츠에서만큼은 선진국이란 표현을 붙이기 어렵다. 이미 전 세계인의 축제가 된 e스포츠에서 이런 불미스러운 사건을 흐지부지하게 넘기는 것은 일본의 큰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만약 일본이 e스포츠 시장에서 다른 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다면, 아픈 부분을 가리는 대신 적극적으로 치료하고 예방할 줄 알아야 한다.

'다라' 전정훈의 은퇴가 일본 e스포츠에 가져온 열기는 아직 식지 않았다. 일본의 한층 성숙한 e스포츠 문화를 위해, 펜타그램과 라이엇 게임즈 재팬은 물론 팬과 일본e스포츠협회 등 모든 e스포츠 관계자들이 함께 움직이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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