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돌풍의 핵' 그리핀은 어쩌다 꼴찌가 되었나

칼럼 | 박태균 기자 | 댓글: 104개 |



다사다난한 스토브 리그를 보낸 그리핀이 올해도 최상위권에 오를 거라곤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성적 역시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2020 LCK 스프링 스플릿 정규 시즌 1라운드가 마무리된 현재 그리핀은 2승 7패, 승점 -9로 꼴찌를 기록 중이다.


'돌풍의 핵' 그리핀
챌린저스 전승 팀, LCK를 접수하다

그리핀이 처음 LCK에 합류했던 2018년 여름을 기억하는가. 승격 직전 챌린저스에서 전승을 거둔 그리핀에 대한 팬들은 많은 의문을 가졌다. 다른 챌린저스 팀들과는 차원이 달랐던 그들의 경기력이 절대적으로 좋았던 것인지, 아니면 상대적으로 좋았던 것인지.

그리고 그리핀은 2018 LCK 섬머 스플릿 정규 시즌 2위, 포스트시즌 준우승을 기록하며 확실한 답을 내놨다. 본인들의 경기력은 절대적으로 좋은 것이며, 한동안 고여 있던 LCK에 파란을 일으키러 온 돌풍의 핵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후 그리핀은 2019 LCK 두 번의 정규 시즌에서 모두 1위에 오르며 반박의 여지가 없는 강팀으로 자리잡았다.



▲ 김대호 감독이 이끄는 그리핀은 당시 '무적 포스'를 자랑했다

매 정규 시즌을 정복했던 당시의 그리핀을 떠올려 보자. 2018 스프링 스플릿 초중반부터 선발 출전한 '쵸비' 정지훈은 신인답지 않은 배짱과 라인전 수행 능력을 선보이며 어떤 상대가 오든 최소 반반, 최대 캐리를 해냈다. '쵸비'가 단단히 잡은 중심을 바탕으로 '타잔' 이승용은 치밀한 동선을 구상해 득점 포인트를 찾아내는 특유의 영리함으로 로우리스크 하이리턴의 맹활약을 펼쳤다.

봇 라인을 지켰던 '바이퍼'-'리헨즈' 듀오에 대해선 긴 말이 필요없다. 두 선수의 LoL에 대한 재능과 오랜 호흡은 팬들의 기대를 뛰어넘는 플레이와 변수를 만들며 많은 승리를 이끌었다. '소드' 최성원 역시 다른 선수들에 비해 존재감이 부족했을 뿐, 상대의 공격을 받아내고 버티는 능력과 종종 터지는 캐리는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심지어 당시엔 메타도 그리핀을 도왔다. '바이퍼' 박도현의 무한한 챔피언 폭과 '소드'의 명품 우르곳-사이온은 2018 LCK 섬머부터 2019 LCK 스프링까지의 비원딜-탱커 메타를 지배하기도 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지도하고 만든 김대호 감독의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고유의 피드백 스타일에 대한 호불호는 갈리지만, 경기력 상승과 최상위권 유지에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다. 해박한 LoL 지식과 오직 승리만을 향한 불타는 열정에 대해선 그를 따라올 자가 없었다. 이렇듯 다재다능한 선수들과 승부욕 넘치는 감독의 선전은 앞으로도 쭉 이어질 것만 같았다.


'꼴찌' 그리핀
중심을 잃고 정답을 잃다

그러나 그리핀은 2020년을 앞두고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렸고, 결국 김대호 감독을 비롯해 '쵸비'와 '리헨즈' 손시우가 팀을 떠났다. 그 빈자리를 채운 사람은 한상용 감독과 '유칼' 손우현, '아이로브' 정상현, '운타라'-'내현'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아이로브'가 기존 그리핀의 연습생이었다는 점과 '소드'-'타잔'-'바이퍼' 등 기존 주전 3인이 잔류했다는 점이었다.



▲ 새단장을 마친 그리핀, 그러나 결과는...

결코 작지 않았던 변화는 그보다 훨씬 큰 실패를 불러왔다. 2018년 여름 그리핀을 꺾고 kt 롤스터의 우승을 이끌었던 특급 신인 '유칼' 손우현은 작년 아프리카 프릭스에서 보였던 활기를 잃었고, 딱히 특출난 점을 찾아볼 수 없는 평범한 미드 라이너가 됐다. '아이로브'가 '리헨즈'의 공석을 채우는 것도 불가능했다. 절묘한 플레이와 오더로 변수를 만들기는커녕 신인다운 불안한 경기력과 큰 기복을 보이고 있다.

한상용 감독도 김대호 감독을 대체할 순 없었다. 배경의 차이로 인게임 개입 능력이 다소 부족한데, 기존 선수와 새롭게 합류한 선수들의 호흡을 맞추는 과정까지 수행해야 했다. 물론 '갱맘' 이창석과 '래더' 신형섭이 코치로 활동 중이지만 예전 같은 피드백과 경기력 향상은 어려워 보인다.

이렇게 중심을 잃은 그리핀은 기존 선수들까지 흔들리며 그동안 본인들이 자랑했던 정답을 잃어버렸다. 탑 라이너의 캐리 비중이 커진 현 메타에서 '소드' 최성원의 경쟁력은 더욱 떨어졌고, 오히려 중후반 쓰로잉은 잦아졌다. 종종 후반 캐리력 부족이 지적됐던 '바이퍼'는 돌아온 원딜 메타와 함께 '아이로브'가 발목을 잡고 있어 힘든 상황에 놓였다.

작년까지와는 달리 모든 라인이 밀리자 '타잔'이 설자리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주도권과 맵 리딩을 활용한 카운터 정글이나 확실한 갱킹으로 성장 차이를 벌리고 상대를 압도하던 정글의 왕은 더 이상 없다. 솔로 랭크에서의 기량은 여전히 최상위권이지만, 메타와 팀원들이 동시에 바뀌며 찾아온 대회 무대의 변화엔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듯하다.

▲ 그리핀의 약점이 드러난 최악의 드래곤 한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라인전부터 자연스럽게 우위를 점하고 주어진 상황대로 상대를 요리하며 완벽한 굳히기를 선보였던 그리핀은 이제 없다. 이와 정반대로 자연스럽게 열세에 놓이고 이렇다 할 노림수를 던지지 못한 채 무너진다. 설상가상으로 팀 호흡까지 맞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데, 바로 지난 경기였던 kt 롤스터와의 3세트에서 퍼펙트 패배를 당하며 이러한 약점들이 모두 드러났다.


승강전행 위기 앞에서
아직 남은 기회, 2R서 탈출구 찾아야

현재의 그리핀은 APK 프린스처럼 화끈하게 부딪히지도, 한화생명e스포츠나 샌드박스 게이밍처럼 다양한 시도를 하지도 않는다. 이대로라면 승강전행을 피할 수 없다. 더군다나 현재 챌린저스에선 서라벌 게이밍을 비롯한 다수의 팀이 우수한 경기력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승강전에서 패배하고 강등될 수도 있다.




현재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2라운드 진행이 잠정 중단되며 그리핀은 숨 돌릴 틈을 찾았다. 만약 5연패를 당한 상태에서 T1을 꺾고 분위기를 끌어올린 아프리카 프릭스를 곧바로 만났다면 또다시 무기력하게 패배했을 수 있다. 재개막 시기가 미정인 상태이기에 주어진 시간 동안 전심전력을 다해 선수들의 기량과 호흡을 끌어올려야 한다.

부푼 꿈을 안고 올라온 LCK 무대에서 줄곧 선전해 온 그들이기에, 지나쳐왔던 자리로 되돌아가는 최악의 상황만큼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특히 그리핀에 오래 몸담아 온 기존 선수들의 간절함은 다른 누구보다 클 것이다. 그리핀은 과연 2라운드에서 달라진 모습을 보일 수 있을지, 쇠퇴할 부분보다 발전할 부분이 훨씬 많은 그들의 행보를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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