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KL 돋보기] 본격 적용된 사녹, '보는 맛'과 '운발 게임'의 경계

기획기사 | 박태균 기자 | 댓글: 1개 |



2019 PUBG e스포츠 페이즈3에 사녹이 본격 적용됐다. PUBG 코리아 리그(이하 PKL)의 경우 매 경기 네 라운드 중 2라운드가 사녹으로 고정 진행되며, 포인트 매트릭스는 기존 맵과 동일하다. 8월 26일 개막전을 시작으로 2019 PKL 페이즈3의 1주 차 일정이 마무리된 지금, 사녹에서 진행된 세 경기가 남긴 점을 정리했다.


■ 작아진 맵, 빨라진 템포

사녹은 2018년 6월 정식 출시된 배틀그라운드의 전장이다. 동남아시아 열대우림 지역을 모티브로 한 사녹은 나무로 만들어진 가옥과 마을, 사원, 군사 지역 등이 촘촘히 밀집해 있으며 아이템 드랍률이 높게 설정되어 있다. 가장 중요한 특성은 맵 전체 크기가 에란겔과 미라마의 1/4에 불과해 적과 조우할 확률이 매우 높고 전장 전 지역에서 교전이 벌어진다. 이에 사녹 적용 소식을 접한 팬들의 첫 번째 관심사는 단연 경기 템포였다.

에란겔과 미라마의 경우 대부분의 교전과 킬은 안전 구역이 크게 좁혀지는 20분 전후부터 발생한다. 그 전까지는 선수들의 파밍과 이동이 주를 이루며 암묵적으로 자리 잡은 각 팀의 랜드마크로 인해 팀 간 마찰이 거의 일어나지 않아 보는 맛이 떨어진다. 경기의 속도감이 부족하다는 점은 배틀그라운드 e스포츠의 고질적인 문제였는데, 사녹은 이를 어느 정도 해소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맵과 사녹의 템포 차이를 가장 직관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수치는 경기 시간이다. 에란겔과 미라마의 경우 한 라운드 종료까지 30분이 소요된다. 하지만 사녹의 경기 종료 시간은 이보다 7분 적은 23분이다. 안전 구역 크기가 작은 것은 물론 대기 시간, 이동 시간이 첫 페이즈부터 에란겔-미라마보다 짧다. 심지어 후반 페이즈로 갈수록 모든 시간이 더욱 촉박해진다. 경기 시간을 비율로 계산 시 약 23% 축소된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체감 시간은 그보다 더 짧다. 초반 싸움에 대한 기대값이 기존 맵보다 훨씬 높으며 본격적인 교전이 일찍 벌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28일(수)에 진행된 1주 2일 차 경기에선 시작부터 부트 캠프 멸망전이 나오며 흥미진진한 경기 양상을 예고했다. 부트 캠프에서 미디어 스퀘어 브릿지가 그리핀 레드를 전멸시키는 데 걸린 시간은 단 1분 50초. 모든 선수가 낙하를 채 마치기도 전이었다. 미디어 스퀘어 브릿지는 곧바로 미카엘까지 잡아냈고, 9분에는 다나와 EVGA와 월드 클래스, 디토네이터와 라베가의 난전이 잠시 벌어지기도 했다. 이후로도 교전이 끊임없이 이어지며 16분경에는 생존 인원이 절반 이하로 줄었고, 23분에 치킨의 주인공이 탄생했다.

1주 차의 마지막 승부였던 31일(토) 경기에서는 미디어 스퀘어 브릿지, 그리핀 레드와 함께 오피지지 스포츠까지 부트 캠프로 향하며 3개 팀이 벌인 혈전 끝에 그리핀 레드가 최후의 승자가 되는 재밌는 그림이 나왔다. 이후 곳곳에서 팀들이 마주치며 인원이 서서히 줄어들던 중 14분경 네 번째 안전 구역 생성과 함께 난전이 시작됐다. 20분부터 최후의 삼파전이 시작됐고, 어김없이 23분에 우승 팀이 나왔다.


■ 보는 맛과는 별개? 뚜렷하게 드러난 단점

1주 2, 3일 차 경기에서 극초반부터 펼쳐진 팀 간 맞대결과 눈을 뗄 수 없는 경기 흐름은 확실한 재미를 선사했다. 선수들의 예리한 사격 실력과 숨 막힐 듯한 심리전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경기 시간이 짧다고 반드시 보는 맛이 뛰어난 건 아니었다. 26일(월) 개막전에서 펼쳐진 사녹 경기의 경우 다른 경기와 달리 이렇다 할 속도감을 느끼지 못했다. 초중반 교전의 짜릿함을 느끼기는커녕 팬과 선수들이 우려했던 부분만 실체화되어 드러났다.

해당 사항은 안전 구역에 따른 운 요소가 극단적으로 커진다는 점이다. 맵이 방대한 에란겔과 미라마와 달리 사녹은 운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점이 적다. 차량을 통해 안전 구역 안쪽으로 과감하게 파고드는 건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고, 어느 지역에서든 적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확률이 높다. 중후반 페이즈 전환 시 안전 구역 외곽 팀은 생존이 거의 불가능하며 자기장에 허무하게 죽는 경우도 잦다. 이러한 문제점이 해소되지 않은 채 대회 경기에 사녹이 적용된 것이다.

개막전 경기에선 첫 안전 구역이 맵 중심부에 설정되며 극초반 멸망전은 고사하고 거의 모든 팀이 거점 수성에 들어갔다. 14분이 지나서야 첫 탈락 팀이 나왔고, 이후 좁은 지역에 수많은 팀과 선수가 뒤섞여 난전을 벌였다. 이에 경기 화면을 통해 상황을 파악하기 어려웠고, 순식간에 지나가는 킬 로그를 통해 전황을 예측해야 했다. 또한 많은 이의 우려대로 안전 구역이 웃어준 팀과 그렇지 않은 팀의 유불리 차이가 극단적으로 크게 발생했다.



▲ 초반 교전의 보는 맛 대신 '운발' 요소만이 가득했던 개막전 사녹 경기

결과적으로 해당 경기에서 극후반 교전을 제외하면 배틀그라운드 e스포츠만의 특색을 느끼기 어려웠다. 초반부터 꾸준히 벌어지는 교전의 보는 맛도, 특정 팀의 운영을 따라가며 느끼는 쫄깃함도 없었다. 오히려 운 요소가 크게 부각되며 '역시 운발 게임'이라는 의견에 힘이 실렸다. 이후 펼쳐진 사녹 경기에서 장점이 두드러지지 않았다면 부정적인 반응은 훨씬 커졌을 것이다.


■ 사녹 적용 첫 페이즈, 첫 주차... 판단은 금물

단 세 경기였지만, 사녹의 장점과 단점이 뚜렷하게 드러난 PKL 페이즈3 1주 차였다. 초반부터 쉴 틈 없이 벌어지는 화끈한 대결은 분명한 재미를 줬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에란겔-미라마에 비해 별다른 매력을 느낄 수 없었다. 지금까지의 사녹은 '보는 맛'과 '운발 게임'의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사녹에 대한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PKL은 이제 막 1주 차를 마쳤고, PEL(유럽)과 NPL(북미) 등 각 지역의 1부 리그는 이제 막 개막했거나 개막을 앞두고 있다. 각 팀의 플레이 스타일이나 지역 별 경기 메타가 정돈된 상태가 아니기에 사녹의 경기 양상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무쌍할 것이다.

한편, 펍지주식회사는 팬과 선수들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여야 한다. 포인트 매트릭스와 아이템 드랍률, 안전 구역 대기 시간, 자기장 이동 시간을 조절해가며 에란겔과 미라마의 재미를 키운 것처럼 사녹 역시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최소화할 수 있는 특별한 규정 도입이 필요하다. 이에 전 세계에서 펼쳐질 사녹 경기에 대한 모니터링과 관계자들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적절한 대안을 마련한다면 향후 PUBG e스포츠에선 한층 흥미로운 사녹을 선보일 수 있을 것이다.

사진 및 영상 출처 : 아프리카TV PKL 공식 중계 화면, PKL 공식 유튜브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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