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CK 섬머] 한화생명e스포츠의 이유 있는 '1R 전패'

기획기사 | 박범 기자 | 댓글: 19개 |



2020 우리은행 LCK 섬머 스플릿 1라운드 일정도 마무리됐다. 모든 팀이 9번 대결에 나섰고 저마다의 성적을 얻었다. DRX와 담원게이밍, 젠지 e스포츠가 최상위권에서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다. 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는 팀들 중에도 눈에 띄는 팀들이 있다. '야마토캐논' 감독 합류 이후 연승을 달린 샌드박스 게이밍이 대표적이다.

10개팀들 가운데 가장 처절한 여름을 보내고 있는 팀은 한화생명e스포츠다. 이들은 단 1승도 챙기지 못한 채 내리 9연패를 찍었다. 1라운드 내내 단 한 팀도 잡아내지 못했다. 개막 전만 하더라도 한화생명e스포츠의 9연패를 예상했던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만큼 충격적인 결과다.


꽤 탄탄한 로스터
연패만 할 팀으론 안 보이는데

한화생명e스포츠의 로스터를 보고 있자면 생각보다 꽤 탄탄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감독과 코치진은 물론, 선수들 이름값만 놓고 보면 연패만 하고 있을 팀은 절대 아니다.



▲ 꽤 탄탄한 로스터 (이미지 출처 : 한화생명e스포츠 공식 트위터)

감독은 손대영이다. 과거 CJ 엔투스의 전성기를 함께 했고 중국에서는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갓 승격했던 I MAY를 롤드컵까지 올렸던 건 물론, '우지'와 RNG에게 최고의 한 해를 선사하는 등 이름값을 크게 올렸다. 코치 '노페' 정노철도 락스 타이거즈의 무수한 역사를 만들었던 지도자였고 EDG와 아프리카 프릭스에서 경력을 더 쌓았다.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에서 정상을 찍었던 '사케' 이중혁과 MVP의 전성기를 함께 했던 '맥스' 정종빈도 코치로 있다.

선수진도 화려하다. 젠지 e스포츠의 롤드컵 우승에 힘을 보탰던 '큐베' 이성진과 '하루' 강민승이 있다. 바텀 듀오는 그리핀의 믿을맨이었던 '바이퍼' 박도현과 '리헨즈' 손시우다. '라바' 김태훈의 기복이 워낙 심해 미드가 불안하단 평은 줄곧 나왔지만, 나머지 멤버들이 워낙 화려했기에 괜찮다는 의견도 많았다. 여기에 '비스타' 오효성을 비롯해 '두두' 이동주와 '캐드' 조성용, '영재' 고영재, '미르' 정조빈 등 육성군에서 키워낸 유망주들도 1군에 콜업되어 신구 조화를 이루기도 했다.

이처럼 현재 한화생명e스포츠의 로스터는 과거 자신들의 소속 팀을 최정상 혹은 그 언저리에 올렸던 장본인들로 구성됐다. 기복이 있는 주전 선수와 신예로만 구성된 미드 라인을 제외하면 한화생명e스포츠에 딱히 단점이 없을 것만 같았다.


개인 기량 저하
무너진 탑 라인 '큐베-두두'

생각보다 탄탄한 라인업에도 한화생명e스포츠가 힘겨워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미드 라인이다. '라바'의 기량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게 많은 부분에서 드러난다. 신인 '미르'도 몇 번 출전했다가 호되게 당하기만 했다. 이는 이미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부분이라 여기선 더 다루지 않겠다.

미드 라인의 부진에 가려진 감도 있지만, 사실 한화생명e스포츠의 큰 약점은 탑 라인이다. '큐베'와 '두두'는 LCK에서 가장 약한 탑 라이너라는 오명을 안게 됐다.




원래 경기 내 데이터라는 건 팀 성적에 따라 갈리곤 한다. 하지만 '큐베'와 '두두'의 데이터는 이를 감안하고 보더라도 다른 탑 라이너들에 크게 밀린다.

특히, '큐베'의 인게임 데이터가 처참하다. 그는 LCK 탑 라이너들 중에 유일하게 KDA 1이 넘지 않는다. 세트 승리도 없다. 평균 킬은 낮고 데스는 높았으며 가장 심각한 건 어시스트 숫자였다. '큐베'의 평균 어시스트는 2.3 밖에 되지 않았다. 두 번째로 낮은 '익수' 전익수와 '두두'도 평균 3 어시스트인 걸 고려하면 크게 뒤쳐지는 데이터다.

본래 '큐베' 하면 희생적인 탑 라이너 혹은 스플릿 운영에 강점을 지닌 탑 라이너였다. 그래서 팀의 호성적에도 개인 데이터는 그리 좋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그가 출전했을 때 꺼냈던 챔피언들은 하나같이 한타에 좋거나 소규모 교전에서 강점을 보이는 볼리베어와 세트, 오공, 케넨, 뽀삐였다. 그럼에도 '큐베'의 인게임 데이터가 위와 같다는 건 현재 '큐베'의 폼이 얼마나 무너졌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일 거다.

실제 플레이에서도 '큐베'는 아쉬움을 많이 보였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최근 젠지 e스포츠전 2세트만 봐도 이를 명확히 알 수 있다.

14분 50초경, 한화생명e스포츠는 3인 포탑 다이브를 시도했다. 타겟은 '비디디' 곽보성의 조이였다. 오공과 갈리오, 니달리까지 있어 성공적인 포탑 다이브가 예상됐다. '큐베'의 오공은 상대 스킬을 피할 생각으로 W스킬을 써 분신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 분신이 조이를 타격했고 자연스럽게 '큐베'의 오공은 포탑 어그로를 받았다. 하지만 '큐베'는 이를 몰랐다는 듯이 앞으로 이동했다가 다이브를 시작하기도 전에 쓰러졌다.



▲ 치명적 실수였던 분신 소환 후 앞 무빙(출처 : LCK 공식 중계)

뿐만 아니라 '큐베'의 오공은 한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챔피언을 들고 교전 직전에 '클리드' 김태민의 리 신과 일기토를 하게 되어 소중한 궁극기를 소모하는 등 실수를 연발했다. 이는 오공과 갈리오, 타릭 등 대규모 한타에 능한 챔피언 조합을 스스로 망치는 플레이였다.

'두두'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두두' 역시 '큐베'와 비슷한 데이터를 보였다. 그나마 나았던 걸 꼽자면 '큐베'보다 평균 어시스트가 높았다는 것. 신인치곤 괜찮은 플레이를 보인 적도 있었지만, 그건 현재의 한화생명e스포츠에게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유독 '두두'가 출전했을 때 한화생명e스포츠는 탑 1차 포탑 다이브를 자주 당했다. 이는 '두두'가 유망주일 때부터 강점으로 평가받았던 공격적인 라인전 성향 때문인 경우가 많았다. 그게 아니라면 지극히 신인 같은 안일한 플레이로 일을 그르치기도 했다.

이러한 '두두'의 실수는 샌드박스 게이밍과의 2세트에 잘 드러났다. '두두'는 오공으로 '서밋' 박우태의 레넥톤을 상대했다. '캐드'는 볼리베어를, '온플릭' 김장겸은 올라프를 꺼내 팽팽한 탑 라인 쪽 싸움이 예고됐다.

9분경에 '두두'의 오공은 '서밋'의 레넥톤에게 딜교환에서 크게 밀렸다. 그럼에도 대포 미니언을 먹기 위해 정직하게 레넥톤 쪽으로 걸어 들어가서 딜교환에 중요한 Q스킬로 대포 미니언을 때렸다. 당연히 '서밋'의 레넥톤은 제발로 걸어 들어온 오공을 마음껏 때려 빈사 상태로 만들었다. 이는 근처에서 자신을 봐주던 '캐드'의 볼리베어가 사망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팀적으로 큰 손해를 입었던 장면이었다.



▲ 딜교환 손해에도 '두두'는 겁도 없이 대포 미니언을 먹었고



▲ 그 결과는 '캐드'의 볼리베어에게 핵폭탄이 되어 떨어졌다. (출처 : LCK 공식 중계)

'두두'의 지나친 '신인스러움'은 아프리카 프릭스전 2세트에도 여럿 나왔다. 12분경부터 이어졌던 드래곤 둥지 쪽 대치에선 '플라이' 송용준 조이의 E스킬이 날아오는 걸 보고도 태연하게 그 쪽으로 걸어가는 실수를 보였다. 탑 1차 포탑 다이브에선 '기인' 김기인의 케넨 대신 포탑을 때려 다이브 실패를 유발하기도 했다.

이처럼 '큐베'는 자신의 이름값에 걸맞은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한 지 오래 됐으며 '두두'는 1라운드가 다 끝나가도록 신인스러운 모습을 거의 벗지 못했다. 냉정하게 표현하면 지금 한화생명e스포츠의 탑 라인에는 누가 와도 기대를 걸기 힘들다.


무너진 팀워크
'중구난방' 누군 이거 하고 또 누군 저거 하고

LoL은 팀 게임이라 출전 선수들 간 의견 통일이 매우 중요하다. 긴박하게 매 초마다 바뀌는 상황에 따라 선수들마다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 대회 경기에선 이를 빠르게 통일해 한 방향을 모두 바라보는 것이 좋다. 그래야 플레이가 통일성을 갖고 그 힘이 더 단단해진다.

현재 한화생명e스포츠는 이러한 기본적인 걸 지키지 못하고 있다. 초반 10분, 혹은 라인전 단계까진 그래도 하나의 틀 안에서 짜여진 운영이나 플레이를 하고자 하는 게 눈에 잘 띈다.

문제는 라인전 이후 단계부터 발생한다. 한화생명e스포츠의 한타나 대치 구도 속 움직임을 유심히 보고 있자면 '중구난방'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린다. 통일된 오더가 좀처럼 나오지 않는 것처럼 보이며 실제 플레이도 제각각이다. 가끔 오더가 하나로 통일되도 이를 각자 다르게 해석해 플레이 방향성이 크게 엇나갈 때도 있다. 이와 같은 플레이를 하면 상대는 이들을 격파하기 너무나도 쉽다고 느낄 거다.

얼마 전 있었던 샌드박스 게이밍전 1세트를 보자. 팽팽한 킬 포인트 상황에서 한화생명e스포츠가 먼저 싸움을 걸었다. '두두'의 모데카이저가 '루트' 문검수의 아펠리오스를 E스킬로 당기자마자 궁극기를 활용했다. 이를 본 '캐드'의 볼리베어는 상대 본진 쪽으로 뛰어들었고 '라바'의 오리아나 궁극기도 상대 쪽에 활용됐다. 하지만 '바이퍼'의 이즈리얼과 '리헨즈'의 레오나는 현장에 도착하지 못한 상태였다. 결국, 궁극기를 썼던 '두두'의 모데카이저는 빈사 상태가 됐고 '캐드'의 볼리베어는 뒷점멸로 겨우 생존했다.



▲ 누군 이미 들어가고 누군 아직 오고 있고 (출처 : LCK 공식 중계)

좀 더 최근 경기를 보자면 1라운드 마지막 경기였던 DRX전을 보면 된다. 2세트에 한화생명e스포츠는 모처럼 중반까지 크게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조합상 DRX를 이길 가능성도 높았다. 하지만 그들은 미드 라인에서 보였던 최악의 이니시에이팅 한 방으로 승리를 날렸다.

22분경에 나왔던 장면을 복기해보자. 한화생명e스포츠는 아마 드래곤 등장 직전에 싸움을 걸어 상대를 밀어내고 안전하게 드래곤 영혼을 챙길 생각이었을 터. 정확히 드래곤 등장 24초 전에 싸움을 열었다. 카르마가 '만트라-E스킬'을 썼던 걸 보면 팀적인 콜이 나왔던 걸로 예상된다. 그리고 '리헨즈' 타릭의 W스킬이 '하루'의 올라프에게 쓰인 걸로 봐선 올라프의 돌파로 싸움을 시작할 예정이었을 거다.

문제는 직후에 발생했다. 뜬금없이 '큐베'의 뽀삐가 '미르' 카르마의 '만트라-E스킬' 활용 직후 적진 한복판에 혈혈단신으로 뛰어들었다. '리헨즈'의 타릭은 그걸 보고 부랴부랴 '슈렐리아의 몽상'을 썼고 '하루'의 올라프도 급하게 '정당한 영광'을 활용했다. 당연히 뽀삐의 이니시에이팅에 호응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고 한화생명e스포츠는 등을 보인 채 후퇴했다. DRX는 자연스럽게 반격 기회를 얻었고 상대 챔피언들을 학살했다.



▲ 타릭 W스킬은 올라프에게 들어갔는데



▲ 싸움은 갑자기 뽀삐가 열고



▲ '슈렐리아의 몽상'과 '정당한 영광' 활용은



▲ 팀원의 '돌발행동'에 정확한 타이밍을 잃었다(출처 : LCK 공식 중계)

이는 개개인의 잘못을 따지기 전에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알려준 장면이었다. 한화생명e스포츠엔 '무엇을 하자'는 콜만 있을 뿐 그걸 위한 디테일이 없다. 드래곤 영혼 획득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싸움을 선택했다는 건 알겠다. 최근 메타와 분위기 속에서 먼저 싸움을 선택하고 실행에 옮기는 건 높은 확률로 긍정적이다.

하지만 싸움을 열어야 할 때 누가 싸움을 시작하고 누가 아군을 지켜줄 것이며 스킬 연계는 어떻게 들어가야한다는 것과 같은 기본적인 걸 챙기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저 싸움을 열어야 한다고 하니 모두가 그 생각만 했고 그 과정과 결과는 단어 그대로 처참했다.

만약 뽀삐가 뛰어들어 시선을 끄는 사이에 올라프와 타릭의 돌파로 싸움을 걸 생각이었다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문제가 있었다. '큐베'의 뽀삐는 너무 일찍 뛰어들었다. '슈렐리아의 몽상' 효과를 받고 들어가거나 '정당한 영광'을 활용한 '하루'의 올라프와 함께 들어가는게 최선 아니었을까.


꺼져가는 불씨
기대만큼 커진 실망감, 방법은 없는가

한화생명e스포츠만큼 팬들의 기대를 받았던 팀이 또 있을까. 스프링 스플릿을 앞두고는 파격적인 운영과 전략으로 '코리안 G2'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게 한화생명e스포츠였다. 또한, '바이퍼' 박도현 영입으로 기대감은 또 한 번 증폭됐다. 하지만 그때의 기대감은 모두 실망으로 바뀌었다.



▲ 한화생명e스포츠가 다시 웃는 날은 언제 올까?

한화생명e스포츠가 끊임없이 말했던 공격적인 운영 추구는 좋다. 최근 메타와 잘 맞기도 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다가 패배하는 것보단 훨씬 낫다. 하지만 지금 한화생명e스포츠는 가장 기본적인 걸 놓치고 있다. 선수 개개인의 역량 문제도 크지만, 더 치명적인 건 주요 순간마다 흩어져버리는 모래알 같은 팀워크다.

얼른 갈피를 잡아야 한다. 서로 다른 생각을 하나로 뭉칠 수 있는 결단력 있는 선수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오더가 틀리더라도 하나로 결집되어 그 오더나 판단을 충실히 따르려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럼 패배하더라도 배우는 것이 뚜렷하게 생길 것이며 이길 확률도 지금보단 올라간다.

최근엔 거의 사라졌지만 '메인 오더'라는 역할을 다시금 선택해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 되겠다. 팀 차원에서 특정 선수를 지목해 그 선수가 인게임에서 메인 오더 역할을 하고 팀원들은 최대한 거기에 맞추는 플레이를 하는 거다. 팀원 대부분이 오더와 상황 판단을 빠르게 주고 받는 요즘 같은 시대엔 어울리지 않는 발상이라도 한화생명e스포츠에겐 의외의 특효약이 될 수도 있다.

혹자는 한화생명e스포츠의 밴픽이 좋지 않다고 한다. 현재 성적이나 선수 개개인의 폼 저하를 반영하지 않고 난이도가 높은 조합을 자꾸 쥐여준다는 분석이다. 젠지 e스포츠와의 1세트에 한화생명e스포츠는 케일과 렉사이, 오리아나, 칼리스타, 쉔을 꺼냈다. CC기가 부족하고 이니시에이팅 수단도 마땅히 없는 형태다. 상위권 팀이었다면 장점을 보여줄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조합이라 하겠지만, 냉정히 말해서 현재 한화생명e스포츠에겐 힘겨운 조합일 수 있다.

상대적 약팀이 성적을 내기 위해선 쉬운 조합을 꺼내는 게 가장 좋다. 이니시에이팅 수단이 많거나 CC 연계에 능한 조합, 상대가 사이드 압박을 가할 때 거침없이 상대 본대 쪽으로 밀고 들어가 승전고를 울릴 수 있는 조합은 대부분 옳다. 한화생명e스포츠에겐 경기 운영이나 방향성이 쉬울수록 좋을 것 같다.

한화생명e스포츠도 문제점을 이미 너무나도 잘 파악하고 있을 거다. 고치기 위한 노력도 하고 있을 거다. 그 방향성이 어느 쪽이건 빠르게 몸에 익히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한화생명e스포츠의 2020년 여름은 단순히 1라운드 전패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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