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반교: 디텐션', 영화는 게임을 그리고 게임은 역사를 말한다

리뷰 | 강승진 기자 | 댓글: 13개 |



게임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들에는 늘 기대 만큼이나 걱정이 뒤따랐습니다. 게임 따위는 해보지도 않는다고 당당하게 말하며 게임 기반 영화를 찍어냈던 감독 우베볼의 이름. 그리고 손발이 쪼그라드는 괴작 영화들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건 그만큼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만나기 어렵기 때문이었습니다. 명탐정 피카츄나 수퍼 소닉처럼 최근 그마나 준수한 평을 받은 이유 뒤에는 화려한 그래픽 효과와 원작 게임의 캐릭터만 가져와 영화식 문법으로 풀어낸 내러티브가 있었습니다.

반교: 디텐션(이하 반교)은 좀 다릅니다. 이야기는 원작이 되는 동명의 게임 '반교: 디텐션'의 흐름을 거의 고스란히 따라갑니다. 주역 인물들의 역할, 이미지도 원작과 같고 주제가 가진 묵직한 공포감도 게임의 그것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 2D 그래픽과 독특한 표현력으로 색다른 공포를 전했던 게임 반교: 디텐션

그동안은 약점으로 지적되어야 마땅했던 게임 원작 영화라는 게 이 반교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대만에서는 개봉하자마자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고 10대, 20대 관객이 몰려 영화의 이야기를 서로 나서서 공유했습니다. 중화권 최고 권위의 시상식으로 불리던 금마장시상식 5관왕에 타이베이영화제에서는 대상, 최우수 영화상, 여우주연상, 시각효과상, 미술상, 음향상 등 6개 부문에서 수상하는 등 그야말로 대만 영화판을 휩쓸었습니다.

당연히 '그래서 반교는 뭐가 달랐는데'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데요. 오는 13일 국내 개봉을 앞둔 영화 반교의 다름을 미리 확인해봤습니다.




짧은 머리를 하고 똑같은 옷을 입은 학생들이 남녀 따로 한 줄로 서서 교문을 지나는 추이화 고등학교. 이곳은 절대 자유를 말해서는 안 되고 이런 내용을 담은 책을 읽으면 반란 분자로 몰려 고문을 받는 '1962년 대만'을 상징하는 장소입니다.

하지만 모든 인간은 억압 속에서 더욱 큰 자유를 꿈꾸죠. 자신의 가치를 찾고자 하는 젊은 교사 장밍후이와 인쯔이한은 학교 창고에 몰래 독서회를 만듭니다. 이곳에서 학생들은 장선생, 인선생과 함께 금서를 옮겨적고 동경하는 사회를 그립니다. 그 꿈은 어느 밀고자에 의해 독서회 인원들이 헌병대에 끌려가며 막을 내리게 되지만요.

손톱이 모두 뽑혀나가고 거꾸로 매달린 채 물고문을 당하는 웨이중팅은 친구들과 선생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독서회와 금서에 대해 굳게 입을 다물었죠. 그리고 고문으로 사경을 헤매는 도중 꿈인지조차 알 수 없는 학교에서 평소 멀리서 지켜보고 흠모했던 선배, 팡루이신을 만나게 됩니다.



▲ 자유가 억압된 건 학교라고 다르지 않다

영화는 웨이중팅이 팡루이신과 함께 꿈 속 학교에서 마주치는 괴이한 사건들. 그리고 장선생, 팡루이신, 웨이중팅, 이 셋이 현실에서 겪었던 이야기를 교차하며 보여줍니다. 그리고 세 챕터를 통해 각각 약간은 다른 분위기로 작품을 연출해나가죠.

영화의 시작이 되는 첫 챕터는 주인공들이 현실서 겪었던 이야기들이 마치 악몽처럼 기괴하게 반복되고 귀신인지조차 알 수도 없는 것들로 인한 사건들이 연이어 벌어집니다. 마치 게임 반교: 디텐션처럼 말이죠.

단순히 스토리쯤으로 말할 수 있는 이야기의 흐름 방향부터 원초적인 요소로 공포감을 쌓아가는 방식은 레드 캔들 게임즈가 게임을 통해 보여줬던 것과 유사합니다. 그렇기에 게임을 해봤던 플레이어라면 아마 이야기 전개 방식에 친숙함을 느끼는 동시에 그 차이점도 곧장 알아채 낼 수 있도록 만들어졌죠.



▲ 촛불과 복도. 게임의 주요 장면을 영화로 제대로 구현해냈다

첫 파트는 실제 게임에서 보여줬던 장면들을 실사 화면 위로 고스란히 옮겼습니다. 예를 들어 사형수 머리에 뒤집어씌우는 용수를 쓴채 고문받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학생들의 모습이 수시로 등장합니다. 또 학교 강당 단상에 거꾸로 매달린 웨이중팅이 등장합니다. 물이 넘쳐 나갈 수 없는 학교 등 게임 속 특별한 이벤트도 재현하고 있죠.

특히 촛불을 들고 복도를 걷는 장면은 이례적으로 사이드뷰에 패닝 기법을 통해 연출하며 게임적인 특징을 크게 부각하고 있습니다. 비록 처음 잠에서 깨는 주인공은 웨이중팅이 아니라 팡루이신이지만, 실제로 게임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는 건 팡루이신이고 그녀가 겪은 이야기를 게임이 진행되니 영화가 오히려 군더더기를 덜어낸 느낌이 강하고요.

첫 챕터는 게임의 색채가 가장 진하게 스민 만큼 원작이 전하는 독특한 테이스트의 공포가 이야기의 핵심을 이룹니다. 흔히 '깜놀' 장면이라고 할 수 있는 점프 스케어 신은 이 챕터에서 몰입도를 높이는 데 쓰이고 있죠. BGM 하나 깔리지 않은 적막한 학교 복도에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등장하고 화면 전환에서 이런 장면을 더하는 등 말 그대로 그냥 '깜놀'이라기보다는 연출로 공포감을 효율적으로 조절합니다.



▲ 공포 영화에 기본에 충실하며 이야기를 쌓아나가는 초반부

대신 사실적이라는 표현과는 거리가 분명 있었던 종이조각 같은 2D 그래픽이 현실로 넘어오며 더욱 사실적인 연출이 가능해졌습니다. 게임에서는 단순히 줌인, 줌아웃만으로 표현됐던 장면들도 영화에서는 3인칭으로 주변 사물을 이용하고 미장센을 살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유추하도록 하는 부분도 영상이기에 가능한 변화죠. 특유의 질감은 입체 화면으로 더 깊이 있는 공포 분위기로 전환됐고요.

이런 변화는 아이템이나 상황, 글 등으로 이야기를 나름 상상하도록 한 원작의 이야기를 보다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백옥의 사슴 목걸이가 팡루이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고, 게임 속 피아노 건반과 장선생이 피아노를 배우는 장면은 어떻게 이어지는지 사건을 통해 직접 그리고 있습니다. 여기에 원작에서는 미비하게 드러났던 잔혹한 장면도 꽤 사실적으로 그려지고요.

이처럼 게임 속에서는 느슨하게 그려진 비유와 이야기를 현실 속 사건들의 직접 연출로 더욱 단단하게 죄는 형식은 첫 챕터가 끝난 후 두 번째, 세 번째 챕터에서 더욱 부각됩니다. 약간은 뒤죽박죽이던 이야기도 순서대로 다시 짜 맞췄고요. 그만큼 알 수 없는 존재와 원초적 공포 요소는 한결 덜해지죠. 당연히 게임 플레이와의 연관성도 그만큼 옅어집니다.

하지만 이게 게임의 원작의 주제와 내러티브를 반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게임이 진짜로 두려워할 존재로 여긴 것들을 강조하는 데 속도를 밟으며 가장 게임과 가까워지는 구간이기도 합니다.




장제스 치하의 대만은 2·28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1차 계엄이 선포됐고 이후 1949년 대만 전역에 발포된 계엄령이 무려 40년 가까이 이어졌습니다. 불온서적 목록이 여기저기 나붙고 행정, 입법, 사법 삼권을 장악한 국민당의 일당 독재를 지켜내기 위해 헌병들은 도시 곳곳을 헤집고 다녔습니다.

이런 억압은 단순히 사상과 정치적으로만 사람을 옥죄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자신의 의견을 마음껏 드러낼 수 없음에 애정의 감정마저 거짓처럼 속여야 했고 그런 상황에서 사람에 대한 믿음은 금세 부서져 버리는 불신마저 내리 앉은 세계입니다. 그리고 이런 현실이 그 무엇보다 두려운 것으로 다가오죠.

반교는 게임처럼 몇몇 애정 관계가 미묘하게 엇갈리며 커지는 갈등을 그립니다. 앞서 말했듯 원작보다 조금은 직설적이고 분명한 이미지로 그 상황이 묘사되어 자칫 일종의 사랑싸움이 키워드인 것처럼 보이죠. 하지만 이런 비극을 만들어낸 시대적 배경, 그리고 이런 시대에서 국가라는 저항할 수 없는 거대한 힘에 자신의 존재 자체마저 잃어버리는 공포를 개인의 상황에 빗대고 있습니다.

비교적 밝은 모습으로 웨이중팅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게임 속 팡루이신과 달리 영화의 팡루이신은 잔뜩 움츠러들고 겁먹은 듯한 표정으로 등장하는데요. 오히려 이런 연기와 격정적으로 변하는 모습은 시대적 상황, 그리고 자신의 의지를 제대로 표출하고 기댈 곳 없는 팡루이신의 모습을 더 잘 드러낸 듯 보입니다.



▲ 악몽과도 같은 세계에서 팡루이신의 기억과 경험이 혼재되어 펼쳐진다

대만 근현대사의 가장 아픈 시절로 꼽히는 시기. 이에 대한 게임이 주는 공포를 제대로 이해한 건 이 영화의 감독이 존 쉬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1981년생의 이 대만 감독은 2005년 온라인 게임과 현실 세계를 주제로 한 '리얼 온라인'으로 대만 금종장시상식에서 최연소 감독상을 수상했습니다. 상업 영화 활동을 이어나가며 AFK PL@YER라는 인디 영화 제작팀을 만들고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이용해 뮤직비디오 등 게임을 통한 창작물을 꾸준히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반교의 영화 감독이 되기 전부터 게임 반교: 디텐션을 깊이 있게 플레이하며 대만 역사와 그 아픔에 공감해왔죠.

그래서 이야기에 집중한 중반부에서도 팬들이라면 금세 찾아낼 수 있는 게임 속 요소들을 적절히 재배치하는 능력도 선보였습니다. 게임에서는 진행 상황을 저장하던 신단, 성황신에게 앞일을 묻는 점괘, 그리고 잊을 수 없는 극장 장면 등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게임 속에서는 지나치게 고전적인 느낌이 강하던 등불 귀신은 상징적인 등불은 그대로 들고 있지만, 전통 복장 대신 간수 같은 모습을 하고 사람들의 목을 조릅니다. 물론 등불 귀신과 함께 몇몇 CG들은 약간 아쉬움을 자아내는 연출을 보이기도 하는데요. 전체적인 조명 활용과 2D의 질감을 잘 옮겨내며 만들어진 배경 분위기가 매우 뛰어나다보니 조금 더 부각되어 보이기도 합니다.



▲ 원작과는 다른 구도로 주요 이벤트들을 만날 수 있다



▲ 계엄령 시기 국가의 압제를 상징하는 등불귀신. 게임과 다른 모습은 극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저 눈을 뒤집은 귀신이 여기저기 나오거나 피와 살이 튀어 오르는 공포 영화를 생각했다면 반교는 기대와는 조금 다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대만 역사, 그리고 그 상황에서 나오는 감정들에 이입한다면 그 어떤 공포보다 가슴 아픈 현실을 마주하게 될 테죠.

그렇다고 영화를 보기 전, 학창시절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 내용을 복습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유를 위해 투쟁했던 건 우리나라 역시 겪었던 비슷한 과거의 일이고 현실로 눈을 돌리면 자치권을 주장하는 홍콩의 상황을 통해 보고, 겪고 있으니까요. 영화 시작부터 해당 모습에 대해 직접 설명하고 세밀하게 표현된 시대상으로 이를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미 게임을 통해 당대의 모습과 아픔, 그리고 비극을 이해하고 있는 원작 팬이라면 반교가 그리는 팡루이신, 웨이중팅, 장밍후이의 이야기를 더 가슴 깊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겁니다.

모든 게임 원작 영화를 똑같이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반교는 게임 원작 영화가 성공을 위해 원작의 이야기를 기피할 필요도 없고 억지로 주제와 그 색을 바꿀 필요도 없다는 걸 직접 증명한 사례로 기억될 만합니다. 그리고 게임 원작 영화도 으레 어떠하다라는 비판과 걱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도 함께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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