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A] WHO총회 결과, 번복될 수는 없을까?

기획기사 | 정재훈 기자 | 댓글: 24개 |



2019년 5월 2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진행된 세계보건기구(WHO) 제 72차 총회에서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가 국제표준질병분류(ICD-11)에 등재되었다. 이 결정은 회의 참석자들의 만장일치로 이뤄졌으며, 게임이용장애는 '6C51'이라는 질병 코드를 부여받았다.

이에 따라 게임 관련 각계각층의 움직임도 기민해지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민관협의체를 발족해 현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혔고, 게임산업협회와 개발자협회 등을 필두로 하는 업계 관계자들은 기자회견과 반대 성명 발표를 예정했다. 하지만, 게이머층이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하고, 어떤 의견을 지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결정하기 쉽지 않다. ICD니 KCD니, 질병코드니 뭐니 하는 많은 개념들이 대중에게는 꽤 생소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기준이 서지 않은 견해는 쉽게 호도된다. '게임이용장애'의 등재가 정확히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떤 과정을 거쳐 실생활에 영향을 주는 단계에 이르는지를 알지 못한다면, 이슈를 그저 자신들의 원하는 방향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집단의 목소리에 휘둘릴 수 있다. 결국, 가장 급한 것은 게임 산업 종사자와 게이머층이 이번 사태에 대한 진실과 맥락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다.

이에, 게이머와 게임업계 종사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인벤에서는 WHO 총회와 '게임이용장애'의 질병분류 이슈와 관련한 여러 팩트들을 Q&A 형태로 정리해 보았다.


'ICD-11'이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ICD(The International Statistical Classification of Diseases and Related Health Problems)'의 정확한 용어는 '국제질병사인분류'이며, 사람의 질병 및 사망 원인에 대한 표준 분류 규정을 말한다. 최초의 ICD는 1900년에 규정되었으며, ICD-11은 2018년 6월 18일 개정되었고, 2019년 5월 29일에 최종 확정되는 11차판을 뜻한다.

어떤 증상이나 사인이 ICD에 포함될 경우, 의료적 차원에서 해당 증상을 규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게임이용장애'로 심각한 행동 장애가 발생했을 경우, 현재 기준으로는 ICD-10의 챕터5에 적힌 대로 '명시되지 않은 행동 장애'로 표기해야 하나, ICD-11이 적용될 경우 '게임이용장애'로 명시할 수 있다.


'ICD-11'은 언제부터 효력을 발휘하는가?

WHO 총회의 의결 사안은 2022년까지 각국에 권고된다. 즉, 이번 총회에서 '게임이용장애'가 질병으로 분류되었다 해서 바로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명시할 수는 없다. 또한, ICD-11이 권고된 이후에도 실질적인 질병사인분류는 각국의 기준이 있기 때문에 이 내용이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인 'KCD'에 등록된 이후에 대한민국에 적용된다. KCD는 5년 단위로 개정되며, 변수가 없는 한 이번 총회 결과가 실제로 적용되는 시점은 2025년이 될 전망이다.


ICD-11은 강제성이 있는 것인가?

앞서 설명했듯, ICD-11은 국제적으로 쓰이는 권고 기준일 뿐, 질병사인분류는 각국의 고유 기준을 따른다. KCD에 등재되기 전에도 여러 부처 간 협의를 거쳐 최종 확정하는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KCD에는 등재되지 않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WHO가 규정하는 '게임이용장애'는 어떤 것인가?




2018년 9월, WHO가 공식 홈페이지에 게시한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게임이 다른 관심사 및 일상 활동보다 우선도가 높은 상태에서 이로 인해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함에도, 지속적으로, 나아가 더 열중하게 되는 상황"

또한, 게임이용장애로 진단되려면 대상자의 행동 패턴이 개인, 가족, 사회, 교육 및 직업 등 중요한 영역에서 심각한 장애를 초래할 수준에 이르러야 하며, 적어도 이와 같은 문제가 1년 이상 지속되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즉, ICD-11의 내용이 KCD에 등재되고, 2025년이 되어 국내에 정식 적용된다고 해도 게임이용장애를 진단하려면 최소 1년 간의 진단 기간이 필요하다.

관련 링크: WHO 공식 홈페이지 '게임이용장애' 부분


게임이용장애의 질병분류 등재에 반대하는 주장의 근거는 무엇인가?

질병분류 등재 반대 그룹의 가장 큰 주장 근거는 '게임이용장애를 규정할 과학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게임이용장애'를 가장 먼저 제시했던 미국의 정신의학협회의 경우 WHO의 분류 방침에 대해 유보적 태도를 보였는데, 이유는 게임이용장애를 정의할만한 과학적 연구나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의 이장주 박사는 "'게임이용장애'는 현재 과학이 아닌 은유의 차원에 머문다"고 말하며, 게임이용장애를 설명함에 있어 독립적으로 사실을 명확히 밝힐 수 없고, 무언가에 빗대서 설명해야 하는 불완전한 개념이라고 주장했다.


2025년이 되고, KCD에 '게임이용장애'가 등록, 개정된다면 게임이용장애 치료 여부가 의무이력으로 기록에 남게 되는가?

현직 정신과의에게 확인한 결과 의무이력은 어떻게 하든 남게 된다. 다만 의무이력은 개인정보로 취급되고, 이를 열람할 권한은 본인과 본인의 권한을 인계받은 가족에 한하기 때문에 채용 과정 등에서 노출될 일은 없다.


이번 WHO 총회 결과가 통칭 '게임중독세' 과세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가?

사실, 어떤 특정 목적이 있는 '기금'이나 '부담금'의 명목으로 과세를 진행한 사례는 꽤 많으며, 이중에는 딱히 폐해가 될만한 근거가 없는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어 2003년 위헌판결을 받은 '구 문화예술진흥법 제19조 제5항'의 경우 공연 등을 관람하는 관객에게서 문예진흥기금 명목의 납입금을 받았으나 위헌 판결을 받았다.

결국, 게임장애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건강증진부담금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적법한 법제적 절차를 거치면 얼마든지 발효될 수 있는 사안이며, 실제로 이와 같은 과세를 해야 한다는 주장(손인춘 의원, 최도자 의원 등)도 있었다.

WHO 총회 결과가 곧 '게임중독세'로 이어진다는 것은 옳지 않다. 하지만 새로운 과세 법안을 발의하는 과정에서 근거로 사용될 가능성은 있다. 참고로 얼마 전, 보건복지부는 게임장애와 관련된 별도 과세에 대해 논의한 바가 전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 WHO 총회의 결과가 번복될 수 있는가?

추후 개정이나 WHO 자문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수정 혹은 재논의될 가능성은 존재한다. 사례로는 '동성애' 관련 항목이 있는데, 1990년 규정된 ICD-10 판에는 최초 동성애가 정신 장애의 일종으로 기재되어 있었으나, 2010년 개정판에서는 동성애 항목을 제거하고, F66항에 다음과 같은 문구를 명시했다. "성적 지향 자체는 장애로 여겨져선 안 된다." 이 말은 곧, 이미 규정된 ICD라 할지라도 추후 변동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 개정 후 ICD-10에 첨부된 문구


ICD는 국제 분류인데, 외국에 비해 우리나라가 훨씬 격렬히 타오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국내 산업 및 여가 분야에서 '게임'이 차지하는 비율이 외국에 비해 굉장히 높기 때문이다. '게임장애'를 다룬 논문 또한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편수를 발표했다.


실질적으로 게임업계 및 게이머의 삶은 어떻게 변하는가?

산업 관계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게임 = 질병'이라는 '프레임'이다. 사실상 WHO 총회의 발표 내용만으로는 눈에 띌 정도의 변화를 불러올 수는 없다. 하지만 '게임은 유해 콘텐츠이다'라는 프레임은 지금까지 '억지'로 여겨지던 많은 주장에 설득력을 실어줄 수 있다.

예를 들어 '게임의 폐해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검증하는 과정에서 기존에는 여러 사고사례를 참고해 설득력을 주어야 했지만, 이제는 '게임장애는 WHO의 질병사인분류에 포함되어 있다'라는 한 줄로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문제는 이와 같은 프레임이 실질적으로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사회적 협의를 구축하는 과정보다, 이권 집단의 주장 도구로서 쓰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게임이용장애 치료가 목적이다'라는 명분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단체들이 모두 순수히 게임이용장애 치료를 목적으로 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이와 같은 이권 집단이 득세하면, 당연히 이는 게임 산업 전체와 게이머층의 생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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