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오토체스와 'TFT' 이슈에 대한 단상

칼럼 | 정재훈 기자 | 댓글: 61개 |



'라이엇 게임즈'가 신규 모드를 발표했다. 칼바람 나락이나 뒤틀린 숲처럼, 기존의 '리그오브레전드'를 조금씩 틀어가며 조절한 모드가 아니었다. 이름하여 'TFT' 올 초, '도타2'의 유즈맵으로 등장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오토체스'의 룰을 딴 모드다. 이에 맞춰 '밸브'도 똑같은 룰을 따서 만든 독자 모드인 '언더로드'를 발표하고, 오토체스를 개발했던 거조다다 스튜디오는 독자 게임을 개발해 에픽 스토어와 계약을 맺었다.

발표 이후, 유저의 반응은 극과 극으로 갈렸다. 리그오브레전드의 새로운 게임 모드를 환영하는 게이머들이 있고, '라이엇이 또 베꼈다'라는 의견을 내놓는 게이머들도 있다. 리그오브레전드가 첫 선을 보인 2009년과는 다르다. 10년 전의 라이엇 게임즈는 만들어진 지 3년 된 스타트업 개발사에 불과했다. 그들은 '도타 올스타즈'의 초기 개발자 중 한 명인 '구인수(Steve Feak)'를 고용해 리그오브레전드를 만들었는데, 워낙 작은 회사다 보니 당시에는 카피니 베꼈니 하는 이슈가 크게 확대되지 않았다. 문제는 라이엇이 언더독에서 알파독이 되어버린 지금이다.

오토체스를 대중적으로 성공하게 한 '거조다다 스튜디오'는 10년 전의 라이엇과 같은 소규모 스튜디오고, 지금의 라이엇 게임즈는 10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공룡이다. 게이머로선 오토체스가 성공하자 몇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비슷한 룰의 게임을 들고나온 라이엇 게임즈가 곱게 보일 리 없다. 밸브의 언더로드도 사실 비슷한 사례이지만, 오토체스 자체가 '도타2'의 어셋을 활용해 만들어진 모드였다 보니 게이머 층의 시선은 라이엇으로 집중되었다.

라이엇 게임즈의 행보를 막을 법적 근거는 없다. 게임의 룰과 시스템은, 소설과 이야기에서의 클리셰와 같다. 하늘 아래 새로운 이야기가 없듯, 게임의 룰과 시스템은 마치 공공재처럼 모두에게 활용된다. TFT 또한 마찬가지다. 라이엇 게임즈를 비판하는 게이머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장르의 유행과 확산은 게임산업에서 너무나 자연스러웠던 일 아니던가. 하지만 이상한 것은 사실이다. 도의적인 부분에서 눈살이 찌푸려지는데도 그게 당연한 일이라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 TFT 발표에 대한 만평



■ 왜 게임산업에서는 '저작권' 주장이 어려운가?

이쯤 돼서 모두가 생각하고 있을 '저작권'에 대해 생각해 보자. 게임 산업에서 저작권과 관련된 이슈는 늘 법정을 뜨겁게 달궜다. 하지만 저작권 분쟁에서 원작 게임 개발사가 아류 게임 개발사를 상대로 승리한 경우는 꽤 드물며, 애초에 법적 분쟁으로 갈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게임의 시스템과 룰에 대한 문제가 법으로 전부 해결되었다면, 과거 '펍지'가 '에픽게임즈'를 상대로 냈던 고소 건도 그저 촌극으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게임 관련 저작권 소송에서 원작 게임 개발사가 승소한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 2015년 10월 판결 난 '킹닷컴'과 '포레스트 매니아'를 출시한 '아보카도 엔터테인먼트'의 소송건 1심이 있다. 이때 킹닷컴은 '포레스트 매니아'가 '팜 히어로 사가'를 표절했다고 주장해 소송을 진행했고, 일부승소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다. 킹닷컴이 1심에서 승소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저작권법이 아닌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에 의거한 것이다.

철저한 법적 대응으로 유명한 킹닷컴조차도 게임 시스템과 룰에 대한 저작권은 주장하지 않았다. 이마저도 2017년에 이르러 진행된 2심에서는 판결이 뒤집혔는데, 이때 아보카도 엔터테인먼트는 '킹닷컴이 지적한 유사성은 아이디어에 해당하기 때문에 저작권 침해라 보기 힘들다'라는 주장을 내세웠다.



▲ 팜 히어로 사가(좌)와 포레스트 매니아(우)

게임 저작권법에 대한 법정 분쟁이 이렇게 어렵다. 오죽하면 '블리자드'와 '밸브'가 저작권계의 생태계 교란종인 '도탑전기'를 상대로 낸 소송도 다 기각되었겠는가. 이는 저작권법에서 보호하는 저작물의 범위가 '창작성이 있는 표현'에 국한되기 때문이다. 미국 법계에서는 '아이디어'와 '표현'을 이분법으로 분류했는데, 이 중 '표현'만이 저작권으로서 보호받을 수 있다. '아이디어'에 대한 법적인 보호 근거가 없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2019년 1월에 '리그오브레전드'에 추가된 챔피언 '사일러스'는 도타2의 영웅인 '루빅'과 유사하게 상대 영웅의 기술을 빼앗아 사용하는 캐릭터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같은 소스코드가 사용된 것도 아니고, 루빅과 사일러스에 대한 표현이 모두 다르다. 비슷한 것은 '상대의 기술을 빼앗는다'라는 아이디어만이기 때문에 이를 가지고 저작권을 주장할 수는 없다. 도의적 시선이 아닌 법적 논리로 지켜봤을 때 라이엇 게임즈의 행보는 하등 문제 될 것이 없다.



▲ '아이디어'는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다.

결국, 현재의 게임 저작권 법체계 하에서 어떤 게임이 새로운 장르를 내세워 시장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해당 장르의 핵심적 룰과 시스템을 차용한 동종 게임들이 쏟아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저 조악한 완성도로 시스템만을 베끼면 '아류작'이 되고, 엄청난 퀄리티로 시스템을 정립한다면 해당 장르의 '종결자'가 될 뿐이다.

하지만 이 구조가 '옳은가?'라고 묻는다면 한 번쯤 고민할 여지가 있다. 라이엇 게임즈의 TFT 발표는 앞서 수차례 말했듯, 어떤 법적인 문제도 없고, 업계의 구조를 거스르는 행보도 아니다. 그런데도 수많은 게이머는 라이엇 게임즈의 발표에 불편함을 느꼈고, '대기업의 아이디어 표절'로 여기는 이들도 적지 않다. '당연한 일'이 다수의 불쾌함을 만들어낸다면, 이건 무언가 잘못되어 있는 것 아닌가? 라이엇 게임즈의 문제가 아니라, 그간 게임 산업을 이뤄온 관행과 상식, 나아가 법제적 테두리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 오늘날 게임 산업의 구조는 올바른가?

작금의 게임 산업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가정해보자.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두 명의 인디 게임 개발자 A와 B가 있다. A와 B는 둘 다 넉넉지 않은 자금으로 게임 개발을 시작했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뉘었다. 적은 비용을 들인 게임으로 성공을 거둔 A는 자신의 아이디어로 수익을 거둘 수 있었지만, B의 경우는 아이디어를 살릴 수 있을 정도의 게임을 만들지 못해 흥행에 실패했다.

A와 B의 아이디어는 곧 공공재가 되어 주류 게임 산업에 흘러들었고, 수많은 게임이 A와 B의 아이디어를 차용한 게임을 출시했다. 그중에는 B의 아이디어를 차용한 대형 개발사의 작품도 있었고, 큰 성공을 거두었다. A는 거부가 되었지만, B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몇 년 전, 스퀘어에닉스가 '드래곤퀘스트' IP를 활용해 새로운 작품을 발표했다. '드래곤 퀘스트 빌더즈'. 시리즈 팬들은 간만의 신작에 환호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고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봐도 게임이 모장의 인디 게임인 '마인크래프트'와 너무나 흡사했기 때문이다. 모장의 경우는 A의 사례에 적합하다. 마인크래프트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드래곤 퀘스트 빌더즈'로부터 딱히 위협을 받지 않았다. 창립자인 마르쿠스 페르손은 거부가 되었다.




하지만 이처럼 인디 게임으로서 성공해 이익을 거두는 사례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모장의 마르쿠스 페르손이나 언더테일의 토비 폭스가 워낙 널리 알려지다 보니 인디 게임 시장도 먹고 살 만해 보일 뿐, 세상에는 수도 없이 많은 인디 개발자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중 대부분이 B의 사례처럼 음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게임'이라는 미디어의 특성 때문이다. 미술이나 음악의 경우, 여러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 혼자서 작품을 해도 충분히 인정받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게임이나 영화 같은 대형 미디어는 상황이 다르다. 사람이 많고, 자본이 많을수록 게임의 퀄리티는 이에 정비례해 상승하고, 소비자층인 대중은 게임을 구매하면서 개발자의 상황을 크게 고려하지 않는다.




당연히 같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면, 거대 자본을 가진 대형 개발사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 해도, 게임의 퀄리티를 일정 수준 이상 갖출 개발비가 충당되지 않는다면 아이디어를 활용할 수가 없다. 낮은 퀄리티로 게임을 만들면 아이디어만 공개한 채 흥행 참패를 겪을 가능성이 크고, 운과 실력이 끝내주게 좋아 낮은 비용으로도 좋은 게임을 뽑아낸 극소수의 개발자들만이 성공한다.

이들에게 남은 방법은 아이디어를 들고 대형 개발사의 문을 두들기거나, 투자를 받거나, 킥스타터를 시작해 자금을 확보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개발사는 덩치가 커질수록 모험을 멀리하기 마련이다. 가만히 있어도 좋은 아이디어가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데, 검증되지 않은 단순한 아이디어에 자금을 투자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투자도 마찬가지이며, 몇 년 전부터 자본 확보 수단으로 주목받은 '크라우드 펀딩'은 여러 사건 사고가 터지며 요원한 일이 되었다.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하려면 어쩔 수 없이 아이디어를 내놓아야 한다는 것도 문제다.



▲ '브랜든 그린', 아이디어를 들고 개발사 문을 두드려 성공한 몇 안되는 사례

정리하면, 오늘날의 게임 산업 구조는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 해도 빛을 보기 굉장히 힘든 구조로 굳어져 있다. 모든 산업의 구조가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수밖에 없지만, 게임 산업은 유독 많은 이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포켓몬 디펜스'를 처음 만든 이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공공재가 되어버린 상황이 불편할 테고, '거조다다'는 그 아이디어로 대중적 흥행을 불러일으켰음에도 밸브와 라이엇의 등쌀에 밀려 불편할 것이다. 그리고 라이엇 딴에는 남들도 하는 것처럼 아이디어를 차용해 새 모드를 만들었는데, 온갖 욕을 다 먹고 있으니 민망할 따름이다.



■ '존중의 문화' 정도는 필요하다.

이번 일만 두고 보았을 때, '라이엇 게임즈'가 잘못을 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알파독인 라이엇이 언더독인 거조다다의 밥그릇을 빼앗은 것으로 보일 수 있기에 도의적 차원에서 곱게 비치지는 않지만, 앞서 말했듯 라이엇은 '남들도 다 하는' 업계 관행대로 게임을 개발했다는 논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거조다다 개발진과 만났다거나 했으면 아쉬움이 덜했겠지만, 어쨌거나 상황은 이미 지나가 버렸고 많은 이들이 각자 다른 관점에서 불쾌함을 느꼈다. 그리고 지금 상황으로서는 앞으로도 비슷한 일들이 수도 없이 반복될 것이다.

게임 산업 전반에 대한 법제적 시각의 개선과 시스템 구축이 필요한 시점이다. 앞서 말했듯, 저작권법은 아이디어와 표현을 분리해 표현만을 보호한다. 하지만 게임 개발에 있어 좋은 아이디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표현의 중요함을 넘어서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의 문화 미디어는 과거와 달리 겉모습과 표현으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중요한 핵심 가치는 보호받지 못하면서, 겉모습은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오늘날의 문화 산업에 걸맞다고 볼 수는 없다.




아이디어를 보호할 최소한의 법제적 장치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예를 들어 전체 매출의 극소량에 해당할지라도 아이디어 원작자에게 로열티가 지급될 수 있게끔 보장하는 장치가 존재하고, 아이디어 등록의 허들을 높여 무분별한 아이디어 등록이 이뤄질 수 없게끔 시스템을 구축해둔다면, 적어도 여러 사람이 지금보다는 얼굴을 펼 수 있을 것이다. 아이디어 저작권자는 소량의 액수나마 아이디어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고, 아이디어를 차용한 대형 개발사들은 소액이나마 정당한 로열티를 지급하기에 대중의 눈총에서 벗어날 수 있다.

혹은, 최소한의 존중이라도 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얼마 전 한국 서비스를 시작한 '패스오브엑자일'의 개발사 '그라인딩 기어 게임즈'는 게임을 개발하면서 '디아블로2'를 직접 언급하고, 영감을 얻었다고 말해 장르에 대한 존중을 표했다. 그리고 대중은 이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라이엇 게임즈도 TFT를 발표하면서 어떤 식으로든 장르에 대한 존중을 표했다면 대중의 반응이 지금보다는 더 낫지 않을까 싶다.




물론, 구체적인 제도의 정비는 여러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문제이며,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 또한 게임 산업의 많은 구성원이 함께 걸어가야 할 일이다. 위 문단에서 주장한 바는 그저 예시에 불과한 일이다.

라이엇 게임즈의 TFT 발표에 따른 이슈 자체는 해프닝으로 지나갈 수도 있다. 현재로써는 그저 도의적인 책임을 묻는 목소리를 내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 문제로 인해 현 게임 산업의 구조가 가진 모순이 보였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빛을 볼 수 있을 때, 게임은 다양해지고 더욱 확장될 수 있다.

그리고 지금의 게임 산업은, 어쩌면 확장과 경직이라는 두 갈림길 사이에 놓여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방향이 게임 산업을 전체적으로 더 좋은 길로 이끌지에 대한 정답을 정확히 아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다만, 그 필요성을 느끼는 이들이 많아진다면, 답은 알아서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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