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아쉬운 '뒷북'에 그친 자율규제 강령 개정안

칼럼 | 정재훈 기자 | 댓글: 25개 |




“게임업계에 대한 이용자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합리적인 자율규제 시스템을 마련함으로써, 이용자를 보호하고 산업은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건강한 게임 생태계 조성에 공헌하겠다”

2018년 11월, 황성기 의장의 각오와 함께 출범한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GSOK)가 3월 25일 자율규제 강령 개정안을 발표했다. 캡슐형 유료 아이템에 대한 개별 확률을 공개하고, 확률정보를 게임 내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제안된 현 강령에서 한 걸음 더 나가 유료 및 무료 요소가 결합된 인챈트 및 강화 콘텐츠의 확률도 공개 범위에 포함하며, 개인화 확률도 기본 확률값과 그 범위를 공개하도록 제안하는 내용이 담긴 개정안이다.

게이머에게 필요한 확률 관련 정보의 공개 범위를 조금이라도 더 늘리겠다는 취지이니, 문제될 것은 없다. 오히려, 평소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누구나 좋은 제안이었다고 말했을 거다. 다만 타이밍이 늦었다. 이미 확률형 아이템이 도마 위에 올라 썰려나가고 있는 지금, 새롭게 발표된 자율규제 강령 개정안은 그저 '뒷북'으로 보일 뿐이다.

'유료 요소와 무료 요소가 결합된 인챈트 및 강화 콘텐츠의 확률 공개'는 이미 작년 12월, 이상헌의원이 대표발의한 '게임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법률안'에서 다룬 내용이다. 해당 의안엔 정확히 유상으로 구매한 아이템과 무상으로 얻은 아이템을 결합하는 경우를 확률형 아이템에 포함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개인화 확률에 대한 기본 확률값과 범위 공개 또한 정확히 겹친다 보긴 애매하지만, 여러 차례 발의된 확률형 아이템과 관계된 의안에서 이미 포함되어 해석될 여지가 충분하다. 이 타이밍을 의식했는지, GSOK 측은 이상헌의원의 개정안 발의 이전인 이미 작년 11월에 강령 개정 논의를 재시작했다는 내용의 경과 설명을 첨부했지만, 4개월이 지난 지금 그다지 와닿지는 않는 부분이다.

'자율규제'라는 용어는 그 이전에도 널리 쓰였지만, 게이머층은 자율규제를 그리 신뢰하지 않는다. 설립 이전인 2018년 4월엔, 당시 게임산업협회 산하이던 자율규제평가위원회가 인증 마크를 배부한 여러 게임이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폭탄을 맞기도 했다. 아무리 제안을 하고 기준을 세워도 자율규제는 결국 전적으로 게임사의 양심에 기대야 하는 제도다. 한계가 뚜렷할 수밖에 없다.

GSOK의 설립 또한 이런 상황과 맞물려 있을 것이다. 게임산업 일각에 의존하지 않고, 중립적 위치에서 강령을 제안할 수 있는 독립 기구가 GSOK의 위치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만 봐서는 여전히 이전의 한계를 넘어섰다고 보긴 어렵다. 정기적인 모니터링 결과 보고와 자율규제 현황에 대한 분석은 바람직하지만, 확률 공개에 머무는 자율규제 이상의 무언가를 제안하지는 못했다. 앞서 말한 자율규제 자체의 한계 때문일 거다.

무엇 때문에 자율규제가 필요하고, 어떤 형태의 자율규제를 제안할 것인지에 대한 GSOK의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게임업계는 꾸준히 자율규제를 통한 게이머층과의 사회적 갈등 해소를 설파했지만, 확률 공개에 그치는 오늘날의 자율 규제는 게임 산업 생태계에서 제3자에 가까웠던 입법부의 개정안보다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어려운 상황이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입법 권한도, 행정 권한도 갖지 못한 기구로서 GSOK가 할 수 있는 건 제안 뿐이며 어떤 강제력도 가지지 못했다. 하지만, '설득'은 할 수 있다. GSOK는 다리가 되어야 한다. 게임업계의 한계와 바람을 알고, 게이머층의 불만과 요구 사항을 파악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자율규제안을 제안해야 한다.

GSOK가 명시한 기구의 설립 목적은 게임산업 진흥과 건전한 게임문화 확립을 위해 게임과 관련해 발생하는 제반사항 등을 자율적으로 해결해 게임 이용자들에게 보다 바람직한 게임 환경을 제공하기 위함이다. 게이머와 게임 산업을 아우르겠다는 좋은 취지지만, 지금의 소극적 행보로는 그저 공염불일 뿐이다.

공정함은 법으로 구축할 수 있다. 하지만, 게이머층과 게임업계의 공감대 형성과 감정적 갈등 해소는 '설득'이 필요하다. GSOK의 역할이 중요한 부분이다. 모두가 납득할 수 있으면서도 합리적인, 동시에 선도적인 자율규제안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GSOK의 행보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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