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대 김경일 교수, "'게임의 규칙, 바꾸면 '창조'가 된다"

게임뉴스 | 정재훈 기자 | 댓글: 2개 |



2019년 7월 27일, 서울 마포중앙도서관에서 진행된 게임 리터러시 교육 행사 '다함께 게임문화 TALK'에서 게임문화재단 이사장이자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인 김경일 교수의 강연이 진행되었다.

김경일 교수는 자신의 전공인 '인지심리학'적 측면에서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갔으며, '게임적 감각'이 아이의 생각을 어떻게 바꾸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지에 대해 논했다.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불행'한가?
가장 똑똑하고, 가장 부지런한 대한민국, '자살율'은 왜 높을까?

김경일 교수는 과거의 이야기로부터 강연을 시작했다. 2014년에, 김경일 교수는 '심리부검 센터'의 센터장으로 일했다. 주요 업무는 조금 우울하다. '자살한 사람들의 사인'을 밝히는 일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살에 대해 습관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죽을 용기로 살아라', '자살을 거꾸로 하면 살자', '왜 무책임하게 자살을 선택하는가?'

김경일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자살한 사람 중에, 책임감 없는 사람들은 적어요. 대부분이 어렸을 때부터 '어른스럽다'라는 말을 듣고 살아온 사람들이고, 일생 동안 책임과 의무, 일에 눌려 있던 사람들이죠.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 IQ는 전 세계에서 탑 급이다. 그리고 전 세계에서 두말할 것 없이 가장 부지런한 민족 중 하나다. 김경일 교수는 해외 심리학자들이 한국인들을 '행동 근로자'라 부른다고 웃음기 섞어 말하며, 남의 나라에 놀러가서 새벽 네시 반에 일어나는 민족은 한국인뿐이라고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데다 가장 부지런한 민족. 하지만 행복 지수는 낮다. 김경일 교수는 이 이유를 한 문장으로 압축했다.

"가장 똑똑하고, 가장 부지런하지만, 자기 인생의 변화는 만들어내지 못한 사람들이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장난'과 '일'의 상관관계
'규칙'이 최고의 가치이던 세상은 끝났다.

이어 김경일 교수는 하나의 표를 보여주었다. '장난 -> 놀이 -> 오락 -> 게임 -> 공부 -> 일'로 향하는 관계도였다. 김교수는 이 표가, 사람의 인지가 발달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행동 형태라고 말했다. 인간이 태어난 후, 지적인 능력을 갖추게 되면 '장난'을 치기 시작한다. 장난은 한 번만 재미있는 일회성이며, 대개 실없는 행동들이다.

'장난'에 사회성이 깃들면 '놀이'가 된다. 놀이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전제로 이뤄지며, 이 때부터 아이들은 사회성을 갖추게 된다. 실제로 '자폐증'을 겪는 아이들의 경우, 행동 양식이 장난에서 놀이로 넘어가지 않고 머무는 경우가 많다.




놀이가 반복되면, 그 중간중간에 '쾌락'에 대한 추구가 섞이기 시작한다. 이 때가 되면 놀이는 '오락'이 된다. 오락은 쾌락 본위의 행동들로 규칙성 없이 즐거움을 추구한다. 그리고 오락에 '규칙'이란 기준이 잡히면 그 때는 '게임'이라는 개념이 생겨난다.

특이하게도, 게임은 규칙을 추구하지만 동시에 규칙의 자유로운 변화가 이뤄진다. 스테이지마다 룰이 바뀌고, 새로운 규칙이 더해진다. '오락'에 몰입하게 되면 '중독'이라고 불리지만, 게임에 대한 몰입은 아직도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 이유가 이러한 '규칙성'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 규칙이 없는 게임은 없다. 그것은 '오락'일 뿐이다.

하지만, '규칙'이 핵심이 되어 버리면 그때는 게임이 아니다. 규칙이 바뀌지 않고 항상 동일한 행동의 개념. 이것들이 바로 '공부'와 '일'이며, 한국인들이 가장 잘 하고 싶어하는 행동임과 동시에 가장 잘 하는 행동이다.

오랜 기간, '규칙'은 세상의 가장 소중한 가치로 여겨졌다. 규칙 내에서 얼마나 효율적인 결론을 도출해내는가가 능력의 기준이 되었고, 규칙을 가장 잘 지키는 사람이 성실함의 표상이 되었다. 하지만 20세기가 끝나고 21세기가 시작될 무렵, '규칙'이 가진 가치의 절대성은 흔들렸다.



▲ '규칙'의 준수가 최고의 가치이던 시대는 끝났다.

AI의 등장 때문이다. 97년에 AI는 체스 챔피언을 꺾었고, 2011년에 퀴즈 챔피언을 네 배 차이의 점수로 이겼으며, 2014년에는 상대가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3분간 전화 통화를 하며 6개의 식당을 예약했다. 그리고 2016년에,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꺾었다. 그리고 같은 해, 마이크로소프트의 인공지능은 '렘브란트'의 그림 300점을 학습해 렘브란트보다 더 렘브란트스러운 그림을 그려내며 예체능에서마저 인간을 넘어섰다.

AI는 인간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생각하고, 훨씬 더 빠르게 결과를 도출하며, 휴식도, 잠도 필요하지 않다. AI 하나가 '규칙'의 세계에서 최고의 능력을 보이는 인간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일을 해낼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AI가 절대로 하지 못하는 한 가지를 인간은 할 수 있다. 바로 '규칙'의 변화다.



렘브란트와 피카소
'게임적 감각'은 무엇을 가능하게 하는가?

렘브란트는 유명한 화가이지만, 오늘날 가장 유명한 화가를 꼽으면 늘 첫손에 꼽히는 화가가 있다. 바로 '파블로 피카소'다. 많은 사람들이 피카소가 큐비즘의 대가임을 알고 있지만, 그가 그 독특한 화풍을 보이기 전, 꽤 오랜 시간동안 고전주의 회화를 그려왔음을 알지 못한다.

피카소는 자신의 화풍을 만들어내기 전 오랫동안 렘브란트와 유사한 그림을 그렸지만, 화풍을 바꾸면서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했다. 그리고 종래에는 렘브란트보다 더욱 유명한 화가가 되었다. 여기까지 설명한 김경일 교수가 말했다. "AI에게 아마 렘브란트의 그림을 1만 장 주었어도 피카소가 그린 그림을 그려내진 못했을 겁니다. 그럼 피카소와 AI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 나이에 따른 피카소의 화풍(이미지 출처: https://twistedsifter.com)

김경일 교수는 본인이 직접 했던 실험을 예로 들었다. 초등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수많은 물체 도형을 준비해 '마음에 드는 다섯개를 골라,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라'라고 주문했다. 70%의 남학생은 자동차를, 80%의 여학생은 집을 만들었다. 다음 반으로 찾아간 그는 규칙을 바꾸어 다섯 개의 물체를 고르라고만 한 후, 모두 고르고 나서야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으라 했다.

세번째 반에서는 만들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말해달라 한 후, 그 후에 수많은 물체 중 다섯가지 물체를 골라 방금 전 말했던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어 달라 주문했다. 그리고 다음 반에서는 옆 친구와 고른 물체를 바꿔 만들라고 말했다.

여기서 김경일 교수는, 첫 실험군이 된 반에서부터 세부 규칙을 조금씩만 바꾸어 나갔다. 하지만 아이들이 보여준 결과물은 굉장한 차이가 있었고, 세 번째, 네 번째 반에서 아이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은 세계 창의력 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대한민국 초등학교 3학년 생 대표보다도 두 배 가까이 높은 창의력 점수를 받아냈다.

규칙에 대한 조금의 변화가, 숨어있던 창의성을 일깨워낸 것이다. 이 '규칙의 변화'에 대응하는 감각을 가장 쉽게 느낄 수 있는 수단이 바로 '게임'이다. 김경일 교수는 매번 바뀌는 상대, 늘 다른 게임 상황 등이 어느 상황에나 적응할 수 있는 '게임 감각'을 키워주고, 이 게임 감각을 통해 아이들은 세상의 규칙을 바꿀 힘을 기를 수 있다고 말했다.




마무리 시간이 돌아오자, 김경일 교수는 주제를 살짝 바꿔 마지막 이야기를 시작했다.

고통을 경감시켜주는 진통제는 환부에 직접 작용하지 않는다. 진통제가 부위를 막론하고 효과가 있는 이유는, 정수리 부근에 있는 작은 기관인 '전측대상회'가 고통의 모든 것을 관장하기 때문에 이 '전측대상회'만 진정시키면 진통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채 10년이 지나지 않은 과거에, 학자들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가족과의 사별, 신뢰하던 이의 배신, 다른 이와의 갈등 등이 만드는 '마음의 고통' 또한 같은 '전측대상회'가 관장한다는 것을 연구를 통해 알아냈다. 말인즉, 사람으로 인한 고통과 칼에 찔리거나 뼈가 부러지는 외상으로 인한 고통이 결국 같은 선상에 있다는 뜻이다.

김경일 교수는 강연의 마지막에 "아이가 밖에서 사람으로 인해 상처를 받고 왔다면, 칼에 찔린 후 온 것과 같다는 생각으로 보살펴주세요. 실제로 그 정도로 아픈 상황입니다."라고 말하며 강연을 마무리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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