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진료, 연구부족" 전문가들 한 목소리로 '게임장애' 등재 우려 표현

게임뉴스 | 박광석 기자 | 댓글: 9개 |



게임과학포럼과 서울대학교 인지과학연구소는 금일(29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제2회 태그톡(T.A.G talk)- 'Gaming Disorder 원인인가 결과인가' 행사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WHO의 게임장애 질병 등재 추진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분석하고, 게임과몰입과 중독 등의 이슈에 대한 및 균형있는 시각에서의 재해석 및 대응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마련됐다.

행사에는 미 스텟슨 대학 심리학과의 크리스토퍼 J. 퍼거슨 교수,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윤태진 교수,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영상홍보전공 정지훈 선임강의교수, 그리고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이경민 교수가 참석하여 '게임 질병화'라는 하나의 주제를 두고 각자의 의견을 강연의 형태로 발표하고 서로의 의견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게임 장애, 공중보건의 문제인가 도덕적 공황의 문제인가?



▲ 크리스토퍼 J. 퍼거슨 교수

첫 번째 순서는 미국 스텟슨 대학 심리학과 크리스토퍼 J. 퍼거슨 교수의 발표로 꾸며졌다. 그는 도덕적 공황의 관점에서 게임에 관한 부정적 이슈들에 대해 분석하고, 게임 중독의 실질적 원인에 대해 고찰했다. 그는 게임 중독을 말하기에 앞서 일부가 게임을 과도하게 한다는 것은 인정할 필요가 있지만, 이때 이것을 단독 정신 장애로 볼 것인지, 사람들이 과도하게 하는 다른 활동들과 다른 것인지, 그리고 어떤 측면이 문제가 되는 것인지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퍼거슨 교수는 WHO의 게임질병코드 등록은 그 취지 자체는 좋을 수 있으나, 이러한 접근 방식을 취함으로써 야기될 수 있는 잠재적 문제들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때 예상할 수 있는 첫 번째 문제는 '잘못된 진단의 가능성'이다. 문제의 원인을 그저 게임에만 치중하다가 정신적, 그리고 심리적 문제들을 간과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가 심화하면 그저 게임을 좋아한다는 것만으로도 한 사람의 인생에 오점이 남겨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는 개개인의 자유 표현을 침해하는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그는 가장 최근에 진행된 연구 현황을 보면 병적인 수준을 보이는 게임 유저 비율이 1%에서 3% 정도에 그치며, 이는 정신적 문제를 우려할 정도의 대규모 전염병 수준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물론 이 경우에도 가장 큰 원인으로는 학업과 부모와의 견해 차이 등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꼽혔고, 게임은 그저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에 지나지 않았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많이 먹고, 성행위를 하고, 운동을 하거나 춤을 추는 것과 다르게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퍼거슨 교수는 게임의 문제성에 대한 연구는 이미 40년 이상 진행되고 있지만, 그 퀄리티는 좋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기에 임상적으로 검증되고 표준화된 결과 척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이야기 했다. 이때 사용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연구를 진행하기 전에 미리 '사전 등록'을 거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어떤 한쪽의 의견에 유리한 식으로 연구 결과를 조작하는 것을 미리 방지할 수 있다.

그는 끝으로 아이들이 게임을 많이 하는 것을 '중독'이라고 단정짓기보다 먼저 아이들의 주변에 '적신호'가 있는지 자세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나 우울증 증상이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지, '게임' 자체를 개별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적합한 문제 해결 방식이 될 수 없다.



"게임 중독, 아직 과학적 근거가 충분히 쌓이지 않았다"



▲ 연세대학교 윤태진 교수

연세대학교 윤태진 교수는 게임과몰입을 중독의 일종으로 분류하려는 WHO의 ICD-11에 대해 먼저 소개했다. 여기서 WHO가 말하는 게임 장애는 크게 정신, 행동, 신경발달적 장애로, 그 아래로 물질적인 중독으로, 그리고 더 세분화하여 '도박 중독'과 유사한 중독성 행동으로 인한 장애로 분류되어 있다.

미국 정신의학협회인 APA에서는 지난 2013년에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편람'을 통해 게임 장애를 처음으로 언급했으나, 당시에는 정식 질병으로 인정하기에는 과학적 연구나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질병코드 부여를 보류한 바 있다. 윤태진 교수는 이로부터 5년여의 세월이 흘렀으나, 여전히 질병코드 부여의 과학적 근거가 충분히 축적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는 해당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현재까지 발표된 국내외 1,500여 편의 논문 조사 결과를 이야기했다. 이 중에서도 구체적인 분석이 들어간 것은 약 700여 편에 그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한국에서 해당 주제에 대해 가장 많은 논문이 발표됐다는 점이다. 이외에도 아시아권은 정신의학의 비중이 굉장히 큰 것에 반해, 서구권에서는 심리학의 비중이 높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게임 중독을 개인에 대한 병리적 관점으로 보는 시각과, 상호작용적 문제로 해석하는 시각으로 나뉘는 것이다. 윤태진 교수는 이러한 차이가 발생하게 된 이유를 정확히 단정할 수는 없으나, 각각 어느 분야에 대한 재정적 지원이 많은가에 가장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차이는 '중독'의 개념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것에 있다. 중독이 존재한다고 미리 가정하고 어떻게 나쁜지, 어떤 효과를 미치는지 연구하는 방법과 '중독이 존재하는가?'라는 개념적인 질문에서부터 시작하는 연구로 나뉘는데, 우리나라에서 진행되는 연구는 90% 이상이 중독에 대한 개념적인 질문 없이 시작된다.

국내외의 논문들을 통해 알 수 있는 첫 번째 분석 결과는 개념 정의에 대한 학술적 합의 없이 진행되는 연구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실제 논문에 사용된 게임 중독 개념에 대한 용어들만 봐도 'Gaming disorder, Gaming addiction, Pathological gaming, Problematic game palying' 등 16개 가량의 용어들이 함께 사용되어 통일된 연구가 나오기 힘든 상황임을 짐작해볼 수 있다.

또 다른 결과는 '게임 중독의 진단 도구 및 척도가 상이하다'는 점이다. 단순히 각 논문에 표시된 '유병률' 결과만 살펴봐도 적게는 0.7%에서 크게는 15%까지 천차만별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특정 게임 혹은 게임 장르를 지목하여 진행되는 연구가 아직도 극소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사에 사용되는 질문의 수준도 '당신은 게임을 하십니까?'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게임의 순기능을 연구하는 경우엔 대부분이 특정 게임을 선정하고 연구를 진행했다. 특정 게임을 선정하는 경우 상대적으로 정교한 분류와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할 수 있게 된다. 순기능인지 역기능인지에 따라 게임을 특정하거나 특정하지 않는 차이가 발생한다는 것은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하는 문제다.

윤태진 교수는 끝으로 게임 중독의 학술적 근거는 여전히 명확하지 않은 상태이며, 이는 '의료화'의 전형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의료화를 주도하는 주장 제시 집단과 대응 집단 간의 경쟁 및 충돌이 계속되면서 학술적인 디테일들이 가려졌고, 정치 사회적인 맥락이 끼어들면서 논쟁이 산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게임 장르나 기술적 환경 변화에 무지한 연구자가 제한된 피험자를 대상으로 불완전한 진단 도구로 연구한 뒤, 그 결과를 '게임 중독이 심각하다'는 주장으로 연결하는 것이 지금의 게임 연구 스타일"이라며, 게임 연구의 한계는 게임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의 결과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정말로 게임은 뇌를 스폰지로 만드는가?



▲ 경희사이버대학교 정지훈 선임강의교수

경희사이버대학교 정지훈 선임강의교수는 '과연 게임은 뇌를 스폰지로 만드는가?’ 라는 주제를 통해 게임이용에 대한 긍정적 효능 및 이를 활용한 다양한 시도들을 조명하고, 게임이 놀이를 넘어선 학습, 훈련의 도구로써 활용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먼저 게임에 대해 부정적인 이슈가 퍼지게 된 일련의 사건들을 소개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모리 아키오 교수의 저서 '게임뇌의 공포'다. 이 책을 시작으로 게임이 뇌를 스폰지처럼 만든다는 괴담과 공포가 확대 재생산됐다. 간이 뇌파 측정기를 이용한 모리 아키오 교수의 연구는 뇌의 활동을 정확히 측정한다는 검증이 되지 않은 장치였고, 뇌파의 분석 및 해석 역시 논란의 여지가 많은 주장이었다.

물론 긍정적인 연구도 있다. 서울 아산병원의 강동화 교수와 연구진이 스타크래프트와 워크래프트 등 실시간 전략 게임(RTS) 장르의 게임을 경험한 사람들과 게임을 하지 않은 사람들의 뇌를 조사한 결과 게임 유저들의 시각, 지각 능력과 판단 및 추론을 담당하는 뇌영역의 활성화가 관찰됐다. 이외에도 게이머들이 비 게이머보다 신경들 간 연결성이 증가한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군사 훈련과 학교 교육,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게임을 활용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게임이라는 매체를 창조적으로 이용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일상에 크게 지장을 초래할 정도로 게임에 과몰입해서는 안 되고, 청소년의 정서 발달을 위해 연령 제한은 꼭 필요하며, 단순 폭력이나 노가다, 사행성을 조장하는 등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게임은 지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게임에 대한 '과잉의료화'의 한계와 위험



▲ 서울대학교 인지과학연구소장 이경민 교수

마지막 발표를 맡은 서울대학교 인지과학연구소장 이경민 교수는 게임의 '과잉의료화'에 주목했다. 게임 관련 의료화는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의도를 가지고 왜곡하는 과잉의료화라는 것이다.

그는 먼저 의료화의 개념을 소개했다. 의료화란 인간의 문제들을 질병으로 파악하고 병인론과 치료법의 관점에서 대응하는 경향으로, 비디오 게임에 국한된 것이 아닌, 현대 사회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수학 문제가 너무 어려워서 머리가 아프다고 느낀다고 가정해보자. '골치 아픈 문제다'라고 스트레스로 표현할 수 있는데, 이것을 '환자가 두통을 느끼고 있다, 적절한 방법으로 치료해야 한다'라고 보는 것이 바로 의료화다. 그리고 이것이 더욱 심화된 것이 바로 과잉의료화다.

이경민 교수는 의료화의 심화에는 세 가지 계기가 있었다고 말한다. 그중 첫 번째는 '임상적, 기술적, 심적 의료 기술의 발달'이다. 약이나 수술과 같은 의료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그 효용성이 입증되고, 그 근거로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의학적 관점을 갖는 것이 가장 유용하다고 인식하게 됐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유용성의 한계를 명확하게 하지 않고 너무 보편화시킨 것이 문제로 꼽힌다.

두 번째 계기는 '전문가의 독점'이다. 모든 사람이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독점적인 전문가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여기에 의존하는 태도를 보이게 됐다는 것이다. 여기서 독점적 전문가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의사다. 의료화는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닌, 20세기 초 미국에서부터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가진 이들이 독점권을 확보하고, 사회를 재구성한 것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세 번째는 '문제 해결의 상품 서비스화'다. 의료화의 가장 근본적인 추진력은 자본이기에 상품화와의 연결이 빠질 수 없다. 오래전에는 열이 심한 아이에게 차가운 물수건을 대고 푹 쉬게 해주는 방식으로 치료하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이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응급실로 이동한다. 대중들은 지금도 서비스가 더욱 효용이 있다고 믿지만, 사실 어떤 방식이 좀 더 효용성이 있는지는 쉽게 판가름할 수 없다. 오히려 병원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의인성 질환의 문제가 발생하여 없던 병이 생기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는 의료화를 극복하기 위해 전문가 중심주의와 소비자주의, 상업주의의 기존 인식의 모든 부분에서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독점적 전문가는 전문 지식을 가진 촉진제로 활용할 줄 알아야 하고, 의료 소비자의 위치에서 머물기보다 함께 참여하는 참여자가 되어야 하며, 상업화된 서비스에 기대기보다 연대와 협동이 더욱 우수할 수 있다는 점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결국, 모든 문제를 의료적 관점에서 보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 의료화의 위험성은 오래전부터 계속 강조됐다

이경민 교수는 세계적인 추세를 봤을 때 게임을 과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현재 해결책이 마련된 것이 아니고 특별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으니 이 문제를 체계적으로 전문가들이 모여서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때 그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질병코드의 오용과 남용이다.

질병코드는 자칫 보호자에게는 적당하고, 의료인에게는 편리한 수단으로 오용될 우려가 있다. 의료인 처지에서도 당신의 아이가 우울증에 걸렸고, 불안장애가 있다고 설명하는 것보다 '게임중독'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편하고, 부모도 그 원인을 자신이나 가정환경이 아닌 게임회사의 탓으로 쉽게 전가할 수 있다. 이러한 오용의 예는 기억 장애에서도 비슷하게 사용되고 있는 문제다.

이외에도 게임이 질병코드로 등재되면 목적 자체가 완전히 잘못된 활용이 발생할 수 있다. 의료인들이 비보험 치료의 인센티브를 얻기 위해 게임을 남용하는 등, 금전적인 문제가 연루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게임 중독에 대한 치료에 적절한 보험 인가가 없는 상황이므로, 앞으로 몇 년간은 의료인들이 쉽게 금전적 이득을 취할 기회가 생긴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끝으로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이는 이러한 이슈들이 현재 우리 사회의 움직임이라며, 의료화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과잉의료화가 우리 사회에 어떤 왜국을 불러올 수 있을 것인지 항상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하며 발표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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