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14년만의 출사표, 정준호 대표의 '린 더 라이트브링어'

인터뷰 | 원동현,강승진 기자 | 댓글: 42개 |



시작이 반이다. 많은 분야에 통용되는 격언이다. 좋은 시작 하나 만으로 100점 만점의 50점은 먼저 갖출 수 있다. 다이어트라면 첫날의 '다짐'이, 사람 간의 관계라면 '첫인상'이 이러한 '시작'에 해당할 것이다.

유저에게 게임의 시작은 '아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먼저 대중에게 공개되는 정보이기도 하고, 유저의 눈이 가장 자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부분이다. 아트의 세련미와 완성도에 따라 우리는 게임에 대한 기대치를 조정한다. 이러한 공식은 앞서 출시된 수많은 게임이 이미 증명해냈다.

그런 의미에서 펄사 크리에이티브의 '린 더 라이트브링어(Lyn the Lightbringer)'는 상당히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엔씨소프트의 '리니지2'를 비롯해 각종 기라성 같은 게임의 아트를 담당해 온 정준호 AD가 작품을 도맡았다. 단순한 직원이 아닌 개발사의 대표로서 더욱 매섭게 집중한 작품이다.

인터뷰 중 정준호 대표는 '아직도 현업에 남아있는 나는 행운아'라고 겸손한 소회를 밝혔다. 회사에게도 그에게도 또 한 번의 시작인 '린 더 라이트브링어', 그 이름과 같이 빛을 불러올 존재가 될 수 있을까?




▲ (좌) 펄사 크리에이티브 정준호 대표 (우) 넥슨 김민규 사업실장


Q. '정준호'라 하면 우리나라 게임업계를 대표하는 AD(아트 디렉터) 중 한 분이라 할 수 있는데, 첫 인터뷰인 만큼 그 시작점에 대해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90년대 만화가로 커리어를 시작하셨다가 게임 쪽으로 넘어오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정준호 대표(이하 정준호) : 저는 유년기를 일본에서 보냈습니다. 자연스레 산업 미술에 노출이 되며 이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죠. 사실 만화가가 되고 싶었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당시 한국의 출판 시장이 사양세를 탔던 시기기도 하고 만화가의 꿈을 계속 꾼다는 게 현실적으로 힘들었어요. 이후 게임에 눈을 돌리게 됐죠. 게임을 워낙 오래 즐겨오기도 했고, 몇 번 외주를 받은 적도 있어서 아예 몸을 담게 됐습니다.


Q. 만화와 게임,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참 많이 다를 거 같습니다. 초창기에 고생도 많이 하셨을 거 같아요.

정준호 : 하하, 지금이야 이런저런 정보도 많고 관련 지식도 접하기 쉬운 편이지만 당시에는 참 힘들었습니다. 90년대 초중반, PC 게임 업계가 픽셀 아트에서 3D 아트로의 과도기를 거칠 때 모두 이에 대한 이해도가 굉장히 부족했거든요. 전 콘솔을 주로 즐겨왔던 경험 덕에 조금 더 3D로 제작하기 편한 디자인을 할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지금이야 캐릭터 컨셉 아트를 하는 친구들에게 3D 제작에 대한 이해는 기본 소양으로 요구되고 있죠. 제가 당시 느낀 만화와 게임 디자인의 가장 큰 차이는 이 부분이었던 거 같아요. 게임 아트는 '3D로의 전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을 해야 한다'는 것.


Q. 상당히 쟁쟁한 커리어를 쌓으셨는데, 돌연 2015년에 펄사 크리에이티브를 창업하셨어요. 따로 이루고 싶으셨던 욕심이나 비전 같은 게 있으셨나요?

정준호 : 심각한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지만, 요즘 한국 내수 시장이 굉장히 어렵습니다. 10년 차 경력자들이 넘쳐나고, 20년 차 이상 실무자도 많은 시대가 됐어요. 우리나라 시장이 이런 개발자들을 다 수용할 수 있을 규모가 아닙니다. 결과적으로 많은 시니어급 개발자가 창업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이죠.

저는 운이 좋게도 상장사 위주로 경력을 쌓아왔지만, 저 역시 어느 순간 제 미래를 장담하지 못하겠더라고요. 솔직히 말해서, 창업의 이유는 비전보다도 생존의 문제였던 거 같아요. 제 기술로 이 산업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했던 것이 창업으로 이어졌죠.


Q. 그렇다면, 그로부터 몇 년 지난 지금 새로이 생겨난 비전이 있을까요?

정준호 : 저는 제 스스로 참 운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플랫폼이 콘솔에서 PC로, PC에서 모바일로 변화되는 시기를 거쳐 가면서도 아직 현업자로 남아있다는 건 제게 참 행운이죠. 앞으로 찾아올 또 다른 변화 역시 겪을 기회가 남아있다는 뜻이니까요.

저는 아직 비전을 바라볼 단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산업 전체를 이해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진 못하겠어요. 그저, 이 흐름 안에서 계속 일할 수 있다는 거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 다음 세대의 변화 역시 마주해보고 싶다는 정준호 대표


Q. 사실, 프로젝트 린(現 '린 더 라이트브링어')은 정준호 대표님이 참여한다는 것만으로도 화제를 모았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소식이 잘 들리지 않아 많은 팬이 의아하게 여겼던 거 같아요.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나요?

정준호 : 본의 아니게 신비주의가 되어버린 케이스에요. 정보를 한 번에 모아 터트리자는 생각을 갖고 있다보니 노출 기회가 거의 없었죠.

개인적인 공백 역시 꽤 길었습니다. 단편적으로 해외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가 있긴 했지만, 유저분들에게 직접적으로 노출할 기회가 없었죠. 그래서 정준호라는 이름은 이미 다 잊혀진 게 아닐까 걱정도 많이 했습니다. 이번에 '린 더 라이트브링어' 일러스트를 공개할 때도 아무런 반응이 없을까 봐 고민 많이 했어요. 그런데, 예상외로 관련 기사에 댓글이 많이 달려서 정말 기뻤습니다.


Q. 개발사의 대표로서 참여한 첫 작품인데 소감이 어떠신가요?

정준호 : 사실, 이전과 비교해서 큰 변화는 못 느꼈습니다. 스타트업인 만큼, 저 역시 실무를 엄청나게 했거든요(웃음). 실무자 출신 대표라면 아마 다 공감하겠지만, 이 회사와 작품은 '자기 거'잖아요. 열심히 안 할 수가 없죠. 정말 그 어떤 때와 비교해서도 가장 열정적으로 실무에 임했던 거 같아요. 매출도 아직 발생 안 한 스타트업 입장에서 경영 이슈는 오히려 크게 와닿지 않았습니다. 리소스 하나라도 더 만들고, 폴리싱 한 번이라도 더 하는 게 훨씬 중요하게 느껴졌죠.

그리고 제가 인게임 리소스부터 작업에 참여한 건 거의 14년만입니다. 리니지2 이후로 처음인 거죠. 아무래도 이 작품이 제게 특별하게 와닿을 수밖에 없습니다.




▲ 곳곳에 묻어나오는 그의 손길과 애정


Q. '리니지2'의 이미지가 워낙 강렬한 탓인지, 정준호 AD라 하면 정통 RPG가 먼저 연상되는 게 사실입니다. 창업 후 첫 작품으로 수집형 모바일 RPG를 택하신 게 약간 의외라고 느낄 팬이 많을 거 같아요.

정준호 : 창업을 결정했을 당시, 수집형 RPG 게임이 붐을 일으켰습니다. 매출 상위권 게임들이 대부분 비슷한 장르였죠. 또한, MMORPG가 모바일 환경에서 구현 가능할지에 대한 레퍼런스가 당시에는 없었어요. 그렇다고 PC MMORPG를 개발하자니, 스타트업의 자금으로는 개발비용을 충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수집형 RPG를 선택하게 된 배경에는 제 개인적인 욕심과 소신도 담겨있어요. 약 20년 전, 당시 캐릭터 컨셉 아트는 '종족' 혹은 '클래스' 디자인에 가까웠습니다. 유저에게 제공될 기본적인 아바타를 만들어내는 거였죠. 어떻게 보자면 하나의 개성을 갖춘 인물은 아니었어요. 앞서 말씀드렸듯, 저는 만화가가 꿈이었기에 독립적인 캐릭터 디자인에 대한 욕심과 열망이 있었습니다. 수집형 RPG는 그런 제 욕심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장르였던 거죠.


Q. '린 더 라이트브링어', 게임명이 참 독특합니다.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요?

정준호 : '린'은 게임 내 히로인의 이름입니다. 달을 뜻하는 영단어 루나의 불어 발음이 린이에요. 사실 달이라는 게 굉장히 이중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기호입니다. 달빛은 청순함과 희망의 상징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모든 걸 파괴할 수 있는 그로테스크함도 갖추고 있죠. 그런 이중적인 의미를 담아 히로인에게 린이란 이름을 붙였고, 부제를 라이트 브링어(빛의 인도자)로 정했습니다.




▲ 희망의 달빛인가, 절망의 달빛인가


Q. 공개된 게임 정보가 거의 없는 상황인데, 게임에 대한 소개 역시 부탁드릴게요.

정준호 : 저희 게임의 특징으로는 3가지를 꼽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첫 번째, 저희 게임은 글로벌 테이스트를 강조했습니다. 신선하고 퀄리티 높은 아트, 그리고 한 편의 깊이 있는 동화 같은 세계관을 갖추고 있죠.

두 번째로, 수집형 RPG로서는 특이하게도 실시간 전투 시스템을 채택했습니다. 보통 연출의 용이함을 위해 턴제전투를 선택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저희는 보다 다이나믹한 전투를 유저에게 선사하고 싶었어요. 최대한 유저가 느낄 스트레스를 줄이면서도, 게임의 전략성은 살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레이드, PVP 같은 콘텐츠를 실시간 유저 매칭을 통해 즐길 수 있습니다. 소위 '엔드 콘텐츠'에 정말 많은 공을 들였어요. 아울러 아직 확정은 아니지만, 게임 내 재화 등을 거래할 수 있는 거래소 시스템 역시 준비 중입니다.


Q. 기존 게임과의 가장 큰 차별점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정준호 : 수집형 RPG의 가장 필수적인 요소는 매력적인 캐릭터입니다. 유저들이 캐릭터에 대한 매력을 느끼고, 모으고 싶어져야 하는 게 기본 요건이죠. 저희의 전략은 별다른 게 아닌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겁니다. 이 부분은 사업적인 이야기지만, 수익 모델이나 전체적인 콘텐츠 구성에도 차별화된 부분이 녹아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 그의 뒤에는 독특한 화풍의 일러스트가 가득했다


Q. 확실히 '린 더 라이트브링어'는 캐릭터 일러스트 하나만으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개발 과정에서 유독 애착이 깊었던 캐릭터가 있을까요?

정준호 : 아무래도 주인공인 린과 초반 유저들을 견인할 레아라는 캐릭터에 대해 애착이 가네요. 둘 다 가장 먼저 만들어진 캐릭터이자, 마지막까지 폴리싱 과정을 거친 캐릭터입니다.

사실, 저희 캐릭터들은 이쁘다 혹은 멋있다로 표현하기 애매합니다. 너무 섹시하거나, 혹은 한쪽으로 편향된 캐릭터 디자인을 지양하고자 정말 다양한 캐릭터를 그려냈어요.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 등에서 등장할 법한 할아버지, 아줌마 캐릭터도 있습니다. 실제로 게임을 플레이해보시면 정말 보편적이지 않은 스타일의 캐릭터를 많이 보시게 될겁니다.

그리고 한 가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건 2D 일러스트와 인게임 3D 모델링이 거의 완벽하게 동일합니다. 애초에 일러스트 작업을 할 때부터 3D 모델링을 염두에 두고 시작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 (좌) 일러스트 버전 레아 (우) 인게임 버전 레아


Q. 그렇다면 클리셰를 피해가기 위해 유독 노력한 캐릭터도 있을까요?

정준호 : 음, 드윈이라는 할아버지 탱커 캐릭터가 떠오르네요. 거대한 창을 무기로 쓰는 캐릭터인데, 언제 유저들에게 선보일지는 모르겠습니다. 처음 저희가 디자인을 시작할 때도, '이런 캐릭터를 과연 누가 선택할까' 싶을 정도의 거부감이 들었어요. 사실, 의도적으로 클리셰를 피하고자 한 건 아니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해학적이면서도 개성 넘치는 결과물이 나온 캐릭터죠. 왜소한 할아버지 탱커(웃음).


Q. 개발 기간이 오래 걸린 건 아무래도 그런 욕심 때문일까요?

정준호 : 개발은 정확하게 2년 반의 시간이 소요됐습니다. 이 기간 동안 넥슨 사업팀과 참 많은 커뮤니케이션을 했어요. 개발을 시작한 지 1년이 지났을 무렵, 처음으로 넥슨에게 제품을 선보였어요. 그때 넥슨 사업부 쪽에선 지금의 시장 트렌드를 따라갈 퀄리티가 안 나온다고 냉철하게 지적을 해줬습니다.

많은 고민을 했죠. 주먹구구식으로 일단 출시를 할 것인가, 넥슨 측의 지적을 받아들이고 제대로 된 작품을 개발할 것인가, 결과적으로 저희는 1년 반 가량 걸려 개발한 프로토타입을 버렸습니다. 사실 스타트업으로서는 힘든 결정이었지만, 넥슨 사업팀이 여러모로 지원과 배려를 해줘 가능했습니다.



▲ 천신만고 끝에 탄생한 '린 더 라이트브링어'


Q. 사업적인 설계 역시 궁금한데, 주요 비즈니스 모델은 어떻게 잡으셨나요?

김민규 사업실장(이하 김민규) : 비즈니스 모델은 런칭을 할 때까지 계속 고민을 할 거 같아요. 어떻게 설계를 해도 유저분들에게 따끔한 지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함부로 '착한 BM'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거 같습니다.

정준호 : 일단 장르의 특성으로 자리 잡은 비즈니스 모델의 큰 틀을 바꾸지는 못할 거 같아요. 다만, 몇몇 모바일 게임들이 짧은 수명으로 반짝 수익을 내고 서비스 종료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저희는 최대한 오래 서비스를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성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거래소 역시 이러한 서비스 수명을 늘리기 위한 시스템으로 준비 중이에요.


Q. 글로벌 진출도 고려하고 계실 거 같은데, 혹시 기대중인 국가나 별다른 전략을 세워두셨는지?

김민규 : 여러 가지 전략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한국에 먼저 출시를 할지, 혹은 글로벌 동시 출시를 할지 계속 고민 중이에요.

개인적으로 히트와 다크어벤저3 글로벌 서비스를 담당하며 느낀 점이 해외 모바일 시장이 상당히 커졌다는 점이에요. 북미, 남미, 인도, 러시아 등 다양한 국가에서 모바일 게임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또한, 과거 상대적 약세로 취급받았던 동남아 시장 역시 크게 성장했습니다. 몇몇 해외 유저에게 게임을 선보였을 때 상당히 좋은 반응을 보이기도 했고, '린 더 라이트브링어' 자체가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 만들어진 게임인 만큼 여러모로 기대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 '린 더 라이트브링어'의 플레이 화면


Q. 혹시 이번 달에 만날 수 있을까요?

김민규 : 일단 연내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고, 아마 11월에서 12월 사이에 출시할 것으로 예상 중입니다. 이번 달은 다소 힘들 거 같아요.


Q. '린 더 라이트브링어', 게임 업계에 어떤 존재로 남을 것이라 예상하시나요?

정준호 : 개발사 대표 입장으로서 말씀드리자면, '린 더 라이트브링어'가 시장에 잘 안착해 스테디셀러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꿋꿋이 빛나는 게임이 되길 바라고 있어요. 단기적인 성과보다는 유저분들에게 오랜 사랑 받을 수 있길 희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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