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게임에 추억 보정 따위

리뷰 | 강승진 기자 | 댓글: 23개 |
'옛날이 좋았는데'

허리가 슬슬 구부러질 나이쯤에야 쓰는 말이라고들 생각하겠지만, 사실 이런 표현에는 나이는 큰 관계가 없습니다. 대개 삶이 팍팍하고 경제적인 상황이 좋지 않을 때 사람들은 무심코 좋았던 시절을 떠올리게 되죠. 실제로 그게 좋았던, 좋지 않았던 말이죠.

'무드셀라 증후군'이라고도 불리는 이런 현상은 과거의 아름다운 기억만을 떠올려 비관적인 상황, 감정을 해소하는 역할을 합니다. 흔히 추억 보정쯤이라고 할까요?

게이머들도 그렇습니다. 할 거 많고 복잡해져만 가는 게임의 홍수 속에서 '옛날 게임들은 안 그랬다, 그때 게임이 재밌었다'고 생각하죠. 시간은 되돌릴 수 없지만, 옛날 게임은 다시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해본 게임은 어떻던가요? 괜히 추억 보정이라고 하는 게 아니죠?

점프와 공격만 해도 재밌던 게임은 왜 그렇게 시시한지, 시뮬레이션 게임은 뭐 이렇게 불편한지. 그래픽은 뭐가 요렇게 허접한지.



▲ 여전히 재밌지만 불편하고 연출력이 떨어지거나
혹은 지금에서는 그 재미를 느낄 수 없기도 한 여러 추억 속 게임들

하지만 그럼에도 과거 게임에 대한 향수는 언제나 게이머들의 감성을 자극했습니다. 개발자들도 그때를 잊지 못해 옛 느낌의 게임 개발에 열을 올리기도 하고요.

파이널 판타지, 드래곤 퀘스트, 성검전설, 스타오션, 크로노 트리거, 발키리 프로파일 등 수많은 명작을 선보였던 스퀘어 에닉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자사의 작품을 오마주한 JRPG 시리즈를 여럿 출시했죠.

하지만 어디까지나 좋은 추억만이 아니라 보정 불가능한 불편함까지 복원했습니다. 이런 게임들은 그저 옛것이 얼마나 낡았는지를 깨닫게 하는 매트릭스 속 빨간약이었던 겁니다.



▲ 진실을 마주하기 전에는 다들 아름다운 추억 속에 산다

추억과 현실 사이에서 제대로 된 중간 점을 찾은 건 옥토패스 트래블러였습니다. HD-2D라고 불리는 3D 아트 기술은 2D 도트 디자인의 인물과 3차원 배경을 제대로 그려냈습니다. 게임은 광원 효과 등이 더해지고 슈퍼 패미컴 시대쯤의 스프라이트 그래픽을 HD화해 어색하지 않게 옛 모습을 구현했죠.

JRPG의 핵심인 전투는 스퀘어 에닉스의 고전 명작들의 것을 제대로 오마주했고 여러 복잡한 시스템을 아우르며 새로운 형태로의 진화를 이뤘습니다. 요는 익숙하며 깊이 있되, 불편하지 않고 낡지 않은 것이었죠.



▲ 고전적인 느낌을 현대적으로 살린 것으로만 따지면 비길 게임이 없는 옥토패스 트래블러

닌텐도 다이렉트를 통해 공개된 신작 프로젝트 트라이앵글 스트래티지(Project TRIANGLE STRATEGY)는 옥토패스 트래블러를 이끌었던 아사노 토모야의 11 BD가 다시 한 번 옛것의 현대적 복원을 알린 게임입니다. 다른 점이라면 옥토패스 트래블러가 JRPG를 되살렸다면, 이번에는 SRPG쯤으로 불리는 택티컬 RPG를 현대적으로 구현한다는 점이죠.


게임 공개와 함께 데모 버전이 등록된 트라이앵글 스트래티지의 전투는 이쪽 장르에서는 손꼽히는 명작 전설의 오우거 배틀과 택틱스 오우거. 이른바 오우거 배틀 사가 게임을 생각하면 될 듯합니다. 너무 예전 게임이라고 생각되면 이쪽 시리즈를 개발하다 판권 인수와 함께 스퀘어 에닉스에서 게임을 만든 마츠노 야스미의 파이널 판타지 택틱스를 떠올려도 되고요.

뭐 둘 다 안 해봤다면 이점을 생각하고 이해하면 편할 것 같네요. 랑그릿사나 파이어엠블렘, 넓게는 슈퍼로봇대전까지로 대표되는 평면SRPG와는 달리 고저차에 대한 이점, 복잡한 턴 개념, 날씨, 그리고 방향을 신경써야 한다는 점을요.



▲ 느낌은 옥토패스 트래블러의 그것과 같다



▲ 대신 전투 파트는 그리드로 구분된 택티컬 RPG

예를 들어 활을 든 원거리 캐릭터가 고지에서 낮은 지역을 공격할 경우에는 보다 쉽게 적을 공격할 수 있지만, 반대로 낮은 곳에서 높은 곳을 공격하는 데는 패널티가 붙고 높이에 따라 아예 공격이 불가능하기도 합니다.

여기에 캐릭터마다 행동이 끝나면 전후좌우 네 방향 중 한 방향을 바라보게 되는데요. 그 방향에 따라 전투 양상이 달라집니다. 뒤를 잡히면 크리티컬 피해를 입죠. 그렇다고 단단한 탱커형 캐릭터로 마냥 길을 막아서기도 어렵습니다. 제각각인 턴이 문제거든요.

기본적으로 캐릭터에 주어진 능력에 따라 순서가 결정되는데 이 턴이 캐릭터별로 따로 결정됩니다. 게임 중간 스킬이나 피해에 따라 공격 순서가 시시각각 변하며 이를 고려한 플레이를 더욱 어렵게 만들죠. 약한 마법사 캐릭터를 잠시 전진했다가 순식간에 맵에서 지워지는 일은 그리 낯선 광경이 아닙니다.

더불어 이번 체험판에서는 플레이어가 쉬지 않고 적의 증원을 맞아야 하도록 했죠. 좁은 길목에 자리잡고 한 명씩 쓰러트리는 전술을 펼치지 못하도록 한 겁니다. 흔히 잡몹 수준이어야 할 적 일반 병사도 공격 몇 번에 플레이어 캐릭터를 짓이겨버리는데 위험도가 높은 공격적 플레이가 필요하단 뜻입니다.



▲ 공격 후 방향과 적과의 거리를 제대로 신경 쓰지 않으면



▲ 아군 주역이라도 순식간에 전장 이탈

하지만 적들에게 유리함을 주는, 불합리할법한 지형과 턴 개념은 조금만 바꿔 이해하면 플레이어에게도 이점을 제공합니다. 고지대에서 적의 공격 방향을 막고, 적을 일격사하는 함정을 활용하거나 적과 아군의 사정거리를 재며 최소한의 자원으로 최대한의 피해를 주는 거죠.

아군이 적을 둘러싼 상태라면 새로운 캐릭터가 공격할 때 주변에서 추가타를 넣기도 하죠. 또 궁수, 얼음 마법, 화염 마법, 기병계, 암살자(게임에선 철학자, 스파이 같이 세계관에 맞는 직업으로 등장합니다) 등 전혀 다른 특징을 가진 캐릭터를 어느 장소에 배치하고 공격하느냐느도 전투 양상을 뒤바꾸는 요소고요.

전략(Strategy)이라는 제목처럼 게임은 그저 레벨 몰아준 캐릭터에 이속 버프를 잔뜩 달아주고 적을 쓸어버리는 학살극이 아니라 캐릭터의 직업과 특색, 지형과 관계를 고려하는 택티컬 RPG 그 자체인 셈입니다. 플레이어의 전술을 극도로 살릴 수 있도록 하는 요소들로 가득하죠.

이런 게임의 전략에 시각적으로 빛을 내는 건 옥토패스 트래블러에서 보여주었던 HD-2D입니다. 인게임 캐릭터는 흔히 말해 도트가 튀는 모습의 픽셀 그래픽처럼 보이지만, 고해상도로 구현되어 있고 3D로 구현된 배경은 게임의 지형과 기상 상태를 더욱 그럴듯하게 확인하도록 돕습니다.



▲ 함정을 발동시켜 적 다수를 제거할 수 있다



▲ 냉기 공격으로 땅을 얼려버리면



▲ 이동력과 회피력이 둔해지는 지역으로 바뀌어 적의 공세를 늦출 수 있다






▲ 2D 감성과 화려한 그래픽의 절묘한 조합은 이번에도 여전

브레이블리 디폴트나 옥토패스 트래블러 등 아사노 토모야 팀이 보여준 게임은 언제나 짜임새 있는 시스템과 비교해 비교적 허술한 스토리와 서사에 아쉬움이 쏠려있었습니다. 일단 베타 테스트를 통해 공개된 두 챕터를 통해 그런 부분도 나름 신경 쓰고 있다고 알 수 있었고요.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Benefit, Moral, Freedom이라는 세 개의 가치관이 바뀌는데 이를 통해 이야기의 분기가 결정된다는 게 초기 공개된 내용이죠. 이번 베타 테스트에서는 아직 이 부분은 변화까지는 제대로 확인하기 어려웠지만, 적어도 Voting 시스템만은 제대로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Voting. 말 그대로 투표 시스템쯤인데 이번 테스트 버전에서는 스토리에 따라 롤랜드 왕자라는 인물을 넘길지, 아니면 지킬지를 주인공 동료들이 직접 투표로 결정하게 됩니다. 기본적으로는 동료들은 각각의 신념에 따라 투표 결과를 미리 상정해두고 있죠. 주인공이 직접 대화로 이들을 설득하면 어느 쪽에 투표할지 결과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 플레이어의 가치관이 반영되는 대화

물론 이들과의 대화로 오히려 플레이어가 설득당할 수도 있죠. 아무래도 희소해져 가는 자원을 둔 전쟁이라는 스토리. 그리고 그에 맞게 물들은 인물들의 가치관 자체가 옳고 그름을 딱 나눠 판단할 수 없기에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며 감화된다는 게 그 이유겠죠. 이렇게 결정된 투표는 향후 전투와 스토리에 큰 변화를 가져오고요.

또 주인공을 중심으로 하는 주요 스토리라인 외에 맵 곳곳에 다양한 이야기 요소를 흩뿌려뒀습니다. 적군의 동태나 핵심 이야기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전지적 시점에서 관찰하는 데요. 꼭 보지 않아도 되도록 만들어졌지만,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드라마 형태의 이야기 전개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다만, 분기 요소와 동료와 적이 바뀌는 시스템은 이미 트라이앵글 스트래티지가 오마주한 1995년 작 택틱스 오우거에도 정말 처절하게 담겨있었습니다. 여기다 얼기설기 엮인 것처럼 보이는 스토리도 사실은 그저 커다란 몇몇 갈래 정도에 대화가 조금 바뀌는 수준일지 모르고요. 사실 워킹 데드도 처음에는 다 기억한다길래 다들 우리 선택을 정말 기억하는 줄 알았잖아요? 트라이앵글 스트래티지가 2022년에나 출시될 예정이니 얼마나 정확하게 구현될지는 더 기다려야겠죠.



▲ 왼쪽 상단 왕자를 돌려주자는 의견 3:2로 우세한 상황



▲ 설득을 통해 한 명이 고민해보는 단계로 바뀌며 양쪽 주장 인원이 2:2로 갈렸다



▲ 그리고 투표를 통해 이야기가 결정된다

뭐 이런 사지 않아도 될 걱정거리 정도가 몇 있을 뿐이지 순수하게 이번 베타 테스트가 보여준 면만 두고 보자면 트라이앵글 스트래티지는 택티컬 RPG의 완벽한 부활을 예고한 바나 다름없습니다.

어중간하게 다시 나와 원작의 명성에도 누를 끼치는 추억 팔이가 아니라, 보정 따위 없이도 완벽하게 추억 속 모습을 다시금 돌이켜볼 수 있는 완성된 게임으로 말이죠. 그리고 부디 그런 모습으로 최종 출시까지 잘 가다듬길 바랍니다.

  • 플레이할수록 몰입도를 높이는 이야기와 구성
  • 보유 캐릭터 역할을 중심으로 한 전략 깊이
  • 이해가 되는 적들의 움직임과 도전적 난이도
  • 다양한 분기와 함께하는 다회차 플레이
  • 여전히 빛을 내는 HD-2D 그래픽
  • 진입 장벽이 높은 초반 이야기 구성
  • 간혹 편의적으로 진행되는 듯한 이야기
  • HD-2D에 집중해 아쉬운 세부 연출
  • 지나치게 대화 위주로 몰아치는 텍스트
  • 간혹 발생하는 프레임 드롭

리뷰 플랫폼: Switch (출시 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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