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없는 PS5, RTX 3080... 왜 이리 구하기 힘들까?

기획기사 | 정재훈 기자 | 댓글: 23개 |



얼마 전, PS5의 새로운 예약 구매 일정에 대한 알림을 받았습니다. 보나마나 힘겨울게 뻔하니 좀 더 두고보자고 버티고 있지만, 사실 언제쯤 이 품귀현상이 끝나게 될지는 예단하기 어렵습니다. 작년부터 이어진 전자 제품의 품귀 현상은 이제 만성이 될 정도니까요.

엔비디아의 그래픽 카드인 RTX 30번대의 품귀 현상은 퍽 충격적일 정도였습니다. COVID-19의 영향으로 충분한 물량이 공급되지 않았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으나, 출시 후 반년이 지난 지금도 가격이 오르고 물건이 부족하다는 건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들보다 앞서 출시된 닌텐도의 신형 콘솔 '스위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초도 물량은 큰 문제가 없었고 시간이 년 단위로 흐르면서 물량 공급이 꽤 이뤄지긴 했지만, 스위치도 출시 이후 지금까지 늘 아슬아슬한 재고 유지를 이어왔습니다. 일단 사고자 마음 먹었을 때 바로 살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없다는 것 부터가 원활한 공급이 이뤄지지 못한다는 거죠.

이유에 대해선 여러분들도 어느정도 어림짐작 하고 계시리라 봅니다. COVID-19는 우리에게서 2020년이란 긴 시간을, 누군가에겐 소중한 이를 앗아갔고 인류 문명 전체에 심대한 타격을 입힌 재앙이니 말이죠. 하지만, 'COVID-19때문에 그렇다'라고 한 문장으로 표현하기엔 부족한 것도 사실입니다. 아니, 그보다 훨씬 복잡한 문제들이 얼기설기 얽혀 있는 모양새죠.

인류가 COVID-19를 정복한다면, 전자제품의 공급도 다시 원활해질 수 있을까요? 아니면 그와 상관 없이 지금과 같은 어두운 시절이 이어질까요? 혹여나 COVID-19의 해결이 늦어진다 해도 품귀 현상의 완화가 이뤄질 가능성은 없는 걸까요? 오늘날 이 문제가 일어나게 된 복합적인 원인들을 하나씩 말해 볼까 합니다.



원인 1) 폭등해 버린 수요, 도무지 감당할 수가 없다.

"COVID-19로 공장 가동에 지장이 생기고, 이 때문에 충분한 물량이 공급될 수 없다"

아마 현 사태에 대해 가장 쉽게 쌓아올릴 수 있는 논리일 것입니다. 실제로 COVID-19는 제조업에 큰 영향을 주긴 했습니다.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보면, 2020년은 최근 몇 년중 가장 미세먼지가 적은 한 해였습니다. 중국의 공장 가동률이 떨어졌다는 뜻이죠. 중국은 세계 제조업의 허브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막대한 덩치를 자랑합니다. 그들이 공장을 쉬면 당연히 물량은 줄어들기 마련이죠.

하지만, 공장 가동률의 저하가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 하긴 어렵습니다. PS5가 출시되고 2020년이 마무리되기 전까지, 소니는 총 450만 대의 PS5를 판매했습니다. 이는 전세대 기종인 PS4가 비슷한 기간에 판매한 420만 대를 넘어서는 수량이고, 결과적으로 PS4보다 30만 대를 더 판매했다는 뜻이죠. 원하는 만큼까지는 아니지만, 평시였다면 공급이 어려운 정도는 아닙니다.

문제는, 1년 새 어마어마하게 폭증한 수요입니다.



▲ COVID-19로 인한 영향에 대한 응답.(출처: Control Engineering 조사 자료)

미국의 리서치 전문 기업 'Gartner'의 조사에 의하면, 2020년 한 해 PC 판매량은 전년 대비 4.8% 증가한 2억 7,500만 대를 기록했습니다. 연말 연시로 기간을 좁히면 따져보자면 10% 이상 증가한 수치를 보이고 있죠. 이는 2010년 이후 가장 높은 성장률이며, 최근 몇 년간 감소세로 이어지던 PC 판매량을 단번에 역전시켰습니다.

COVID-19로 인한 가정용 전자제품에 대한 수요는 일반적인 '증가'의 단계를 넘어섰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보편화되며 실내 엔터테인먼트 관련 기기로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까진 누구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게 누구나 예상하던 수치보다 훨씬 높았을 뿐이죠.



▲ 작년 3월 기준 미국의 전자 제품 판매량 추이(출처: Criteo.com)



▲ 프랑스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출처: Criteo.com)

이전까지 게임 콘솔은 게이머들에겐 관심의 대상이 되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겐 전혀 매력적이지 않은 기기였습니다. 하지만 실내 엔터테인먼트 수요가 급증하면서 기존의 비게이머층이 게임 콘솔에 흥미를 갖게 되었고, 이는 원래대로라면 불가능했을, 점진적 시장 확대가 아닌 폭발적 시장 확대를 불러와버렸습니다. 더불어, 재택 근무 체제가 갖춰지면서 앞서 말한 PC의 수요도 덩달아 급증했죠.

정리하자면, 공장 가동의 난항으로 인해 빚어진 물량 공급분의 부족은 분명 영향을 주었지만, 결정적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상대적으로 폭등해 버린 수요를 감당할 절대 물량이 부족했던 거죠. 그래픽카드의 경우 수요 예측의 실패도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2020년 이전까지 PC 판매량은 전 세계 단위에서 점차 감소중이었고 스트리밍 게이밍 시장이 대두되는 와중이었기 때문에 예측 실패는 설명 가능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RTX 3080은 구글 트렌드 상으로 RTX 2080 시절보다 50% 가까이 증가한 트래픽을보였습니다. 엔비디아가 이 정도로 수요가 급증하리란 생각은 하지 못했을 뿐이죠.

하지만, "그럼 공급은 괜찮은데 수요 폭증이 문제인건가?"라고 결론을 내리자면 그건 또 아닙니다. 여기엔, 또 다른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습니다.



▲ 근 15년 간의 PC 판매량 변화 (출처: Gartner 조사 자료)



원인 2) 반도체 칩셋 물량 부족 사태의 심화, 게임 산업에 직격탄으로

반도체 산업을 큰 틀에서 살펴보면, 전문 기업은 세 종류로 나뉩니다. 생산과 설계를 모두 수행하는 'IDM(Integrated Device Manufacturer)', 설계만 전문적으로 하는 '팹리스(Fabless = Fabrication+less)', 그리고 팹리스 업체로부터 주문을 수주받아 위탁 제조를 전문적으로 하는 '파운드리(Foundry)'로 나뉩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삼성의 경우 설계와 생산을 모두 하는 IDM이면서, 동시에 외주를 받는 파운드리 사업부를 운영하고 있죠.

그리고 오늘날 반도체 산업은 IDM이 점점 사라지고 팹리스와 파운드리의 양분 구조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잘하는 영역에 집중하는게 나쁜 일은 아닙니다. 당장 파운드리 공룡인 대만의 TSMC는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라는 사업 기조를 바탕으로 절대 설계에 손대지 않고 위탁 제조만으로 전 세계 파운드리의 절반 이상을 감당하고 있죠.



▲ 세계 최대 파운드리인 대만의 TSMC

하지만, 이 파운드리 기업들은 비온 뒤 대나무마냥 쑥쑥 만들어지는게 아닙니다. 오랜 기간 기술력을 쌓아 와야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기술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오늘날 내노라 하는 파운드리 기업들은 퍽 오랫동안 생산 노하우를 쌓아온 기업들이 대부분입니다. 달리 말하면, 세계적 단위에서 급격하게 공급을 늘리긴 어렵다는 겁니다.

그리고 지금, 파운드리 기업들은 과부하가 걸려 버렸습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2020년 3분기를 넘어서면서 경기 회복에 대한 희망적 전망과 5G 인프라의 확대, 자동차 기업들의 판단 미스, 재택 근무와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상화 등으로 전 세계 반도체 수요가 폭증했고, 파운드리 기업들은 이 물량을 소화하는 것으로도 벅찬 지경입니다. 지금 주문해도 최소 반 년 이상은 기다려야 칩셋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 공공연히 떠도는 상황이죠. 여기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기후 이변이 불어닥쳤습니다.



▲ 기후 이변으로 택사스에 몰아친 한파로 오스틴의 삼성 파운드리는 한동안 가동을 중단했습니다.
(출처: Texas Monthly)

텍사스 오스틴에 위치한 삼성 파운드리 공장이 지독한 한파와 정전으로 한동안 가동을 중단했고, 일본에 위치한 파운드리는 지진으로, 대만의 파운드리 또한 잇단 지진과 심한 가뭄으로 생산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반도체 생산에는 물과 전력의 안정적 공급이 필수이기 때문이죠. TSMC는 최근 대량의 물을 구매할 정도로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AMD의 리사 수 회장도 반도체 부족 현상이 몇 달은 더 지속될 것이라 말한 바 있습니다. 게이밍과 컴퓨팅에 필요한 7nm 이하의 미세 공정은 TSMC와 삼성만 소화할 수 있다는 점도 이유의 하나죠.

여기에 미국의 전 정권인 트럼프 정부의 대중 무역이 강경화 일변도로 이뤄지면서 중국 최대 파운드리인 SMIC도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국경을 넘어선 전 세계 반도체 수요가 폭등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생산량에 타격이 온 겁니다. 초도 물량 자체는 충분한 칩셋을 확보했기 때문에 생산 자체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문제는 초도 물량 이후 지속적으로 공급되어야 할 물량이 반도체 칩의 부족으로 더뎌지고 있는 현 상황입니다. 결과적으로, 지금과 같이 찔끔찔끔 물량이 흘러나오는 형편이 되어버린 거죠.



▲ IT 업계의 큰누나 AMD의 '리사 수' CEO는 지난 1월, 반도체 부족이 앞으로도 수 개월 지속될 것이라 말한 바 있습니다.



원인 3) 자본주의의 함정, 물건이 다 어디로 가는거지?

그리고, 하나의 이유가 더 있습니다. 이건 생산 체계의 문제와 관계 없이 세계의 기준이 되어버린 자본주의 시장 구조의 부작용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이죠. 몇 년 전, 가상 화폐로 인해 채굴 붐이 일어나면서 GTX 10번대 그래픽 카드가 이 채굴 집단에 의해 대량으로 사재기당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일명 '채굴 대란'으로 IT 업계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사태죠.

노동 소득 대비 금융 소득의 가치가 점점 높아지면서, 여러 사람들이 약간 엇나간 방향으로 머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큰 틀에서 보면 자본주의적 시스템에 부합하기 때문에 잘못되었다고 콕 찝어 말할 수는 없으나 인도적 차원에선 분명 문제가 있는 행태죠. 지금도 중국에서는 생산 공장 앞에 대기하고 있다가 그래픽 카드를 수천장씩 받아가는 채굴장들이 존재합니다. 당연히 일반 사용자들에게 흘러들어갈 물량은 줄어들 수밖에 없죠.



▲ 채굴장의 모습, 중국 내엔 이런 '채굴 허브'가 굉장히 많습니다.(출처: usethebitcoin.com)

엔비디아는 이를 해결하겠답시고 채굴 전용 그래픽 카드를 발표하며 기존 모델의 생산은 그대로 유지할 거라 말했지만 이를 믿는 이들은 별로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공급 부족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채굴 전용 그래픽카드를 위한 칩셋 생산 라인을 별도로 확보할 수 있겠냐는게 의심의 이유죠. 게다가 이렇게 채굴용으로 쓰인 그래픽카드들은 간혹 재포장 후 신품으로 판매되는 등 또다른 문제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전자제품 시장 전체의 신뢰도를 낮추는 매우 좋지 못한 일입니다.

조금 다른 문제도 있습니다. 바로 '구매 봇'의 문제죠. 오픈 마켓이 생기고, 스캘퍼(Scalper, 영어권에선 암표상을 뜻하는 단어, 국내에선 '리셀러'로 표기하곤 합니다.)에 대한 규제 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지금, 한정된 물건을 구입해 프리미엄을 붙여 판매하는 행위는 대다수 국가에서 합법적 영역에 들어갑니다. 지금 여러분이 볼 수 있는 100만 원에 가까운 PS5나 200만 원을 넘어서는 RTX 3080이 그 결과죠. 생산 차질로 인한 공급량 부족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던 '닌텐도 스위치'의 주된 품귀 이유도 이 스캘퍼들이었습니다.



▲ 일반 구매자를 위한 구매 봇 소개 글이 존재할 정도로 구매 봇은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출처: yotpo 블로그)


지난 블랙 프라이데이에 미국의 '월마트'는 게임 콘솔에서 첫 거래 시작 이후 30분 동안 2천만 건 이상의 구매 봇 시도를 차단했습니다. 또 다른 소매 기업 'Target'도 게임 콘솔의 수요가 급등하면서 지속적인 봇들의 구매 시도를 차단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으며 이는 비단 미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일입니다.

이와 같은 '구매 봇'들은 이전엔 한정판 스니커즈와 같은 프리미엄 상품을 노리기 위해 쓰였습니다. 게임 콘솔의 수요가 폭등하고 공급이 이를 따라가지 못해 품귀 현상이 생기자 콘솔까지 이들의 리셀링 대상으로 포함된 것이죠.

결국 이들과 경쟁하면서 물건을 건지려면 일반 구매자도 구매 봇을 구해 사용하든가, 웃돈을 주고 스캘퍼로부터 물건을 사야 하는 상황이 일어나버렸습니다. 만약 수요가 끊이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이 과정이 반복된다면, 우리는 그 상황을 '인플레이션'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 겁니다.



▲ 3월 11일 기준 RTX 3080의 오픈마켓 가격




정리) 수요의 폭등, 유통 과정의 구멍, COVID-19로 인한 복합적 결과

지금까지 말한 것들을 짧게 정리해 봅시다. 게임 콘솔과 그래픽 카드는 애초에 많은 물량을 생산하지 않습니다. 지속적으로 소모되어 여러 번 구매를 반복해야 하는 상품이 아니며, 제작 단가가 높기 때문에 수요에 맞춰 유동적으로 생산량을 조절하는 상품에 속하죠. 갑자기 수요가 폭등해버린 지금같은 상황에 적응하기 쉽지 않습니다.

거기에 폭등한 수요를 감당해줘야 할 생산 라인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COVID-19로 인해 중국의 공장 가동률이 현저히 줄어들었고 게임 뿐만 아니라 여러 산업에 쓰일 칩셋을 공급하는 반도체 파운드리들에 과부하가 걸리면서 핵심 부품 수급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 어려움을 뚫고 만들어진 물건들은 스캘퍼들과 채굴장에 의해 '합법적 강탈'을 당합니다. 결국 소매점에서 일반 고객에게 정가로 판매되는 물건은 굉장히 제한적 수량에 그칠 뿐이고, 이는 전 세계적 품귀 현상과 가격 폭등을 일으키고 있는 상황이죠.

물론, 언젠가는 해결될 문제긴 합니다. 반도체 파운드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이 위기를 기회삼아 생산 라인을 확대하는 중이니 칩셋 공급 부족은 곧 해결될 전망이며,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게임 콘솔과 그래픽 카드는 일상적 생필품이 아니기에 공급이 꾸준히 늘어나면 언젠가 가격은 제자리를 찾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다만, 지금의 복합적 상황이 만들어낸 불균형한 수요, 공급 곡선이 정상화되려면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칩셋 공급이 정상화되기 위한 수 개월, 그리고 이로 인해 물량 공급이 원활해지기 위한 또 다른 수 개월. 길게는 년 단위의 시간이 소요될 수도 있겠죠.

결국, 지금은 버티는 게 답입니다. 스캘퍼들로부터 비싸게 물건을 살 수록 품귀는 지속되고 가격대는 점점 더 올라가기 마련입니다. 어느 순간 이 폭등이 끝나고 가격 정상화가 이뤄질 때, 비싸게 주고 산 물건을 보며 허탈함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라도 인내가 필요한 순간이죠. 위로의 말씀을 드리자면, 제목처럼 "나만 못 구하는 건" 아닙니다. 이게 위로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모두 힘 냅시다. 언젠가 해결될 문제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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