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표준의 무기화' 삼는 중국 게임, 경각심 가져야

게임뉴스 | 이두현 기자 | 댓글: 46개 |
글로벌 시장에서 '표준(Standards)'은 권력이다. 최근 대표적인 사건으로 중국이 우리 김치를 '파오차이(切件泡菜)'라 의무 표기시킨 사례가 있다. 중국 식품안전국가표준(GB)은 중국에 수출 또는 판매 및 생산하는 모든 식품에 GB 의무를 따르게 한다. 이에 우리 기업 청정원과 종가집이 중국에 판매하는 김치를 파오차이라 표기하고 있다. CJ제일제당도 김치를 이용한 간편식에 파오차이라는 이름을 쓴다.

게임 및 e스포츠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나올 수 있다. 최근 중국 정부가 텐센트 등을 내세워 게임 및 e스포츠와 관련된 국제표준기술을 장악하려 한다는 주장이 15일 제기됐다.

일반적으로 기술 관련 표준은 전기전자시스템 표준설정 국제기구인 전기전자학회(IEEE:Institute of Electrical and Electronic Engineers)에서 정해진다. IEEE는 국제민간표준화기구지만, 175개국 36만여 명의 전문가들이 회원으로 참여하는 만큼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강하다. 강제성은 없지만 대부분 기업이 지키게 된다. 대표적으로 와이파이(WiFi) 표준이 있다.

현재 텐센트 등 중국기업이 IEEE에 제출된 게임 관련 기술들로는 '미성년자인 자녀를 감시할 수 있는 기술', '모바일 게임 성능을 위한 표준 및 최적화 기술', '모바일 터치 작동 문제 해결을 위한 기술', '모바일 게임 시스템 프레임워크 표준', '모바일 게임에 있어 햅틱 인터페이스 기능 향상을 위한 표준', '존엄성을 위한 온라인 게임 개인 정보 보호 표준', '클라우드 게임 프레임워크 표준 및 정의', 'e스포츠 진행 및 중계 가이드' 등이다.

이 표준화는 텐센트와 차이나 텔레콤이 주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바일 게임부터 PC, 클라우드 게임과 e스포츠까지 중요한 기술들이다.

아울러 민간이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진 IEEE 설명과 달리, 중국 중앙단 간부 또는 그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기관의 소속된 자가 프로젝트 의장인 것으로도 알려졌다.



▲ 정상권 대표

정상권 대표는 텐센트와 차이나 텔레콤의 게임기술 표준화를 심각하게 우려 했다. 정 대표는 (주)조이펀 대표이자 IEEE 3079.2 Chair 의장, IEEE 2847 WG Chair 위원, 국가표준 KS 정보기술 심의회 위원, 국가표준 KS 정보응용기술 심의회 위원 등 국내외 정보통신 기술 전문가이다.

단편적으로 IEEE 기술 표준은 우리 게임사가 중국에 진출할 때 적용될 수 있다. 정 대표는 "IEEE 표준이 강제성은 없더라도, 중국 측에서 '국제 표준이니 지켜라'라고 하는 명분을 제시하면 우리 입장에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며 "문제는 IEEE는 시장에서 정하는 기술 규격인데, 중국은 시장의 규칙도 국가가 좌우하기 때문에 우려되는 상황이다. 김치를 '파오차이'로 표준화시키는 것과 같은 현상이 재현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중국 인터넷망 특성이다. 중국 인터넷망은 정부에서 모두 모니터링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 대표는 "클라이언트 및 서버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이 중국 정부와 무관한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 중국 정부는 모든 것에 관여할 수 있다"며 "중국 정부가 국제표준을 이용해 해외 게임사의 자국 진출을 막거나, 또는 민간의 모든 게임 활동에 대한 감시 수단으로 사용할 경우 이는 재앙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장기적으론 중국 정부 및 게임사가 전 세계 게임 기술을 주도한다는 점이 문제다.

IEEE에는 엔티티(Entity) 위원회가 있다. 엔티티 위원회는 가입비가 매우 비싼 기관 회원들로 구성되기 때문에 자금력이 있는 기관 및 기업들이 참여를 고려할 수 있다. 정 대표는 "중국이 주도하는 IEEE-SA 위원회들은 대부분 엔티티 위원회로 되어있고, 그들만의 리그로 움직이면서 표준 규격을 만들어가는 상황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게임 회사들은 대부분 영세하고, 규모가 있는 대형 게임 회사들은 표준에 무관심하거나 그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라며 "사실상 중소기업은 생각할 수도 없고, 우리나라 게임 기업의 대부분은 크리에이티브가 강조되는 게임 콘텐츠에 표준 규격이 웬말이냐는 분위기가 팽배하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그런데, 텐센트가 아무 생각 없이 엔티티 위원회에서 기술 표준을 만들까?"라 반문하며 "표준이 곧 권력이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중국 정부와 텐센트는 매우 전략적으로 움직인다"며 "표준을 만드는 쪽이 시장을 장악한다"고 덧붙였다.



▲ 텐센트가 제출한 모바일 게임 관련 기술 표준



▲ 차이나 텔레콤이 제출한 e스포츠 중계 관련 기술 표준

정 대표는 우리 정부 및 기업이 IEEE에 관심을 더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넥슨, 엔씨소프트, 넷마블 등 3N이 IEEE 게임 표준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 국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공익 분야라고 강조했다.

게임 및 e스포츠 IEEE 표준 제정은 이제 시작 단계다. IEEE 표준 제정은 짧아도 3년, 길게는 5년 정도 걸린다. 현재 IEEE-SA 내에서 게임 및 e스포츠 표준은 2023년 12월 31일에서 2024년 12월 31일까지 논의될 예정이다.

정 대표는 "표준이 만들어질 때 우리나라 정부, 게임사, 학계가 중국 측 표준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며 "중국 측이 만들고 있는 '표준의 무기화'를 막고 깨려는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미 우리나라는 TTA(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 회장 최영해)를 중심으로 다양한 게임 기술 표준이 제정되고 있다. 특히, 실감형혼합현실기술포럼과 다차원영상기술포럼, 그리고 디지털가상화 포럼 등의 민간 포럼들이 게임관련 표준에 꾸준히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국제 표준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국가적 전략과 전술을 가지고 대응해야 하는 측면이 있다.

정상권 대표는 "자칫 매체 및 시장을 중심으로 중국 정부가 게임에 대한 기술 표준을 무기화로 삼으면, 한국 측은 아무 준비도 하지 못하고, 고리타분한 논리만 내세우다가 부지불식간에 밀리게 된다"며 "지금까지 창작의 영역이라고 해서 게임 및 e스포츠 표준화에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중국 측에 대응할 수 있는 준비를 지금부터라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중국 텐센트 게임즈 측은 "우리는 스마트폰 제조사는 물론 게임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여러 기업들과 함께, 표준화 제정 추진과 산업의 발전, 그리고 더 나은 게임 경험을 유저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면밀히 협력하고 있다"며 "텐센트가 추진하는 표준화 제정 관련 활동은 모두 게임 산업의 발전을 위한 기업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진 것이며, 전 세계 어떤 정부 기관의 활동과도 관련되어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표준화 제정 과정은 모든 IEEE 회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되어 있으며, 관심있는 기업은 언제든지 표준화 제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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