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인생의 쓴 맛 그대로, '커피 톡'

리뷰 | 정재훈 기자 | 댓글: 23개 |



커피만큼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음료는 없을 겁니다. 아마, 커피의 그 쓴 맛이 인생의 한 부분과 많이 닮아 있어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행복해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저마다의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법이고, 커피의 쓴 맛은 비록 인생의 그것만 못할지언정 지친 현대인의 마음을 위로하기엔 퍽 부족함이 없으니까요.

또 다른 이유라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를 상징하는 음료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소개를 통해 처음 만나는 연인 사이도, 업무상 마찰을 빚는 상사도, 그리고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도. 우리는 대화를 시작하고자 할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커피 한잔 하실까요?" 때로는 혼자서 조용히 즐길 수도 있겠지만, 사람 사이를 풀어낼 때 커피는 강력한 음료가 되곤 합니다.

이런 게임이 있습니다. 야간에만 영업하는 작은 카페.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사연과 고민을 안고 카페로 들어섭니다. 그리고 따스한 커피 한 잔에 기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카페의 주인이자 바리스타가 되어, 커피 한 잔으로 다른 이들의 고민을 보듬어주는 게임. 오늘 리뷰할 '커피 톡'입니다.





쉬운 삶은 없지만, 커피는 있다.

'커피 톡'의 게임 진행은 퍽 단순한 편입니다. 플레이어는 약 20일에 걸쳐, 카페를 운영하며 카페를 방문하는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죠. 여기서 플레이어가 직접 플레이하는 부분은 커피를 만들고, 음악을 선택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잘못된 커피를 만든다고 해도 카페 운영에 지장이 오거나, 사고가 터지진 않습니다. 그저 손님이 약간의 의아함을 표할 뿐이죠. 결국, 이 게임의 메인 콘텐츠는 카페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관찰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렇듯 단순한 게임 플레이가 지루함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커피 톡'의 세계는 현실과 같은 공간적 배경을 갖고 있지만, 약간은 비틀어진 세계입니다. 인간 외에도 엘프, 드워프를 비롯해 뱀파이어나 악마, 그리고 늑대인간이나 네코미미 등의 수인들도 함께 살아가고 있죠. 특별히 언제부터 그렇게 된 것이 아닌, 원래부터 그렇게 많은 종족들이 섞여 살아가는 세계입니다.



▲ 약간은 다른 '커피 톡'의 세계

때문에 커피 톡 세계의 사회적 단면은 현실과 매우 유사함에도 여러가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종족 간의 문화적, 생태적 차이로 일어나는 갈등 때문에 늘 사건이 터지고, 사회적 규범도 흔들리죠. '커피 톡'의 등장인물들은, 이렇듯 수많은 종족이 얽힌 혼란스러운 세계에서 저마다의 고민을 품고 있습니다.

'커피 톡'은 이 고민들을 결코 포장하지 않습니다. 모두들 살면서 한 번쯤은 겪으셨겠지만, 모든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갈등이 해결되지 않고 끝없는 평행선을 이루는가 하면, 쓰디쓴 실패를 맛보기도 하죠. '커피 톡'의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 모든 고민이 생각처럼 쉽게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껏, 수많은 게임에서 때로는 비현실적으로 비춰지곤 하는 희망찬 이야기들을 보아왔습니다. 수많은 역경에도 주인공은 끝내 승리를 거두고, 세계는 결국 평화를 맞이하죠. 하지만 '커피 톡'의 인물들은, 그저 담담히 자신의 고민을 풀어놓습니다.

'커피 톡'에는 드라마틱한 결말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고민을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는 보이지만, 다른 게임이나 소설처럼 극적인 개선은 이뤄지지 않습니다. 게임의 시작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등장인물들은 여러 현상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말합니다. 때론 격한 언쟁이 벌어지기도 하고, 감정이 상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끝에는, 또다른 고민과 삶의 도전이 다가오죠.



▲ 누군가에겐 가벼울 수 있는 일이지만...

'커피 톡'이라는 게임이 지루하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게임성은 단순하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전혀 단순하지 않은 우리 삶을 투영하고 있으니까요. 게임 전체에 걸쳐 모든 이들이 저마다의 고민을 안고 있고, 이로 인해 힘들어한다는 걸 표현합니다. 이 과정에서 게이머의 역할은 그저 맛있는 커피를 타주는 것 뿐입니다. 현실에서도 우리는 상대의 고민을 들어줄 수 있지만, 모든 걸 해결해줄 수 있는 건 아니듯 말이죠.





다른 세계, 똑같은 고민

'커피 톡'의 흥미로운 점을 하나 더 말하자면, 대화의 '소재'를 말하고 싶습니다. '커피 톡'은 이종족이 섞여 살아가는 세계라는 다소 비현실적인 세계를 배경으로 하지만, 앞서 말했듯 이들의 고민은 모두 현실에서 그대로 볼 수 있는 것들입니다.

엘프 남성과 서큐버스 여성 커플은 10년의 연애를 했지만, 자라온 가정과 문화의 차이라는 허들을 만납니다. 솔로 데뷔를 꿈꾸는 네코미미 아이돌은 스스로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 말하지만, 연예계의 어둠을 본 그녀의 아버지는 그런 딸이 걱정스럽기만 하죠. 게임개발자로 일하는 오크 여성은 크런치 모드와 야근으로 얼룩진 게임업계의 현실에 매너리즘을 느끼고, 머나먼 우주에서 온 외계인은 데이트 어플의 허풍에 낚여 허우적댑니다.




'이종족들이 섞인 사회'를 배경으로 삼았지만, 오늘날 이 세계에서 숱하게 볼 수 있는 일들이죠. 대서양에서 자라 시애틀로 온 인어 연구원은 아메리칸 드림을 가진 이민자의 삶을, 자라온 삶과 문화의 차이로 결합의 어려움을 겪는 커플은 다문화 가정의 단면을 표현합니다.

이렇듯 이야기가 펼쳐지는 과정에서, 개발사는 수없이 많은 현실의 단면을 게임 속에 표현했습니다. 예술과 대중문화에 대한 견해의 차이, 불합리한 규칙과 관습, 워커홀릭으로 변해 휴식의 부족함을 느끼는 직장인의 삶, 그리고 종족 갈등으로 대변되는 인종 갈등과 부모, 자녀 간 세대 갈등. 나아가 섹스와 성에 대한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현대인이 살면서 보고, 듣고, 느끼게 되는 수많은 사회 현상을 다양한 방법으로 게임 속에 녹여냈죠.



▲ 게임 곳곳에서 플레이어는 세계의 다양한 면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마치 이종족이 섞인 사회이기에 벌어지는 일인 양 표현해 오늘날 현실에서 벌어지는 여러 불합리에 대한 재조명을 제안하죠. 게임 내에서, 작가인 '프레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만이 존재하는 세상을 가정해서 소설을 쓰려고 해" 그리고 게임 속 주인공은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죠.

이렇듯, '커피 톡'은 현실에 대한 강렬한 풍자를 함유한 작품입니다. 그럼에도 게임에서 특별히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그저 현상을 고민으로 풀어 설명하는데서 그치기 때문일 겁니다. 때로는 불합리한 일이 일어나고, 쓸모없는 갈등이 빚어진다는 것은 말하지만,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단 그저 담담히 조명할 뿐이죠.



▲ 플레이어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등장인물들의 생각을 바라봅니다.

결과적으로, '커피 톡'은 두 가지 주제의식을 품은 게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삶을 고민한다'가 하나이고, '때론 이종족들 간에나 일어날 법한 말도 안되는 일들이 이 세계에서도 똑같이 일어나곤 한다'가 다른 하나일 겁니다. 여러모로, 커피의 맛만큼이나 쓰디쓴 현실을 말하고 있는 작품이죠.



▲ 현실에 대한 통찰도 매서운 편


'커피 톡'은 게임의 형식을 빌린 군상극일 뿐일까?

이쯤 오면, 의문이 하나 생길 겁니다.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것을 종합하면, '커피 톡'은 그저 게임이란 형태를 빌린 군상극일 뿐이라 생각할 수 있죠. 하지만, '커피 톡'이 게임으로서의 재미를 모두 놓은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포인트 앤 클릭'이라는 굉장히 제한적인 게임 장르에서도 게임으로서의 재미를 뽑아내기 위해 노력한 점이 보입니다. 아마 '커피 톡'이 게임적 요소에서 지루함만을 보여주었다면, 지금의 높은 평가도 받지 못했을 겁니다.

가장 돋보이는 점은 역시 '커피'의 제조입니다. 플레이어는 커피, 코코아, 녹차, 차의 네 가지 음료 베이스와 생강, 민트, 레몬, 꿀, 계피의 첨가물, 그리고 베이스도 될 수 있고 첨가물도 될 수 있는 우유에 이르기까지 열 개의 재료로 여러 음료를 제조해야 합니다. 한 번에 넣을 수 있는 재료는 모두 셋. 커피만 셋을 넣고 우리면 트리플 샷 에스프레소가 되고, 커피, 우유, 우유를 넣으면 카페라떼가 되는 식입니다.



▲ 음료 제조 과정은 꽤 도전적인 편

결과적으로, 만들 수 있는 음료의 종류가 생각 이상으로 많습니다. 이중 30가지는 '스페셜 레시피'로 분류되어 직접 만들기 전까지 레시피를 알아낼 수 없죠. 게임 내에서 손님들은 '맛'을 위주로 주문하기 때문에, 어떻게 커피를 만들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듭니다. 잘못 만들어 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죠. 게임 도중 실제로 커피 제조법을 검색한 적도 있습니다.



▲ 다양한 음료가 존재합니다

우유가 들어간 음료의 꽃인 '라떼 아트'도 할 수 있습니다. 실제 라떼아트와 흡사한 물리엔진을 사용했기 때문에 실제로 시도해보면 굉장히 어렵습니다만, 숙련된다면 아름다운 라떼 아트를 그려낼 수 있습니다.



▲ 쉽지 않은 라떼아트

무엇보다, 칭찬하고 싶은 점은, 게임의 중요한 재미를 더해주는 아트와 연출, 그리고 음악입니다. 화려하진 않지만 잔잔한 도트 그래픽과 커피 제조시 볼 수 있는 연출, 그리고 '카페' 그 자체를 표현하는듯한 차분한 음악은 '커피 톡'이라는 게임에서 굉장히 많은 매력 지분을 차지합니다.



▲ 음악은 매우 매력적입니다

다만, 스토리 전개의 다양성은 약간 아쉬운 부분입니다. 비슷한 장르의 게임이자 선배격이라 할 수 있는 'VA-11 HALL-A(이하 발할라)'와 비교하면, '커피 톡'의 경우 보다 선형적이지만, 이야기의 깊이와 메시지에 좀 더 주력했다고 할 수 있죠. 단순히 '남들의 고민'을 듣는 선에서 끝나지 않고, 나름의 반전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회차 반복 플레이를 하면 미처 보지 못했던 또다른 이야기가 보이기도 하죠.

'커피 톡'은 그런 게임입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내고, 다른 게임처럼 비현실적인 경험이 아닌, 현실에 대한 공감을 제공합니다. 여러모로, 플레이 내내 커피가 생각나는 게임입니다. 강렬하고 짧은 단맛보다는, 씁쓸하지만 차분한 맛으로 게이머를 위로하는 게임이죠.

겨울 밤, 누구나 각자의 힘듦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따듯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플레이하는 '커피 톡'이라면, 아마 조금의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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