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어찌 감히 대국 게이머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겠소

칼럼 | 강승진 기자 | 댓글: 64개 |
'게이머'들의 수많은 메시지를 받아 게임을 판매하지 않기로 결정합니다

환원은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게임이 됐다. 영화로, 넷플릭스 드라마로 고른 호평을 얻은 반교 개발사의 후속작인 환원은 출시 직후 전작 이상의 공포와 만듦새가 찬사를 자아내게 했다. 하지만 시진핑 주석의 이름과 곰돌이 푸, 그리고 욕설이 담긴 이스터에그가 발견된 후 게임은 어디에도 이름 올리지 못하는 금지어가 되어버렸다.

자신을 '게이머'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평가가 이루어지는 리뷰 페이지는 바닥을 가리키는 엄지로 가득 찼고 게임플랫폼 스팀에서의 판매는 결국 중단됐다. 이후 거의 2년 만에 CD 프로젝트가 서비스하는 GOG로의 재출시를 알렸지만 이마저도 '게이머'의 수많은 메시지를 이유로 발매 발표 하루 만에 취소됐다. 게임 출시를 기다린 이들이 1만여 개 이상의 불만글을 쏟아냈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 출시 하루도 되지 않아 취소된 환원의 GOG 재출시

'게이머'가 게임 출시와 서비스에 영향을 미치는 건 대형 플랫폼뿐이 아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자신들의 주장을 거침없이 표출한다.

'게이머'에게는 자기나라 고유의 의복인 한푸와 멱리를 고작 소국인 한국을 위해 한복이니 갓이니 하는 것으로 만들어준다는 게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2000년대에 들어서야 그간 의상 체계를 통일하듯 급하게 만들어진 한푸가 상호 교류적으로 자리 잡은 한복을 어떻게 대체하였는지. 또 7세기 당나라 시절의 멱리를 그 이전 삼국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시공간을 초월해 가져다 썼는지. 그들에게 그 진실 자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엇나간 주장과 어리광 섞인 고집에 머리를 쥐어박을 수만은 없다. '게이머'들의 주머니 속에 가득한 돈은 마냥 꾸짖기엔 너무나도 많았다.

게임산업 보고에 따르면 2020년 '게이머' 시장의 규모는 2019년 대비 20.7% 증가한 2,768억 위안. 약 48조 원에 이른다. 이용자 수도 6억6,500만 명으로 어지간한 대륙의 인구수에 달한다. 영리가 목적에 있는 게임사 입장에서는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수치다.

심기를 건드렸을 때의 결과도 너무나 명확하다. 스팀 자진 판매 중단이 이루어진 환원은 '게이머'들의 반복된 신고로 공식 영상이 내려가고 판매 중단으로 유통사와의 계약 해지에 따른 불이익을 배상하게 됐다. 심지어 발매 전 서비스를 앞뒀던 중국 퍼블리셔는 정부로부터 사업 면허 취소라는 징계성 조치를 받았다. 단순히 불평을 감수하는 수준을 넘어 게임 판매 길조차 막혀버린 셈이다.

사실 환원의 경우를 돌이켜보면 너무 어설프게 고개를 숙인듯하다. 검수 부족을 이유로 사과하는 수준으론 뒤를 보지 않는 '게이머'의 불만을 쉬이 잠재울 수 없다. 일러스트레이터의 작업물에서 시작된 샤이닝 니키의 한복 국적 논란을 돌이켜보자. '게이머'는 샤이닝 니키의 출시 일주일여 만에 이루어진 서비스 종료만으론 부족해 한국 커뮤니티 게시글에 올린 사과 멘트 하나까지 삭제하도록 몰아붙였다.

스카이에 한국 갓의 디자인이 분명해 보이는 의상을 추가했다가 '게이머'들의 뭇매를 맞은 제노바 첸은 중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어필해야만했다. 그마저도 전 세계 팬들이 볼 수 있는 공간이 아닌, 웨이보에 해명했다는 이유로 한층 격해진 공격을 받았다. 미국 산타모니카에 자리 잡은 댓게임컴퍼니에서 저니와 스카이를 통해 성별, 인종, 계급과 관계없는 동등한 소통을 강조했던 그이지만 '게이머'들 앞에서는 그 평등을 강조할 수 없었다.

해외 기업이 문을 열려면 로컬 파트너사를 구해야 하고 까다롭다는 판호도 뚫어야 게임을 팔 수 있다. 괜히 '게이머'들에 밉보여 일을 그르칠 필요는 없으니 정수리는 더 바닥을 향해 박아야 한다.



▲ '게이머'의 메시지에 게임 판매 불가를 알린 gog 계정. 여기에 한 유저가 평한 '그 게이머'의 정체

경제, 산업의 성장과 함께 외교부의 입을 통해 '우리는 대국이고 주변국은 소국'이라고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패권주의. 중화민족 부흥책의 일환으로 고구려사와 근대사까지 변방으로 격하시키려는 역사수정주의 사고. 그 아래에서 '게이머'를 자처하는 그들은 국가와 대상을 가리지 않고 한층 격하게 자신들의 의견을 내뿜고 있다.

환원 꼴이 나기 싫어 눈치 보며 처신 잘하는 개발사. 관계 개선을 위해 정부 단위의 유감 표현도 조심스러운 상황에서 '게이머'가 아닌 우리 나라와 게임을 사랑하는 전 세계 게이머들의 속은 아직 끓을 일이 많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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