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지난 WoW에 왜 지금 '뉴비'가 몰리나?

기획기사 | 정재훈 기자 | 댓글: 345개 |



이제 정말 더 이상은 안 할줄 알았다.

번이고 '복귀각'을 재 봤지만, 아무 생각 없이 게임만 해도 되던 시절이 지나 어깨에 이것저것 많은 것들이 올라온 지금은 어불성설이었다. 레이드는 커녕 하루 일퀘도 소화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지금, 이전처럼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이하 '와우'로 통칭)에 푸욱 빠져드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한때는 새 확장팩 소식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지만, 어둠땅 소식에는 심장도 퍽 조용했다. 아마 본능적으로, 어차피 못할 테고, 안할 테니 기대를 안 하나 싶었다. 그런 주제에 출시가 되니 나도 모르게 한 달을 결제했다. 이건 그냥 찍먹이다. 어차피 레이드 없는 와우는 앙꼬없는 찐빵이니, 그냥 겉에 뭍은 빵조각이나 살짝 뜯어 먹고 말자. 이제는 와우저라 하기도 민망한 수준이지만, 어쨌거나 게임 기자니까 새 확장팩 정도는 플레이해줘야 하는 거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다.

많은 일이 있었고, 많은 것이 변했다. 10년 전, 1선에 서서 서리한을 방패로 막아내던 공대장에서 아제로스가 아닌 가정의 평화를 지키러 갔던 친구는, '함 해볼래?라는 말에 한 손엔 기저귀를, 한 손엔 키보드를 잡고 나타났다. 마치 영화 '소림축구'에서 주성치의 꼬임에 넘어가 정장을 벗고 달려온 대머리 사형을 보는 것 같았다.



▲ 정신 차려보니 다섯번째 만렙 캐릭터였다.

다른 게임 나오기 전까지만 하겠다던 다른 친구는 데나트리우스의 가슴팍에 칼을 꽂았고, 세 명으로 시작한 길드 접속 인원은 어느새 15명을 앞에 두었다. 누군지 까먹었는데 그냥 있기 좀 그래서 계면쩍게 인사를 나누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최근 몇 확장팩을 거치며 본 와우 중 '와린이'가 많이 보인다는 거다. 어둠땅 첫 날부터 서버가 터져나갔고, 한 달이 지난 지금도 필드만 나가면 서버가 요동을 친다. '딜 사이클'이란 개념 없이 냅다 필러기술만 쳐박는 딜러들도 종종 보이고, 본인이 진짜 탱크인줄 아는 듯 있는대로 몹을 몰아 힐러를 위기로 몰아넣는 탱커들도 종종 보였다. 뭔가 실수를 하면 '와우한지 얼마 안 되서 몰랐어요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하는 유저들. 기계처럼 던전을 도는 올드비들의 파티보다야 피곤하지만, 일단 반가운 일임은 분명하다.



▲ 게임 순위도 슬금슬금 올라왔다.

여기서 궁금한 건, '왜 하필 와우'냐는 거다. 옆동네에 신작 MMORPG가 출시되었고, 대규모 업데이트로 날아오른 게임도 있다. 근데 굳이 서비스 17년차를 맞이하는, 고전의 영역에 그림자 정도는 걸친 MMORPG를 선택한 이유가 뭘까? 올드비 입장에서야 알 수가 없다. 우리야 뭐 늘 하던 게임, 연어처럼 시기 맞춰 복귀하거나 습관이 되어 플레이하는 거니까.

그래서 한 달을 기다렸다. 모든 MMORPG는 이슈 이후 한 달이 지나면 계정 등록이 끝나거나 흥미가 꺼지면서 인구가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난 지금, 서버 대기열이야 한참 전에 해결되었지만 필드의 랙은 여전하다. 혹시나 싶어 '와우 인벤'의 접속자 현황을 살펴보니 어둠땅 출시 이후 약 50% 증가한 접속자가 아직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두 번째 계정 결제에 들어갔다는 뜻이다.

혹시나 나만의 착각인가 싶어 블리자드 측에도 문의를 넣어 보았다. 어둠땅 출시 이후 신규 유저가 실제로 늘어났는지에 대한 문의에 블리자드 또한 '정확한 수치를 밝힐 수는 없지만, 출시 후 꾸준히 긍정적인 상황인 것은 맞다'라고 답변을 주었다.

이쯤 되면 현장에 나서 알아볼 때가 됐다. 왜 서비스 17년이 지난 지금, 월드오브워크래프트는 또 다시 불타오르는가?



▲ 이렇게 붐비는 도시를 얼마만에 보는건지

※ 인터뷰 내용은 가독성 상승 및 문구 중복을 고려해 적절한 선에서 수정되었습니다.

뉴비에게 물었다
당신들은 왜 그 많은 게임 중 '와우'를 하는 겁니까?



▲ 도무지 와린이로는 안보이지만... 액션 유치원 같은 느낌이었다.

일 낮임에도, '와린이'를 찾기는 어렵지 않았으며 이들과 만나는 건 퍽 즐거운 과정이었다. 몇몇 분들은 짧은 인터뷰로 끝났지만, 예상 외로 와우에 어려움을 느끼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잃어버린 퀘스트 NPC를 찾아주고, 아직 날지 못하는 분은 택시 서비스도 해주고, 겸사겸사 용돈도 좀 찔러주다 보니(인터뷰 이후 너무 많은 말을 하다가 정작 인터뷰 내용이 밀려 날아가는 참사도 겪으며) 어느새 기사를 쓰기에 충분한 레퍼런스가 쌓였다.

그렇게 여러 '와린이' 분들과 함께 진행한 인터뷰. 각자 사연이 있고, 세세한 답변은 달랐지만, 비교적 읽기 쉽게 이들의 답변을 정리하고, 중복 사항을 쳐내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Q. 와우를 시작한 계기가 무엇인가?

- 웹서핑 중 광고를 보고 호기심에 시작하게 됨

- 와우를 플레이하던 지인의 추천에 일단 한 번 해보는 중

- 본래 다른 게임들을 했었는데, 도무지 현질 없이 게임을 할 수 없어서 현질이 없는 게임을 찾다가 시작하게 됨


Q. 이전에도 와우가 있긴 있었는데, 굳이 지금 하는 이유가 있나?

- 물론 전부터 와우가 유명했던건 알고 있으나, 정서 상 별로 맞지 않다고 느꼈음

- 이전에도 시도해 봤는데, 그 때는 튜토리얼도 약했고, UI도 뭔가 어려워서 금방 그만 두었음

- 너무 오래된 게임이라 옛날 게임 같을거란 느낌이 들었음, 지금은 별로 느끼지 못함



▲ 진짜 '와린이'를 만나기 전혀 어렵지 않았다.



Q. 다른 MMORPG 게임도 많은데, 왜 굳이 와우인가?

- 다른 게임은 세계관이 너무 작다. 난 이곳저곳을 다 돌아다니고 모든 콘텐츠를 다 파내는걸 좋아하는데, 다른 게임들은 일단 세계를 돌아다닐 흥미가 잘 생기지 않았다. 스토리도 별로고.

- 일단 국내에서 알려진 MMORPG는 웬만한 건 다 해본 것 같은데, 아무래도 현질 때문에 더 할 수가 없었다. 현질 없이는 계속 플레이할 수 없는 게임이 너무 많다.

- 오래되었다는건 단점도 되지만 그만큼 클래스가 있다는 뜻 아니겠나? 이거 아니면 '리니지' 정돈데, 리니지는 개인적으로 취향에 안 맞았다.


Q. 와우를 플레이하면서 만족했다면 어떤 점에 만족했고, 아니라면 어떤 점에 불만족하는가?

- 정통 RPG라는 느낌이 드는 것에 만족한다. 각 직업이 뭘 하는지 딱 알 수 있고 실제로 그 역할에 적합하다.

- 캐릭터가 안 예쁘다... 그래도 옛날에 하려고 했을때보단 많이 이뻐진 것 같아서 어찌 하고는 있다.

- 신규 유저들이 알아야 할게 참 많다. 애드온? 모드? 쓰는법도 알아야 하고 던전 공략도 다 공부해야 하고. 못하면 욕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던전 가기 겁날 때가 있다.

- 튜토리얼 기능이 잘 짜여진건 사실인데, 콘텐츠가 워낙 많아서 그런지 재미는 있지만 어렵다. 신화 던전도 어떻게 가는지 한참 헤매다 알았다.



▲ 국내 게임에 익숙한 게이머들에게는 아직 와우의 캐릭터들이 낯설다.


Q. 앞으로도 와우를 계속 할 생각인가?

- 일단 지금은 달리 할 게임도 없고, 와우도 생각보단 꽤 재미있는 것 같다.

- 완전히 만족하고 있다. 일단 두 달째 요금은 결제했고 다음 달도 생각 중이다.

- 만렙은 찍어 보고 결정할 것 같다. 아직 레벨이 낮아서 최종 콘텐츠가 뭔지도 모르겠다.

변은 최대한 여러가지 의견을 정리해 작성했기에 잘 드러나지 않지만, 첨언하자면 이들이 와우를 시작한 이유가 좀 가슴아프긴 했다. 인터뷰에 참여한 10여명의 유저 중 소수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다른 MMORPG의 BM 때문에 플레이에 어려움을 느끼고 유랑한 끝에 와우에 정착하게 된 케이스였다.

일단은 무료길래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 돈 없이는 원활한 플레이를 할 수가 없기에 게임을 접고 와우로 왔다고 했다. 와우에 집중하는 기사이기에 딱히 어느 게임이라 언급하진 않겠지만, 몇몇 이들은 다소 강도 높은 비판과 함께 그들이 그 게임을 져버린 이유를 말하기도 했다.

와우는 유료 게임이니 계정비 나가는 거 치면 어차피 돈은 나가는 것 아니냐는 답변엔 "차라리 계정비는 계산이라도 쉽지"라는 답이 왔다. 부분유료화 게임 대부분이 현질 없이는 뚫기 어려운 벽을 세워 두고 있고, 이걸 뚫는데 들어갈 비용을 고려하면 차라리 꼬박꼬박 내더라도 추가 과금 없이 플레이 가능한 정액제 게임이 낫다는 말이었다.



▲ 모험 안내서와 영웅의 부름 게시판이 생각 외로 괜찮다는 평이 많았다.


복귀 유저에게 물었다.
왜 떠났다가도 때 되면 또 돌아오시는 겁니까?

선을 살짝 돌려, 복귀 유저들과도 대화를 해 보았다. 마침 복귀 유저는 주변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기에 따로 찾을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이들 중 여럿은 이미 과거에 "앞으로 와우는 다시 안할 듯"이라고 말하는 걸 내가 두 눈 뜨고 똑똑히 봤던 이들이다. 그랬던 이들이 왜 다시 와우로 돌아오게 된 걸까?

고이다 못해 썩은물들이라 그런지 따로 말을 안해도 척척이다. "직접 뵙죠"라는 말에 첫 마디로 날아온 답이 "인적 드문 곳으로 갈까요?"라며 찍어준 위치가 스톰윈드 앞산 봉우리. 포탈방 입구에 2인승 탈것을 탄 채 "타시죠"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자 신혼여행지에서 만난 한인택시 모범기사분이 생각났다.



▲ 장난감이라도 하나 꺼내달라 했더니 토템을 박아주셨다. 저래봬도 주술사 분이다.

이 분 외에도 몇몇 복귀 유저들을 상대로 인터뷰를 진행했고, 앞서와 같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정리,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Q. 왜 다시 와우를 하는 건가?

- 그냥.

- 그러는 기자님은 왜 하세요?

- 1월에 할게 없는데 솔로라서.

- 지금 컴퓨터에서 돌아가는게 그나마 와우라서.


Q. 아니 그러니까... 와우 말고 다른 게임들도 있는데 왜 와우를 하는 건가?

- 다른 게임도 나쁘진 않았다. 근데 내가 원하는 재미를 와우 만큼 주진 않았다. 탱딜힐 딱딱 나눠져서 빡빡하게 협력해야 하는 그런 재미?

- 사실 잘 모르겠다. 다른 게임도 재미있게 하긴 했는데 어느 순간 와우가 생각날 때가 있다. 그런게 '근본' 아닐까 생각한다.

- 이제 나이가 들어서 손이 느려지니까 롤같은 게임은 못하겠다.

- 와우 말곤 친구들하고 다시 모일 만한 게임이 없었다.



▲ 와우를 오래 하니 식견도 높은건가 싶었다.

Q. 지금까지 와우는 확장팩마다 크고작게 변화해왔고, 어둠땅에서도 꽤 많이 변했다. 복귀 유저 입장에서 이런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 와우가 1,2년 된 게임도 아니고 오래 가려면 당연한 것 아닌가 싶다.

- 그렇게 많이 바뀐지는 모르겠다. 던전하고 몹만 새로 나왔지 결국 하는건 똑같은데, 그게 지금도 똑같이 재밌긴 하다.

- 안 바뀌면 복귀도 안했을 거다. 이전엔 레벨업도 귀찮았는데 그래도 이젠 좀 빠르더라. 이전 확장팩을 건너뛰었더니 새로운 게임 하는 느낌이라 나름 좋았다. 지금은 숙제도 많이 줄어서 좋기도 하고.

- 이렇게라도 안 바뀌면 아무도 안 할거다. 옛날 버전이 좋으면 클래식으로 가면 되니까.


Q. 복귀 이후 플레이하면서 신규 유저가 늘었다고 생각하는가?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처음엔 잘 몰랐는데, 만렙을 다시 찍고 던전을 돌다 보니 엄청나게 보였다. 예전같으면 바로 한마디 했을 실수를 태연히 하고도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걸 보니 '아 와린이구나' 싶더라. 지금은 같은 길드에 있고 내가 데리고 다니면서 이것저것 알려주고 있다.

- 사실 내 눈에는 와린이보단 나같은 복귀 유저가 더 많이 보인다. 그리고 난 판다리아 이후 처음이라 사실 와린이랑 다를 바도 없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 MMORPG 게임에서 신규 유저가 많아진다는 건 무조건 좋은 일이라고 본다. 일단 사람이 많아야 뭐라도 돌아갈 것 아닌가? 올드비 입장에서 귀찮고 피곤한 경우도 당연히 생기겠지만, 난 그것도 나름대로 재밌더라.


Q. 앞서 다른 게임들을 해도 와우만 못하다고 했는데, 어떤 의미인가?(해당 질문은 특정 유저 대상으로 진행)

- MMORPG가 줄 수 있는 재미가 굉장히 뻔하다. 탱딜힐 있고 적당한 협동이 있고 같이 콘텐츠 하나를 클리어하는게 기본적인 재미인데, 이걸 와우만큼 할 수 있는 게임이 없다. 파티플레이가 잘 안되거나, 파티로 하든 혼자 하든 별 의미가 없거나, 파티로 하긴 하는데 뭔가 협력이 이뤄져서 1+1=3이 되는 기분이 아니라 단순 산술적 덧셈으로 사람이 늘어나는 기분이 든다던가. 이 뻔한 재미를 뻔하게 줄 수 있어야 좋은 MMORPG인데, 그만큼 주는 게임이 없다.

- 게임 내에서 특색을 찾기도 어렵다. 요즘은 PC MMORPG를 찾기 힘들지만 많이 나왔을 때는 게임 이름 가려놓고 스크린샷 찍으면 뭐가 뭔 게임인지 구분도 못 했다. 세계관도 다 비슷하고 시나리오도 다 비슷한데 이게 생각보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이유에 큰 영향을 준다.

와우도 만렙 정도 되면 시나리오 별로 신경 안 쓰긴 하다만, 초반 한 시간 정도는 스토리나 세계관에서 오는 감동이라도 없으면 몰입하기 굉장히 어렵고 재미도 없다. 와우는 적어도 1시간 하면 딱 느낌이 오거든. 올드비들은 다 알거다. 아이언포지를 딱 처음 봤을때 '와 이건 진짜 드워프들의 도시다'싶었던 마음이나, 썬더블러프를 처음 발견했을 때의 감동 같은거 말이다.

- 옛날부터 와우와 비슷한 MMORPG에 존재하던 문장이 '만렙부터 시작'인데, 옛말이다. 2021년에 만렙 찍을때까지 참고 게임하는 사람은 없다. 처음부터 재밌어야 하고, 레벨업은 빨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어둠땅은 지금 게이머가 요구하는 사항에 딱 맞춰져 있다. 레벨업 빠르고, 원하는 시나리오 선택해서 할 수 있고 빠르게 메인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는데다 그 와중에 허들도 낮은 편이다.





Q. 마지막으로, 와우가 17년 간 서비스를 해왔음에도 지금도 이렇게 현역일 수 있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는가?

- 핵심을 잃지 않아서인 것 같다. 게임의 테마는 바뀌지만 탱딜힐이 베이스가 되는 협동이 필요한 MMORPG라는 기조 자체는 흔들림 없이 17년째 이어오고 있다. 다시 복귀해도 조금은 다를지언정, 핵심은 변하지 않는 재미가 그대로 있기에 부담 없이 복귀할 수 있는 것 같다.

- 시대에 맞춰 게임이 계속 업그레이드되서? 진짜 17년 전 게임 가져다 지금 와우랑 비교하면 말도 안 되게 다르다. 게다가 편의 사항도 17년 동안 계속 나아지기도 했고, 다시 복귀해도 옛날 게임이란 느낌 없이 할 정도로 계속 최신화가 되기 때문에 아직도 현역인 거다.

- 한국에 들어온 타이밍이 너무 좋았고, 근본이 되어버려서 그 이후 개발되고 들어온 많은 MMORPG들이 와우를 넘을 수 없었기에 아직도 그 효과가 남아 있다고 본다. 솔직히 지금 와서 와우가 생긴다면 모르겠지만, 이미 복귀 유저들은 와우의 달달함을 너무 많이 맛봐버렸다.

귀 유저들의 답변 또한 각각 다른 점이 있었지만, 적어도 이것만큼은 같았다. '게임의 핵심 재미'에서 와우를 넘어서는 재미를 주는 게임이 없다는 것. 이들이 말하는 와우의 핵심 재미는 자신의 역할에 몰입하고, 다른 이들과 영향력을 주고받을 수 있는 MMORPG 본연의 재미다.

사실 와우가 시작은 아니다. 와우 이전에도 역할극을 모토로 삼은 MMORPG는 분명 존재했고, 2004년 시점으로 와우는 그전의 많은 게임들에서 장점을 따다 이어붙이고 '워크래프트'라는 옷을 입힌 게임에 가까웠으니까. 차이라면 17년이 지난 지금, 그 많던 와우 이전의 '근본'게임들은 세월의 저편으로 사라졌고, 와우는 오랜 시간 시스템을 고치고, 기우고, 때로는 뒤집어 엎으며 지금에 이르렀다는 점 정도일 거다.

초기 예상과는 조금 다르긴 했다. 게이머로서 내가 와우에 복귀하고자 했던 까닭은 매 확장팩마다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어서였고, 다른 이들 또한 비슷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의외로 게이머들은 더 예리했다. 그들은 내가 어렴풋이 생각만 하고 있던 '핵심 재미'를 복귀의 이유로 언급했고, 이는 충분히 일리가 있는 의견이었다.



▲ 복귀 유저나 올드비들은 대체로 좀 흉하게(...) 하고 다니는 편이었다.



▲ 물론 복귀 유저만 흉한건 아니었다...


그래서 왜 와우인가?
종갓집 MMORPG 17년 맛의 비밀

관적 시점에서 이야길 이어나가자면, 지금의 와우가 누구나 즐겁게 즐길 수 있고, 단점이 없는 '갓겜'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몽환숲은 뚝뚝 끊기는 랙으로 때아닌 모내기에 심취한 유저들이 드물지 않게 보이고, 라이트 유저와 코어 유저를 모두 잡겠다던 야심찬 콘텐츠 토르가스트는 몇몇 특성들의 경우 상대적으로 높은 난이도로 고통받고 있다. 직업 밸런스 또한 좋다고 볼 수는 없다. 내 첫 어둠땅 캐릭터인 고양 주술사는 취업난 끝에 잠들어 있고, 왕년에 잘나갔다던 도적들 또한 구직난 때문에 눈물로 바지적삼을 적시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게이머들은 와우로 몰리고, 돌아오고 있다. 기사를 쓰기 전, 나는 이런 현상에 대해 '최선이 아닌 차악의 선택'에서 온게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었다. 와우를 하고 싶어서라기보단, 할 게임이 없는 와중 그나마 와우가 할만하니 몰린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아마 반쯤은 맞은 것 같다. 설문에 응한 복귀자, 신규 유저 20여명 중 다수는 다른 게임에 실망해서 와우에 이르게 되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만이 와우를 선택한 이유는 아니었다. 많은 유저들이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읊은 단어에, MMORPG의 핵심 가치가 하나씩 나열됐다. 'RPG', 롤플레잉 게임 그 자체의 의미인 '역할극'에 가장 충실한 게임이라는 것. 넓고도 깊이 있는 세계관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게임이면서 동시에 다른 이들과 만나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티로서 기능한다는 것.



▲ Life is... WoW


다른 많은 MMORPG를 비하하고자 함은 아니다. 솔직히 말해, 와우가 운이 좋기는 했다. 지금은 많이 변했지만, 많은 팬베이스가 쌓여 있던 세계관이 이미 바탕에 있었으며, 후발 주자들은 이미 와우가 정립해버린 MMORPG의 문법을 그대로 따라올 수도, 너무 비틀어버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이를 비틀어 흥행한 게임이라면 '검은사막' 정도일까? 어쨌든, 와우 이후의 후발 MMORPG들의 흥행은 게이머의 취향에 달려 있었고, 이마저도 MMORPG로서의 기본은 갖춰야 가능한 일이었다. 쉬운 일일 리가 없다.

다만, 이번 기획을 통해 어쩌면 너무 당연하고 뻔하면서도, MMORPG뿐만 아니라 모든 게임에 해당하는 하나의 진리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떤 장르든, 어떤 게임이든 '핵심 재미'를 놓쳐서는 안된다는 것. 그리고, 핵심이 얼마나 오랫동안 썩지 않고 유지되느냐가 곧 그 게임의 수명과 직결된다는 것이다.

동시에, '꾸준한 변화'또한 지금까지 와우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핵심은 지키면서도, 그래픽을 포함한 외형과 편의성, 콘텐츠를 꾸준히 현세대 게임에 맞춰 가꿔온 것. 모든 라이브 게임이 지향하는 바이기도 하지만, 와우는 누구나 느낄 수 있을 만큼 오랜 기간 게임을 계속해서 업그레이드해왔다. 그렇기에, 과거에 장벽을 느낀 게이머가 오늘날 다시 와우를 시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 비교적 최근 업데이트된 보랄러스 지역의 나무(위)와 소싯적 와재들의 데이트 코스였던 나그란드의 나무 그래픽 비교

간혹 요리 다큐멘터리를 보면, 3년 묵은 묵은지를 꺼내 찜을 하고, 십 년 묵은 된장을 풀어 간을 맞추는 장면이 나온다. 모든 묵은지가 3년씩 묵을 필요도 없고, 된장이 꼭 10년을 묵어야 장맛이 나는 것은 아닐 거다. 그럼에도 이토록 오래 묵은 장을 쓰는 이유는, 변질만 되지 않았다면 그만큼 깊은 맛을 내기 때문일 것이다.

와우가 그렇다. 게임으로 17년이면, 쉰내가 나도 이상하지 않을 시간이지만, 그 오랜 시간의 굴곡 속에서 수많은 콘텐츠와 확장팩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망했음에도 결국 핵심 재미는 지켜냈다. 그래서일 것이다. 지금도 수많은 게이머들이 와우라는 게임을 시작하는 이유가, 그리고 나와 복귀 유저들이 다시 와우 클라이언트를 설치하는 이유가 말이다.



▲ 모두 즐거운 와우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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