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이장주 박사 "게임 속 거래, 폭 넓은 논의 필요하다"

게임뉴스 | 이두현 기자 | 댓글: 34개 |


▲ 이장주 박사(이락 디지털문화연구소장, 심리학 박사)

이장주 박사는 ‘지스타 2017’이 개최되는 부산 벡스코에서 지난 18일, ‘게임 속의 거래-즐거움에 허용되는 돈의 특성’을 주제로 발표했다. 강연은 지스타 중 열리는 ‘2017 추계 한국게임학회-한국임상게임놀이학회 공동학술발표대회’의 한 세션이다.

현재 게임 업계를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정부가 관심을 두고 추진하는 4차 산업 혁명의 대표 주자라는 것과 아이들을 게임 중독으로 몰아가고 확률형 아이템으로 도박을 조장하는 주범이라는 관점이다. 앞서 말한 시각으로 봤을 때 게임은 문화 수출의 효자 종목이고, 뒤의 시각은 규제해야 할 대상이다. 이처럼 게임 업계를 바라보는 시각은 대비된다.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걸까? 이장주 소장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했던 심리적 요인으로 의문을 풀고자 한다.

현대 이론에서 쟁점이 되는 것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심리적 요인이 생각보다 깊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부모가 아이들을 키울 때 책이나 주변에서 조언을 얻어 가르쳤지만, 생각처럼 반응하지 않는다. 이장주 박사는 본 강연에 앞서 “저도 아이를 셋 키웠지만, 교과서대로 반응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라고 덧붙였다. 왜 이럴까? 이론과 현실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례는 게임 업계를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볼 수 있다.

게임 업계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 드는 근거들은 과거 콘솔, 비디오 게임이 주를 이루었을 때 나온 이론들이다. 온라인을 넘어 모바일 게임이 주를 이루는데, 과거의 이론으로 현재 상황을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더군다나 게임이 현실과 넘나드는 요즘 이게 도박이냐, 중독이냐를 논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장주 박사는 게임 업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양한 이유를 진화심리학과 행동경제학으로 풀어보고자 강단에 섰다.



게임은 기본적으로 생존 기제
목표를 쟁취하고자 하는 인간은 이미 최고의 RPG 유저




게임은 기본적으로 생존 기제다. 위 이미지 왼쪽에 있는 사슴은 어느 때 저런 포즈를 취할까? 천적이 나타났을 때, 무리 중 하나의 수사슴이 저런 포즈로 천적의 관심을 끈다고 이장주 박사는 설명했다. 물론 용감한 사슴도 천적이 나타나면 겁이 난다. 만약, 용기를 낸 수사슴의 행동으로 무리가 잘 도망가고 수사슴도 살아 돌아오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그렇게 된다면 용감한 수사슴은 영웅이 되어 암사슴 무리의 관심을 끌게 된다. 결론적으로 용감한 수사슴은 자신의 유전자를 더 퍼트릴 수 있게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위 이미지 오른쪽에 있는 아이는 지금 울고 있는 걸까? 아이를 키워본 이들이라면, 울고 있는 사진이 아닌 우는 ‘척’ 한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인간은 태어난 지 10개월만 되도 ‘거짓 행동’을 할 수 있다. 우는 척을 함으로써 부모로부터 원하는 것을 받기 위해서다. 이처럼 목표가 확실한 인풋-아웃풋 행동은 누가 가르쳐 아는 게 아니라 DNA에 담긴 행동이다.

수백만 년 전부터 우리 조상들은 생존이라는 목표를 위해 이처럼 같이 행동했다. 진화심리학적으로 설명하면, 그렇게 목표를 쟁취한 조상들만이 생존했고 결과가 현대인이다. 따라서 현대인은 목적을 쟁취하는 RPG의 유능한 게이머가 될 수밖에 없다. 이미 우리 유전자에는 목표를 쟁취하려는 본능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불완전한 인간이 생존이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생겨난 것이 사회다. 인간은 사회를 이룸으로써 자연에서의 생존율을 높였다. 이제 인간은 ‘사회적 활동’을 하면 생존을 이룰 수 있게 됐다. 사회적 활동은 거래를 의미한다. 협력과 경쟁으로 이루어진 사회적 활동을 긴장해서 잘 해내지 못한 인간은 도태되기 마련이다. 중요한 순간에 긴장하지 말라고 어릴 때부터 훈련을 통해 배운다. 이 훈련이 바로 게임, 놀이다. 놀이를 통해 아이는 사회적 활동에 익숙해지고, 커서 중요한 순간에 제구실을 할 수 있다.



▲ 거래는 생존 수단이 됐다(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속 장면')

우리는 왜 '게임 속 거래'가 불편할까
현재의 거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본능

이장주 박사가 이번 강연에서 짚고 싶었던 점은 게임이나 거래의 목적이 예전과 달라졌다는 것이다. 이전까지 거래의 목적은 안녕(安寧)이다. 안전하고 편안한 상태를 위해 거래를 했고 현 상태를 유지해왔다. 이를 망치는 탐욕은 ‘나 혼자 살겠다’라며 집단을 위험에 처하게 만드는 죄악이었다. 영웅은 탐욕적인 사람을 저지하고 안녕을 만드는 존재였다.

이제는 다르다. 거래와 게임의 목적이 성장으로 바뀌었다. 성공의 잣대는 성장으로 변했다. 탐욕은 죄악이 아닌 성공의 원동력이 됐다. 탐욕적인 사람은 자본주의 아래의 영웅, 자본가가 됐다. 이장주 박사는 “인간의 600만 년 역사 중 599만 년 동안 수렵채집으로 생존했었다”라며 이어 “거래의 의미를 안녕에서 성장으로 바꾼 자본주의는 수백 년도 채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조상들로부터 새겨진 바탕과 바뀐 게임 룰에서 우리는 이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탐욕으로 성공한 이들에게 대부분 사람이 분노를 느끼는 이유다.



▲ 이장주 박사는 대표적인 돈의 영향력으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꼽았다

거래의 의미가 바뀌는 사이에 돈이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이제 인간은 돈을 통해 무엇이든 살 수 있게 됐다. 권력의 의미도 강한 사람에서 돈이 많은 사람으로 변했다. 이렇듯 거래의 바뀐 의미, 탐욕의 가치전복, 돈의 이중성은 현재 게임 속 확률형 아이템이나 현금화 이슈와도 밀접하게 연관된다.

인간은 돈에 대해 심리적인 소화불량이 있다. 600만 년 전 조상부터 지금까지 인간이 돈을 경험한 것은 길게 잡아도 5,000년이 안 된다. 그동안 인간 의식 속에는 돈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대신 심리적 거래라는 개념이 존재해 계산하는데, 주판을 놓고 세세하게 계산하는 게 아니라 플러스(+)면 좋고 마이너스(-)면 나쁘다 정도의 계산이다.

또한 돈에는 심리적으로 흥미로운 효과가 있다. 돈은 공동체가 주는 안정감을 대체할 수 있다. 혼자 있어 외로울 때 돈이 있으면 불안감이 사라질 수 있다. 육체적으로 고통스러울 때도 옆에 돈이 있다는 상상만 해도 진통제 효과를 볼 수 있다. 이런 돈의 효과는 인간이 타인과 같이 있으려 하지 않고, 돈을 숨기게 만든다. 그리고 돈을 더 갖고 싶게 하는 욕심을 만든다. 결국 인간은 돈에 대해 *양가감정을 갖게 된다.
*양가감정: 두 가지의 상호 모순적인 감정이 공존하는 상태

그렇다면 돈에 대한 불편함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이장주 박사는 게임을 통해 연습할 수 있다고 말한다. 게임 속 NPC와 거래를 하거나 MMORPG에서 타인과 물건을 주고받으며 현재의 거래를 미리 연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장주 박사는 “현재 아이템 현금 거래나 확률형 아이템의 이슈는 인간이 본능적으로 가진 돈에 대한 소화불량을 해소하는 과정이다”라고 말한다. 마치 7~8개월 된 아이들이 이유식을 먹는 거처럼 다양한 적응 방식을 개발하는 상태다. 그렇다면 언제쯤 '게임 속 거래’에 대한 소화불량을 해결할 수 있을까? 이장주 박사는 “적어도 우리 세대에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인간 역사 600만 년 중 599만 년 동안 다른 걸 먹었는데 금방 소화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다만, 개인의 탐욕과 공동체의 불편함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이장주 박사는 덧붙였다.



▲ 게임을 통해 현재의 거래에 익숙해진다

왕자와 거지의 게임
둘은 같이 게임을 할 수 있을까?

게임 속 거래의 현실적인 이슈로 돌아오면, 인간의 본능과 현실 간의 괴리 때문에 다양한 논쟁이 일어난다고 이장주 박사는 설명한다. 그동안 안녕으로 싸인 인간의 본능은 성장을 추구하는 게임 속 거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장주 박사의 강연 중 말에 의하면 많은 사람은 놀이에 돈이 개입되는 것을 반칙이라고 여긴다. 승패를 가르는 놀이는 누구나 평등하게 시작해야 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이어서 이장주 박사는 왕자와 거지의 예를 들었다. 왕자와 거지는 같이 게임을 할 수 있을까? 생각으론 가능하다고 여길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힘들다. 우선 왕과 왕비가 싫어하기 마련이다. 한편에선 왕자와 거지가 현실에서는 놀지 못하는데 적어도 게임에서는 놀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라는 의견이 있다. 만약, 둘이 같이 게임을 한다면, 왕자 입장에서는 “내가 왜 거지와 똑같은 상태에서 시작해야 하나?”라고, 거지는 “정해진 규칙이 있는데 왜 어기나!”라고 할 수 있다.



▲ 두 사람이 만족할 수 있는 규칙이 있을까?

현재 ‘게임 속 거래’ 이슈도 왕자와 거지의 관점과 같다. 나아가 게임을 비즈니스로 보는 관점이 있고 놀이로 보는 관점이 상반된다. 또한, 인간의 발달 과정에서 보면 아이들, 청소년이 바라보는 게임이 있고 청년, 중장년, 노년이 바라보는 게임이 서로 다르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서 모두가 만족하는 게임 이슈 해결 방안이 있을까? “그렇지 않다”라는 게 이장주 박사의 생각이다.

이장주 박사는 지금의 게임 업계 이슈가 단순히 아이템 뽑기의 확률 공개가 아니라, 다양한 관점을 고려해 소화 가능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나마 소화하는 방안으로 나온 게 ‘확률형 아이템’이라는 것이다. 이장주 박사는 “평등인 듯 평등 아닌 방안이지만 뽑기는 누구한테 더 좋은 뭔가를 주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돈을 더 내는 것은 단지 기회를 더 주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어서 이장주 박사는 “깔끔한 방법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방법이기 때문에 비즈니스가 활성화되지 않겠느냐”라고 덧붙였다.

확률형 아이템은 성장을 목적으로 하는 MMORPG에서 수용성이 높다고 이장주 박사는 말했다. 그리고 이장주 박사는 대전 게임에서 확률형 아이템은 누구나 반칙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누구나 똑같은 상태에서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장주 박사는 “육성과 대결을 섞은 액션 RPG에서 우리는 지르고 뽑고 좌절하면서 확률형 아이템을 어떤 기준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사회적으로 훈련하고 있지 않나”라고 말하며 ‘게임 속 거래’의 소화 과정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 뽑기 아이템이 있는 e스포츠는 상상하기 힘들다

결론은 앵커링(anchoring)
기준에 따라 결과가 다르다

이장주 박사가 ‘게임 속 거래’ 논쟁에서 내놓은 한 가지 결론은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앵커링(anchoring)’이다. 어디에 기준을 두는가에 따라 결과가 다르다는 것이다. 누군가 “요리가 2만 원이면 비쌀까?”라고 물었을 때, 2만 원이 최고가인 음식점에서는 비싼 요리다. 하지만 음식 가격이 최하 2만 원인 음식점에선 싼 가격인 것과 마찬가지다. 게임을 놀이, 비즈니스의 관점으로 보는 것과 생애주기별 관점으로 볼 건가에 따라 다양한 결과가 나온다.

우리 주변에는 생필품과 사치품이 있다. 생필품과 사치품을 같은 관점에서 비교하지 않는다. 게임도 생필품 같은 게임이 있고 사치품 같은 게임이 있다. 아이들의 성장, 발달, 놀이를 위한 게임은 생필품에 비교할 수 있다. 이장주 박사는 사치품으로 커피를 들면서 어른을 위한 사치품도 있기 마련이라고 덧붙였다. 두 게임을 하나의 관점으로 보지 말고 구별해서 볼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이장주 박사가 인용한 국내 연령 통계를 보면 평균 43세다. 그리고 20살까지의 인구가 줄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게임의 주 사용층이 청소년이라 생각하고 규제를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다른 연령층이 게임을 소비하고 있었다. 또한, 게임에 돈을 쓰는 연령층은 청소년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게임을 접해 ‘게임 속 거래’에 대한 관점이 성장에 맞춰져 있다. 낡은 이론과 분별 되지 않은 시각이 의미 없는 논쟁을 이어가게 한다는 것이다.

이장주 박사는 “게이머는 양산형 게임이라 욕하고, 게임사는 최고 매출을 내는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현실 적용 가능한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라고 말하며 강연을 끝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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