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엇 게임즈(이하 라이엇)의 신작이자, 신규 IP로 개발된 FPS '발로란트'가 클로즈 베타 테스트에 돌입했습니다. 작년부터 약 1년의 기간 동안, 라이엇 게임즈는 자신들이 구축한 왕국을 지탱하기 위해 다양한 장르의 새로운 게임을 발표했죠.
그 중에서도 발로란트는 한 단계 더 높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이외의 다른 게임들은 모두 다 라이엇의 대표작인 '리그오브레전드'의 IP를 활용한 작품들이거든요. 그 작품들은 비교적 안전한 발걸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그마치 'LoL'이란 뒷배를 두었으니 말이죠.
하지만 발로란트는 아닙니다. 라이엇의 14년 역사에서 LoL 개발을 제외하면 가장 도전적인 시도가 '발로란트'의 출시일 겁니다. 문제는, 출시 전 게이머들이 보인 엄청난 수준의 기대에 비해 현재 발로란트의 평가가 영 애매하다는 거죠.
미리 말씀드리자면, 오늘의 리뷰는 '음식'에 빗대는 부분이 많습니다. 발로란트라는 게임은 꽤 복잡한 면을 지니고 있습니다. 게임의 구성 요소를 하나씩 뜯다 보면 왜 이런 평가를 받았는지 쉽게 설명하기가 살짝 난해할 정도죠. 모든 분들에게 친숙한 음식으로 설명을 드리면 그나마 좀 더 쉽게 전달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오늘 기사에서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부분을 한 줄로 정리하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왜 발로란트는 맛있어 보이는데 그 정도의 맛이 나지 않을까?"
섞어찌개 장인 라이엇의 도전적 시도
개발사인 '라이엇'부터 말해봅시다. 라이엇은 좋은 개발사입니다만, 독창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걸 잘 하는 개발사는 아닙니다. 애초에 이런 개발사는 몇 없습니다. 닌텐도나 슈퍼셀 정도가 새로운 무언가를 만드는 전문가들이죠. 대신, 이미 널리 퍼진 무언가를 주물러 자신만의 색깔로 재해석하는건 알아주는 수준입니다. 대표작인 'LoL'부터가 그런 게임이니 말이죠.
음식에 빗대자면, 라이엇은 닭을 튀겨먹을 생각을 처음 한 이들은 아니지만 튀긴 닭에 양념을 버무린 최초의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LoL의 위상은 한국 외식업계의 양념치킨과 비견할만하니까요. 이게 문제가 있다는 건 아닙니다.
'모든 창조는 모방에서 시작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모방 이후 원작보다 더 나은 무언가를 만들어냈냐는 겁니다. 무분별하게 배끼기만 했으면 표절이고, 모방했으나 원작에 미치지 못하면 카피캣입니다. 모방 후 가공을 통해 원작을 뛰어넘는 무언가를 만들어냈으면 이 때부터는 '새로운 창조'가 되죠. 'LoL'이 이렇게 새로 창조된 대표작입니다. 그럼 이제 '발로란트'를 봅시다.
발로란트 또한 이런 '라이엇식' 파이프라인으로 개발된 게임입니다. 5인 팀, 스킬을 쓰는 캐릭터, 라운드제 공수교대, 총기 및 소모품의 라운드별 구매와 크레딧의 활용 등, 대충 살펴보아도 어디선가 본듯한 게임 구성 요소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습니다. 굳이 어떤 게임인지를 다 말할 필요도 없지요.
그리고 CBT 버전은, 이 게임 구성 요소들을 적당히 뭉쳐서 먹을 만한 수준으로 만들어 둔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김밥에서 햄을, 김치찌개에서 김치를, 뼈해장국에서 감자뼈를 빼와서 한 접시에 담았죠. 보기는 좀 이상해보일지 몰라도 셋 다 나름 괜찮은 재료들이니 한 접시에 담으니까 대충 먹을 만 하긴 합니다.
여기까지는 괜찮습니다만, 그 이후가 문제입니다. LoL과 같은 파괴력을 갖추려면, 뽑은 재료들을 지지든 볶든 기존의 음식과 비교할 수 없는 새로운 맛을 뽑아내야죠. 아마 라이엇도 그걸 원했을 겁니다.
'스킬 쓰는 카스'로 그치면 안 된다.
라이엇이 밝힌 발로란트의 장르는 '택티컬 FPS'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장르명의 본의는 밀덕밀덕한 무언가라기보다는 비교적 현실적인 탄퍼짐과 체력을 갖춘 캐릭터를 조작하는 건파이트 기반의 게임이죠. 쉽게 설명하면 그냥 '카운터스트라이크류' 게임입니다.
주 재료 중 하나는 '카운터스트라이크의 시스템'인 셈입니다. 하지만 주 재료가 하나 더 남아있죠. 오버워치나 에이펙스 레전드, 레인보우식스: 시즈 등에서 볼 수 있는 '고유 스킬을 지닌 캐릭터'입니다.
라이엇 입장에서는 죽든 살든 이 두가지 재료를 바탕으로 게임을 요리해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스킬을 지닌 캐릭터라는 요소를 빼버리면 발로란트는 그냥 카운터스트라이크의 카피캣이 되니까요. 발로란트의 핵심은 스킬을 지닌 캐릭터들을 카운터스트라이크의 게임 룰 안에 녹여낸 것입니다.
문제는, 이 두가지 재료가 그냥 둬도 섞일 정도로 잘 어울리진 않는다는 점입니다. 기존에 오버워치나 에이펙스 레전드, 레인보우식스: 시즈 등은 어떻게든 게임 내에서 스킬을 활용하게끔 게임 시스템을 꾸려두었습니다. 셋 중 둘은 아예 다른 장르에 가까우니 빼고 그나마 가까운 '레인보우식스: 시즈'를 봅시다.
'레인보우식스: 시즈'의 경우 발로란트와 꽤 접점이 많은 게임입니다. 5대5의 인원 제한, 라운드제, 공수가 정해져 있고, 각 캐릭터가 고유의 스킬을 지니고 있죠. 두 게임 다 현실적인 전투를 지향하기 때문에 TTK(Time To Kill)도 무척 짧습니다.
유비소프트는 레인보우식스: 시즈의 캐릭터 개성을 살리기 위해 기존에 유행하던 라운드제 FPS 게임의 룰을 엄청나게 갈아치웠습니다. 방어와 정찰 시간을 주었으며 가젯(캐릭터의 고유 장비=스킬)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수직적이며 변형 가능한 복잡한 맵 디자인을 선택했죠. 하나의 공간에 대한 진입 경로도 굉장히 복합적입니다.
하지만 발로란트에서는 아직 이런 고민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냥 스킬을 쓰는 캐릭터가 5명의 캐릭터가 싸우기엔 지나치게 넓어보이고 단순한 구조의 맵에서 느릿느릿 움직이죠. 캐릭터를 만들었고, 스킬을 주었으나, 지금의 게임은 이걸 100% 활용하기에 적절하지 않습니다. 스테이크 접시 위의 비틀어진 가니쉬처럼 곁들여 먹으면 좋지만, 안 먹어도 그만이죠. 먹고 말고는 게이머의 선택입니다.
스킬을 능숙하게 잘 활용하면 게임이 더 풍성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스킬을 전혀 쓰지 않아도 총만 잘 쏜다면 1인분을 할 수 있죠. 지금의 모습만 보면 굳이 스킬이 아닌, 소모품의 개념으로 이를 대체해도 큰 변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문제처럼 보이지 않지만 이게 문제가 됩니다. 기존의 게임 이상의 재미를 마련해두지 못했다는 뜻이거든요.
오버워치는 캐릭터성에 강하게 기대는 게임입니다. 캐릭터와 스킬이 없다면 게임이 성립이 안되죠. 에이펙스 레전드는 캐릭터 선택에 따라 플레이 스타일이 완전히 달라지며, 레인보우식스: 시즈 또한 가젯 없는 대기 요원을 선택하는 경우 소수의 전략적 선택을 제외하면 트롤링이나 AFK로 간주됩니다.
스킬을 사용하는 캐릭터가 등장하는 FPS가 수없이 많이 나왔음에도, 왜 카운터스트라이크의 룰을 그대로 반영한 경우가 없었는지를 발로란트가 잘 보여줍니다. 카운터스트라이크의 룰에 스킬 있는 캐릭터를 놓았다면, 이 둘이 잘 어우러지게끔 룰도 손을 봤어야 합니다.
스킬이 게임과 전혀 어울리지 않고 쓸모없는 시스템이며, 그냥 섬광탄이나 수류탄 등으로 대체해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기왕 묶을거면, 스킬 쓰는 카운터스트라이크 정도가 아닌, 그 이상의 재미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뜻이죠.
스킬을 더 본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맵 디자인, 총기와 스킬 간의 밸런스, 전장의 크기나 스킬 사용 시 발생하는 모션 딜레이의 조절, 보다 직관적인 스킬 설명 등, 카운터스트라이크와는 다른, 발로란트만의 게임 플레이를 유도해야 합니다.
한 접시 위에 재료들을 각각 둔 셈입니다. 캐릭터를 손보든, 룰을 선보든 둘을 하나로 묶어 새로운 맛을 내는 요리를 만들었어야 하지만, 그 과정까지 이르질 못했습니다. 결국, 이 게임에서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재미를 찾아내는 게이머는 매우 소수입니다. 게임에 애정을 쏟아가며 어떻게든 두 재료를 함께 즐길 방법을 찾아낸 게이머들이죠.
'클로즈 베타'니까 괜찮아
그 외에도 손볼 부분은 많습니다. 극사실주의를 버리고 직관적 비주얼을 추구하는 건 FPS 시장의 동향 중 하나가 맞습니다만, 지금의 그래픽 수준은 너무 볼품없긴 합니다. 비주얼을 그렇게 연출했다면 직관성이라도 좋아야 하는데, 아직 챙기지 못해 스킬 활용도 어렵죠. 피닉스의 섬광탄을 시작부터 완벽한 커브볼로 던질 수 있는 게이머는 아마 없을겁니다.
사운드나 편의 사항도 손봐야 할 부분들이 꽤 보입니다. 위협적인 소리를 더 크게 하고, 아군 발소리는 조금 더 줄여도 될 것 같으며, 미니맵 사이즈는 조금 더 작아도 될 것 같습니다. 크기 조절이 가능하게 만들던가요. 최대 25라운드까지 진행되는 게임에서 캐릭터 교체 타이밍이 전혀 없는 것도 꽤 피곤하게 다가옵니다. 상시 교체는 아닐지라도 공수교대쯤엔 캐릭터 교체가 가능하다면 피로가 훨씬 줄어들 것 같은데 말이죠.
그리고, 또 한가지 꼭 손봐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라이엇이 자신만만하게 공언했던 안티 치트 프로그램인 '뱅가드'입니다. CBT 전부터 라이엇의 자존심 그 자체이던 부분인데, 이 문제의 개발사 공인 랜섬웨어는 온갖 문제를 다 터뜨리고 다닙니다. 핵이라도 다 막았으면 참작이 가능할텐데 그마저 못 막았습니다. 음식 만들어놓고 쥐가 훔쳐먹을까봐 쥐약을 뿌린 셈입니다. 정작 쥐는 다 피해서 갉아먹고 사람만 불편해졌습니다.
물론, 이는 현재의 문제이며 라이엇은 이 모든 불만과 의견을 해결할 수 있는 마스터키를 가지고 있습니다. 발로란트가 아직 '클로즈 베타 테스트'를 치르고 있다는 것이죠. 시스템 간의 부조화로 빚어지는 문제는 앞으로 천천히 묶어 나가면 됩니다. 마지막 모습이 어떨지는 몰라도, 라이엇이 이대로 발로란트를 버릴 게 아니라면 더 재미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내겠죠.
이번 테스트로 인해 라이엇은 숙제를 가져가게 되었습니다. 라이엇은 이미 LoL로 e스포츠 씬에서 큰 재미를 보았고, 발로란트는 이미 프로 팀 창단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습니다. 그냥 흩뿌리는 여러 타이틀 중 하나가 아닌, 제대로 힘을 준 브랜드라는 뜻이죠.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을 재미와 몰입, 대세감이 필요합니다. LoL 훌륭하게 해냈습니다. 기존의 많은 게임들의 장점을 잘 뽑아내 멋지게 요리했고, LoL만의 맛을 만들어냈죠. 라이엇이 바라는 발로란트의 미래상 또한 비슷할 겁니다. 이번 테스트가 그 과정에서 대단위 피드백을 수집하기 위한 전략적 시행이라면,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대중을 매료시키기 위한 테스트였다면, 다시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결국, 둘 중 하나입니다. '발로란트'가 기대만큼의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이유는, 라이엇이 착각했거나 혹은 의도한 거죠. 무엇이 되었든, 아직 실망은 이르리라 봅니다. 정식 출시 후 이 기사가 나왔다면 라이엇 입장에서는 꽤 아프게 다가올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개발 파이프라인의 끝에 이른게 아니라면 크게 개의치 않을 겁니다.
우리가 할 일은, 라이엇이 다음 테스트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뽑아낸 재료들을 자신들만의 색으로 묶어내 또 다른 '라이엇스러운' 작품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지를 말이지요. 라이엇이 그간 다작을 해 온 개발사는 결코 아니기에 쉽게 예상되지는 않습니다만,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나은 무언가를 선보이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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