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만들기 ②] 1인 게임 개발에 한 번 도전해보았습니다 - 캐릭터 디자인편

기획기사 | 윤서호 기자 | 댓글: 7개 |



"이제 어떻게 작업해야 할까?"

창작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두 번은 겪어봤을 고민입니다. 일단 소재를 생각해두고, 대략적인 얼개를 잡았는데도 작업에 막상 들어가면 이런 생각이 들게 되거든요. 현실과 이상이 괴리된 것처럼, 막상 작업에 들어가면 생각한대로 안 되는 경우가 다반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획 단계에서 여러 가지를 상정해두고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하는 것이지만, 그 단계에서 고민이 많아져서 결국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리스크도 존재했죠. 그래서 그냥 '한 번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큰 그림을 얼추 마무리 짓게 됐습니다.

사실 기획 단계에서는 게임의 테마나 시놉시스, 설정, 소재, 장르, 사용 엔진 외에도 다양한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만일 게임으로 수익을 올리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면 시장 상황과 수익성도 고려해야 하죠. 또한 '재미'에 대한 고민도 기획 단계에서 핵심 화두이기도 합니다. 다만 지금 당장은 구동이 잘 되도록 완성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고, 마켓에 출시해서 수익을 올릴 게임을 만드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에 우선 순위에서 배제됐을 뿐이죠.



▲ 마켓에 출시를 한다고 하면 결제 문제나 수익, 시장 및 유저의 선호도나 평점 등도 유념해야 합니다

앞으로도 줄곧 보게 되겠지만, 기획 단계에서 설정해둔 것이 틀어지거나 혹은 예상치도 못한 난관에 부딪히는 일이 수도 없이 많을 것입니다. 이번에 작업하게 되는 캐릭터 디자인편에서도 그런 부분을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작업에는 보통 우선순위가 있기 마련입니다. 기획 이후에 이어지는 작업 역시도 우선순위가 있죠. 제 경우에는 캐릭터 디자인이 우선이었고, 그래서 이번에는 캐릭터에 관련된 부분을 다루게 되었습니다. 일부 게임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게임 속에서 '캐릭터'는 꽤나 중요한 요소입니다. 게임 속에서 유저의 조작에 맞춰서 움직이는 캐릭터가 없다고 생각해보면 이해가 빠를 겁니다.



▲ 마리오가 없는 슈퍼마리오는 뭐란 말이오

그 외에도 왜 캐릭터를 우선순위로 한 이유는, 사실 '제 13차원'이라는 라이트노벨스러운 제목을 보면 알듯이, 이 게임은 서브컬쳐풍 게임입니다. 즉 '캐릭터'가 그만큼 중요한 게임이라는 것이죠. 물론 '이런 그림 실력으로? 설마?'라고 의아해하실 분도 있겠습니다만, 어쨌든 기획은 그렇게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그에 맞춰서 캐릭터 작업에 들어갔죠.



■ 분류, 그리고 설정 - 캐릭터 디자인을 위한 사전 작업

디자인 작업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우선 게임에 어떤 캐릭터들이 등장할지 카테고리를 분류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사실 대다수의 게임에서 캐릭터를 세 가지로 분류하자면, 1) 주인공 및 플레이어블 캐릭터 2) 우호적인 NPC 3) 적 NPC 정도로 나뉠 수 있죠. 이는 '제 13차원'에서도 마찬가지였고, 해당 캐릭터들에 대한 것은 기획 단계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캐릭터를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그 캐릭터에 대한 설정이 필요합니다. 보통 게임 제작할 때 기획자가 컨셉 아트를 그리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캐릭터 디자인에 참고가 될 수 있는 사항을 문서와 레퍼런스 등으로 제공을 하고 작업을 의뢰하게 되죠. 그때 제공하는 자료가 자세하고 세밀할수록, 캐릭터가 기획자의 의도에 더욱 더 부합하게 나오게 되죠.

물론 저는 제가 직접 그리는 만큼, 이 작업은 아주 구체적이지 않아도 무방했습니다. 다만 그냥 끄적이면서 좋은 디자인이 뚝딱 나올 정도로 일러스트 작업에 이력이 난 것도 아니었죠. 따라서 설정을 어느 정도 잡고, 거기에서 떠오른 이미지를 토대로 그림을 그려가는 작업을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SD 캐릭터로 구현할 생각이긴 했지만, 제가 SD 캐릭터를 전문적으로 그려온 것도 아닌 만큼, 처음부터 SD 캐릭터를 뚝딱 만들어내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캐릭터 디자인을 7~8등신 캐릭터로 한 번 그려낸 뒤, 그걸 바탕으로 SD화를 진행해나가게 됐죠.

이 과정에서 몇몇 부분은, 제가 예전 포트폴리오 작업을 하면서 쌓인 얄팍한 노하우가 깃들어있기도 합니다.


■ 유채림




이번 작품의 주인공입니다. 여고생이고, 갑작스럽게 사건에 휘말려서 능력을 각성했다는 흔한 클리셰를 갖고 있죠. '유채림'을 디자인하는 데 가장 중점을 둔 것은 심플함입니다. 게임에서 주인공은 플레이어의 조작에 맞춰서 다양하게 움직이게 되고, 여러 씬에서 등장하게 됩니다. 2D 작업에서 그 모든 동작과 애니메이션은 2D 스프라이트, 즉 미리 그려둔 이미지들의 총합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애니메이션이 많을수록 그만큼 요구하는 스프라이트의 양도 많죠. 그래서 작업량을 줄이기 위해서 최대한 심플하면서도, 캐릭터의 특색을 살릴 수 있는 디자인을 해야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게임 내에서 구현할 때 히트 박스 문제도 고려해야 했습니다. 이 부분은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게 되겠지만, 타격 판정이나 피격 판정은 모두 이 '히트 박스'라는 개념을 통해서 일어나게 됩니다. 이때 히트 박스는 다양한 모양으로 만들 수 있긴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도형으로 만드는 것이 초보자로서는 제일 안전하면서 확실한 방법이죠. 실제로 눈에 보이는 것와 히트 박스가 다르면 "아니 이거 분명 닿았는데 왜 안 맞지?"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를 조정하는 수고를 최대한 덜기 위해서 최대한 심플하게 만들었죠. 무기를 단순하게 만든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물론 그림을 잘 못그리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기도 하죠.



▲ 최대한 심플하게 만들어내는 것이 최우선 목표였습니다

사실 캐릭터 디자인에서부터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도록 했으면 더 심플하게 만들 수는 있었습니다. 마치 3D 모델링에서 반쪽만 만들고 시메트리-버텍스 머지 작업을 하는 것처럼 작업할 수 있기 때문이죠. 실제로 캐릭터 컨셉 디자인 작업에서는 신체에서 대칭인 부분은 절반만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레이어 복제-가로로 뒤집기-중심을 맞춘 뒤에 레이어 병합 과정을 통해서 작업 시간을 줄였습니다. 다만 모든 작업을 그렇게 하면 채택할 수 있는 디자인 자체가 제한이 되어있고, 자연스럽지 못하기 때문에 헤어스타일 등 일부분은 제외했습니다.

채림의 교복을 보면 "요즘 누가 이런 교복을 입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은 작게 입는 게 트렌드라서 심지어 아동복 사이즈급으로 작게 나온다고 기사가 뜰 정도니까요. 그렇지만 이렇게 큼직큼직하게, 심플하게 디자인했기 때문에 스프라이트를 나누는 작업과, 이를 조합해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작업이 굉장히 편해졌습니다.

사실 애니메이션용 스프라이트 작업을 할 때 각 파트를 조립하고 나서 이음새 부분을 지우고 구도에 맞춰서 채색하거나 때로는 일부분을 다시 그려야 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채림을 디자인할 때에는 모든 부분이 이음새 단위별로 구분이 지어지도록 디자인했기 때문에 단순히 재배치만 하는 것으로도 문제없이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물론 휘두르기나 이런 동작에서는 몇몇 파트의 이음새를 지워나가는 작업이 필요했지만, 적어도 그에 맞춰서 새로 그리는 일은 없기 때문에 작업량을 줄일 수 있었죠.



▲ 이 스프라이트들만 복제해서 재배치하는 것만으로도



▲ 이렇게 기초적인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물론 캐릭터 게임인 만큼, "왜 교복을 이렇게 입죠?"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도록 설정을 짜두는 것도 필요했습니다. 그 부분에 관해서는 따로 설정도 만들었지만, 이를 게임 내 스크립트나 스토리를 통해서 전달해야 비로소 의미가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은 따로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대검을 들고 있는 이유는, 기획 단계에서 "대검을 든 캐릭터가 있는 플랫포머 게임은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부분은 좀 더 생각해보면 골치가 아플 부분이 많습니다. 레벨디자인으로 볼 때나, 앞에선 미처 말하지 못한 또 다른 히트박스 문제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죠.

이 부분은 기획 단계에서 수정을 하거나,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제 사정상 제일 효율적인 방법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캐릭터의 설정 및 액션을 변경하고, 무기를 다시 그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검을 든 미소녀 캐릭터라는 제 취향 문제에, 다른 게임과 차별화 포인트를 가면 외에도 대검 액션 플랫포머로 잡겠다는 허무맹랑한 야심 때문에 이 부분은 계속 유지하게 됐죠.


■ 성유미




주인공을 도와주는 조연 캐릭터입니다. 사실은 제 13차원을 처음 구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캐릭터가 이 캐릭터였고, 작품 전체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비교적 세세하게 설정과 디자인을 사전에 해뒀습니다. 다만 대부분이 소설용으로 쓸 예정이었기 때문에, 게임에 쓰기 위해서 재단하는 작업이 필요했죠. 게임 속에서 맡게 될 역할은 주로 아이템이나 장비를 주는 역할이죠.

유채림보다 더 공들여서 디자인했는데 주인공이 아닌 이유는 간단합니다. 코스트가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죠. 단순히 악세사리까지 세세하게 그리고 채색하는 작업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스프라이트로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 유채림보다 더 손이 많이 듭니다. 특히 하체 부분이 바지라서 유채림보다 나중에 작업해야 하는 부분이 많았죠.



▲ 성유미 스프라이트

그런데 왜 굳이 이런 디자인을 했나요, 라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 제가 성유미를 디자인할 때 떠올린 키워드는 '안경을 쓴 쿨하고 과감한 스타일의 미녀'와 '은밀한 비밀이 있는 캐릭터'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린 컨셉 디자인과 SD 캐릭터는 그 키워드를 조합해서 만들어진 결과물인 셈이죠.

앞서 제가 제시한 키워드만 듣고 캐릭터를 구상한다고 가정해보면, 사람들마다 제각각 떠올리는 캐릭터의 모습이 다를 겁니다. "그런데 왜 저 디자인이 나온 거죠? 쿨한 스타일이면 단발머리일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라던가, 혹은 "짧은 치마로 해도 괜찮지 않았을까요?"라는 식으로 반론을 제기하실 수도 있죠.

이런 부분 때문에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캐릭터 디자인을 맡길 때 최대한 캐릭터에 대해서 상세하면서도 많은 정보를 제공해야 합니다. 일러스트레이터에게 단순히 키워드나 막연한 설명을 하게 되면 그 일러스트레이터가 생각하는 '해당 키워드에 맞는 캐릭터'가 만들어지게 되거든요. 기획자와 일러스트레이터가 서로 생각한 것이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진다면 크게 문제가 없겠지만, 아예 다른 경우라면 작업을 다시 해야 하는 경우도 생겨버리죠. 제 경우는 제가 직접 캐릭터를 그렸으니 문제가 없지만, 캐릭터 일러스트나 리소스를 외주 작업을 해야 하는 경우라면 이 점에 유의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어쨌든 그런 키워드를 바탕으로 해서 구현하게 된 캐릭터가 성유미입니다. 은밀한 비밀=소형 무기라는 저만의 공식 때문에 무기는 이것저것 고민하다가 결국 데린저가 되어버렸고요. 일러스트를 본 동료 기자 중에는 "데린저라면 긴팔 소매에서 스윽 꺼내서 쏴야 제맛 아닌가요?"라고 캐릭터에 대한 의견을 밝히기도 했죠. 이렇듯 캐릭터 일러스트 및 디자인은 개인의 개성이나 생각이 강하게 반영이 되고, 의견 차가 갈릴 수 있는 부분입니다. 따라서 여럿이 작업할 때는 최대한 구체적으로 설정 및 참고 자료를 갖춰두고 캐릭터 디자인을 구체화하는 것이 좋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드리겠습니다.



▲ 데린저하면 이런 이미지만 생각났지만



▲ 이렇게 쓸 수 있다는 것도 동료 기자의 말을 듣고 난 뒤에 알게 됐죠.
사람마다 관심사나 떠올리는 이미지는 다 다르다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 오중구




또 다른 조연 캐릭터입니다. 핵심 키워드는 '알고 보니 사실은 엄청 강하다', '무언가 내막을 알고 있는 듯한 인물', '기묘함', '자칭 호랑말코 도사'였죠. 알고 보니 사실은 엄청 강했고, 무언가 내막을 알고 있는 인물을 떠올릴 때 저는 슬레이어즈 시리즈의 제로스나 블리치의 이치마루 긴, 블레이블루의 하자마 같은 유형의 캐릭터를 먼저 떠올리곤 했습니다. 네, 흔히 말하는 실눈계 캐릭터입니다.

물론 실눈이라는 특징은 주인공과 대립하는 세력에 있는 캐릭터들의 클리셰이긴 하지만, 무려 "눈 그릴 때 눈썹만 그리면 돼"라는 압도적 편의성 때문에 결국 그렇게 채택해버렸습니다. "실눈 캐릭터 중에는 이자크 듀카스텔 같은 캐릭터도 있잖아"라고 위안을 삼으면서 말이죠.

캐릭터를 디자인할 때 보통은 기획자가 자신이 의도한 그대로 그려내지 못하기 때문에 외주나 혹은 사내의 아트 팀에게 맡기게 됩니다. 제 경우에는 제작 과정에서 누구의 힘도 빌리지 않고 순수 100% 자력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캐릭터 디자인인 만큼, 이 부분만큼은 제가 혼자 해결한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자연히 제가 실력이 부족해서 막히는 부분은 일종의 꼼수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사하면 전통 복식이나, 부적마냥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 복잡한 문양이나 무늬 등을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다만 저는 그런 캐릭터를 여태까지 잘 안 그려왔기 때문에, 그걸 하루 아침에 바로 구현한다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예전 포트폴리오를 보듯 저는 주로 현대물, 그것도 펑크한 스타일을 굉장히 선호합니다. 자연히 그 대척점에 있는 전통복식이나, 진법이나 문양 같은 것에 굉장히 취약했죠.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스타일이다보니 기존의 것을 참고해서 전통적인 특징을 잘 드러내면서도 심플하게 디자인을 뽑아내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 이전 포트폴리오 때 작업했던 일러스트들

오중구의 가면 같은 경우에는 양반탈을 보고 그린 뒤에, 캐릭터 디자인과 상당히 이질적인 코와 입 부분을 날려버리고 데포르메를 주는 것으로 해결했습니다. 복식은 참고자료를 보고 그리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또 다른 문제점을 발견했습니다. 제가 매듭 같은 세밀한 부분에 취약하다는 점, 어차피 그런 자잘한 부분은 나중에 SD 캐릭터로 만들 때 크게 돋보이지 않는 점이었죠. 제 능력 부족으로 최대한 심플하게 만드는 것은 여차저차해서 성공하긴 했지만, "좀 더 특색이 드러나게끔 디자인했어야 하는데"라는 아쉬움이 굉장히 많이 남는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원래 생각해둔 작품에서는 비중이 상당히 높습니다. 다만 게임에서는 유채림이 메인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부분은 죄다 삭제하고 게임 내에서는 주로 체크포인트나, 팁을 주는 도우미 역할로 정했습니다.



■ 주인공보다 더 어려운, 적 캐릭터 만들기

주인공을 만드는 작업 못지 않게 중요한 작업은, 그 주인공이 맞서 싸우게 될 적을 설정하고 만들어내는 일입니다. 주인공이 물리쳐야 할 적이 없으면, 대부분의 게임이 진행되지 않죠. 마리오에서 쿠파가 피치 공주를 납치하지 않고, 거북이들이 날뛰지 않는다고 가정해보면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아는 플랫포머 게임의 대표주자 마리오가 나오는 일은 없겠죠.



▲ 마리오와 대립하는 쿠파와 쿠파 군단이 없다고 가정해봅시다

물론 모든 게임에 주인공과 적이 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장르에 따라서는 캐릭터가 구현되어있지 않는 게임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2D 플랫포머라는 장르는 주인공을 조작해서 배경 곳곳에 등장하는 함정과 적, 난관을 극복해나가는 장르입니다. 등장하는 적의 특성에 따라서 레벨 디자인의 완성도까지 달라지는 만큼, 어떻게 보면 주인공 못지 않게 중요한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 13차원이 2D 플랫포머 장르인 만큼, 2D 플랫포머 장르의 문법을 한 번 되짚어보죠. 스테이지가 시작된 뒤, 유저의 캐릭터는 진행 경로를 따라서 적을 만나게 됩니다. 게임의 특성에 따라서 적을 없애거나, 혹은 적의 공격을 회피하면서 지나가게 되죠. 일부는 처치하면 아이템을 주기도 합니다. 때로는 그렇게 해서 얻는 아이템이 공략의 열쇠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낭떠러지나 가시 등 각종 장애물들을 넘어가야 합니다. 때로는 장애물을 피하기 어렵게 그 주변에 적들이 포진해있기도 하죠. 이를 극복해나가면서 스테이지를 어느 정도 진행하면 보스를 만나게 됩니다. 그전까지는 단순하게 한두 가지의 패턴만 갖고 있던 잡몹과 달리, 보스는 여러 가지 패턴을 갖고 있죠. 또한 한두 번의 공격으로는 처리할 수 없기 때문에 패턴을 여러 번 넘기면서 진득하게 공략을 해야 합니다.

정리해보자면 2D 플랫포머 장르에서 적 캐릭터의 역할은 1) 주인공을 방해하거나, 혹은 장애물을 극복하기 어렵게 만드는 기재 2) 공략의 열쇠를 제공하는 단서나 아이템을 제공 3) 스테이지, 더 나아가 게임의 최종 목표 등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 맞게 캐릭터의 설정과 디자인을 구상하고 제작해나가야 하죠.



▲ 3D가 하나 껴있지만 제가 참고한 플랫포머 게임 중 하나라서 일단 끼워넣었습니다

이미 기획 단계에서 제 13차원에 등장하는 악역에 대해서 언급한 바 있습니다. '뫼비우스'라는 조직이 평행세계 간의 경계를 무너뜨리고자 하고 있으며, 그들을 물리치고 세계를 원상복구하려는 것이 주인공의 목적이자, 이 게임의 스토리입니다. 만일 이게 소설이나 비주얼 노벨의 설정이라고 한다면 '뫼비우스'는 무엇이고, 왜 세계를 무너뜨리려고 하는지를 자세히 다루게 되겠죠.

제 13차원에서는 일부 씬을 비주얼 노벨식으로 스토리를 진행하려고 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구상은 해야 했습니다. 적어도 이들이 누구이고, 왜 세계의 경계를 무너뜨리려고 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할 필요가 있었죠. 물론 소설이 아닌 2D 플랫포머, 그것도 볼륨이 굉장히 작은 작품이기 때문에 장황하게 늘어놓을 필요도, 그럴 여유도 없었습니다. 그런 만큼 최대한 단순명료하게 요약정리해야했죠.

요약하자면 '뫼비우스'는 안과 밖의 구분이 없는 도형인 뫼비우스의 띠처럼, 세계의 경계가 모호한 지점에서 등장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런 게 어디 있어?"라고 존재 자체에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나하나 따져가면 한도 끝도 없죠. 이런 분들까지 설득할 수 있는 하나의 신화를 만들려면 러브크래프트처럼 오랜 기간에 걸쳐서 세계관을 구축해나가야 하기 때문에 이 정도까지만 설정했습니다. 세계의 경계가 모호한 지점에서 등장하는 존재라는 말은, 반대로 그들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세계의 경계면이 무너져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즉 각자의 생존을 위해 인류와 뫼비우스가 두고 대립한다, 라고 서사를 단순화할 수 있겠죠.



▲ 러브크래프트의 크툴루 신화 등 하나의 세계관을 구축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그 다음 문제는 뫼비우스의 구성원들을 어떻게 디자인할까,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도형들이었습니다. 단순한 도형들이 아닌, 뫼비우스의 띠라던가 클라인의 병처럼 경계면이 없는 도형들이죠. 또 도형은 포토샵에 있는 도형 기능을 여러 방면으로 활용하면 쉽게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이점도 있었습니다. 이를 테마로 적들을 디자인하던 중에, 치명적인 문제에 도달하게 됩니다.

사실 2D 플랫포머 게임에서 무생물이 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게임의 설정에 따라 얼마든지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죠. 다만 이들의 비중이 너무 높아지면 "왜 이런 것들과 싸워야 하나"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하죠. 주인공을 위협할 만한 존재라고 하기엔 도형은 무언가 부족한 존재들이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도형을 테마로 한 적 외에도 생물형 적도 어느 정도 이 테마에 맞춰서 생각을 해봐야 했습니다. 그래서 중간보스는 상어, 촉수 등 생물에 기반한 적들을 고안했고, 잡몹인 클라인급에도 공중을 쏘다니는 생물형 적 외에도 또 다른 생물형 적들을 추가할 예정입니다.

캐릭터를 디자인할 때 또 다른 고려 사항은 패턴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사실 이 부분이 게임 자체의 완성도에 더 중요할 수도 있었죠. 적의 패턴 및 조합은 레벨 디자인의 기본 요소 중 하나고, 플레이 경험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를 만들기 위해서 2D 에서 주로 출현하는 적의 유형을 제 임의대로 구분했습니다. 지정된 구간을 단순히 걸어서 왕복하는 패트롤형, 공중을 날아다니는 비행형, 지정된 위치에서 자리잡고 있는 지박령형, 갑자기 등장하는 깜짝등장형 등으로 나눴죠. 이런 식으로 임의로 카테고리를 만든 뒤에 공격 형태에 따라서 근거리, 원거리를 나누거나 혹은 이동 방식에 대해서 단순보행형 등의 분류를 추가로 한 뒤에 거기에 해당되는 쫄몹들을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것이었죠.



▲ 패턴을 먼저 정하고 적을 설계했습니다. 도형만 줄창 나온 탓에 이제는 생물형도 추가해야겠지만요

보스의 경우는 패턴이 다양하게 갖춰져야 하기 때문에 패턴을 먼저 설정하기보다는 디자인과 설정을 먼저 짠 상태에서 패턴을 맞춰나가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무엇이든 일단 공격하고, 씹어보는 뱀상어의 습성 때문에 공상어가 나왔습니다. 크툴루 신화처럼 이계하면 '촉수'가 빠질 수가 없었죠. 그래서 촉수형 괴물인 '다르곤'을 떠올렸죠. 이는 '인스머스의 그림자'와 '데이곤'에서 등장하는 신 '데이곤'에서 따왔습니다.




▲ 보스인 공상어 초안

스토리의 몰입도나 재미를 위해서는 인간형의 악역도 필요했습니다. '이방인, 신, 괴물'의 저자인 리처드 커니는 "신화 속 괴물이나 신은 절반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죠. 즉 가장 경외감을 주거나 이질적인, 혹은 공포감을 주고 사람을 끌어당기는 서사 속의 존재는 인간에서 완벽히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인간을 닮으면서도 또 다른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원래 인간이었다가 뫼비우스와 협력하게 된 존재인 '제팔렌'이라는 개념도 급히 설정을 했습니다. 보스급인 '데미안'만 설정해두고, 필드에서 쫄몹으로 등장하게 될 이들에 대해서는 좀 더 고민이 필요했죠.

디자인을 한 뒤에는 그에 맞춰서 보스의 패턴을 따로 기술했습니다. 애니메이션 작업을 위해서는 주로 움직이게 되는 부분을 따로 스프라이트로 만들어두고 재배치하는 작업을 하게 됩니다. 즉 패턴을 미리 정해야 주로 움직이게 되는 부분을 미리 정할 수 있고, 스프라이트 제작을 번거롭게 반복하는 일을 최소화할 수 있었죠.



▲ 패턴은 우선 초안 디자인을 한 후에 문서화했고, 추가로 수정할 예정입니다

사실 캐릭터 컨셉 디자인이나 설정, 아트 부분은 처음에 기획하고 작업을 마치는 것만으로 끝나는 작업은 아닙니다. 엔진에서 실제로 스프라이트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보고 수정하는 작업을 거쳐야 하죠. 혹은 빌드에서 실제로 구현한 뒤에 '이건 아닌데' 싶은 패턴은 개선 혹은 삭제하거나, 빌드 구현 중에 떠오른 새로운 패턴을 스프라이트로 새로 만들어가기도 합니다.



■ 캐릭터 컨셉 아트와 스프라이트, 그리고 애니메이션

앞에서는 캐릭터를 어떻게 설정하고, 디자인을 잡아갔는지에 대해서 설명했습니다. 물론 설정 부분은 개인적으로 좀 더 변명하고 싶은 부분이 있긴 합니다. "왜 이렇게 중2병스럽게 설정을 짰어요?"라던가, 그런 부분들 말이죠. 제가 생각해봐도 "이름을 왜 그런 식으로 지었어요? 닭살돋게"라는 부분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마치 중고등학생 때로 다시 돌아간 느낌이랄까요. 어차피 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부터 제 흑역사는 시작된 만큼, 그 부분은 그냥 넘어가고자 합니다.



▲ 이불킥 각은 이미 잡힌지 오래입니다

캐릭터의 컨셉을 잡고 디자인과 설정을 짰다면, 이를 토대로 컨셉 아트를 그리게 됩니다. 사실은 컨셉 아트 단계는 캐릭터의 성격을 잘 드러낼 수 있는 특정 포즈, 혹은 구도에서 그리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캐릭터의 이미지를 한 층 더 잘 구체화시켜줄 뿐만 아니라, 일러스트용 포즈를 그릴 때 참고할 수 있기도 하거든요. 혹은 그 컨셉 아트를 좀 더 개선해서 다듬은 일러스트를 게임 내에서 쓸 수도 있고요.

저 역시도 캐릭터들의 45도 측면 바스트샷 정도는 필요했습니다. 캐릭터들이 대화하는 장면에서 각 캐릭터의 45도 측면 일러스트가 뜨고, 하단에 텍스트박스가 뜨면서 스크립트가 올라오는 고전적인 방식을 채택했거든요. 다만 2년 간의 공백 때문에 그 구도의 일러스트가 잘 안 그려진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우회해서 정면도를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SD 캐릭터를 그리게 됐습니다.



▲ 작업 진도가 안 나갔기 때문에 노선을 변경했습니다

정면도를 채택한 또 다른 이유는 앞서 말했듯 대칭되는 부분은 절반만 그려도 된다는 점 때문이기도 합니다. 절반만 그린 뒤에, 레이어를 복사해서 대칭으로 붙여넣으면 되니까요. 물론 실제로 게임에 써야 하는 일러스트라면 이 방법은 절대 권하지 않습니다. 인체는 사실 어느 정도 비대칭이기 때문에 너무 대칭이 완벽하면 오히려 부자연스러움이 느껴지는 경우가 좀 있거든요.

물론 그렇게 복제, 가로로 뒤집기를 한다고 해서 캐릭터가 뚝딱 바로 나오지는 않습니다. 절반만 그려도 된다는 말은 절반은 그려야 한다는 말과 똑같으니까요. 물론 프로 일러스트레이터들은 간단한 선화 정도는 가볍게 슥슥 그려내기도 하지만, 전 프로가 아닌 데다가 그림 연습도 2년 동안 손을 놓고 있으니 그렇게 캐릭터를 슥슥 그려낼 수 있을 리가 없었죠.



▲ 절반을 우선 그리고 복제한 뒤에



▲ 가로로 뒤집기를 하고



▲ 이어붙인 뒤에 레이어 병합을 하는 방식입니다. 비대칭인 부분에는 적용하긴 어려운 방법이죠

일단은 러프 단계를 통해서 캐릭터의 정면 모습을 대강 그려내고, 신체 비율을 잡았습니다. 표시자 기능을 활용해서 중심선을 잡고, 비율도 표시자를 활용해서 얼추 잡아냈죠. 그 비율에 맞춰서 캐릭터의 바디 라인과 몸을 대강 그려나갔습니다. 제 경우에는 이 단계에선 옷을 디자인하지 않습니다. 아직 인체 비율에 대해 손에 안 익기 때문에, 나중에 옷을 입히게 되면 불쾌한 골짜기가 생길 때가 많기 때문이죠. 지금도 잘 그리는 편이 아니지만, 러프 단계에서 옷을 입히고 그 위에 선화작업을 하면 더 어색해서 차마 내놓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리고는 레이어를 다시 만들고, 러프하게 그린 바디라인을 따라 옷의 러프를 그리고, 그 뒤에는 선화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선화를 할 때 저는 레이어를 최대한 부위별로 나눠두고 그리는 편입니다. 그래야 스프라이트 제작이 더 편해지고, 완성된 그림이 마음에 안 들었을 때 부위별로 나눠서 수정하기도 편하거든요. 채색할 때에는 부위별로 채색을 했는데, 사실은 밑색을 깐 다음에 그 위에 부위별로 레이어를 나눠서 채색하는 것이 더 편한 방법입니다. 나중에 선택영역 기능을 활용해서 바깥으로 튀어나온 색들을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고, 명암을 넣을 때도 좀 더 편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방법은 제가 몸에 안 익어서 이번에는 깜빡 잊고 쓰질 않았습니다.



▲ 러프로 캐릭터의 윤곽을 잡은 뒤에



▲ 러프를 따라서 선화를 그립니다



▲ 러프 레이어 가시성을 오프하거나 지우면 선화만 남게 됩니다

컨셉 아트 단계에서는 캐릭터의 특정 포즈 외에도, 캐릭터의 입체적인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서 삼면도를 그리게 됩니다. 이 방식은 특히나 3D 게임을 제작할 때 많이 사용합니다. 모델링에 들어가기 전에 앞으로 만들 캐릭터의 모습이 이렇다는 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시각화하기 위해서죠. 실제로 3D 모델링을 처음 배울 때, 삼면도를 바탕으로 3D 모델링을 자신이 의도한 대로 다듬어가는 방법을 배우기도 합니다. 다만 제 13차원은 SD 캐릭터가 등장하는 2D 플랫포머 게임이기 때문에 SD 캐릭터를 구현할 때 참고가 되는 정도로만 작업을 했습니다.

분명 동일한 캐릭터인데, 구도를 다르게 잡아서 그렸을 때는 다른 캐릭터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캐릭터를 그리는 것이 손에 안 익어서, 구도를 다르게 잡았을 때는 비율이 달라져버리는 것이죠. 흔히 말하는 '노오력' 외에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표시자 기능을 적극 활용하는 방법입니다. 표시자로 캐릭터의 눈 크기, 눈 사이 간격, 눈과 입의 간격, 눈과 이마의 간격, 심지어는 삐죽머리 간의 간격까지도 중요한 비율들을 하나하나 체크해나가는 것이죠. 그리고 이를 구도에 맞게 다시 적용해서 그리면 이런 작업을 안 한 것보다는 훨씬 더 일관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각 주요 부분의 비율과 모습이 얼추 비슷하면, 살짝 달라졌어도 동일한 캐릭터로 인식하거든요.



▲ PNG나 jpg 파일로 저장할 때는 표시자는 보이지 않으니 안심하시고 쓰셔도 됩니다

혹은 따로 지정해둔 신체 부위 레이어들을 복제한 뒤에, 구도에 맞게 재조립하고 나서 일부분만 다시 그리는 것도 방법 중에 하나입니다. 만일 일러스트레이터를 지망하고, 그림 연습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는 이런 방법들은 사실 권하지 않습니다. 제가 이런 방법만 쓰다보니까 특정 구도를 아예 설정조차 못하고, 특정 방향으로 긋는 선들을 제대로 그려내지도 못하거든요. 다만 일러스트레이터가 아니지만 자신의 캐릭터를 직접 그려서 게임을 만들어보고 싶다거나 하는 분들께는 참고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각 캐릭터의 컨셉을 그린 뒤에 SD 캐릭터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현실적으로 사람이 걷는 장면을 옆에서 보면 측면만 보이게 됩니다. 하지만 측면은 캐릭터의 특색을 드러내기가 어려운 구도입니다. 사람 얼굴 특징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이목구비가 잘 안 드러나는 구도이기도 하고, 몸 전체로 봐도 보이는 면적이 정면이나 45도 각도에 비하면 굉장히 적거든요. 특히나 데포르메와 생략이 심한 SD 캐릭터라면 측면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이 기껏해야 얼굴, 팔, 다리 뿐이고 몸통은 가끔 팔을 휘적거릴 때에나 겨우 보이게 되죠. 그래서는 캐릭터의 특색을 드러낼 수 없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다수의 2D 플랫포머 게임의 2, 3등신 캐릭터들은 45도 각도를 취합니다. 이는 제 13차원도 마찬가지기 때문에, SD 캐릭터를 그릴 때는 그 각도를 바탕으로 해서 그렸습니다.

또 한 가지 유의할 점은, 보통 2D 플랫포머 게임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진행한다는 점입니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오른손잡이는 손의 구조상 보통 오른쪽으로 45도 정도 튼 각도의 얼굴샷을 그리는 데 더 익숙합니다. 이 각도는 보통 화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캐릭터가 움직일 때 취하는 얼굴 각도입니다. 즉 평소 캐릭터의 진행방향과 정반대 방향으로 그림을 그리게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기껏 그려놓은 뒤에"반대 각도로 그렸어야 하는데"라고 깨닫게 됩니다.



▲ 오른쪽으로 튼 각도가 편해서 그렸지만



▲ 대다수 플랫포머는 진행방향이 왼쪽에서 오른쪽이기 때문에 저 구도와는 반대로 그렸어야 했죠

가로로 뒤집기 명령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비대칭으로 설정해둔 파트는 다시 그려야 한다는 단점이 존재합니다. 헤어스타일이나, 한쪽에만 있는 장신구 혹은 문신 등이 그 예죠. 따라서 이 기능을 사용해야 할 때는, 이렇게 뒤집혀서는 안 되는 악세사리나 장식, 문양 등이 있는지를 미리 확인해두고 그 파트만 레이어를 따로 구분지어서 작업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2D 격투 게임 같은 경우에는 캐릭터 스프라이트 작업의 번거로움 때문에 가로로 뒤집기를 한 뒤에 이런 부분은 수정하지 않습니다. 워낙 들어가는 스프라이트가 많다보니, 이런 부분까지 신경을 쓰기엔 코스트가 너무 많거든요. 제 경우에는 능력 부족으로 인해서 헤어스타일은 수정하지 않았고, 대신 가면만 살짝 손을 보는 정도로 타협을 했습니다.



▲ 헤어스타일은 제외하고 가면 부분만 반전이 되지 않도록 작업했습니다

SD 캐릭터를 그린 다음에는 이를 토대로 스프라이트를 나누는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SD 캐릭터를 그릴 때부터 얼굴과 머리카락, 몸의 레이어를 나눠서 그렸기 때문에 얼굴과 머리카락은 레이어를 복사했고, 나머지 신체 부위만 스프라이트용으로 큼직큼직한 관절에 맞춰 재단한 뒤 다시 그리는 작업을 거쳤죠. 이때 각 관절을 기준으로 좀 더 크게 스프라이트를 잡았는데, 이는 조립한 다음에 부족한 부분을 다시 그리는 일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지우는 게 그리는 것보다는 더 쉽고, 작업 시간이 더 적게 걸리기 때문이죠.

애니메이션 작업에 들어갈 스프라이트 제작은 포토샵의 타임라인 기능을 활용했습니다. 타임라인으로 프레임을 만들고, 각 프레임별로 들어갈 동작을 조각조각 나뉜 스프라이트를 재배치해서 만들어낸 것이죠. 그리고 재생을 하고 수정을 하는 작업을 반복하면서 스프라이트들을 완성해나갔습니다. 각 캐릭터별로 들어갈 애니메이션은 미리 사전에 기획했고, 그에 맞춰서 스프라이트를 만들어가는 작업을 계속해서 반복해나갈 예정입니다.



▲ 우선 작업할 것을 리스트화하고



▲ 스프라이트들을 조립해서 각 프레임을 만든 뒤에



▲ 타임라인으로 프레임을 배치하고 재생하면 이렇게 애니메이션이 나옵니다

애니메이션 작업에 대한 설명이 적은 이유는 간단합니다. 2D 애니메이션은 결국 노동집약적 작업, 즉 흔히 말하는 노가다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모션을 하나하나 프레임 단위로 스프라이트를 만들어내고, 그 프레임들을 연속적으로 보여주면서 마치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느끼게 하는 것이 초창기부터 쭉 이어진 애니메이션의 기본 원리입니다. 나머지는 그 모션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구현하는가, 프레임은 어떤 식으로 만들어가는가의 문제죠. 그리고 이를 스프라이트로 만든 뒤에 게임 엔진에 적용할 때는 스크립트와 애니메이터 내의 트랜지션, bool trigger 조건을 설정해서 조작에 따라 움직이는 캐릭터를 구현해낼 수 있습니다.



▲ 최초에는 한 손으로 공격하는 모션을 생각했지만, 작업 도중 수정하게 됐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만들어놓은 것들은 엄밀히 말하자면 엔진 내에서 애니메이션을 테스트하기 위한 사전 준비에 불과합니다. 하이라이트나 라이팅도 하나도 고려 안 한 상태에서 원래 색만 칠한 게 전부니까요. 사실을 고백하자면 제가 제일 취약한 작업이 명암을 넣는 작업입니다. 시간도 오래 걸릴 뿐더러, 시간 대비 효율도 굉장히 극악한 편이죠. 따라서 최대한 필요한 부분만 작업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마 엔진에 구동하기도 전에 캐릭터 작업에 너무 시간을 뺏겨버릴 것 같거든요. 그래서 결정된 스프라이트에만 하이라이트 명암을 주는 식으로 결정하고 나머지는 다 원래 색만 칠하는 식으로 일단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 명암작업 중에 과정이 수료되서 결국 미완으로 남았던 삼면도

이렇게 해서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얼개를 짜는 작업은 얼추 마무리지었습니다. 사실 이 작업도 게임의 완성될 때까지 계속해서 개선이 이루어지게 되죠. 그만큼 지금 소개한 것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바뀔 여지도 충분히 있습니다. 또 가능성이 적긴 하지만, 그림을 계속 그리다보면 어쨌든 조금이라도 실력이 늘기 때문에 스프라이트나 캐릭터 디자인이 좀 더 개선될 여지도 있죠. 그렇게 계속 되다가 마침내 게임이 완성되는 그 순간에, 캐릭터 디자인도 비로소 완성이 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캐릭터가 갖춰졌다면 그 다음에는 캐릭터가 활동할 영역, 즉 배경이 필요하게 됩니다. 그리고 캐릭터와 배경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서는 애니메이션 외에도 사운드, 이펙트 등 다양한 효과들이 필요하게 되죠. 이 작업은 에셋스토어에서 에셋을 구한 뒤에 게임에 맞춰서 적용할 예정입니다. 전에도 언급했지만, 저는 배경을 아예 못 그립니다. 구도도 못 잡을뿐더러, 무엇보다도 명암을 못 넣는다는 치명적인 단점 때문에 때려죽여도 유치원생이 크레파스로 그린 것 같이 엉성한 결과물밖에 못 내놓거든요.

따라서 다음에는 배경 작업뿐만 아니라 유니티 에셋스토어에 대한 이야기나, 에셋을 엔진 내에서 적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다루게 될 예정입니다. "자기가 만든 것이 아닌, 남이 만든 에셋을 갖다가 쓰는 것이 과연 자기 게임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아마 갖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짧게나마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요약하자면?

1) 제 13차원은 서브컬쳐풍 게임, 즉 캐릭터가 중요한 게임이기 때문에 다른 작업보다 캐릭터 설정 작업을 먼저 작업했다.

2) 캐릭터를 디자인하기에 앞서서 등장할 캐릭터들을 세 카테고리(주인공, 조연 NPC, 악역 NPC)로 구분했다. 게임 내에 SD 캐릭터로 등장하지만, SD 캐릭터로 바로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에 등신대 캐릭터를 먼저 작업하고 SD 캐릭터를 만들었다.

3) 주요 캐릭터 설정과 구현 과정은 다음과 같다

유채림

-본편의 주인공, 여고생

-디자인의 핵심은 '심플함', 주인공인 만큼 다양한 애니메이션을 요구하게 되고, 그에 따라 작업량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디자인을 만들어내야 했다.

-교복 디자인도 스프라이트를 최대한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방향으로 디자인했다.

-대검의 디자인이 간단한 이유는 히트박스를 최대한 간단하게 구현하기 위한 것.

-대검 액션 플랫포머로 차별화를 꾀하겠다는 이유로 무기는 대검으로 설정. 기술적인 문제 발생 여지가 있으나 이 부분은 차후 해결하는 것으로


성유미

-유채림보다 먼저 디자인이 완성된 캐릭터

-복잡한 액세서리와 디자인 때문에 코스트가 많이 들어서 주인공으로 삼지는 않았다

-키워드는 '안경을 쓴 쿨하고 과감한 스타일의 미녀', '은밀한 비밀이 있는 캐릭터'고 이에 맞춰서 캐릭터를 구현해나갔다.

-주로 맡게 되는 역할은 아이템과 장비 지급


오중구

-자칭 호랑말코 도사, 키워드는 '알고 보니 사실은 엄청 강하다', '무언가 내막을 알고 있는 듯한 인물', '기묘함'

-전통 복식을 잘 못 그리는 데다가, 문양 같은 것에 약하기 때문에 디자인 과정에서 아쉬움이 남는 인물

-게임 내에서는 체크포인트나 세이브포인트, 혹은 팁을 제공하는 역할을 맡는다.

4) 본인이 직접 캐릭터를 그릴 때는 괜찮지만, 여럿이서 같이 작업하거나 혹은 캐릭터 일러스트를 외주를 줄 때는 최대한 자세하게, 구체적으로 설정을 주거나 레퍼런스를 줘야 한다. 키워드나 사물, 혹은 캐릭터에 대한 이미지는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으면 사람마다 다른 결과물이 나오기 때문이다.

5) 악역 뫼비우스의 설정은 원래 더 많았지만, 기초적인 2D 플랫포머에서 표현할 수 있는 부분까지만 설정을 재단했다. 그리고 2D 플랫포머의 문법에 따라서 적을 임의로 네 종류(비행형, 지박령형, 패트롤형, 깜짝등장형)으로 구분하고, 그에 맞게 적의 디자인을 만들어나갔다.

6) 중간 보스는 패턴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에 패턴을 먼저 구상하기보다는 캐릭터 디자인부터 먼저 떠올리고 패턴을 그에 맞춰나갔다.

7) 악역은 처음엔 무생물, 특히 도형을 위주로 디자인했다. 뫼비우스의 띠 등 도형에서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기초적인 도형만 활용해도 얼마든지 그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단순한 도형과 무생물만으로는 위압감이나 몰입감을 주기 어렵기 때문에 생물형 몹, 특히 인간형 몹도 디자인 중에 있다.

8) 컨셉아트는 보통 캐릭터의 설정을 잘 드러낼 수 있는 구도나 포즈에서 그리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게 빠르게 안 되기 때문에 정면도를 택했다. 정면도를 택한 이유는, 대칭인 부분은 절반만 그린 뒤에 레이어 복제-가로로 뒤집기를 해서 자유이동해서 끼워맞춘 후 레이어를 병합하면 쉽게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9) 캐릭터를 그릴 때 바디 러프-의상 러프-선화-채색의 순으로 진행했다. 바디 러프와 의상 러프를 따로 만든 이유는, 신체 비율을 최대한 살려서 그리기 위한 것이다. 선화 작업을 할 때는 최대한 부위별로 나눠서 작업해서 추후에 재조립이나 수정이 쉽도록 했다.

10) 컨셉 아트 단계에서 3D 게임의 경우 입체적인 모습을 나타내기 위해서 삼면도를 그릴 때가 있다. 종종 동일 캐릭터를 다른 구도로 그릴 때 다른 캐릭터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표시자를 활용해 중요한 부위의 비율, 부위와 부위 간의 비율을 체크하고 그리면 이런 현상은 완화된다. 혹은 선화 단계에서 미리 나눠둔 신체 부위를 재조립한 뒤 구도에 맞춰서 살짝 수정하는 방법도 있다.

11) 일반적으로 2D 횡스크롤 게임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다수의 경우 오른손잡이는 신체구조상 오른쪽으로 45도 튼 각도의 얼굴샷을 그리는데 익숙하다. 그렇게 되면 진행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가는 구도가 만들어진다. 이 부분은 가로로 뒤집기 기능으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지만, 비대칭인 부분은 반대로 뒤집혀버리기 때문에 비대칭 부분은 사전에 레이어를 따로 잡아서 작업해두는 것이 좋다.

12) 애니메이션 스프라이트는 그 캐릭터를 다시 통째로 그리는 작업이 아니라, 캐릭터의 관절 부분을 기준으로 파트를 나눈 뒤에 이를 조립해서 포즈나 구도를 만들어가는 작업이다. 이 작업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어떤 동작을 구현할 것인지 미리 생각해두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그에 맞게 스프라이트를 한 번에 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13) 엔진에 애니메이션을 적용하기 전에 포토샵의 타임라인 기능을 활용해서 작업한 결과물을 체크했다. 재생한 뒤에 어색한 부분은 수정을 계속 반복하면서 각 프레임별 스프라이트들을 완성해나갔다.

14) 명암을 안 넣은 이유는 명암을 못 넣고, 넣는다고 해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작업이 지체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확정적으로 쓰게 될 부분에만 명암을 넣기로 하고, 나머지 부분은 원래 색만 칠하는 방식으로 작업에 소모되는 시간을 최소화했다. 아직 엔진에 애니메이션을 적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제작한 스프라이트도 확정적으로 사용되는 것들이 아니다. 캐릭터 디자인 과정은 게임이 완성이 될 때 비로소 같이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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