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 라스트 파라다이스' 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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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한정할 때, 올 한해 가장 뜨거웠던 게임 스튜디오는 바로 '민트로켓'일 겁니다. 넥슨 산하의 서브 브랜드인 민트로켓은 올 초, 그다지 좋지 못한 뉴스의 피해자로서 처음 이름을 알렸지만, 여름에 이르자 '데이브 더 다이버'의 폭발적인 대성공을 통해 환상적인 반전을 이뤄냈습니다.

넥슨의 전체 규모에 비하면 소수에 불과한 인원의 이 스튜디오는 그간 넥슨이 쌓아온 다소 불편한 이미지들을 시원하게 타파하며 국내 게임 스튜디오임에도 글로벌 기준에 맞는 훌륭한 게임을 만들어내는 스튜디오로서 자리매김했죠.

그리고, 오늘 설명할 '낙원: LAST PARADISE', 이른바 '낙원'은 '데이브 더 다이버'의 뒤를 잇는 민트로켓의 두 번째 타이틀입니다. '좀비 아포칼립스'라는 다소 흔한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서구적 감성으로 풀이된 대다수의 좀비 아포칼립스 게임들과 달리 정확히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대한민국, 현대의 서울을 공간적 배경으로 삼았지요.

그리고, 이 배경의 다름은 곧 게임성의 차이로 이어져 있습니다. 지금부터 그 '차이'가 어떤 것들을 다르게 만들었는지, 지난 4일 간의 플레이 테스트에서 느꼈던 점을 기반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1. 현대 서울이라는 배경, 독특함의 출발

앞서 말씀드렸듯, '낙원'이 다른 좀비 아포칼립스 게임들과 달라지는 차이의 시작인 '현대 서울'이라는 시간, 공간적 배경에 있습니다. 게임 이름인 '낙원'은 중의적 표현인데, 말 그대로 대재앙 속 유일하게 남은 생존의 공간을 설명하기도 하지만, 종로의 '낙원 상가'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게임의 스테이지 중 하나로 등장하며, 실제 게임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 무대로 설명되기도 했죠.

게임의 컨셉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어느 날 서울을 덮친 좀비 브레이크아웃으로 서울 시내는 마경이 되었고, 생존자들은 여의도 쉘터에 몰려들었습니다. 당연히 여의도만으로는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충분한 물자가 공급되지 않으니, 생존자들은 매일 배를 타고 서울 시내로 나가 필요한 물자를 찾아 와야 하죠.



▲ 이번 테스트의 유일한 무대였던 낙원상가 인근

게이머는 이 여의도 쉘터의 불법 체류자로 게임을 시작하게 됩니다. 몇 번의 수색 과정을 거쳐 충분한 기여도와 자금이 모이면 임시 체류자가 되고, 다시 또 일반 체류자가 되면서 점점 생존자 커뮤니티의 중요한 인물이 되어가는게 게임의 주된 컨셉이죠. 사실, 여기까지는 매우 흔하게 쓰이는 클리셰적인 구도입니다.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도시 속 생존자 커뮤니티가 나름대로의 질서를 유지하며 버틴다는 건 숱한 좀비물 미디어에서 등장했던 배경 구도니까요.



▲ 살아 남으면서 점점 가치 있는 구성원이 되어가는 것이 목표

그리고 여기에, 앞서 말한 '현대 서울'이라는 명확한 배경이 관여합니다. 대한민국, 그 중에서도 낙원의 배경이 되는 서울 강북의 특징을 몇 가지 키워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엄청난 인구 수, 고층 빌딩, 총기 소유 불허, 그리고 '난개발'.

게임의 무대가 되는 '낙원 상가' 인근은 이 키워드가 모두 적용되는 공간입니다. 고층 빌딩이 숱하게 보이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오가지만 서울에서도 꽤 오래 된 이른바 '구시가지'에 해당하는 지역이기에 신도시스러운 깔끔함보다는 오랜 세월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거미줄 같은 골목길과 구옥들이 동시에 존재하는 복잡한 지역이죠. 실제 낙원 상가 인근에 사시거나 방문했던 분들이라면 아마 어떤 느낌인지 잘 아실 겁니다.



▲ 그 외에도 연희동과 서울숲 인근이 무대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때문에, 게임의 기본 시스템 또한 기존의 좀비물과는 사뭇 다릅니다. 총기나 화염 방사기로 쏟아지는 좀비를 쓸어 담으며 나아가는 협동 슈터 게임들과도 다르고, 온갖 마개조 장비들로 좀비들을 때려잡으며 퀘스트를 해결해가는 오픈 월드 게임들과도 다릅니다. 낙원과 가장 비슷한 라이브 서비스 게임은 '이스케이프 프롬 타르코프'이며, 실제 플레이 감각은 '메탈 기어 솔리드' 시리즈와 가장 유사하다 할 수 있죠.

'낙원'에서 플레이어는 철저하게 좀비를 피해 다녀야 합니다. 좀비를 잡는다고 경험치를 주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가치 있는 전리품을 주지도 않습니다. 철저히 좀비의 눈을 피해 조용히 돌아다니며 도처에 깔린 물자를 수급하고, 게임의 강제 진행 시스템인 유독 가스가 번지기 전에 지역을 탈출하는 것이 목표죠.



▲ 대충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는 게임

동시에 좀비가 쉬운 존재도 아닙니다. 하나에서 둘 정도야 초보 게이머들도 어렵지 않게 때려눕힐 수 있지만, 셋 이상이 모이면 급격히 어려워지고, 좀비가 무더기로 몰려들면 떼어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낙원 속 좀비들은 소리에 매우 민감해 뛰어다니거나 소음을 내면 곧바로 주의를 끌게 되기에 매사에 조심스럽게 걸어다녀야 하죠.

복잡하게 꼬여 있는 골목길과 수많은 엄폐물, 그리고 난잡하다 싶을 정도의 지형은 게임의 또 다른 특징입니다. 3인칭 시점에서도 시야가 닿지 않는 부분이 많기에 매번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게임 진행 과정에서 동선 관리를 신경 써야 합니다.



▲ 기껏 눕혀놔도 다시 벌떡 일어나는 좀비들

그리고, 여기에 가장 큰 변수가 되는 것이 바로 '다른 사람'입니다. 낙원은 한 게임에 총 16명이 진입하며, 지형이 복잡하지만 넓은 공간에서 진행되는 게임은 아니기 때문에 다른 게이머를 어렵지 않게 만나게 됩니다. 상대를 처치하면 그 게이머가 들고 있던 모든 물자를 뺏어갈 수 있기 때문에 눈치껏 싸움을 피하는 경우가 아니면 당연히 대립이 시작되고, 이 싸움은 곧 소음이 되어 주변 좀비들의 주의를 끕니다. 1분 전까지만 해도 조용히 파밍을 하던 게임이 다른 게이머와 조우하는 순간 난장판이 되어버릴 수 있다는 거죠.

'탈출'은 세 가지 방법으로 이뤄집니다. 각 개인에게 랜덤하게 배정되는 하수도인 '개인 탈출구', 특정 기계를 작동하면 열리는 '특수 탈출구', 그리고 맵의 끝에 위치하며 누구나 사용 가능한 공용 탈출구가 그것입니다. 탈출에 성공하면 모든 전리품을 판매해 돈을 벌 수 있고, 이는 곧 식량의 수급으로 이어집니다. 낙원은 결국 '생존'을 목표로 두는 게임이기 때문에, 자원을 확보해야 식량도 살 수 있죠.



▲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다


2. 매력과 불편함의 양가 감정

이렇듯, '낙원'은 기존의 좀비물과는 다소 다른, 생존 그 자체에 충실하게 포커스를 맞춘 익스트랙션 서바이벌입니다. 게임 시작과 동시에 파밍 루트와 탈출구로 이어지는 루트를 짜야 한다는 점에서 기본적인 전략을 요구하고, 임기응변이 필요한 여러 순간들과 변수들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게임적 재미도 충분하다 할 수 있죠.

하지만, '알파'단계라는 점에서 느껴지는 불완전함과 게임 특유의 컨셉에서 따라오는 불편함도 존재하긴 합니다. 그 중 가장 먼저 느껴지는 건, '잠입'이 요구된다는 게임의 고유성에서 오는 높은 정신적 피로입니다.



▲ 누군가에게 장난감을 줄 수 있다는 건 행복하지만...

'낙원'에서, 게이머들은 무조건 밤에 움직입니다. 어떠한 배경 설정이 있으리라 생각되긴 하지만, 손전등에도 반응하지 않는 좀비들이 빛에 민감하다는 설정은 아닐 겁니다. 하여튼 이렇게 좀비가 가득한 서울의 밤거리에서 게임을 시작한다는 건 그 자체 만으로 꽤 강한 긴장을 만들어냅니다. 다른 이들과의 조우에 대비하고자 손전등을 끄고 다니면 강도가 더 심해지죠.

기본 3인칭 게임이기에 깜짝 놀랄 점프스케어는 없어 '무섭다'라는 느낌은 주지 않지만, 혼자 돌아다니기엔 꽤 넓은 지역에 고립되어 있다는 느낌은 그 자체로 압박이 느껴집니다. 게다가 공간을 구성하는 오브제들이 워낙 자주 본 물건들이다 보니 국내 게이머 한정으로는 몰입이 더 강하게 느껴질 겁니다. 실제 저 또한, 다른 좀비물들을 플레이 할 때보단 한 단계 더 높은 몰입을 느꼈으니 말이죠.



▲ 이런 분위기를 유지하는건 정신적으로 상당히 피로하다

달리 말하면, 말세적 분위기를 굉장히 잘 만들어냈다는 칭찬도 되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그와 별개로 게임 한 판이 적지 않은 피로를 만들어낸다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좀 더 쉽게 표현하자면, 게임을 몇 번 플레이하고 나서 '한 판 더 할까?'보다 '오늘은 충분히 한 것 같다'가 더 쉽게 나오는 게임이란 뜻입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100% 취향의 문제이기 때문에 게임의 아쉬운 점이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누구나 쉽게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높은 대중성을 보여주는 게임은 아니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그나마 친구와 함께 둘이 플레이한다면 상당히 부담이 줄어드는게 다행이라 할 수 있죠.



▲ 계속 생각하며 게임을 해야 한다는 건 꽤 끌렸던 부분

게임 내적인 아쉬운 부분은 이와는 좀 결이 다릅니다. 가장 큰 부분은 '장비 의존도'인데, 낙원은 장비가 매 판 휘발되지 않고 영구 저장되는 익스트랙션 서바이벌이다 보니 신규 게이머와 숙련된 게이머의 장비 수준이 큰 차이가 납니다. 신규 게이머가 비료포대를 입고 각목을 들고 다닐 때 숙련된 게이머는 홈메이드 갑옷에 오함마를 들고 다닙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성능 차이가 꽤 있습니다. 같은 방어구를 기준으로 상대 게이머를 처치하려면 각목으로는 6~8대는 때려야 결론이 나지만 오함마나 크로우바는 한 두대만 쳐도 바로 누워버립니다. 실제로 제가 그렇게 누웠죠.

이를 역전할 수 있는 수단인 총기는 워낙 구하기가 어려운 데다 탄약 하나하나가 전략 물자마냥 희귀하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쓸 수 없을 뿐더러 의도된 것처럼 불편한 조작감과 소음으로 인한 좀비 유인이라는 강력한 리스크 때문에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선택지가 아닙니다. 게다가 방어구를 잘 갖추고 있으면 총을 맞아도 한방에 안 눕습니다.



▲ 뭐가 이리 세...

결과적으로 5일 간의 플레이 테스트 동안, 플레이 난이도가 급격하게 변했습니다. 첫 날은 무서운 좀비들을 피하고, 상대 플레이어와 데면데면하게 눈치를 보면서 탈출하는 게임이었다면, 셋째 날 즈음부터는 귀찮은 좀비들을 피하고, 빵빵하게 장비를 갖춰 좀비보다 훨씬 무서운 유저들을 피해 다니는 게임이 되어 버렸죠. 손전등을 켜면 귀신같이 찾아와 오함마로 꿀밤을 때리는 바람에 전등도 못 켜고 숨죽이고 다녔습니다.

그럼에도 또 탈출했을 때나, 상대 플레이어를 제압했을 때의 재미는 확실했기에 매 판 끝낼 때마다 고민을 해야 했습니다. 한 번 더 할지, 여기서 그만 둘지를 말이죠. 한 판 한 판이 만만치 않게 피곤했지만, 동시에 탈출의 쾌감이 이를 상쇄하기에 양가 감정 사이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이 기분이 정말 좋습니다

이렇듯, '낙원'은 아직 완전한 게임이 아닙니다. 물론 큰 문제라 할 수는 없습니다. 베타도 아닌 '알파 단계'라는 건 당연히 개발이 진행 중이라는 뜻이며, 이번 플레이 테스트는 많은 유저들의 피드백을 처음으로 받아들이는, 출발선에도 이르지 못한 단계입니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듯, 아직 한창 개발이 진행 중인 게임을 지금 단계에서 이러쿵 저러쿵 논하는 건 너무 섣부른 일이라 할 수 있죠.


3. 어둡지만, 동시에 밝은 '낙원'

오히려, '낙원'의 미래는 꽤 밝아 보입니다. 게임 플레이에 큰 지장을 주지는 않아 미처 적지는 않았지만 버그도 다수 보였고, 콘텐츠도 상당히 제한되어 딱 테스트 할 정도만 갖춰져 있었으며, 미처 정돈되지 못한 UI와, 불분명한 히트박스 판정, 게임 내 장비의 불균형 등 분명 문제점이야 있었습니다만, 대부분은 정식 출시 전 해결될 거라 생각합니다. 실제 민트로켓의 피드백 대처도 상당히 빠른 편이었고요.

하지만 이렇게 눈으로 보이는 불완전한 부분들이 있었음에도, 무사히 자원 확보를 마치고 탈출할 때의 카타르시스는 정말 훌륭했습니다. 게임이 어렵고 고될수록 클리어 시의 희열이 크다는 건 이미 소울라이크의 대성공으로 증명된 바 있는 부분이며, 방향성이 다소 다르긴 하지만 어려움 끝에 희열과 절망 중 하나를 준다는 건 낙원 또한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 어둠 속에 숨어 쫓기는 다른 생존자를 보는 시점, 공포 영화가 따로 없다

그리고, 무조건 마지막 생존자가 되어야 승리한다는 배틀로얄의 기본을 비튼, 각각 개인의 목표만 달성하면 누구나 승리자가 될 수 있다는 익스트랙션 서바이벌의 이 희열과 절망의 저울에서 균형추를 맞춥니다. 욕심만 내지 않는다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소소한 승리자가 될 수 있지만, 욕심을 부려볼지, 말지를 강제하지 않고 게이머의 선택에 맞긴다는 점이 이 장르의 특별한 점이라 할 수 있으니까요.

게임 내 분위기는 그 어떤 게임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어둡고 절망적이지만, 게임 자체의 가치는 충분히 빛나는 게임. 테스트 단계에서의 '낙원'을 이 정도로 설명하고 싶습니다. 대중적 장르는 아니기에 세계를 주름잡는 굵직한 거물이 되는 건 어렵겠지만, 좀비 아포칼립스 게임에서는 기념비적인 작품이 될 만한 충분한 잠재력을 지닌 게임.

낙원의 '낙'이 떨어질 '낙(落)'이 될지, 즐거울 '낙(樂)'이 될지는 이후의 개발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충분히 기대하며 응원할 가치는 있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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