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 게임 개발자들이 '체르노빌'에 간 까닭은?

게임소개 | 허재민 기자 | 댓글: 9개 |



'체르노빌'

이름만 들어도 바로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떠오르고, 사람은 없어진 채 남겨진 흔적만이 을씨년스럽게 떠오르는 단어다. 다른 어떤 수식어를 붙이지 않아도 체르노빌이라는 단어 안에는 많은 이미지가 담겨있다. 아직도 출입이 제한된 구역이기는 하지만, 우크라이나 정부에서는 체르노빌 사고 25주기였던 2011년부터 방문을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투어 전 건강상 문제가 생겨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문항에 동의해야 한다고.

아직은 출입하기에 위험하다는 의견이 있지만, 게임 개발을 위해 직접 체르노빌을 방문하고 있는 개발자들이 있다. 밀리터리 FPS '월드워3'와 호러 FPS '겟 이븐'를 개발한 폴란드 개발사 The Farm 51이다. 게임 속에 체르노빌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자 여러 차례 위험지역을 방문하고 있는 The Farm 51은 이전 체르노빌의 장소들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VR 프로그램을 개발한 경험을 토대로 이제 체르노빌을 배경으로 하는 서바이벌 호러 게임, '체르노빌라이트(Chernobylite)'을 개발하고 있다.

의미심장한 스토리와 전투를 조합한 '겟 이븐'처럼 체르노빌라이트는 비선형적 스토리를 기반으로 하는 서바이벌 게임이다. '겟 이븐'이 신선한 게임 플레이로 호평받았지만 디테일과 깊이 부분에서는 아쉽다는 평을 받은 만큼, 이번에는 전작의 아쉬웠던 점을 개선해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올 가을 출시되고 플레이해봐야 알겠지만, 영상에서 공개된 분위기만큼은 체르노빌의 무서운 이미지와 왠지 쓸쓸한 느낌이 잘 녹아 들어가 있다. S.T.A.L.K.E.R. 시리즈와 비슷한 인상을 주지만, 좀 더 개인의 이야기를 다룰 것으로 예상된다.



왜 체르노빌인가?
쉽게 가지 못하는 장소를 무대로



▲The Farm 51이 직접 체르노빌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체르노빌라이트는 체르노빌 사고 이후 30년 후를 배경으로 한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일하던 젊고, 열정적이고, 순진한 물리학자였던 주인공은 재난과 함께 여자친구를 잃게 된다. 그 후 30년이라는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주인공은 계속해서 과거의 환영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이를 마주하기 위해 다시 체르노빌을 방문하게 된다는 스토리다.

스토리보다도 개발단계에서 먼저 정해진 부분은 체르노빌이라는 장소를 배경으로 하자는 것이었다. The Farm 51은 전작에서부터 3D스캐닝 기술로 실제 공간을 게임으로 구현해왔고, 그만큼 차기작을 구상하면서 자연스럽게 '장소'를 가장 먼저 고민하게 된다. 공개된 인터뷰에서 The Farm 51의 보이치에흐 파즈두르(Wojciech Pazdur) 디렉터는 이집트 피라미드, 마야 문명, 고대 로마 유적 등이 후보로 나왔지만, 누구나 가볼 수 있는 장소라는 점 때문에 탈락시켰다고 한다. 함부로 갈 수 없고 으스스한 장소를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체르노빌이 선택됐다고.

The Farm 51은 체르노빌을 처음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포스트 아포칼립스 게임 속에 들어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한때 번화했던 도시지만, 이제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자연이 대신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모습. 하지만 실제 사건을 겪었던 가이드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개발자들에게도 체르노빌의 모습은 조금 다르게 다가오게된다.




"그곳에는 액션도, 뮤턴트도, 퀘스트도 없었고 침묵만이, 그리고 자신의 가족과 집, 행복한 삶을 잃어버린 실제 사람들의 슬픈 이야기들만 남아있었다." - The Farm 51 보이치에흐 파즈두르 디렉터, 너드게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체르노빌이라는 장소의 의미가 다르게 느껴지면서 게임의 방향성도 자연스럽게 바뀌게 됐다. 체르노빌이라는 '장소'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달하기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체르노빌'이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것은 장소가 아니라 사람들과 연관된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The Farm 51은 장소를 방문해 모습만을 따오는 것이 아니라, 참사로 고통받은 사람들과 아직도 버려진 장소에서 살아가고 있는 주민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하고, 체르노빌과 관련된 활동을 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퀄리티에서는 아쉽다는 평을 받았지만, 체르노빌의 모습을 담은 체르노빌 VR 프로젝트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돕기위해 개발된 것으로, 수익 일부를 기부하기도 했다고.

이번 '체르노빌라이트' 또한 게임 스토리 또한 참사를 겪고 살아남은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는 만큼, 어떤 부분에서 실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길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한편, The Farm 51의 SNS에는 우울한 사진만이 아니라 유쾌한 콘셉트샷도 올라오고 있다.



▲"이건 뭐지... 먹어도 안전한 걸까...?"


그대로 가져온 체르노빌에 상상을 더하다
장소와, 그 속에 담긴 스토리까지

사람들의 이야기가 중요한 요소로 떠올랐지만, 체르노빌이라는 장소를 게임으로 가져오겠다는 목표는 변하지 않았다. 개발진들은 직접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와 프리피야티를 방문해 실제 건물들은 물론, 소품 하나까지 촬영해 게임으로 구현해내고 있다. 체르노빌을 방문하면서 개발진이 느꼈던 감정을 전달할 수 있도록.

한편, 이 제작과정은 메이킹 필름을 통해 공개되고 있다. 가장 먼저 공개된 스캔 작업 인트로덕션에서는 개발진이 직접 방문해 관찰한 폐허가 된 체르노빌의 모습이 담겨있으며, 그들이 지난 5년간 개발한 3D 스캔 기술을 통해 구현한 게임 배경 프리뷰도 엿볼 수 있다. 1이라고 넘버링이 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앞으로도 계속 공개될 예정으로 보인다.


"버려진 건물들이 모여있는 체르노빌은 눈길이 닿는 곳마다 스토리를 전달한다."

스캔한 소품들이 게임 속에서도 그 장소 그대로 놓이는 것은 아니다. 1차적으로 구현된 장소는 게임의 분위기에 맞게 벽 데코레이션이 추가된다든가 다른 장소에서 촬영된 소품들을 가져와서 꾸며진다. 예를 들어 체르노빌의 유치원에서 찾아낸 인형은 스캔을 통해 게임 속에 구현되며, 유치원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등장하게 되는 식이다.

참고로 무섭게 생겼다. 이름은 앨리스라고.




장소 자체가 중심이 되는 만큼 게임 스토리와 플레이도 실제 건물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장소 곳곳에 숨겨진 단서들을 모아서 스토리를 이해해나가는 것은 당연하고, 실제 건축물이 의미 있게 이용되기도 한다. 체르노빌에서 볼 수 있는 대형 안테나 필드가 그 예다.

'모스크바의 눈' 또는 Duga로 불리는 적국의 미사일 공격을 미리 감지하기 위해 설치된 레이더로, 알 수 없는 신호와 소리 때문에 여러 가지 음모론이 생겨났던 건축물이다. 사람들의 생각을 통제할 수 있다던가, 체르노빌 사건은 Duga로 인한 손실과 실수를 무마하기 위해 일으킨 사건이라던가.




게임 속에서 모든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물체들은 이 레이더와 연관이 있다는 스토리로 전개된다. 레이더가 만들어낸 물체일 수도 있고, 전자기파의 영향으로 환각을 보는 것일 수도 있다. '체르노빌라이트'는 실제 체르노빌의 배경을 그대로 옮겨왔지만, 게임 플레이에서는 그와 관련된 음모론을 기반으로 한 가상이 함께 공존해있다.

너의 두려움에 맞서는 게 문제가 아니야. 이건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는가에 대한 거야.
"It’s not about how you face your fears. It’s about how you survive them."


게임 플레이는 생존하는 것을 기본으로,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가게 된다. 앞서 언급했듯 초자연적인 형상과 대체 현실을 기반으로 한 생명체로부터 살아남는 것은 물론, 주변에는 사냥꾼(Stalker)들이 있어서 이들과 협력할지, 경쟁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사냥꾼들은 협력하더라도 완전히 신뢰해서는 안 될 존재로, 모두 자신만의 숨겨진 내력이 있어서 어떻게 행동할지 모른다고.


개발자의 인터뷰에 따르면 런앤건 슈터는 아니지만, 액션이 중요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와 함께 무기나 기어를 개조해서 생존 확률을 높이는 것은 물론, 환경과 물질에 담겨있는 데이터를 찾아 나가야 한다. 체르노빌로 돌아온 이유가 있는 만큼 살아남는 것이 전부가 될 수는 없으니까. 장소를 돌아다니면서 단서를 찾고, 숨겨진 이야기를 맞춰나가게 되는 여정을 다룰 예정이다.

또한, 아직은 개발 단계라 확정적인 부분은 아니지만, 바이오하자드7과 같이 PC, 콘솔, VR까지 어우르는 게임으로 고려 중이라고 한다.


체르노빌라이트를 기다리며




체르노빌에 대하여 장소는 물론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꼼꼼하게 조사를 하고 진행되는 프로젝트, '체르노빌라이트'. 역사를 다루는 게임도,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내용은 아니지만, 실제 배경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개발되고 있다. 건물의 모습은 물론, 그 속에 남겨진 물건과 같은 실제 사람들의 흔적을 담고 있으니까.

작년 10월에 '월드워3'을 출시하고 빠르게 차기작을 공개한 The Farm 51. 두 게임은 서로 다른 팀이 맡아 진행하고 있고, '체르노빌라이트'는 '겟 이븐'을 개발했던 팀이 맡고 있다고 밝혔지만, '겟 이븐'부터 조금 아쉬운 인상을 준 것도 사실이다. 의미심장하게 진행되는 스토리와 흔하지 않은 방식을 도입한 게임 플레이는 '새로움'을 주는데 충분했지만, 너무 복잡했고, 완성도에서는 아쉽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The Farm 51이 '체르노빌라이트'를 구상하면서 '겟 이븐'과 크게 다르지 않게 게임을 구성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작에서 아쉬웠다는 점을 개선해서 좀 더 다듬어진 게임 플레이를 선보이겠다는 것. 보이치에흐 파즈두르 디렉터는 스토리텔링의 깊이를 해치지 않으면서 게임 플레이 메커니즘을 균형 있게 만들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게임플레이도 완성도 있게 만나볼 수 있기를

The Farm 51이 이번에 목표로 하는 것은 '더 잘 전달하는 것'이다. 체르노빌과 서바이벌, 그리고 공포까지, 기본적인 분위기와 배경은 만들어졌고, 공개 이후 기대감을 모으는데 충분했다. '겟 이븐'을 통해 스토리와 게임플레이를 접목한 기본 구조는 만들어졌고, 연출 부분에서는 호평받기도 했다. 이제 완성도 있는 결과물을 만들 차례다.

한편, '체르노빌라이트'의 출시는 올해 가을로 예정되어있다. 아직 조금 더 기다려야겠지만, 계속해서 공개되는 영상이나 페이스북에 간간이 올라오는 개발자들의 콘셉트 샷으로 지루하지는 않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게임 트레일러에서도 사용되었던 자장가, 'Tili Tili Bom' 영상으로 마무리한다. 러시아 자장가로 알려졌던 음악으로, 진짜 오래전부터 내려져 오는 음악은 아니라고 한다. 가사를 보면 절대 잠들기에 좋은 음악은 아니다.

으으... 미리보기 이미지부터...

댓글

새로고침
새로고침

기사 목록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