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굶지마에 이어 숨쉬지마! '옥시즌 낫 인클루디드'

리뷰 | 허재민 기자 | 댓글: 52개 |

'생존'이라는 요소는 어느 게임에나 있는 조건이다. 따지고 보면 슈팅게임도 내가 맞아 죽으면 게임 오버고 어드벤쳐도 죽지 않고 나아가야 한다. 사실 무서운 장면 하나 없이 생존게임은 공포다. 세이브와 다시 시작이 있어 다행이지, 언제든 죽을 수 있는 요소가 있다는 건 얼마나 공포스러운가.

지난 19일 '굶지마'라는 제목으로 유명한 '돈스타브(Don't Starve, 이하 굶지마)'의 개발사 Klei Entertainment의 신작 '옥시즌 낫 인클루디드(Oxygen not Included, 이하 산소미포함)'가 스팀에서 얼리억세스로 출시됐다. 그전까지 알파테스트 단계였기 때문에 유저들에게 알려진지는 꽤 오래되었다. 또한, 공식 한국어화는 되어있지 않지만, 창작마당에서 유저들이 만들고 있는 한국어 패치가 있어 한글로도 플레이할 수 있다.

목적은 '굶지마'처럼 오래 살아남는 것. 다만 여기서 한정된 공간이라는 점이 주요하게 작용한다. 자원과 산소, 물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다. 엔트로피가 이렇게나 가혹하다. '굶지마'에서 넓고 위험한 세계에 동떨어져 두려웠던 것과는 반대로 '산소미포함'에서는 자원과 산소가 점점 부족해져 가는 '닫힌 세계'에서의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처음 시작하면 복제인간(Duplicant, 이하 거주민) 셋을 고를 수 있다. 생존을 위해서는 똑똑하고 강한 자만 고르길. 약자는 살아남을 수 없는 곳이 바로 이 생존지, '하나밖에 없는 왕좌'이다. 원하는 능력치가 나올 때까지 셔플을 할 수 있다. 이후의 거주민은 랜덤하게 정해지므로 처음 인원을 잘 짜는 것이 중요. 학습력과 창의력을 인정받은 '용언니'와 채굴력의 '임프', 그리고 조작력이 좋은 공돌이 버전 '좐순호'를 채택해보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거주민들. 첫 장소는 이렇게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장소에서 시작한다. 사실 주위 모든 것이 소중한 자원이라는 사실! 이제 천천히 홈 스윗 홈을 지어볼 차례...






춥지마! 굶지마! 앗, 숨은 쉬고!
거주민을 위한 생존 기초


인간이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것엔 무엇이 있을까? 물론 사랑, 우정, 희망... 아니, 산소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던 산소는 '산소미포함'에서는 당연한 요소가 아니다. 거주민들은 계속해서 산소를 들이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이 밀폐된 공간에서의 산소란 사라져버릴 수도 있는 한정된 요소이다.



▲어멈아 산소 좀 다오

다행히도 개발자들은 처음 시작장소는 산소로 풍부한 곳으로 배정해준다. 하지만 방심하고 있다가는 사방이 호흡할 수 없는 빨간 공간으로 바뀌어 버릴 수도 있다. 특히 채굴하며 공간을 넓혀가다 보면 산소가 없거나 오염된 공기가 있는 장소가 있어서 산소를 보급하는 것이 시급해진다. 초반에는 산소발생기를 배치해서 전기와 녹조를 이용해 산소를 보급하게 된다. 또한, 이산화탄소는 산소보다 무거워 아래로 가라앉기 때문에 적절한 위치에 배치하는 것이 중요.



▲산소 농도가 각기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자, 숨은 쉬었으니 됐지? 아니, 이제 배도 고프다. 일하다가도 배가 고프면 다 던져놓고 밥 먹으러 가는 솔직한 거주민들을 위해 음식은 초반부터 신경 써야 할 요소다. 초반에는 흙과 물로 만든(이게 뭔 맛이야!) Mush Bar를 계속 생산하게 된다. 생산만 하면 되느냐고? 아니, 냉장보관이라는 퀘스트가 또 뜬다. 초반부터 계속 냉장보관이 되어있지 않다고 뜨지만, 어디에도 냉장고는 없으니 참 난감하다. 흙과 물을 반죽한 걸 먹는 우리 거주민들이 냉장고라는 고오급 기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 리가 없다. 보일러, 냉장고 등 고급 시설은 연구를 통해 해금 된다. 꾸준한 연구를 통해 건설할 수 있는 요소들을 빨리 해금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숨 쉬게 해주고 먹여놓으면 그나마 급한 불을 끈 셈이다. 일단 죽지는 않을 테니까. 그런데 이게 끝일 리는 없지.





현실 속의 생존, 그것은 순환과 디테일
잔인한 생태계 디테일


'산소미포함'의 세계는 현실적이고 한정적이다. 자원이 재생성되지 않고 소모되기 때문에 빠르게 대안점을 찾아야 한다. 오죽하면 유저들이 일부러 거주민들이 화장실에 못 가서 '지리게' 만들거나 구토하게 하여 거기서 물을 뽑아내려 할까. 자원의 순환 사이클을 구축해서 그 안에서 생존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중요해진다.



▲심지어 초반부터 물이 너무 멀다면...

생존에는 먹고 자는 것뿐만 아니라 거주민 각각의 적정한 상태를 유지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거주민 각각의 긍정적인 특성과 부정적인 특성이 있어서 신경 쓸 요소가 많아진다. 코 고는 거주민 하나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자다가 깨기를 반복하면 다음날 일의 효율이 줄어들거나, 스트레스 상황일 때 파괴적인 속성을 가진 거주민은 기껏 만들어놓은 기기들을 부수기도 한다. 자연뿐만 아니라 인간도 문제가 되는 것. (구토하는 애를 일부러 골라 물 채취를 위한 구토물 유발자로 만드는 것은 함정)

안정적인 상태를 만들기가 어렵다는 것이 재미있는 이유기도 하다. 문제가 계속 생기고, 유저가 개입해야 할 부분이 늘어나기 때문. 어느 요소도 그냥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껏 작물을 심어놨더니 온도가 너무 낮아져서 전부 얼어버리기도 한다. 게임을 플레이하다 보면 게임을 하는 것인지 정말로 아포칼립스 이후의 미래 세계를 창조하고 있는 건지 헷갈릴 정도로 디테일이 매력적이다.



▲청소를 멀리한 결과. 현실에서 지저분한 본인이라도 청소는 하자.

게임이니까 이건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지, 하는 부분은 없다. 있다면 언제든 세계를 버리고 새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일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철저히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이기 때문에 거주민들이 요구하지 않는 것일 뿐. 생존에 있어서는 철저히 현실적인 세계다.





설계를 제대로 해야 생존도 가능하다
기지건설과 샌드박스


'산소미포함'은 생존이 목적이지만 기지건설게임이기도 하다. 생활 공간뿐만 아니라 오염물을 정제하거나 온도를 적정수준으로 맞추거나 전부 유저의 설계에 맞춰 이루어진다. 따라서 내가 창의력이 좀 있다, 싶으면 여러 가지로 구상해보는 재미가 있다.



▲공기 순환을 고려한듯한 유저의 설계 (출처: Klei 공식 포럼)

재밌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구상해보는 것도 의미 있지만 사실 제대로 된 설계는 생존을 위해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타일을 가지고 구역을 적절히 나누는 것부터 시작해서 가스관과 액체관을 제대로 배치하는 것까지 설계가 되어야 한다. 가스관이나 액체관의 경우 온도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타일 안에 배치하고, 마그마가 가까운 곳에는 단열 타일을 깐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외적인 문제 말고도 거주민들의 성향이 영향을 주는 경우도 있다. 코 고는 거주민의 지정 침대는 문이나 벽으로 소리를 차단해주어야 한다는 점. 계속 잠에서 깨는 거주민이 있어 왜 그런가 했는데 옆에서 요란하게 자고 있었다.



▲외로워보여도 어쩔 수 없다

구조에 따라 물이나 공기의 순환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기기에 따라 필요한 자원을 편하게 조달할 수 있다. 이산화탄소를 한데 모아서 산소로 전환하는 데에 조달하기도 하고 깨끗한 물과 오염된 물을 구분해놓고 화장실 오물을 쉽게 정화할 수도 있다. 깔끔하게 체계가 정리된 모습을 보면 뿌듯하기까지 하다. 특히 초반에 물을 조달할 때 거주민들이 물에 젖어서 추위를 호소한 적이 많았는데, 정리하고 나니 자원조달이 한결 수월했다.



▲한 유저가 만든 보일러 (출처: Reddit)

세계의 모양을 만들어내는 것부터 자원을 이용한 생산 시스템까지 유저의 상상력이 개입할 부분이 많다. 게임 내에서 제공하는 생산아이템이 전부가 아니라 타일과 관을 이용해 만들어 생산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니까. 유저가 만든 시스템으로 거주민들을 생존하게 만드는 것. 이러한 샌드박스의 요소가 '산소미포함'의 또 한 가지 매력이다.


당신은 어디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가
알파테스트 때부터 재밌었다, 얼리억세스 이후의 가능성


잔인하고, 쉴 틈이 없는 게임이었다. 매 사이클마다 낮과 밤 내내 해야 할 일과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생긴다. 산소 농도를 맞췄더니 자원이 부족하고 자원을 아꼈더니 추워서 식물이 죽어버렸다. 할 일이 많아 일을 끊임없이 시켰더니 거주민들 스트레스가 피크를 찍기도 했다. 질식해서 죽은 거주민 옆에서 계속 울기만 하는 거주민도 생기기도(슬퍼서 우는 줄 알았는데 그냥 스트레스 받은 것 뿐이었다)... '산소미포함' 속 사건·사고는 끊임이 없어 저절로 몰입하게 된다.



▲미.. 미안..

분명 아직 얼리억세스이기 때문에 버그 문제나 추후 추가될 것으로 보이는 기능들이 있다. 또한, 설명이 다소 불친절해서 매커니즘을 이해하는 데에는 여러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창고를 만들어야 자원을 정리한다는 점을 몰랐을 땐 "아니 이 지저분한 자원들을 왜 안 치우는 거야?"하며 버그라고 착각도 했기 때문이다. 아직 개발 중인 단계이고 새로운 요소가 추가되거나 개선 업데이트가 되고 있어 정식출시 이후의 모습이 기대된다.

뼛속까지 문과인 기자로서는 다분히 이과적인 메커니즘 때문에 바보 같은 짓도 많이 했다. 액체관은 어디에 쓰는 것인지, 위쪽에 산소 공급기를 만들어놨는데 아래까지 전달이 안 되는 건지, 시행착오가 많았다. 역시 아포칼립스의 상황에서는 이과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걸까 하며 '문송'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정말 취업보다도 힘든 생존이었다. 그만큼 알아갈수록 재밌어지는 것도 맞지만.

200일, 400일을 넘겨 생존하는 유저들의 세상은 창의적으로 구성되어있었다. 자원은 유저가 사용하기 나름. 오물도 정화하면 소중한 자원이 된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세상. 디테일하고 잔인한 생태계. 당신은 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내가 만들 수 있을거라 상상한 기지(출처: Klei 공식 포럼)



▲내가 직접 만든 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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